# 157
“아니, 실제로 잘 모르겠는 걸 잘 모르겠다고 하는데 뭐가 문제야, 이 자식아.”
그 말에 막이 탁 풀린 남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모르겠으니 모르겠다고 하겠지. 근데 너, 그거 아냐? 네가 그걸 하는 순간 너 아득히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거.”
그 말에 자운이 웃었다.
“질투 나냐?”
“너 같으면 안 나겠냐?”
남우가 초월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하나 그것이 무의 극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니 자운이 오른 경지가 욕심이 나고 탐이 난다.
당연히 질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도 두 번 다시는 못하겠다.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
자운이 웃으며 한쪽에 놓여 있는 황룡신검을 집어 들었다.
“여지없이 너랑은 좀 같이 있어야겠다. 이제 운산에게 넘겨주나 했더니 아직 더 필요하겠네.”
자운의 말에 황룡신검이 반응이라도 하듯 잘게 떨었다.
우우우우우우웅-
* * *
그 무렵, 자운과 이공의 전투 소식이 무림맹은 물론이고 일성에게도 전해졌다.
일성이 소식을 듣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하! 그렇군요. 과연 그렇군요. 그가 삼공에 이어서 이공도 이겼다지요?”
일성의 말에 일공이 고개를 숙였다. 상위 마공의 압도적인 힘 때문인지 일공은 일성 앞에 오면 큰 힘을 쓰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그는 나의 운명의 호적수인가 봅니다. 칠적을 차례로 쓰러뜨렸을 때까지만 해도 그를 내 아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군요.”
우우우우우우-
일성이 배출하는 기파에 넓은 대전이 무너질 듯 흔들거렸다.
적성지존공의 위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붉은 기운이 일성 위로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이것이 바로 적성지존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멸성기.
적성은 탐욕스러운 별이다.
요사스러운 붉은 별이 빛을 뿌리기 시작하면 감히 다른 별들은 그 근처에 다가가지 못한다.
호기롭게 다가가는 별이 있다면 적선의 기운에 의해서 산산이 파괴된다.
적성지존공의 기운 역시 그런 적성의 기운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별을 멸하는 기운.
멸성기가 진득하게 흘러나왔다.
일성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상대해야 할 모양입니다.”
그가 천하도를 바라보았다.
이공이 죽었으니 곧 무림의 절반이 무림맹의 휘하에 들어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천하의 동쪽은 적성의 휘하에 있고, 서쪽은 무림맹의 아래에 있다.
그가 한참을 천하도를 유심히 살폈다.
“흐음, 어디가 좋을까.”
그가 한참을 살피더니 호북의 무당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무림맹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중경 땅에서 호북으로 넘어오면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산, 무당산.
또한 무당은 위치상으로 천하의 중심에 가깝다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놈과 결판을 지어야 할 것입니다. 거대한 대회를 열어야겠군요.”
그가 무당산올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말했다.
붉은 기운이 천하도를 타고 넘실넘실 뿜어져 나간다.
“그곳에 넓은 대회장을 준비하세요. 그와 내가 겨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승패에 따라 천하의 운명이 결정되겠지요.”
화악-
곧 그의 손가락에서 뿜어진 기운은 천하도를 모두 덮어버린다.
일성의 말에 일공이 고개를 숙였다.
“명대로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일공이 씨익 웃고 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 천하는 누구도 아닌 나의 손으로 들어올 것이다.’
* * *
자운 일행과 무림맹이 만난 것은 이공과의 전투가 끝나고 보름 정도가 지난 후였다.
무림맹이 적성이 가지고 있던 모든 땅을 공격하여 빼앗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자운이 이공을 쓰러뜨려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남궁인이 자운을 향해 다가왔다.
“무상이 수고가 많았다 들었습니다.”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수고했는지 아직도 속이 쓰립니다.”
내상이 아직 치유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말.
이공과의 싸움에서 얻은 내상도 남아 있었지만, 마지막에 무리한 공격을 펼치며 얻은 내상이 대부분이었다.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남궁인이 자운의 말을 알아들었다.
“속에 좋은 약재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군요.”
남궁인이 말을 하며 자운을 살폈다.
그러고는 속으로 탄식을 토했다.
‘허어!’
내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는 전혀 읽히지 않는다.
눈앞의 사내는 인간의 잣대로는 감히 평가할 수 없는 그런 사내다.
“한데 옆의 분은 독곡의……?”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이 독곡의 수장입니다.”
남우가 자운의 옆으로 와서 남궁인을 향해 말했다.
“남우다”
그 말에 남궁인의 옆에 서 있던 다른 고수들이 발끈했다.
“이자가!”
남궁인은 무림의 맹주다.
그런 그를 향해 하대로 자기소개를 하는 세외 문파의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행동에 남우가 눈썹을 꿈틀했다.
동시에 꾸구궁 하는 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기운이 사방으로 뿜어졌다.
“헉!”
남우를 노려보던 고수들이 대번에 헛바람을 들이쉬었다.
이자, 괴물이다.
남궁인 역시 남우를 바라보았다.
‘허허, 괴물 옆에는 괴물만이 꼬이는 것인가.’
어찌 이리도 사람의 경지를 아득히 넘어선 존재들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자운이 손을 살짝 휘둘렀다.
자운의 손에서 기운이 일어 남우의 기운을 밀어낸다.
“적당히 하자고. 애들 앞에서 추태 부리지 말고.”
그 말에 남우가 헛기침을 하며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크흠.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게 하지.”
독곡을 지원군으로 끌어들인 것은 전적으로 자운의 힘이었다.
남궁인이 자운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무상께서는 정말로 무림의 구성이군요.”
자운이 겸손하지 않게 말을 받아쳤다.
“하하하하! 제가 좀 잘나기는 했습니다.”
남궁인과 만난 이후 자운과 마주한 이들은 바로 설혜와 취록이었다.
자운이 취록을 향해 다가가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너 안 본 사이에 꽤나 초췌해진 것 같다?”
자운이 나가 있는 동안 무상부의 대소사를 모두 취록이 관리했다.
그러니 그녀가 초췌해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언니가 많이 도와주셔서 괜찮았어요. 그런데 다친 곳은……?”
자운이 가슴을 두드렸다.
“속이 좀 쓰릴 뿐이야. 그보다, 언니?”
자운이 고개를 스윽 돌려 옆에 서 있는 설혜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 얼음이랑 의자매라도 맺은… 으아아아아아악!”
설혜가 자운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자운이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다.
“야, 아파 죽겠다! 나, 환자야!”
항변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콧방귀뿐이었다.
“흥!”
설혜가 가볍게 콧방귀를 뀌더니 남우를 보고 한마디 했다.
“독쟁이, 아직 살아 있었네?”
“이 얼음 같은 년아, 너도 죽지 않고 잘 살아 있었구나.”
남우와 설혜가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둘은 과거부터 친한 듯하면서도 크게 친하지 않았다.
아마도 세외 문파의 대표라는 자긍심이 서로를 충동시키는 듯했다.
물론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자운이었으니 둘을 자연스럽게 융화시킨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힘자랑할 거라면 나부터 꺾어야… 캐액!”
자운의 복부에 설혜와 남우의 주먹이 동시에 꽂혀들었다.
“빠져있어.”
“환자는 빠져 있어라.”
그러고는 서로 노려본다. 자운이 주르륵 밀려나며 복부를 싸잡았다.
“아이고, 죽겠네. 그래, 한번 해보자는 거지?”
우르르릉-
자운의 몸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나고, 거대한 기운이 풀려나왔다.
곧 열한 마리의 용이 머리를 치켜든다.
설혜와 남우가 자운을 바라보았다.
푸른 독정기가 공간을 잠식하며 남우로부터 뻗어져 나온다.
설혜의 주변으로 눈보라가 몰아쳤다.
자운이 그 모습을 보고 입을 씰룩였다.
“그래, 이놈들아! 오늘 어디 한번 최강을 가려보자!”
쾅!
퍼버버벙-
열한 마리의 황룡이 날았다.
“으아아악! 도망쳐라!”
“휩쓸리면 죽는다!”
“살려줘! 이런 괴물들이 왜 셋이나 있는 거냐!”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남궁인이 혀를 찼다.
“허허, 과연 난신이로다. 용제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군.”
난신에 의해서 또 사방이 파괴되고 있었다.
괴걸광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미친놈이라니까 그러… 캐액!”
자운에게서 뿜어진 경력이 괴걸왕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쳤다.
괴걸왕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뻗어버렸다.
남궁인이 그런 괴걸왕의 모습을 보고는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게 이 사람아, 말은 가려서 해야 하는 걸세.”
그러는 동안에도 세 괴물은 날뛰고 있었다.
“이것들이 아주 환자를 막 패는구나.”
자운이 푸르게 물든 눈두덩을 비비며 말했다.
그 말에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코를 남우가 닦아내며 말했다.
“환자가 그렇게 괴물같이 뛰어다니냐? 너, 아프다는 거 전부 거짓말이지? 아프기는 개뿔이. 내상을 입은 놈이 그 정도야?”
그는 자운의 패룡에 코가 부러지는 경험을 했다.
그 탓에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독쟁이!”
설혜가 남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녀는 손가락 끝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몸속으로 침투한 독정기를 몰아놓은 것이다.
곧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또옥 하고 검은 물이 떨어져 내린다.
남우의 독정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