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56화 (156/175)

# 156

자운의 검이 흔들리며 이공을 향해 파고들었다.

이공은 혼신의 힘을 다해 멸공지력을 움직여 자운을 밀어냈다.

그그그그그긍-

무언가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며 자운의 어깨를 멸공지력이 꿰뚫었다.

“크악!”

자운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반대로 검을 움켜쥔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간다.

스걱-

이공의 앞섶이 잘려 나가며 피가 뿜어졌다.

“쿨럭!”

이공이 뒤로 밀려났다.

자운이 자신의 어깨를 바라봤다.

단번에 살이 검게 죽어간다.

멸공지력이 독과 같이 몸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내공을 움직여 멸공지력이 움직이는 모든 통로를 차단했다.

이번 상처는 꽤나 깊다.

그 탓에 두 시진은 버틸 것이라 생각했는데 반 시진도 버티지 못하게 되었다.

이공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는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쩌억 벌어져 속이 다 드러나 보인다.

검이 한 치만 깊게 들어왔더라면 심장이 상할 뻔했다.

이 상처를 막지 못하면 필패다.

그렇게 생각한 이공이 선천지기를 움직였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선천지기만을 남겨둔 채로 상처를 꾸역꾸역 메워 나간다.

자가 재생되는 이공의 상처에 자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검에 베여도 소용이 없어. 괴물 같은 놈. 저만한 치명상을 회복하다니.’

다른 고수라면 이미 몇 번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공이다.

이공은 이공대로 자운을 향해 이를 갈고 있었다.

엄청난 공격에 선천지기가 바닥이 났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그런 회복력을 보이지 못할 것이다.

‘어깨를 내어주고 치명상을 입혀?’

이공은 자신의 멸공지력의 힘을 알고 있다.

그것을 상대하는 자운이라고 해서 멸공지력의 경력이 침투할 것을 알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어깨를 내어주다니.

대단한 담력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적이지만 순수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인정하겠다. 너는 우리 적성의 호적수다. 또한 너를 죽이지 않는다면 무림을 온전히 손에 넣은 것이라 할 수 없겠구나. 네 등 뒤에 업은 것이 바로 무림이다. 너를 부수어 나는 오늘 적성의 손에 무림이 부서졌음을 만천하에 고하겠다.”

“그런 어려운 말 몰라, 이 새끼야. 그냥 편하게 날 죽여 버리겠다고 아까처럼 말해. 나도 너 죽여 버릴 테니까.”

이공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런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그는 하늘이 내린 적성의 호적수다.

자운이 자신의 검을 내려다본다.

‘녀석을 쓰러뜨릴 만한 검초가 무엇이 있지?’

자운의 머릿속이 맹렬하게 회전하는 순간, 자운은 손에 들린 신검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내가 왜 검에 집착하고 있는 거지?’

초식이라는 것은 적재적소에 사용하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또 망각했다는 말인가.

검초가 아니라도 주먹으로, 손가락으로, 발로도 상대에게 상처 입힐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무림인이 아니던가.

‘내가 왜 검에 집착을 한거지?’

자운이 의문을 가지는 순간, 멸공지력이 자운을 향해 뿜어졌다.

“대사형!”

운산과 우천이 자운을 크게 불렀지만, 자운은 움직이지 못했다.

머릿속에 꽉 차오른 화두가 온몸을 지배한 것이다.

‘나는 왜 검에 집착하고 있는가. 검이라는 형태에 국한된 것은 아닌가.’

화두가 수를 불려 나가며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멸공지력이 지근거리에 다가온 순간, 자운이 황룡신검을 놓았다.

그 모습이 마치 체념을 한 모습이다.

자운이 손을 들어 올린다.

멸공지력이 자운과 일 촌의 거리도 남겨두지 않았을 때, 자운이 허공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쿠왕-

멸공지력과 함께 이공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크헉!”

이공이 형편없이 바닥을 구른다.

자운이 허공을 움켜쥐는가 싶더니 자신의 몸과 멸공지력이 그대로 튕겨져 나온 것이다.

“무, 무슨…….”

그가 고개를 들어 자운을 확인했을 때, 자운은 입과 코에서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어?”

자운이 코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피를 닦았다.

허공을 움켜쥐는 순간, 세상의 만물이 자신에게 복종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감각 그대로 세상 만물을 움켜쥐고 휘둘렀다.

아니, 만물이 아니라 허공을 움켜쥐고 휘둘렀다.

대기 중의 자연지기가 손에 뭉쳐와 형상을 이루고 보이지도 않을 검을 만들어 이공과 멸공지력을 후려쳤다.

“어?”

하지만 반발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역류한 자연지기가 온몸을 헤집는다.

후드득-

코피가 앞섶을 적신다.

자운이 닦아도 닦아도 멈추지 않는 코피에 체념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방금 전에 일으킨 일을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대지가 쩌억 갈라져 있다.

가벼운 움직임이 만들어낸 한 수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이공이 힘들게 몸을 일으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이놈,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이공의 온몸이 덜덜덜 떨리고 있다.

‘아, 그런 거구나.’

자신의 한 수가 이공에게 겁을 먹게 만들었다.

자운이 코피가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웃었다.

그리고 다시 허공을 움켜쥐었다.

콰앙!

제3장 나의 손으로 들어올 것이다

이공과의 싸움 이후 자운은 그 자리에서 혼절해 버렸다.

다행인 점은, 자운의 몸속에 남아 있는 멸공지력의 경력을 자운 스스로가 몰아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이한 일이다.

자운에게 본래 선천지기는 평범한 고수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는데, 그 양이 한 번에 확 늘어나 버렸다.

남우가 착잡한 눈으로 침상에 누워 있는 자운을 바라보았다.

“너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놈이냐.”

물어봐야 답할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가 계속해서 자운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시대에 와서 처음으로 자운을 만났을 때 느낀 감정은 호승심이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가 가진 능력의 일부를 읽을 수 있었고, 자신과 능히 만여 초를 겨룰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운이 허공을 움켜쥘 때,

그때의 자운의 기도는 감히 읽어내지 못했다.

한순간 눈앞에서 자운이라는 존재가 아득히 멀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다시 기도가 느껴지지만, 자운이 완전히 그와 같은 경지에 올라선다면?

자신은 그를 읽어낼 수 있을까?

아마도 무리일 것이다.

남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이 정도도 강한데 초월을 또 한 번 초월하겠다고?

“미친놈.”

절로 욕이 나왔다.

도대체 얼마나 강해져야 이 녀석은 만족할 것인가.

아니, 오히려 주변의 상황이 이 녀석을 계속해서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강한 적들과의 싸움, 평생을 겨룰 만한 호적수들과의 싸움이 연이어 이어져 실력이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될 환경이었다.

“괴물 같은 녀석.”

이런 놈을 하늘이 내렸다.

이건 대놓고 이 녀석에게 천하를 부탁한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그가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여, 이 무거운 천하를 둥에 짊어지게 할 새끼가 꼭 이 새끼밖에 없었소?”

왜 하필 이런 망나니 같은 녀석에게 천하를 짊어지게 한 것인지, 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순간, 자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이 미친 새끼야?”

“어? 깨어 있었냐?”

“그래, 인마.”

자운이 옆에 놓인 물 잔의 물을 쭈욱 마셨다.

속이 탄 둣 한 잔을 다 비워내고도 모자라 물 한 잔을 더 비워낸다.

“으,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속은 온통 진탕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멸공지력의 경력은 어찌어찌 밖으로 밀어낸 모양이다.

“어디서부터 듣고 있었냐?”

“네가 미친놈이라고 나 욕할 때부터.”

그 말에 남우가 자운의 침상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처음부터 다 듣고 있으면서도 안 일어난 거냐?”

“뭐라고 욕할지 궁금했으니까.”

그 말에 남우가 크게 웃었다.

확실히 망나니 같긴 한데 재미있는 녀석이다.

또한 할 때는 확실하게 하니 하늘도 도박 삼아 이런 놈에게 맡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거라면 하늘이 너무 큰 도박을 한 것이로군.’

남우가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며 자운을 향해 물었다.

“어떻게 한 거냐?”

“뭘?”

“네가 마지막에 한 것 말이야.”

그 말에 자운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주변 어디선가 폭음이 들릴 것만 같았지만 전혀 들리지 않는다.

“이거 말이야?”

남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도대체 저것이 무엇이기에 이공 정도 되는 고수가 반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진다는 말인가.

남우가 고개를 끄떡이자 자운이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후우.”

모르겠다.

스스로 했지만 어떻게 했는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순간 머리를 가득 채웠던 화두, 그 화두는 종이를 물들이는 먹과 같이 온몸을 촉촉이 적셔 나갔다.

그 물들임이 발끝과 손끝에 닿는 순간, 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기에 더 이상 구애 받지 않는 경지?’

그런 게 아니다.

그런 건 이미 예전에 아득하게 뛰어넘은 지 오래다.

그렇다면 무엇이라는 말 인가.

무엇으로 그것을 설명해야 할까.

자운은 자신이 좀 전에 했던 그대로 이번에도 허공을 움켜쥐었다.

역시나 폭음이 터지거나 이공을 쓰러뜨릴 때 일어났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흔들고는 남우를 향해 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

“뭐, 인마? 네가 해놓고 네가 잘 모르겠다고 하면 그게 뭐야?”

남우의 말에 자운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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