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54화 (154/175)

# 154

내심 동요해서 날뛰기를 바라고 펼친 격장지계였는데 통하지 않으니 안타까웠던 것이다.

‘역시 무공으로 해야 하나.’

그가 황룡신검을 내려다보고는 넘실거리는 흑선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섣불리 파고들지는 않았다.

방금 전에 한 번 공격을 당한 뼈 아픈 기억이 아직도 욱신거리는 좌수를 타고 전해졌던 것이다.

‘놈은 약하지 않다. 그러니 더욱 주의해야 한다.’

자운이 가슴을 침착하게 식혔다.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아직 이공도 그렇고 그 스스로도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힌 적이 없다.

치명상뿐만 아니라 운신에 무리가 갈 정도의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그렇다는 것은 이 결투가 언제까지고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가능성을 자운은 냉철하게 검토했다.

그리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생사투도, 앞으로 이어질 싸움에서도 결코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리라.

자운은 머리를 돌려 이 전투를 끝낼 수를 찾았다.

긴장이 팽팽하게 이어졌다.

마치 언제까지고 대치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진다.

좌중은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두 초월자의 싸움을 주시했다.

고수들의 싸움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인인 이상 느끼며 깨닫는다.

운산과 우천이 그러했다.

그들은 자운의 움직임을 간신히 좇으면서, 아니, 움직임의 구 할 오 푼 이상을 놓치면서도 악착같이 자운을 좇았다.

그들이 익힌 무공 역시 자운과 같은 황룡문의 무공이다.

눈으로 좇고 가슴에 새겨 익히고 배운다면 언제고 자운과 같은 무위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리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어질 것만 같은 긴장의 연속을 깬 것은 이공 쪽이었다.

이공의 흑선 중 하나가 공간을 가르며 빠르게 자운을 향해 날아갔다.

자운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신검을 휘둘러 흑선을 막아낸다.

그 소리를 신호탄처럼 수십 다발의 흑선이 어지럽게 공간을 놀렸다.

허공을 희롱하고 공간을 부수며 자운을 향해 달려든다.

자운이 호룡을 불렀다.

저것을 일일이 다 막다가는 그의 심력이 먼저 바닥날 것이다.

호룡 속에 몸을 숨긴 자운이 흑선 다발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호룡의 비늘 위로 흑선이 충돌하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저벅저벅-

흑선은 계속해서 호룡을 후려쳤고, 자운은 호룡을 더욱 튼튼하게 하여 온몸을 휘감았다.

우우우우우-

자운의 의지가 전해지자 호룡이 긴 울음을 터뜨린다.

“이놈!”

자신의 흑선이 통하지 않자 이공이 주먹을 말아 쥐며 흑선을 뭉쳤다.

흑선이 그의 바로 앞에서 빙빙 뭉쳐지며 송곳의 형태로 변한다.

수십 줄기의 흑선이 만들어낸 하나의 송곳.

그 끝이 예리하게 반짝이며 단번에라도 자운을 관통할 듯 번득였다.

자운이 호룡의 고개를 송곳의 날로 향하게 했다.

거대한 송곳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호룡의 고개가 마주하는 순간, 번쩍하는 섬광이 튀며 둘이 충돌한다.

호룡이 어금니로 온 힘을 다해 송곳을 물었다.

키이이이잉-

송곳은 호룡의 어금니 사이에 물린 와중에도 빠르게 회전하며 자운을 향해 파고들려고 노력했다.

자운이 칠룡과 팔룡, 쌍두룡을 부른다.

이기어검과 같이 쌍두룡의 머리가 허공중에서 펄럭였다.

“가라!”

자운이 손을 뻗자 쌍두룡의 두 머리가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칠공을 향해 날아들었다.

칠공이 송곳을 그대로 둔 채로 양손을 펼쳤다.

멸공지력이 모여들며 거대한 방패의 형상을 만들고, 칠룡과 팔룡이 그 방패에 충돌한다.

쿠웅-

바닥이 크게 출렁였다.

자운이 진각을 밟았다.

쾅-

출렁이는 바닥이 더욱 심하게 요동치며 자운의 신형이 높게 띄워졌다.

이공의 멸공지력과 충돌하고 있던 두 마리의 용은 단번에 자운의 몸속으로 돌았다.

자운이 호룡만을 유지한 상태에서 지체없이 새로운 용을 불러내었다.

비룡.

자운의 몸이 비룡에 올라타는 순간, 비룡의 머리가 섬전처럼 이공을 향해 쇄도한다.

자운이 비룡의 몸을 박차고 뛰었다.

비룡이 만들어준 길을 자운이 타고 달리는 것이다.

타다다닷-

발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자운의 높게 뛰어 자운의 뒤쪽에 내려선다.

“잔재주를!”

이공이 호룡을 상대하던 송곳을 물리고 자운을 향해 멸공지력을 뻗으려 하는 순간,

호룡이 커다란 고개로 이공의 몸을 들이받았다.

“커헉!”

이공의 몸이 튕기듯 자운을 향해 날아든다.

자운이 이공의 가슴팍을 향해 파고들었다.

자운의 어깨가 이공의 가슴팍을 밀고, 자운의 손바닥에서 패룡이 쏘아졌다.

쾅!

뒤에서 호룡에게 맞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면을 패룡과 충돌한다.

어지간한 사람이었다면 정신 끈이 끊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공은 과연 이공이었다.

이백 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괴물답게 정신력이 그야말로 대단했다.

패룡이 이공의 몸과 충돌하는 순간, 수십 줄기의 흑선이 자운의 몸을 때렸다.

“커헉!”

자운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공은 착지할 힘을 끌어 모을 시간도 없었던 것인지 형편없이 바닥을 구른다.

자운의 온몸에 흑선이 치고 지나간 상처가 생기고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흑선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그 부분을 구성하던 몸의 조직이 무너진 것과 마찬가지여서 쉽게 재생되지 않는다.

“크흑.”

자운이 쓰라린 상처를 만졌다.

지혈도 잘 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간신히 몸을 비틀어 치명상은 없다는 점이다.

무리해서 움직인다고 해도 터질 상처가 아니었으니 당장에 지혈을 할 필요는 없었다.

자운이 자신의 상처를 살피는 사이, 이공의 몸에서 우드득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공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이 강시와 같다.

무릎도 굽히지 않고 어떠한 관절의 움직임도 없이 몸을 일으킨 이공이 자운을 타오르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씰룩였지만, 몸의 어긋난 뼈를 재구성하는 중인지라 입을 열지는 못했다.

선천지기가 몸속을 순환하며 뼈를 휘감았다.

워낙에 큰 상처인지라 선천지기의 절반 이상이 단번에 날아간다.

한 번만 더 이런 공격을 당한다면 회복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쿨럭.”

어긋난 뼈를 맞추는 작업을 대충 마친 그가 피를 토했다.

입에서 흘러나온 피와 함께 내장조각이 떨어진다.

자운이 그 모습을 보며 이죽거렸다.

“꼴좋구나.”

그렇게 말하는 자운의 몸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흑선으로 인해 입은 상처가 아니라 파고든 흑선의 경력이 문제다.

빨리 운기를 해서 몰아내지 않으면 삼 일도 채 되지 않아 자운의 골수까지 침투한 멸공지력의 경력이 자운을 분해할 것이다.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두 시진, 그 안에는 싸움을 끝내야 한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자운의 등 뒤로 축축하게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괴물 같은 자식.’

자운이 이공을 노려보았다.

이공 역시 자운을 노려본다.

자운이 검을 지팡이 삼아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

동시에 노도와 같은 내공이 자운의 몸속에서 휘몰아쳤다.

내공이 흘러가는 곳은 흑선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곳.

푸슛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터져 나왔다.

일시적으로 내공이 그 부분에 집중되니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멸공지력의 경력을 두 시진 가량 묶어놓기 위해서는 이 수밖에 없었다.

‘두 시진 안에 끝을 내지 않으면 내가 과다출혈로 죽거나, 아니면 멸공지력의 경력에 몸이 분해되어서 죽겠군.’

어느 쪽이든 그 안에 끝내지 못하면 죽는다.

자운이 이를 악물었다.

이공 역시 분기탱천한 눈으로 자운을 노려본다.

자운의 시선과 이공의 시선이 허공중에 얽혀들었다.

초월자들의 시선은 단순하지 않다. 엄청난 기세가 그 속에 숨어 있다.

기세와 기세가 충돌하며 뜨거운 열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관전하는 운산과 우천은 후끈한 바람이 와서 닿는 것을 느꼈다.

운산과 우천이 그 감각을 느끼는 순간 이공과 자운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스팟 하는 소리와 함께 둘의 신형이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제비같이 튀어 오른 자운이 옷을 넓게 펼치며 황금빛 검강을 뿌렸다.

파바바밧-

이공이 몸을 비틀어 모든 강기를 피해내자 목표를 잃은 강기가 그대로 바닥과 충돌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자욱한 모래먼지가 일어났다.

자운이 모래먼지에는 신경 쓰지 않고 이공을 쫓았다.

그의 눈에 섬광처럼 움직이는 이공의 움직임이 들어왔다.

자운이 허리를 비틀었다.

굵은 흑선이 자운의 허리가 있던 자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콰앙-

자운이 그대로 발에 황금빛 강기를 두르고 흑선을 박찼다.

그가 단번에 이공의 지근거리로 날아갔다.

주먹을 뻗는다.

화악 하는 소리와 함께 주먹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염룡교의 수법!

화염이 그대로 공간을 갈랐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이공이 두 팔을 교차하며 멸공지력을 둘러 자운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동시에 날카롭게 휘어진 이공의 손이 갈고리마냥 자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크크크크.”

자운이 그 자리에서 어깨를 틀었다.

쭉 뻗은 이공의 품을 향해 파고든 것이다.

이공의 다른 한 손이 움직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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