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그리고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정중히 포권을 취해 보인다.
“벽력도마 사일귀, 사령의 후예이신 주군을 뵙습니다.”
제12장 실망시키지 않고 네 목을 꺾어줄 테니까.
사일귀와 당평청이 전투를 하고 있을 무렵, 자운 일행과 이공의 일행은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자운이 말에서 내려 이공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공 역시 감정 없는 무감각한 표정으로 자운을 노려보고 있다.
“네놈이 난신이라는 아해로구나.”
자운이 고개를 갸웃하고 움직였다.
“네가 나이를 좀 많이 처먹기는 했는데 피차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얼마 차이 안 나니까 아해라는 개소리는 그만하자고.”
이죽이는 자운의 말에 옆에서 남우가 푸앗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자운이 말하는 것을 들은 우천이 운산을 향해 중얼거렸다.
“가끔씩 대사형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굉장히 오랜 시간을 살아오신 것 같군요.”
그 말에 운산은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운의 둥을 응시했다.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자운의 존재는 불가해(不可解). 억겁의 시간을 살아온 존재와 같은 느낌 이 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살아올 수 없는 시간을 걸어간 사람을 보는 느낌.
또한, 의문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독곡의 설명에 따르면 자운과 웃고 농담을 하며 서로 반말을 하는 남우라는 존재는 이백 년 전 독곡의 곡주였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 인물과 마치 오래전부터 잘 것 같지 않은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물어버리면 더 이상은 사형제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묻지 않는다.
그저 자운의 둥을 응시할 뿐이었다.
‘대사형. 당신은 도대체 어떤 분이십니까.’
묻는다고 해도 답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운산이 자신의 눈빛을 숨기는 사이, 자운과 이공의 대화가 이어졌다.
“하찮은 재주를 믿고 날뛴다고 하더니, 설마 내 앞에서도 그 재주를 믿고 그러는 것이냐?”
자운이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려 보인다.
“그 하찮은 재주에 너네 쪽 몇 명이 당했는지 손가락 발가락으로 세어보면 앞날이 캄캄할 텐데 안 그래?”
“나를 그런 놈들과 비교하지 마라.”
그의 주변이 검게 물들었다. 멸공지력이 공간을 잠식하고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자운이 기운을 끌어 올렸다.
덩달아 남우 역시 독정기를 끌어올린다.
“글쎄. 비교하고 안하고는 네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지. 내가 싸워보고 결정을 해야겠지.”
우우우우-
열한 마리의 황룡이 머리를 들어 올렸다. 거대한 용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독정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그 모습을 본 황룡문도들과 독곡의 인원들이 뒤로 물러났다.
저것에 휘말리면 그대로 죽는 거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독정기와 황룡무상십이강이 모습을 드러내자 이공 역시 멸공지력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이공의 주변 공간이 먹물에 물이라도 든 듯 검게 물들어가며 무너져 내렸다.
이것이 바로 이공의 멸공지력.
우우우우-
멸공지력의 힘을 감지한 황룡이 울음을 터뜨린다.
이공의 뒤에 서 있던 사파의 사람들 역시 뒤로 물러났다.
초월한 자들의 싸움이다. 휘말리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휘류류류류류-
절대의 경지마저 넘어선 초인들의 기세가 허공에서 마구잡이로 충돌했다.
그 폭발만으로도 귀청이 울릴 정도로 큰 굉음이 여기저기서 울려온다.
“으으으으.”
몇몇 무인들이 귀를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자운의 몸이 움직였다.
콰르르륵-
멸공지력으로 공간이 무너져 내렸다. 그 사이를 남우의 독정이 날아든다.
휘이이익-
독정으로 만들어진 강륜이 공간을 그대로 무너뜨렸다.
“이놈이!”
이공이 소리를 치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쿠드드등. 멸공지력이 주먹으로 모여들며 살색이 흑색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섬광처럼 쏘아지는 멸공지력!
콰드드드드등-
하늘이 무너지고 공간이 쪼개졌다. 무너져 내리는 공간이 자운을 덮쳤다.
자운이 몸 주변을 호룡으로 휘감았다.
우우우우우-
호룡이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너지는 공간들을 쳐 내었다.
자운은 호룡의 보호 속에서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멀쩡히 이공을 향해 걸어간다.
이공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자운을 보며 두 손을 활짝 폈다.
콰르르릉-
흑색 선이 그대로 창공을 가른다.
자운을 향해서 뻗어오는 흑색 선,멸공지력의 움직임이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자운을 향해 짓쳐들어 왔다.
자운이 신검을 들었다.
우우우우웅-
신검이 가늘게 떨며 금빛 섬광을 머금는다.
꽈앙-
멸공지력이 흑색 포탄이라면 자운이 쏘아낸 기운은 금색 포탄이었다.
콰앙-
두 개의 포탄이 충돌했다. 자욱한 먼지가 눈앞을 가리고, 독정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후르르르르르-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독정기가 이공을 포위하듯 그를 에워쌌다.
이공이 자신의 주변을 포위하듯 원으로 묶고 있는 독정기를 보며 코끝을 씰룩였다.
“하등한 독물 나부랭이가?”
그 말에 남우가 웃는다.
“하등한 독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넌 거기에 닿는 순간 핏물로 사라지는 거야. 알겠어?”
“웃기는 소리 하는군.”
그가 독정기에 대항이라도 하듯 멸공지력을 끌어올렸다. 남우는 그럴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듯 손을 든다.
푸확-
단번에 독정기가 움직이며 파도처럼 이공을 덮쳐 갔다.
쾅-
간발의 차이로 이공의 몸에서 흑색 기류가 치솟았다. 공간이 그대로 붕괴하며 독정기가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 틈을 노리고 자운이 대번에 달려든다.
그의 몸에서 솟구친 열한 마리의 황룡이 머리를 흔들었다.
쾅쾅쾅-
자운의 황룡무상강기에 그가 연속적으로 주먹을 휘두른다. 절정에 이른 연환공격!
흑선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수십 발이 튀어나왔다.
투콰콰콰콰콰콰-
흑선에 맞은 야트막한 동산 하나가 통째로 무너져 내린다. 멸공지력은 공간을 부서뜨리는 공격.
넘치는 힘이라면 산도 무너뜨려 평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게 바로 멸공지력이었다.
“흥. 요리조리 피하는 건 쥐새끼처럼 잘도 하는구나.”
자운이 웃었다.
“그럼 너부터 피하지 말고 좀 한 대 맞고 시작하자.”
사실 격전이 시작되고 나서 지금까지, 그들은 서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단 한 번도 입힌 적이 없었다.
쿠콰콰콰콰콰콰쾅-
땅이 뒤집어졌다.
이공은 자운과 남우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한 치의 밀림도 없는 모습을 보였다.
“굉장하군.”
남우가 감탄하며 말했다. 이공의 실력은 그야말로 괴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절대의 경지를 아득히 넘어선 두 사람이 합공을 하는데도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공이 그런 것처럼, 자운도 남우도 본신의 실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공이 자신의 오 할 정도의 실력을 발휘해서 자운과 남우를 막고 있는 것이라면, 자운과 남우는 사 할이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의 힘으로 이공과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투콰아앙-
공간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자운이 비룡올 타고 날아올랐다. 암룡이 어둠 속으로 녹아내리며 환룡이 이공의 시야를 어지럽힌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독정기가 움직였다.
독륜을 이룬 독정기 수십 개가 날아다니며 그를 압박한다.
쌍두룡 역시 머리를 움직이며 각자의 혀를 이용해 이공을 공격하려했다.
“홍. 어쭙잖은 잔재주를!”
이공이 힘을 끌어올렸다.
우우우우웅-
극성에 다다른 멸공지력이 하늘을 검게 물들이고, 하늘에서 파편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후드드드득-
쾅쾅쾅쾅-
무너지는 공간은 형체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느껴서 피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경지에 올라 있는 이들은 자운과 남우뿐이었다.
다른 황룡문도들이나 독곡의 무사들은 공간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감지해 낼 능력이 없었다. 그들 중 가장 뛰어난 이라고 할 수 있는 독곡의 곡주 남상천만이 간신히 공간이 조금씩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자운과 남우가 눈을 서로 마주 보았다. 이대로 둔다면 전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둘 모두가 하늘에서 무너져 내리는 공간을 방어 하는 데 집중한다면 다음에 이어지는 이공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다.
남우가 자운의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내가 모든 공격을 방어할 테니 네가 마음껏 날뛰어 버려.”
“귀찮은 건 나한테 시키는구나.”
자운이 황룡신검 가득 힘을 주며 말했다,
“네 별호가 난신이니까 때려 부수는 건 잘할 거 아냐.”
자운이 뚜둑하며 몸을 풀었다. 남우는 독정기를 넓게 뿌려 하늘을 덮는다.
쾅쾅쾅쾅-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공간이 독정기와 충돌하며 소멸했다.
“오래는 못 버틴다. 한 시진, 그 안에 끝내라.”
자운이 이를 으득 하고 씹고는 손목을 풀었다.
뚜두두둑-
“반 시진이면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마.”
뚜두둑-
자운이 이공의 앞에 섰다.
이공이 히죽 하며 웃어 보였다.
“드디어 너와 제대로 싸워볼 수 있겠군.”
자운 역시 이공을 향해 씨익 하고 웃어 보인다.
“기다리고 있었나 보지?”
“삼공을 쓰러뜨렸다는 실력이니 확실히 궁금하기는 하더군.”
뚜두두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