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47화 (147/175)

# 147

그것이 바로 당평청을 나타내는 무림명이었다. 과거, 적성의 주구인 삼적의 손에 사파가 규합되기 한 세대 이전에 사파에는 절대의 고수가 있었다.

그의 별호는 사령혈마(死領血魔).

사령지존공을 몸에 두르고 사파를 통합한 절대고수를 통칭하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거대한 사파연합을 두고 그가 사라졌기에 적성이라는 단체가 사파를 편하게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그가 있었더라면 감히 적성이라고 할지라도 사파를 규합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그는 사라졌다.

그리고 오랜 시간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강력했던 사파의 무공인 사령지존공이 실전되었다 생각하고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을 무렵, 당평청은 그것을 발견했다.

당평청이 사령지존공을 발견한 것은 약 삼십 년 전, 그전까지만 해도 그는 망해 버린 사파의 소문주였다.

망해 버렸다고는 하나 문파. 문파의 대외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 길을 가던 도중 그는 습격을 받았고, 그 습격에서 도주해 도달한 곳이 바로 사일귀가 말년에 은거를 택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사령지존공을 얻었다.

그리고 삼십 년이 흘러, 사령지존공을 극성까지 익힌 당평청이 세상에 나왔을 때는 이미 적성이 득세한 후였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보, 당평청은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하여 지금 세상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자운이 경험했던 이백 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삼십 년 이라고는 하나, 그 세월 동안 세상이 너무 급변했다.

하지만 무림이라는 틀에서 적용되는 법칙은 전혀 변한 바가 없었다.

강자존.

힘이라면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물론 무림에 처음 다시 나와서는 적응을 하지 못하고 몇 번의 실수를 하기는 했었지만, 그 후에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얻게 된 정보는, 적성에 대항하기 위해 청해 성까지 물러난 무림이 무림맹을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황룡문의 호법, 난신이라는 걸출한 무인이 나와서 정파무림의 빛을 이끌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처음 그가 난신이라는 별호를 들었을 때는 사파의 지존급 정도 되는 대마두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정파였다는 사실에 당평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었다.

‘정파인이 난신이라는 별호를 얻다니. 성격이 얼마나 개판일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겠군.’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작금의 무림이 적성의 손에 의해 정기가 유린당했고, 많은 사파가 적성에 복종했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사파의 맥을 부탁한다고 했지.’

사령혈마는 자신의 비급의 끝에, 천기를 읽고 남겨둔 하나의 글귀를 새겨두었었다.

그의 죽음으로부터 백오십 년 정도가 지난 후에, 무림의 역사가 크게 흔들릴 정도의 일이 있을 것이라 했다.

정파와 사파가 모두 몰락에 가까워져 가는 파멸적인 천기를 읽은 그는 자신의 연자에게 마지막 하나의 부탁을 남겼다.

그것이 바로 사파의 맥을 부탁하는 것. 대대로 정파라는 것들은 질기기 그지없어 밟아도 밟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정파, 그것은 정파가 가지는 뿌리 깊은 역사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정과에 비해서 사파의 뿌리는 깊지 않았다 강한 자가 나오면 고개를 숙이는 사파의 습성 때문인지, 지금까지 사파가 멸망할 뻔한 일들이 더러 있었다.

사령혈마가 걱정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이번의 일로 사파의 뿌리가 완전히 사라질까 걱정하는 것이다.

당평청은 사령지존공을 얻은 대가로 사령혈마가 걱정하던 바를 이루어주기로 했다.

또한, 사령지존공을 익혀 사파를 규합하려던 자신의 행보에 적성이 방해가 되기도 했다.

결심을 굳힌 그는 적성에 가담하지 않은 사파들을 찾았다.

몇 개의 사파가 적성에 가담하지 않고서 봉문을 한 채로 숨을 죽이고 있었고, 그중에는 꽤나 굵직한 문파들도 있었다.

당평청은 그런 문파들을 방문했다.

물론 대외적인 목표는 비무였다. 하지만 단순히 비무만이 목표는 아니었다.

그들을 규합하는 것을 비무라는 목표 속에 교묘히 숨기고 문주들과 접촉을 한 것이다.

“아닌가?”

재촉을 하듯 물어보는 사일귀의 말에 당평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령진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맞소. 내가 바로 진마 당평청이오.”

그 말에 사일귀가 호탕하게 웃었다.

제11장 사령의 후예이신 주군을 뵙습니다.

당평청을 바라보는 사일귀의 눈이 뜨겁게 빛이 났다.

“사파연합을 만들고 싶다고 했더군. 아닌가?”

이번 말에도 선선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사파는 적성의 손에 마음대로 휘둘리는 장기 말일 뿐이오. 아니, 장기 말도 안 되겠지. 그냥 평범한 장기판에도 올라가지 못하는 잡돌들이오. 필요하면 가져다 쓰고 필요하지 않으면 내다 버리는, 그런 존재들이지.”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네.”

“내가 벗어나게 해줄 것이오.”

“대단한 자신감이군.”

스팟-

사일귀가 기세를 뿜어내었다. 벽력도마라고 불리는 사일귀인 만큼 그가 뿜어내는 기세가 절대로 약하지 않다.

축 늘어진 공기가 대번에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당평청은 그 속에서 담담하게 앉아 있었다.

마치 어깨를 누르는 기세가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자세에 사일귀가 순순히 감탄했다.

“굉장하군. 나이에 비해서 제법이야.”

벽력도마 사일귀의 나이는 올해로 예순이 훌쩍 넘었다. 그런 반면 당평청은 마혼 중반 정도 되었으나 사일귀에 비하면 당평청의 나이가 적은 것이 사실이었다.

“과연 그저 제법인 정도로 제가 이런 자신감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오?”

그의 물옴에 사일귀가 다른 말을 했다.

“사파연합의 창설에는 나도 찬성하네. 하지만 어떤 배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내 식구들의 목숨을 그 배에 맡길 수는 없지.”

“시험해 보겠소?”

벽력도마가 자신의 옆에 놓여 있는 대도를 뽑아 들었다.

“얼마든지.”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이곳은 자신의 집무실이니 대결을 하기에 좋지 않다.

“장소를 옮기지.”

도마가 진마를 바라보았다.

당평청을 바라보는 사일귀의 눈에 기이한 열망이 일렁인다. 그간 봉문을 하며 강자와의 대결이 없어 얼마나 좀이 쑤셨던가.

당평청은 분명 강자였다. 사일귀의 가슴이 고동치게 할 정도의 강자.

그런 강자와 비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래간만에 가지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었다.

‘쉽게 끝내고 싶지는 않군.’

사내는 사파를 규합하며 사파의 지존 자리로 올라가고 있는 이였다. 그런 사내와 비무를 해서 쉽게 지고 싶지 않다는 감정은 사치였다.

아니, 하지만 확실히 하늘 높은 것을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사파에는 지존이 필요하지만, 진마, 자네는 아직 어려.’

우르르릉-

마음을 굳히는 그의 검에서 뇌성이 울린다. 벽도문의 도법에는 뇌기가 담기는데 그것은 벽도문의 내공심법에서 기인한 진기가 뇌기를 띄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대도에 진기가 휘감기는 것을 본 당평청 역시 검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사령지존공의 기운이 단전에서 시작해 검으로 뻗어나간다.

츠츠츠츠춧-

뻗어나간 기운이 검 주변을 두르고, 검 주변으로 묵광이 덧씌워졌다.

저것이 사령지존공의 진수, 사령마기(死領魔氣).

“먼저 오겠나?”

“사양하지 않습니다.”

사일귀가 수비의 태세를 취했고 당평청이 단번에 내달렸다.

발끝으로 박차 오른 거리는 한 번에 십여 장!

단 두 걸음 만에 사일귀와 당평청 사이의 거리는 좁혀진다. 그 굉장한 경공에 사일귀가 감탄을 하며 도를 움직였다.

우르르릉-

벽력이 도에 가득 머금어지고, 사령마기의 묵광이 번뜩이는 검과 충돌한다.

바닥이 움푹 패 들며 사일귀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에 비해서 당평청이 물러난 것은 고작해야 반 걸음, 근소 한 차이였지만 내공의 싸움에서 밀렸다는 생각에 사일귀의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제법이군.”

하지만 이번 격돌에서 사일귀보다 당평청이 반 수 정도 앞서는 것은 당연했다.

당평청은 공격을 했고 사일귀는 방어를 했기 때문이 다.

이번에는 당평청이 공격 태세를 취했다.

파지지직-

대도의 위로 뇌전이 번뜩인다.

“받아 보시게.”

도류뇌성시(刀流雷聲矢).

도류뇌성시는 벽도문의 상위 도법이었다. 흐름을 탄 도가 뇌성을 울리며 화살이 쏘아지는 것 마냥 뇌기를 쏘아 보내는 쾌의 수법.

극쾌에 닿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흐름을 잊지 않고 류(流)를 중시하는 도류뇌성시는 만만하게 볼 만한 무공이 아니었다.

쿠르르르릉-

뇌기가 도신을 타고 흘러 뇌성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법한 벽렴음이 울렸다. 도를 타고 흐르는 기운이 강해질수록 뇌성 역시 강해진다.

쿠드드드드둥-

그리고 뇌성이 절정에 달한 순간!

도가 단번에 흐름을 탔다. 도의 끝을 흐르는 벼락의 양이 더욱 늘어나고, 반 걸음 정도 물러난 당평청이 그 기세에 발을 움직였다.

뇌격의 권역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 엄청난 벼락이 그 자리를 엄습할 것이 분명했다.

파바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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