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제갈운 역시 무림맹의 문상으로서 그를 상대할 만한 방법을 생각해 내어야 하는 처지였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의 머리가 사람 중에서는 뛰어나다고 하나 자운과 삼봉공이라는 존재는 이미 사람을 아득히 초월한 이들이었다.
‘천외천의 인물들. 그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하늘에서 살아가고 있겠지.’
사실 이공을 상대하기 위한 수롤 내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몇 번이나 무림맹의 타격부대와 절대고수들을 이용해 그를 공격하는 작전을 세웠었다.
하지만 모조리 파기되었다. 승산이 삼 할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삼 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일 할 오 푼도 안 되는 승산에 도박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런 그를 살린 것이 오늘 전해진 자운의 서찰이었다.
“그렇소. 그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소.”
그 말에 제갈운이 품에서 서찰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침에 전서구를 통해 자운이 보내온 서찰로서 자운이 세운 계획이 들어 있었다.
“이것이 무엇이오?”
남궁인이 서찰을 받아들면서 묻는다.
“무상께서 아침에 전서구롤 통해서 전달하신 것입니다.”
무상이라는 말에 남궁인이 빠르게 서찰을 읽어 내려갔다.
그 속에는, 이공과 적성을 가두어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이공의 상대를 해야 하는 것은 자운이다.
자운이 이공의 발을 묶어둔다.
그동안 무림맹과 독곡이 연합하여 사천과 감숙에 있는 적성의 무리들을 소탕한다.
잘만 된다면 어렵지 않게 천하의 절반을 다시 정파의 영역에 둘 수 있을 것이다.
남궁인이 탁자를 탁 하고 때렸다.
“옳거니!”
확실히 나쁘지 않은 방법 이었다.
이 방법대로라면, 지형상으로는 적성과 비등해진다.
“이런 방법이 있었군.”
남궁인이 서찰을 모두 읽고 제갈운에게 명했다.
“작전대로 가겠다고 전서구를 그에게 전해주게.”
자운이 무림맹의 전서구를 받은 것은 중경 땅의 절반 정도를 복속시킨 후였다.
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조금 전에 남우에게서도 소식이 전달된 참이었다.
그 역시 귀주성의 절반에서 놈들을 모조리 몰아내었다고 한다.
이제 얼마 가지 않아 만나게 될 것이다.
‘반격이 꽤나 뜨끔할 거다.’
제10장 말 머리 돌려.
으드득-
이공이 이를 갈았다. 조금 전에 전해진 소식에 분노를 숨기지 못하는 것이다.
“난신이라는 아해가 감히 나를 중간에 가둘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벌써 귀주와 중경 땅이 난신과 그와 연합한 독곡의 손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정도 된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자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성서까지 놈들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면, 자신은 무림맹과 놈들 사이에 완전히 고립되게 될 것이다.
사실 자운이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들켰으니 소용없겠군.”
이공이 음산하게 웃었다.
삼공이 패했지만 이공은 자신이 자운과 붙어서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항시 이공은 삼공보다 자신이 반 수 정도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삼공에게 쩔쩔매며 내상을 입었던 놈이니, 놈은 나를 이길수가 없다.”
이공은 자신을 삼공과 같은 수준으로 본 것이 자운의 오판이라 생각했다.
그가 단번에 군세를 일으켰다.
“놈의 오판을 내가 바로잡아 주마. 그리고 찢어 죽이겠다.”
그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길로 자운이 있을 섬서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이공이 군세를 이끌고 섬서를 향해 휘몰아쳤다.
그 무렵의 자운은 귀를 후벼파고 있었다.
“아, 젠장. 누가 내 욕을 하나.”
매우 가렵다는 듯이 거칠게 후벼팠다.
사실 욕할 사람이야 차고 넘쳤다.
“계획대로 잘되는 거 같지?”
자운의 말에 남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계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격해 왔다.
귀주와 중경을 손에 넣었고 섬서의 삼분지 일 정도를 수복하지 않았던가.
이 속도라면 앞으로 보름 안에 섬서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잘 알고 있으면서 뭘 또 물어보냐.”
“아니. 그냥 너무 일이 잘 풀려서 걱정되어서 말이지.”
자운이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일이 잘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 너무 쉽게 술술 풀려도 문제다.
뒤가 구린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서안, 종남산에서 멀리 떨어 지 않은 곳에 있는 섬서의 성도였다.
멀지 않은 곳에는 종남과 여산이 있었으며 섬서의 모든 관도가 교차하는 곳이 바로 서안이다.
서안 땅을 수복한다면 사실상 섬서를 손에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푸드득-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공에서 전서구 나는 소리가 들렸다.
자운이 팔을 뻗자 전서구가 자운의 팔 위로 차분히 내려앉는다.
붉은 실로 묶어서 보낸 전서구, 무림맹에서 보낸 급보가 분명했다.
“이 양반들 참, 조금만 기다리지 또 무슨 급보를 보내는 건지.”
자운이 혀끝을 차며 전서구에 묶인 서신을 풀었다.
서신은 마치 급히 작성된 듯 글자가 어지러웠다.
그렇다고 읽는 것에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자운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신을 모두 읽어내렸다.
서신을 모조리 읽은 자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말 머리 돌려.”
그 말에 남우가 눈을 동그랑게 뜨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자운이 똥 씹은 표정으로 그의 말에 답한다.
“이공이 군세를 이끌고 섬서로 오고 있단다. 말 머리를 돌려서 상대해 주러 가야지.”
자운의 말에 남우의 표정 역시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 * *
길게 길러 내린 머리가 바람에 나부낀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가 불어온 바람에 아무렇게나 흔들리는 와중에도 사내의 걸음은 막힘없이 당당하다.
굵직한 턱선과 눈썹은 그의 호방함을 말해주는 듯했고, 과하지 않게 잘 자리 잡은 근육은 그의 무공을 알려주는 듯 했다.
그의 걸음이 향하는 곳은 벽도문(霹刀門)이었다.
귀주성 귀양 땅에 위치한 문파로서, 한때는 꽤나 강력한 사파였지만 적성이 득세한 후 그곳에 협조하지 않기 위해 봉문조치를 취한 곳이었다.
사내의 걸음이 벽도문의 정문에서 멈춘다. 봉문을 한 문파답게 내부에서는 거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으며, 이따금 몇몇 사람들이 움직이는 기척만이 감지될 뿐이었다.
벽도문의 현판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그가 가볍게 문을 두드린다.
똑똑-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문 너머 에서 답이 들려왔다.
“어디서 오신 분이오?”
그의 말에 사내가 입을 열며 자기 자신을 소개했다.
“비무를 하기 위해 온 당평청이오.”
본래 봉문을 한 문파는 그 어떠한 객도 받지 않는 것이 법도였다. 하지만 당평청만큼은 예외였다.
벽도문의 문이 끼익 하고 열리며 문사 풍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벽도문의 총관이라 할 수 있는 평호진.
그가 벽도문의 문을 열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소. 문주님이 뵙고 싶어 하시오.”
평호진의 말에 당평청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문제 때문에 찾아온 것이 아니던가.
당평청이 안으로 들어가자 평호진이 다시 한 번 주변을 경계하더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벽도문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인기척이 전혀 나지 않게 되었다.
벽도문 내부로 들어온 당평청은 평호진의 안내를 받아 걸음을 옮겼다.
벽도문의 내부로 들어오자 여기저기서 움직이고 있는 인기척들이 제법 많이 감지되었다.
“진법인가?”
그의 물음에 평호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소. 공식적으로 우리는 적성에 협조하지 않기로 했으니 화를 피해 가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소. 진법의 밖에 서는 진법 내부에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인기척을 잡아낼 수 없지.”
평호진이 진법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지 가슴을 쭈욱 펴며 웃었다.
그 역시 그런 평호진을 향해 웃어준다.
평호진이 당평청을안내한 것은 벽도문의 문주가 있는 집무실.
그가 문 밖에서 벽도문의 문주 벽력도마(霹靂刀魔) 사일귀에게 말을 올렸다.
“기다리시던 사람이 왔습니다.”
그 말에 안에서 호방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오. 그가 왔다는 말인가. 어서 안으로 들여보내게.”
사일귀의 말이 떨어지자, 평호진은 문주 집무실의 문을 열며 당평청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당평청이 당당한 걸음으로 집무실의 내부로 걸음을 옮긴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범과 같은 기질의 호방해 보이는 사내였다.
사내답게 기른 수염은 그의 멋을 더욱 더해주는 듯했으며 두꺼운 양팔은 여느 집 아낙의 허벅다리보다 굵었다.
저 굵직한 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초는 벼락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가 벽력도마, 사파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의 강자가 바로 벽력도마였다.
사일귀가 당평청의 얼굴을 보며 반색하며 말했다.
“자네로군. 요즘 소문의 주인이 말이야.”
그 말에 당평청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반문한다.
“소문이라니요. 무슨 소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사일귀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하지만 그가 뱉어내는 목소리에는 내기가 실려 있어 생각보다 묵직한 압력이 전해진다.
“진마(眞魔) 당평청, 그것이 자네가 아닌가?”
사령진마(死領眞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