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44화 (144/175)

# 144

자운이 젊어 보이는 그의 외모에 물었다. 아무리 무공이 높아 세월의 흐름이 그냥 지나간다 하더라도 남우처럼 이렇게 이십 대의 모습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그 증거로 삼봉공 역시 중년을 훨쩍 넘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남우는 달랐다.

자운과 비슷한 이십대 중후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이다.

자운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반로환동이라는 것이 꼭 무공의 경지가 어디쯤 닿아 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실마리를 잡아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절대자의 경지 이상에 접어들고 반로환동의 깨달음을 얻는다면 이루어진다.

말 그대로 반로환동은 자운보다 약한 절대자의 경지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축하해, 깨달음은 언제쯤 얻은 거야?”

자운의 말에 그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듯 눈을 끔벅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쯤 반로환동을 한 것 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십 년 전인가 오십 년 전인가. 대충 그때쯤 얻었지.”

“그럼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 모습?”

자운의 말에 남우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 후로는 외형적으로 전혀 나이를 먹지 않았다.

“우와. 징그러워라.”

“이백 년 동안 전혀 늙지도 않은 놈에게 들을 소리는 아니거든?”

“그런가?”

자운이 키득거리며 빈 술잔을 내려놓았다. 어쩐지 독곡에 들어서면서부터 남우에 대한 생각이 계속 든다 싶었더니 이렇게 살아 있을 줄이야.

노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가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운이 빈 술잔을 내려놓자 남우 역시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가 애들한테 헛바람 불어넣었다며.”

“무림으로 나가자고 한 거?”

남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백 년 전, 그때도 황룡검존께서 우리를 부르셨지.”

자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의 사부인 황룡검존은 분명 대단한 사람이 지만 그때와는 다르다.

“그때랑은 달라.”

“네가 무림맹의 무상인 거?”

“직책이라는 건 생각보다 대단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거지.”

자운의 말에 남우가 뚫어져라 자운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지금 여기서 시선을 회피하면 안 된다. 자운 역시 자신감 가득한 눈으로 그롤 바라본다.

“믿어도 되는 거냐?”

한참을 이어진 눈싸움 끝에 남우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자운이 선택한 것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우가 그것이면 족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마주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에도 우리 독곡은 무림으로 진출하는 것에 실패하면 두 번 다시 무림에 나가지 않겠어.”

“너넨 무림에서 영웅 대우를 받을 거다. 절대로 실패하지 않아.”

“그러길 바라야지.”

남우가 뜨거운 눈으로 자운을 응시했고, 자운 역시 뜨거운 눈으로 남우를 응시했다.

두 친우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백 년의 세월을 격해 다시 만났다.

“설혜도 살아 있다.”

술을 마시던 자운이 자신 말고도 설혜가 살아 있음을 말했다. 그 말에 남우가 미간을 꿈틀하더니 자운을 바라보았다.

설혜라면 그 역시 알고 있다.

“자빠는 뜨렸냐?”

“개소리하지 말고 술이나 마셔.”

“여자를 홀려 놓고 책임도 지지 않는 건 개자식이나 하는 일이다. 안 그래?”

“실없는 소리하고 있네.”

이렇게까지 해줘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자운을 보며 남우가 속으로 욕을 했다.

‘그렇게 평생 독거노인으로 살다 죽어라. 이 눈치 없는 놈아.’

설혜는 이백 년 전부터 자운에게 마음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자운이라는 이 둔한 놈은 다른 사람 눈치는 귀신 같이 맞추면서 자신의 연애전선에 관해서는 하나도 모른 다.

‘이런 놈을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멍청이.

호구.

병신.

여러 가지 단어들이 떠올랐으나 마땅히 어울리는 것을 찾지 못했다. 저 세 단어를 모두 합쳐서 멍청한 호구 병신이라고 부르면 딱 좋을 듯했다.

“설혜도 많이 강해졌겠지?”

남우는 자운이 눈치채지도 못한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이번 물음에 자운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나 강해진 거 같냐?”

설혜가 얼마나 강해진 것 같냐고?

자운이 천천히 설혜에 대한 기억을 되새겼다. 절대고수 정도의 경지였는데 자운이 준 빙정을 흡수하면서 거기서 조금 더 강해졌다.

비유하고자 한다면, 정확하게 지금의 남우 정도.

“너 정도?”

“말하는 게 네가 나보다 위라고 하는 것 같은데?”

자운이 은연중에 말투에 묻어서 보낸 느낌을 남우는 대번에 잡아채었다.

자운은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어라, 아니었나? 맞잖아. 내가 너보다 위인 거.”

그 말에 남우가 웃었다.

“죽을래?”

“다시 한 판 해? 이번에는 제대로?”

자운의 도발적인 말에 남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냐. 따라 나와.”

자운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쌍코피가 흐르게 해주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두 남자는 모두 웃고 있었다.

제8장 이 칼빵은 둘 다 맛이 비슷해서.

그그그긍-

남우가 석벽을 밀자 가볍게 열린다. 먼저 남우가 밖으로 나가고, 뒤이어 자운이 쫓아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상천은 남우가 밖으로 나오자 고개를 숙이며 묻는다.

“어찌 되셨습니까.”

거기에 남우는 요상한 대답만을 남겨두고 사라졌다.

“기다려. 일단 한판 더 하고 올 테니까.”

그의 모습이 스르륵 사라지고, 자운이 남상천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인 후 발을 뻗었다.

허공중에 자운의 발이 뻗어진다 싶은 동시에 자운의 신형이 사라졌다.

둘의 신형이 다시 나타난 곳은 어느 정도의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있는 봉우리 위에서였다.

“여기서 한판 할 거지?”

자운의 말에 남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운을 끓어 올렸다.

극성에 이른 독정기가 남우의 몸 주변으로 휘감기며 매운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자운이 지지 않겠다는 듯 기운을 끌어올렸다.

대해 속을 노니는 황룡들이 차례로 그 위용을 드러냈다.

일룡부터 십일룡에 이르는 용들이 모조리 고개를 든다.

그것을 알아본 남우가 중얼거렸다.

“황룡무상강기? 그것도 열한 마리나?”

그 역시 전대 황룡무상강기의 소유자였던 자운의 사부가 저것을 두르고 적성의 존재들과 겨루었던 격전을 목격한 바 있었다.

중원의 그 어느 무학과도 궤를 달리하는 황룡무상강기는 정말로 인상적이었던 지라 아직까지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기도 하다.

자운이 이죽였다.

“왜, 이제 와서 무서워져?”

남우가 마주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한번 꺾어 버릴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서 그런다.”

“포기해.”

스팟-

자운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패룡을 움직였다.

콰과과과과-

패룡이 포효를 하며 남우가 서 있던 자리를 때린다. 남우는 황급히 신형을 뽑아 올려 오여 장 밖으로 몸을 피신시킨 후였다.

“급한 놈.”

온몸을 휘감고 있는 독정기가 손바닥에 집중되었다.

고리 모양으로 이루어진 독기, 남우가 만들고 있는 것은 독강이었다.

륜의 형태를 형상화시킨 그가 독강의 륜을 자운을 향해 던졌다.

스팟-

바람이 독기에 산산이 찢겨 나갔다. 자운이 염룡을 움직였다.

화르르륵-

멸사탕마의 불이라고는 하나, 화기는 또한 독기의 상극이다.

화기와 독기가 충돌하자 화악 하는 소리와 함께 둘이 허공중에서 동시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팽팽한 힘겨루기.

독륜은 이전의 독들과는 다르게 허공에서 정지한 채로 염룡의 화염과 충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기는 것은 염룡의 화염이었다. 염룡의 화염이 끝도 없이 나오는 것이라면 독륜에는 힘의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팟 하는 소리와 함께 독륜이 사라졌다.

그리고 움직인 것은 두 개의 머리를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쌍두룡!

칠룡과 팔룡이 서로 머리를 치켜들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두 개의 이기어검이 단번에 남우의 움직임을 쫓는다.

자운이 칠룡과 팔룡을 부리며 여유롭게 소리 쳤다.

“뭐에 찔리든 이 칼빵은 둘 다 맛이 비슷해서…….”

자운이 손을 뻗었다.

촤르르륵-

두 마리의 쌍두룡이 단번에 남우를 덮쳤다.

“아무거나 좀 골라 먹어라!”

“홍.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는 버릇이 또 나왔구나.”

남우의 몸이 허공중에서 회전했다.

화르르르륵-

그의 몸을 타고 독기가 딸려 올라간다. 허공에 세워지는 거대한 독 기둥, 흑녹색의 기둥은 먼 곳에서도 잘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흑녹색의 기둥에서 두 줄기 경력이 쏘아졌다.

자운이 황급하게 호룡을 움직여 두 줄기의 경력을 막았다.

파박-

“이게?”

자운이 호룡율 치우고 기둥을 노려보는 찰나, 기둥에서 수십 줄기에 이르는 경력이 뿜어진다.

하나하나 만만치 않은 독기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다.

자운이 공룡을 이용해 감각을 활성화시켰다.

육감 이외에 공간을 인지하는 능력이 생겨나며 단번에 사각이 없어진다.

어디서 어떤 공격이 들어오는 것인지 모조리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자운이 호룡을 이용해 모든 공간을 틈도 없이 막았다.

이 정도의 방어라면 저 공격을 모두 막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쿠콰콰콰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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