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자운의 말에 그가 즉각 응답했다.
“개뿔이. 아니기는 뭐가 아니냐. 나 남우 맞다. 이놈아.”
그가 다가와서 자운의 손을 부여잡았다. 자운이 흠칫하며 손을 뺐다. 눈앞에 있는 이가 정말로 남우라면, 손을 잡는 즉시 장난친다고 독기를 불어넣으려 할 것이다.
자운은 예전에 그 독 때문에 한참을 고생한 적이 있었다.
“어, 이놈이 이제 안 통하네?”
남우가 불어넣은 독이 평범한 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설사약을 침투시킨 남우 덕분에 자운은 삼 일간 측간만을 들락거렸어야 했다.
“이제 안 통해, 이 자식아!”
자운이 반갑게 웃으며 손을 휘둘렀다. 남우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치기 위함이었으나 남우는 맞지 않았다.
스스숫-
그의 몸이 어지럽게 흔들린다 싶더니 단번에 오여 장 밖에서 나타나는 그의 몸.
자운이 황룡신검을 뽑아 든 채로 그롤 쫓았다
“이놈아. 어디 칼빵 한번 맛 좀 봐라.”
남우가 대경실색하며 손을 흔들었다.
“어, 이놈이. 이백 년 만에 만난 친우를 후려치려고 하네?”
웃으며 말하는 그의 손도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독장을 쓰려는 것이다.
자운이 몸을 회전시킨다. 발끝에서 뻗어나은 회전력이 몸을 휘감고 자운의 몸을 돌렸다.
휘리릭?
황룡신검이 자운의 몸 주변을 회전하며 화기를 머금었다.
독장을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이놈이, 이거 맛이나 봐라!”
유성독장(流星毒掌)!
가벼운 움직임과는 다르게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상당히 무거웠다.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묵직한 독장이 일대를 독 바다로 만들며 상대를 한 줌 혈수로 녹여 버린다는 수법.
독곡에서도 이름난 수법이지만 남우는 알고 있었다. 지금 자운의 실력이 자신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말이다.
그렇기에 안심하고 수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자운이 그러한 것처럼 자신은 전심전력을 다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력의 사 할 정도만을 사용하고 있으니 자운이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화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유성독장이 소멸한다. 남우가 화들짝 놀라는 척을 하며 연달아 독장을 뿌렸다.
“냄새나는 독덩어리는 여전히 잘도 뿌려대는구나! 차 하!”
자운이 기합성과 함께 날아들며 예전에 자주 하던 농을 했다.
“너도 곧 뒈져야 할 나이까지 올라간 놈이 잘도 뛰어다닌다. 허리도 안 아프냐!”
친우가 괜히 친우이겠는가. 남우의 입에서도 자운에 뒤지지 않는 걸쭉한 말이 흘러나왔다.
“너도 별 차이도 안 나면서 뭘 그래!”
황금빛 검강을 머금은 검이 남우를 쪼개어 버릴 듯 내려친다.
콰과과과-
하지만 남우가 훌쩍 뛰어 자운의 공격을 피한 후 문에 자운은 애꿎은 바닥을 때렸다. 바닥이 통째로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 흠이 파진다.
“어이구. 너 그거 얼마짜린 줄 아냐. 그거 꼭 배상하고 가야한다.”
“지랄해라. 차라리 내 배를 째!”
“오냐, 그래. 배를 째 주마!”
자운이 달려들었고 남우가 달려들었다.
쾅쾅-
주먹과 주먹이 충돌하며 자운의 몸과 남우의 몸이 동시에 뒤로 밀려난다.
둘 다 내력을 절반 이하로 사용하며 싸우는 전투,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격전이 있을 때마다 제전이 출렁거렸다.
밖에서 제전을 살피던 남상천이 경악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둘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자운이 검을 휘저었다.
콰드드득-
허공이 뒤틀리는 소리가 나며 화살처럼 빠른 검기가 남우를 향해 쏘아진다.
“홍. 이까짓 장난쯤이야 받아내어 주지!”
남우가 독장을 날리며 소리쳤다. 푸르죽죽한 독장이 검기에 뒤지지 않는 속도로 날아갔다.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중에서 충돌한 검기와 독장이 동시에 소멸한다.
이백 년 이상 살아온 노괴물쯤 되니 남우의 내력은 그야 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오 할에 채 못 미치는 내력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장이 가진 물리력이 엄청났다.
자운이 사용하는 기운이 열양지력이 아니었다면 독이 사방으로 튀어 중독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극성에 이른 열양지력 때문인지 금광에 닿은 독기는 그 족족 소멸해 버린다.
둘의 공력이 허공에서 소멸하는 순간, 남우가 지지 않겠다는 듯 손을 움직여 다시 독장을 뻗어 내었다.
쌍장이 단번에 교차하며 두 줄기에 이르는 장력이 자운을 향해 날아든다. 이번에는 자운이 콧방귀를 꼈다.
“이것도 못 막을까. 너무 대충 하는 거 아냐?”
자운이 왼손으로 염룡교룔 펼쳤다. 화르륵 하는 불기운이 자운의 손에서 솟구치며 그대로 두 개의 장력 중 하나를 쳐낸다.
하지만 그 틈을 노린 것인지 다른 하나가 자운의 지근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자운이 뻗었던 염룡교를 회수했다.
그의 몸이 회전하며 염룡교의 움직임이 일변한다.
타핫-
기합성과 함께 화염이 치솟았다. 염룡교가 독장을 집어 삼키며 일어나는 화염이었다.
폭음이 터졌다.
쾅-
자운의 염룡교가 남우의 독장 두 개를 단번에 날려 버렸다. 역시 화기로 말미암은 공격인지라 독장이 허공중에서 독기를 뿌리며 소멸하는 일은 없었다.
“이것도 받아낼 수 있을까?”
한 차례씩 공격을 주고받았으니 이제 자운이 공격할 차례였다. 자운이 검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세로로 그어내리는 직도황룡, 동시에 펼쳐지는 것은 황룡검탄.
자운이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일곱 마리에 이르는 황룡검탄이 남우를 향해 날아갔다.
“흐흐흐. 그럼 어디 한번 제대로 해볼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일곱 마리의 황룡을 보며 남우가 웃었다. 그의 몸이 스르륵 움직이며 단전을 자극했다.
그러자 단숨에 남우의 몸이 검은색의 칠흑 같은 기운에 휘감긴다.
저것이 독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독정기(毒淨氣).
그 양은 내력의 절대량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독정기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운 역시 온몸으로 황금빛 서광을 휘감았다.
황룡문 비전의 심법에서 솟구친 기운이 자운올 보호한 다.
자운의 몸이 보호되는 동시에, 남우가 독장을 날렸다.
열한 번에 이르는 쾌속무비한 장력이 펼쳐졌다.
극에 이른 연환공격, 남우의 손끝에서 회전하며 뻗어진 독장은 열한 개로 나누어지며 자운을 덮쳤다.
사방을 포함하여 위아래까지 포위된 상황이라 어디로 피할 곳도 없다.
남우가 그 모습을 보고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중독되면 해독 정도는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낄낄거리는 그의 모습에 자운도 낄낄거린다.
“이 정도에 중독될 거면 예전에 뒈졌겠다.”
검이 움직인다. 황룡신검이 자운의 손끝에서 유려하게 물결을 그려내었다.
아니, 그려내는 것은 물결이 아니다. 물결인 줄 알았건만 완성되는 것은 용의 비늘이었다.
용린벽!
호룡을 불러낸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공격을 막아낼 수 있겠지만 이런 공간에서 호룡을 불렀다가는 제전이 통째로 무너진다.
자운을 향해 포위하고 달려오는 독장들이 용린벽을 때렸다.
따다다당-
용린벽이 크게 흔들리기는 하였으나 깨어지지는 않는다. 자신의 용린벽이 남우의 공격을 굳건하게 막아내자 자운이 씩 웃으며 남우를 바라보았다.
“어때? 나름 괜찮은가?”
“과연! 그 정도는 해줘야 내 친우라고 할 수 있겠지!”
“이제 내 차례야. 잔말 말고 한 대 맞을 준비나 해.”
“흥. 네 차례 내 차례가 어디 있어? 먼저 때리는 놈이 이기는 거지.”
“뭐 이 새끼야?”
“그런데 이 자식이?”
둘이 서로를 노려보더니 달려들었다.
파앗-
황금빛 빛살과 흑색 빛살이 허공을 가르고 중앙에서 충돌한다.
쾅-
자운의 몸이 발랑 뒤집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꼴사나운 모습을 면하지 못한 건 남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닥을 구르며 온몸에 먼지를 묻히는 남우.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며 서로 노려보고 소리쳤다.
“'네 눈에 멍들었으니 내가 이긴 거다!”
“네 코에서 피가 나니까 내가 이긴 거다!”
서로의 승리를 주장하는 남우와 자운.
자운의 눈두덩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고 남우의 코에서는 붉은 핏물이 똑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그런 모습을 보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하하-”
둘이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터진 웃음이었다. 그와 함께 자운이 그 자리에 발라당 드러누우며 물었다.
“그런데 우리 왜 싸웠지?”
자운의 물옴에 남우가 머리를 긁으며 답했다.
“글께. 우리 왜 싸웠더라.”
왜 싸왔는지 기억도 못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 * *
자운이 남우를 바라보며 술잔을 비웠다.
“너도 아직 살아 있을 줄이야.”
남우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너 폐관수련에 들고 그 후로 한 번도 못 봤잖아. 한 백 년 정도 지나고선 그래 그런가 보다 했더니 아직 살아 있었구나.”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한 이백 년 정도 지나니까 눈이 뜨여지더라고.”
“무식한 놈. 잠을 이백 년이나 자다니.”
자운이 톡하고 쏘아붙였다.
“무식하기는. 너처럼 잠도 안 자고 이백 년을 무식하게 살아 있는 놈도 있는데 내가 무식하다고 불리면 쓰나. 그것보다, 반로환동을 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