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말만 하면 싹 갈아엎어 버릴 기세로 자운이 눈을 번득이자 독곡의 장로가 두 손을 흔들며 손사례를 친다.
“아, 아니 아닙니다. 분명 저희도 곡 안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황룡의 형상을 확인했으니까요.”
금빛을 띠는 기운, 그것도 황룡의 모습으로 강기를 형상화하는 무공은 황룡문의 무공 말고는 없다.
그렇기에 그 한 수를 보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운의 신원이 보증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가 앞장서서 천장단애를 건넌다. 바람에 흔들리는 다리 위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끔찍하기 그지없다.
얼마나 깊은 것인지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내력을 이용해 안력을 돋운다면 충분히 확인할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휘이잉-
어디선가 협곡의 사이로 강력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무로 엮고 줄로 의지해 놓은 다리가 심하게 출렁거렸다.
“으윽.”
황룡문도들 몇이 신음을 홀린다. 그 신음에 독곡의 장로가 뒤를 돌아보며 경고했다.
“조심하십시오. 바람이 심해서 건너기가 쉽지 않습니 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독곡으로 들어가는 문은 이것이 전부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내부 인사가 이용하는 길이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것은 아무리 이백 년 전 함께 전장을 거닐었던 전우라고 할지라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 길을 넘어 적이 침범해 올 위협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운 일행은 어쩔 수 없이 이 흔들거리는 낡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
“으으윽.”
휘이이잉-
더 거세게 바람이 불어오자 몇몇 문도가 흔들거리는 줄을 부여잡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에 다리가 뒤집어져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부는군.”
우우우응-
자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황금빛 서기가 다리 전체를 감쌌다.
자운의 무지막지한 내력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신기, 그 신기에 독곡의 장로가 헛바람을 들이킨다.
“허업!”
‘이, 이 정도의 내력이라니. 그분과 비슷한 내력이 아닌가?’
그가 헛바람을 들이쉬며 자운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림에서 난신, 난신 한다고 해도 절대의 경지보다 아주 조금 더 높겠거니 생각했는데, 이건 내력의 양으로 계산하면 그야말로 무지막지하지 않은가?
‘중원에 이런 괴물이 있었구나.’
자운이 내력으로 보호한 덕분인지 더 이상 다리가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그 때문에 황룡문의 문도들은 빠르게 다리를 건널 수 있었고, 곡의 장로가 안내를 하는 이인지라 기타 다른 검문을 받지는 않았다.
사실 난신을 검문할 정도로 간이 큰 인물이 독곡에 없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장로의 안내로 향한 곳은 독곡의 외각에 위치한 별채였다.
손님들이 올 것을 대비해 만들어둔 별채였는데 돈을 조금 써서 만든 듯 귀한 티가 났다.
'나쁘지 않군.’
자운이 별채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곡주님께는 보고가 올라갔으니 곧 만나 될 수 있을 겁니다.”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로를 향해 한 가지를 부탁했다.
“그냥 기다리면 심심하니까 씹을 거리나 좀 가져다줬으면 좋겠어.”
무려 난신의 부탁이다.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옙. 시비를 시켜 먹을거리를 들여보내도록 하겠습 니다.”
독곡에는 무림에서 보기 힘든 진귀한 음식들이 많다. 다과라고 해서 다른 것은 아니었다. 중원에서 보기 힘든 다과 몇 개가 보였다.
자운이 특이하게 말려 있는 달짝지근한 당과를 씹으며 시비에게 물었다.
“이거 고기 씹는 맛이 나는데 뭐로 만든 거지?”
자운의 말에 시비가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며 답한다.
“도마뱀의 꼬리를 말려 잘게 갈아 튀기고 그 위에 양념을 한 것입니다. 어찌, 입맛에는 맞으십니까?”
그의 말에 자운이 도마뱀 꼬리 당과를 몇 개 더 집어 먹으며 말했다.
“어. 달짝지근한 게 꽤나 맛있는데? 왜, 다들 안 먹고 뭐해?”
도마뱀 꼬리라는 말에 먹을 식성이 싹 달아났다. 그걸 비위 좋게 먹고 있는 자운이 별천지 사람처럼 보였다.
자운이 다른 것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건 뭐지?”
“썩은 고목 아래에서 사는 지네입니다. 원래는 독이 있는데 독을 제거하여 잘 말리면 바삭한 게 먹기 좋습니다.”
시녀의 말에 입안에 넣고 한번 씹어보자 바삭한 맛이 정말로 그만이다.
자운이 운산과 우천을 향해 하나씩 건네었다.
“자자. 뭣들 해. 하나씩 먹어보자고.”
운산을 향해 권한 것은 도마뱀의 꼬리였고 우천을 향해 권한 것은 말린 지네였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손대지 못할 것들, 운산과 우천이 떨리는 손으로 자운이 건네는 것을 받아 들었다.
눈앞에서 이것을 권하는 자가 대사형만 아니었더라면 아니, 난신으로 불리는 자만 아니었더라면 분명히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운의 눈은 분명히 그들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거절하면 뒤통수 때릴 거야.’
자운의 그런 시선을 받은 그들로서는 감히 자운이 건네는 것을 거절할 배짱이 없었다.
운산과 우천이 서로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더니 각자의 손에 들린 것을 확인했다.
“뭐해, 안 먹을 거야?”
자운의 재촉이 들려오자, 둘 다 손을 움직여 손에 들린 것을 입으로 가져간다,
천천히, 천천히 입안으로 들어온 것을 씹었다.
그때 둘은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도마뱀 꼬리는 아니잖아.’
‘적어도 말린 지네는 아니잖아.’
서로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사형제간이었다.
그들이 얼마간 먹거리를 즐기고 있을 때, 독곡의 곡주에게서 연락이 왔다.
곡주의 연락을 받은 황룡문에서는 자운과 운산, 그리고 우천만이 독곡의 곡주를 만나기로 했다.
날렵해 보이는 인상, 길게 길러 내리지는 않았지만 단정하게 자른 수염의 인상적인 얼굴의 소유자였다.
자운이 그의 얼굴에서 남우의 얼굴을 찾았다.
‘닮았네.’
후손쯤 될 것이다. 입맛을 쩝 하고 한 번 다시는 자운을 향해서 독곡주, 남상천이 말했다.
“황룡문에서 오신 분들이라 들었소.”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 황룡문에서 왔지. 잘 알고 있을 텐데, 황룡문파 독곡의 관계는?”
자운의 말에 남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과의 교류가 잦지 않은 독곡이었지만 황룡문과는 예외였다.
황룡검존과 당시의 독곡주가 절친한 친우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독곡과 황룡문의 인연은 잘 알고 있소. 한때는 황룡문이 정말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했는데, 어디서 엄청난 분이 등장해서 황룡문을 다시 반석 위로 올렸을 때는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오.”
“진짜?”
반문하는 자운의 말에 남상천이 고개를 대번에 끄덕였다.
끄덕이는 그의 눈빛에서 진심이 묻어났기에 자운 역시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인다.
‘진심인 것 같군. 그것보다 무위가 제법인데?’
자운이 이리저리 눈을 움직여 독곡주 남상천의 무위를 읽어내었다.
‘괴걸왕이랑 비슷한가. 아니 좀 더 위군. 엄밀히 말하면 남궁인과 비등하겠어.’
독곡주 역시 절대의 반열에 오른 실력자였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자운이 절대의 반열을 훨씬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지만, 삼 년 전만 해도 자운은 절대의 경지였다.
아니, 당시에도 자운은 절대자의 경지라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이백 년 동안 내공수련만 한 탓에 가지고 있는 무지막지한 내력은 절대의 경지를 훨씬 초월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백 년간 거의 하지 않았던 무공수련을 통해서 다듬어졌고 절대의 경지를 넘었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삼 년이라는 시간에 그 모든 기세를 가다듬지 못했겠지만 자운은 조금 특이했다.
그는 하늘이 내린 천재라고 할 정도로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또한 절대의 고수들과 이어진 연이은 전투는 실전감각을 높여 주었다.
두 가지가 밑받침되자 경지가 상승하는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그런데 황룡문에서 이곳까지는 무슨 일로 오신 것이 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그의 말에 자운이 찻잔을 내려둔다.
찻잔이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적성이라는 개새끼들 때문에 골치 좀 썩고 있다고 들었어.”
“허허. 소문이 잘못 전해진 모양이구려. 엄밀하게 말하면 적성이 본 곡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는 것이지요.”
독곡주의 말에 자운이 푸핫 하고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속에 있는 걸 토해내게 하려고 화두를 던졌는데 독곡주가 그것을 받아친 것이다.
자운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골치가 좀 아프기는 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자기 영역에 웬 듣도 보도 못한 잡것들이 와서 설치는데 기분도 좀 나쁠 거고.”
그의 말에 남상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확실히.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요. 하지만 상대하지 못 할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독곡은 계속해서 운남에 머물러 있게 되겠지 이참에 중원으로 나올 발판을 마련하는 게 어때?”
자운의 말에 그의 미간이 꿈틀 하고 움직였다. 독곡이 무림에 나가지 못하는 것은 운남성이라는 폐쇄적인 지형 탓도 있었지만 세외의 문파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 중화 특유의 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