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39화 (139/175)

# 139

이제야 왜 자운이 갑자기 그런 일을 시켰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운산과 우천을 뒤로하고 자운이 자신의 배를 두드렸다.

“아. 배고프다. 어디 밥 먹을 곳 없나?'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푸르렀다. 하지만 독거노인의 가슴팍은 쓰리기만 했다.

‘이 나이 먹고 연애 한번 제대로 못 해보다니. 젠장.’

제6장 무상으로서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백정명과 진가려의 혼인이 이루어졌다. 전장 속에서 벌어진 작은 축제, 그것은 자운이나 황룡문도들에게 있어서는 짧은 휴식시간 이었다.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신다.

황폐한 전장을 전전하는 동안 얼마 없던 축제에 그들의 피폐해졌던 마옴이 잠시나마 풀어졌다.

자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끔 이런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군.’

다들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 자운의 마음 역시 덩달아 홍이 오른다. 얼마나 홍이 올랐는지 검을 빼 들고 한바탕 검무를 덩실덩실 추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내일이면 원래대로 돌아가야 한다.

내일이면 반지화롤 떠나서 운남 땅으로 들어서야 하는 것이다.

계획대로 이공이라는 녀석을 무림맹과 자신의 영역 사이에 가두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운남성을 비롯하여 몇 개의 지역들을 더 돌았을 때, 이 계획이 완성된다면 무림의 절반은 다시 정파의 영역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대등하게 적성과 싸울 수 있다.

자운이 창가에 걸터앉아서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축제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동공에 가득히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잡혀 들어온다.

자운의 눈에 잡힌 이들은 운산도 있었으며 우천도 있었고 다른 황룡문도도 있었다.

아니, 황통문도가 아닌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보라면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자운은 뒤쪽에서 나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을 했다.

“무슨 일이야?”

자운의 뒤에 나타난 사람, 그것은 오늘 축제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백정명이었다.

백정명이 자운의 뒤에서 고개를 숙여 보인다.

“감사합니다. 천 대협”

자운이 손에 들고 있는 술병을 내려놓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감사하다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모르겠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자운의 표정은 꽤나 연기가 잘된 것 같았으나,백정명이 그 정도에 속을 정도의 바보는 아니다.

백정명 역시 일파의 수장이었던 사람, 오늘 일을 잘 생각해 본다면 자운이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저도 바보는 아닙니다. 저와 가려를 이어지게 해주려고 그런 일을 벌인 게 아닙니까.”

그의 말에 자운이 피식 하고 웃었다.

“지금 독거노인 옆에 와서 염장을 지르는 거야?”

자운이 웃으며 하는 말이었지만 받아들이는 백정명은 그것이 아니었나 보다. 그가 손사례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백정명을 보며 자운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농담이었으니까. 어쨌든 이제부터가 중요한 거겠지.”

그가 벽의 한쪽에 걸려 있는 천하도를 바라보았다.

천하의 절반 이상이 지금은 적성의 영역이었다. 그나마 황룡문의 힘으로 되돌린 것이 사천성의 절반, 이 절반을 또 언제 빼앗기게 될지 모른다.

그 전에 정파는 끈끈한 결속력을 다지며 적성의 공격에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보다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말이야.”

자운의 말에 그가 무슨 일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자운을 바라보았다.

“사실 정파의 영역이 된 것은 사천성의 절반뿐이야. 다르게 말하면 사천성은 지금 분쟁지대라는 거지.”

정파의 영역이 절반이고 적성의 영역이 절반이다. 이런 상황에서 처신을 잘못한다면 작은 불씨 하나에 거대한 화마가 피어올라 전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간신히 정파의 영역으로 되들려 놓은 사천 땅의 절반은 다시 적성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자운은 지금의 상황을 찬찬히 백정명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런 말씀을 저에게 하시는 것을 보니 저에게 부탁할 일과 이 정보가 관련이 있나 보군요.”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가 빠르니 좋네. 너한테 부탁하려는 일과 당연히 관계가 있지.”

“저에게 부탁하려는 일이 무엇인데 그러십니까?”

“네가 사천 땅의 정파들을 규합해 줬으면 좋겠어. 호혈방과 반성련의 힘을 합치면 지금 사천 땅에 남아 있는 정파 중에서는 가장 거대한 규모가 될 거야. 그러니 그 힘을 반지화를 지키는 데만 사용하지 말고, 다른 정파들과 힘을 합쳐서 적성을 막아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자운의 말에 백정명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곧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데 난신께서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의 물옴에 자운이 운남 땅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에 들어갈 거야 혹시 이곳에 대한 정보, 아는 것 좀 있어?”

자운의 말에 백정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반지화는 운남과 닿아 있는 곳이다. 운남의 정보는 손에 넣으려고 하면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기도 했다.

백정명 역시 운남의 정보 몇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 운남은 전쟁 중이라고 합니다.”

“운남 땅이 말이야?”

자운의 반문에 백정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 운남이 오지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적성도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겉에서만 맴돌며 독곡과 대치상태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운남에는 독곡이 있다.

운남이 워낙 오지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에 대해서는 사천당가에도 뒤지지 않는 문파가 바로 독곡이었다.

정사지간의 문파라 어느 쪽에도 휩쓸리지 않고 몇 백 년의 시간을 살아온 이들.

자운이 독곡에 대해서 정보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도 독곡 출신이었지.’

과거 자운의 친우 중에서도 독곡 출신이 있었다. 독곡의 후계자 중에 한 명이었으면서,무림행을 하던 도중에 방문한 황룡문에서 자운과 마음이 맞아 친우가 되었던 녀석이었다.

‘남우, 그 녀석은 독곡의 후계자가 되었으려나?’

자운이 입맛을 쩝쩝 하고 다셨다. 그러고 보니 자운의 사부인 황룡검존이 놈에게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도 있었다.

‘천수를 누릴 상이라고 했지.’

괜히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놈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 아냐?’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독곡과 대치 상태라…….”

자운이 말꼬리를 흐렸다. 독곡 이야기가 나오니 괜히 남우가 보고 싶어진다.

자운이 고개를 들어 환하게 뜬 달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얼굴까지 흐릿해서 잘 기억나지 않는 이가 바로 남우였다.

‘후우. 이백 년, 참 오래되기는 한 모양이네.’

새삼 자신이 노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놓아두었던 술병을 들어 올리자 짤랑거리는 소리가 나며 술병 속의 술이 움직였다.

자운이 술병을 통째로 입으로 가져가 술을 꿀꺽 하고 삼킨다.

‘그래도 나는 살아간다.’

* * *

축제가 끝나자 자운은 바로 황통문도들을 규합하여 운남 땅으로 들어갔다.

운남은 오지다. 들어서자마자 푹푹 찌는 더위가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자운이 자신의 얼굴에다 대고 부채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더워 죽겠네.”

그 말에 운산이 다가와 웃으며 말한다.

“추위도 더위도 느끼지 않으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전혀 신빙성이 없습니다.”

자운이 뜨악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래. 난 그럼 찬물 마시고도, 어, 미지근하네, 해야 하냐? 그 정도 감각은 나도 느낄 수 있거든? 내공으로 차단을 해야 못 느끼는 거지.”

자운의 말에 운산이 말을 더듬었다.

“그, 그렇습니까?”

“그럼 넌 수화불침이 뭐라고 생각한 거냐? 평생 차가운 것도 뜨뜻한 것도 못 느끼고 사는 거라고 생각했냐. 이게 또 사람 하나를 감각장애라고 생각하고 있었구만.”

뒤통수를 한 대 쳐 버릴까 했지만 더워서 그럴 생각도 싹하고 사라졌다.

“어휴. 어디 쉬어갈 곳이 없나.”

자운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날이 더워도 너무 더웠다. 그나마 자운은 땀을 흘리지 않고 있었지만 황룡문도 중에서 몇몇은 이미 땀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다.

땀을 쭈욱 흡수한 옷은 무거운 천이 되어 몸을 짓눌렀다.

아무래도 잠시나마 쉬어가는 것이 좋을 듯했다.

곧 얼마 안 가 자운이 계곡물 하나를 발견한다.

“야. 저기서 좀 쉬어가자.”

물만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는 적당히 그늘도 저 있는 것이 더위를 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래도 오후가 되면 지금보다는 조금 선선해질 테니 그때 움직일 생각인 것이다.

황룡문도들이 물을 보고는 반색을 하며 뛰어갔다. 자운도 그중에 섞여 있었다.

“물이다아!”

풍덩하는 소리와 함께 자운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물의 감각이 몸을 타고 느껴진다.

“으, 시원해.”

바로 이 감각이다. 이 감각을 원했기에 물속에 뛰어든 것이 아닌가. 자운이 물속에 뛰어든 채로 물을 몇 모금 꿀꺽하고 삼켰다.

“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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