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안에서 반성련의 인원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호혈방의 무사 중 하나가 운산이 걷어찬 문에 맞고 비명을 질렀다.
정문의 크기가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나무문이라고는 하나 그 무게가 절대로 가볍지 않다.
거기에 운산의 발길질에서 뻗어나온 내력이 더해졌으니 사파 무사를 때릴 때의 힘은 그야말로 천 근에 가까울 정도였다.
간단하지만 엄청난 한 수에 황검이 운산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넌 누구냐.”
평범한 낭인이 저 정도의 힘을 발휘할 리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몇몇 낭인의 모습이 촤라락 떠오른다.
대부분 반지화 근처에서 이름을 날리는 낭인들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얼굴도 운산의 얼굴과 일치하는 얼굴은 없었다.
황검이 운산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자 자운이 장난스럽게 팔꿈치로 운산의 몸을 툭 하고 쳤다.
“너 아직 덜 유명한가 보다.”
운산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나름대로 무림명이 생겼다고 기뻐하고 있었는데, 역시 여기까지는 소문이 나지 않았군요.”
말을 하는 운산의 손에 들린 검에서 황룡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것을 발견한 황검이 소리를 쳤다.
“황룡문!”
“역시. 그거 하나는 기똥차게 잘 맞추는구나!”
자운이 박수를 치며 파안대소를 했다.
그가 곧 스산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니까 너네가 이제 곧 죽을 목숨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사실 전투라고 할 것도 없었다. 반성련의 세력은 있으나 마나한 상황이었고, 그나마 백정명의 실력이 우천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도움이 되는 정도였다.
반성련의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이류 무사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실력을 가진 사람들을 이끌고 여태껏 잘도 살아 있었군.’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자운의 눈에 황검을 압박하는 운산의 모습이 보인다. 멀지 않은 곳에 종횡무진 적들 사이를 누비고 있는 우천의 모습도 보였다.
“하긴. 그러고 보니 저 녀석들도 처음 만났을 때는 다 이런 꼴이었지.”
이류가 웬 말인가. 운산과 우천을 처음 봤을 때 그들의 실력은 삼류 무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들이 벌써 강기를 펑펑 날리는 무인이 되어 있다.
“아직 멀었지만, 꽤 발전하기는 했네.”
삼류에서 강기지경까지 발전한 무인을 자운은 아직 멀었다고 평가했다. 자운이 바라는 그들의 실력은 최소한 수어 검 정도는 구사할 실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운이 조금 더 빡세게 굴려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운산과 황검의 전투를 바라보았다.
까앙-
운산의 검에 황검의 몸이 주르륵 밀려난다.
“어이쿠. 이제 곧 제압되겠군.”
이 싸움, 오래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 * *
“이익!”
황검이 신음성을 내지르며 간신히 운산의 검을 막았다. 운산의 검을 막아내며 그의 몸이 연신 뒷걸음질을 친다.
운산의 검은 쾌속무비했으며 또한 묵직했다.
그래서 막아내는 것도 어려웠고 막는다 하더라도 묵직한 무게 때문에 균형이 무너지게 마련이었다.
“버티기 힘든가 보지?”
조롱 섞인 운산의 말투가 들려왔지만 황검은 그에 답할 시간조차 없다.
말하는 순간 진기의 움직임이 끊어진다면, 단번에 놈의 칼에 베여 나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카앙-
운산의 검을 간신히 쳐낸 황검이 후다닥 몸을 뒤로 날렸다.
그 찰나간의 틈에 황검이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다시 오겠지?’
황검이 호흡을 정리하며 운산의 움직임을 살폈으나, 운산은 다시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황검에게 있어서는 천만다행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호흡을 완전히 정리할 시간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호흡을 정리할 시간이 되었을 뿐, 이렇다 하게 나아진 상황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상황은 더 힘들어지고 있었다.
황룡문도들에게 속속들이 제압되고 있는 자신의 수하들, 오랜 야망이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눈가로 암담함이 들어섰다.
그는 교활한 자다. 또한 강자에게 약하며 약자에게 강하다.
그가 눈알과 머리를 굴렸다.
뒤룩뒤룩 하고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눈알 굴러가는 소리에 겹쳐서 들렸다.
운산도 놈이 하는 꼴을 천천히 보고 있었다.
어차피 독 안에 든 쥐다.
빠져나갈 곳도 없으며 더 이상 쓸 만한 수 역시 없었다.
‘지난번처럼 독가루에도 당하지 않아.’
운산이 얼마 전 자운의 도움을 받았던 때를 생각하며 자운을 흘깃 보았다.
운산의 눈빛을 마주한 자운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손을 흔들며 그를 향해 웃어 보인다.
자운의 웃음에 자신 역시 웃음으로 답해준 후 그는 황검을 노려보았다.
황검이 무슨 수롤 쓰든 반응할 준비를 마친 후였다.
‘네가 무슨 수를 쓰든 나는 피해낼 수 있다.’
운산이 웃으며 놈의 다음 수를 기다렸다.
그 순간, 놈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뭐하는 거지?”
운산의 눈에 당혹감이 어리었다. 그와 동시에 놈의 입에서 어디선가 한번은 들어보았을 법한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흘러나왔다.
“살려주십시오. 저희 집에는 여우같은 부인과 토끼 같은 자식 놈이 둘이나. 크혹. 거기다가 늙으신 노모까지 있습니다. 대협.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눈가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까지 흐르는 게 누가 본다면 껌뻑 속아 넘어갈 것이 분명했다.
어제 자운이 시킨 정보 조사를 하지 않았다면 운산 역시 속아 넘어갈 정도의 연기력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보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운산으로서는 속아 넘어가 주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런 놈이 호혈방주의 딸이랑 혼인을 추진하냐.’
오히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운산이 검을 움켜쥐고 놈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스륵-
검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황검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왜, 왜이러십니까, 대협.”
그가 말을 더듬으며 운산의 바짓가랑이라도 부여잡으려 한다. 바지를 잡으려 다가오는 그의 손을 운산이 피했다.
그리고는 검을 들어 놈의 목에 겨누었다.
놈이 다시 움직이려고 하다가 자신의 목에 겨누어진 검에 화들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날카로운 검의 예기에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얕은 상처가 났지만, 운산의 살기 때문인지 그 상처가 욱 따끔거렸다.
“헤헤. 대, 대협. 이러지 마십시오.”
그의 말에 운산이 위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그을 향해 중얼거렸다.
“여우같은 부인, 토끼 같은 자식, 늙은 노모?”
운산의 말에서 한 가닥 희망을 발견한 것인지 그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하지만 곧 이어진 운산의 말은 그에게 남아 있던 한 가닥의 희망이나마 산산이 조각내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럼 데리고 와봐.”
황검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 하며 운산을 향해 다시 물었다.
“예?”
그의 반문에 운산이 검을 더욱더 놈의 목에 가깝게 가져갔다.
“그럼 데리고 와보라고.”
“대, 대협, 그것이…….”
운산이 놈의 앞으로 한 걸음 저벅 하고 내딛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 그것이…….”
운산이 스산한 눈으로 놈을 노려보았다.
“왜? 못 데려오겠나? 당연하지. 넌 거짓말을 했으니까 우리가 여기를 공격하면서 너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도 안 했을 것이라 생각했나?”
사실 자세한 조사는 어제 부랴부랴 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덕분에 놈의 동정을 부르는 말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지 않았던가.
“대, 대협…….”
운산이 검을 잡은 손에 힘을 가득 불어넣고 그대로 잡아 당겼다.
“시끄럽고. 죽어.”
푸확-
허공으로 피가 솟구치며 단번에 놈의 목이 잘려 나갔다. 잘 잘리지 않는 뼈까지 단번에 잘려서 놈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피분수가 허공으로 뿜어지고, 곧 툭 하는 소리와 함께 황검의 목이 떨어져 내렸다.
운산이 놈의 머리를 밟으며 소리쳤다.
“모두 꿇어.”
호혈방의 진압은 생각보다 쉽게 되었다 황검을 순서로 황검의 수하들이 하나하나 제압되었고, 그들까지 제압하고 나서는 나머지 호혈방도들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호혈방의 식구들은 반성련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 사이에는 호혈방의 방주인 진노백과 그의 딸인 진가려 역시 함께 있었다. I
자운이 한번 쓰윽 하고 백정명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앞으로 나섰다.
“호혈방주, 당신은 지금까지 적성에 가담해서 무고한 서민들을 핍박하고 정파를 핍박한 죄를 인정하겠지?”
자운의 목소리가 능글맞기 그지없다.
그 목소리에 장난기마저 섞여 있어 듣고 있는 운산과 우천으로서는 걱정스러웠다.
‘또 무슨 일을 벌이시려고.’
‘이번에는 제발 좀 조용히 넘어갑시다.’
자운이 일을 벌이면 조용히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난 신이라는 별호답게 사건이 터지고 주변이 난장판이 되었다.
그것은 이제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순서이기까지 했다.
‘제발.’
운산과 우천이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그런 운산과 우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운은 장난스럽게 휘어진 눈으로 호혈방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