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정확하게 손가락으로 검날을 잡아내는 자운의 수법, 공수탈백인의 수법에 검이 잡힌 상대가 끙 하고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자운의 손에 들린 검은 바위에 강하게 박히기라도 한 듯 빠져나올 생각을 않았다.
“뭐야. 기습을 할 거면 좀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냐.”
자운의 말에 그가 입술을 씰룩거리며 물었다.
“어디서 온 놈들이냐?”
자운이 스산하게 웃는다.
“어라. 너네가 초대해 놓고 어디서 온 놈들이냐고 묻다니. 그거 굉장히 실례 아니야?”
초대를 했다는 말에 그가 순간 당혹감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느새 자운의 주변에는 무사들이 가득히 서 있었다.
자운의 손에 검이 잡힌 무사가 주변을 둘러보며 눈으로 물었다.
너희 중에 누군가 이 사람을 초대한 사람이 있느냐고.
사내의 눈을 마주한 동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휘젓는 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그들이 모두 부인을 하자 그가 자운을 향해 소리쳤다.
“개소리는. 너네는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초대한 거냐. 내가 누구인 줄 알아?”
자운이 황룡신검을 움켜쥐었다.
스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황룡이 새겨진 신검이 찬란한 모습을 드러낸다.
황금빛 검신이 빛을 받아 번쩍거린다.
동시에 자운의 주변에서 황금빛 기류가 일었다.
금광을 몸에 두르고 용의 검을 부리는 자, 그에 대한 소문이라면 이미 익히 나 있다.
황룡문의 협객들이 바로 그와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설마 황룡문!”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를 알았으면 이제 염라대왕이랑 면담하러 가야지.”
자운이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그가 만세를 외쳤다.
“만세!”
주변 사람들 역시 검을 든 채로 자운들을 둘러싸고 만세를 부른다.
전투태세를 모두 갖추었던 운산과 우천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한다. 그것은 자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함정인 줄 알고 다 쓸어버리려고 했더니 갑자기 만세를 부르다니.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자운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멍하게 있자 자운에게 검이 잡힌 이가 자운을 향해 다가왔다.
감격이라도 한 듯 그의 눈가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드디어 반지화에도 황룡문이 왔군요. 황룡문의 위명은 많이 들었습니다.”
자운이 머리를 긁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래.’
자운이 함정이라 생각했던 곳은 사실 반성련이었다. 그 여인이 알려준 곳이 반성련이었던 것이다.
정파인들은 사파인들이 활개치는 곳에서 묵어가기 쉽지 않다, 그러니 차라리 반성련에서 쉬어가는 것이 편할 것이다.
자운들을 평범한 정파무사로 생각한 여인의 배려였다.
문제는 사파의 여인이 왜 자신들을 배려해 줬냐는 것이다.
“여기가 반성련이라는 말이지.”
자운에게 검을 빼앗겼던 사내, 반성련의 수장. 정검문주 백정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실 저희는 사파들과의 싸움에서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황룡문에서 와주셨으니 이제 한시름 덜 수 있겠군요.”
자운이 백정명을 바라보았다.
제법이다.
적성이 득세한 상황에서 정파의 잔존세력을 규합해 적성에 대항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담으로는 불가능할 텐데.’
그것이 자운이 백정명을 제법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말이야. 사파의 젊은 여자 하나가 이곳의 위치를 알고 있던데 그건 아무 상관 없는 건가?”
자운의 물옴에 백정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순간 변한 표정이지만 자운이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하하하. 그럴 리가요. 아마도 저희가 심어둔 세작일 겁니다.”
무언가 숨기는 게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파헤치면 될 것이다.
“그래? 그럼 그런가 보지.”
자운이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 해가 되는 걸 숨기고 있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최악의 가정은 그가 사파와 손을 잡고 무언가룰 목표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까지 갔다.
‘만약 이 최악의 가정이 진짜라면, 한 놈도 살려두지 않고 모조리 날려 버리겠다.’
자운이 신검의 검병을 움켜쥐었고, 신검이 낮게 울었다.
우우우우우-
황룡문의 세력이 반성련에 더해졌다. 이렇게 되면 사실 작전이고 나발이고 필요가 없다. 황룡문이 그래 왔던 것처럼,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 대로 정면으로 밀고 들어가서 다 박살 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들의 행보가 오죽했으면 난신의 문도들 역시 난신새끼더라 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 정도로 황룡문은 작전 없이 난입해서 다 박살 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소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점이 영 미덥지 못했던 모양인지 백정명이 입맛을 다셨다.
“정말로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자운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까지 이래 왔어. 호혈방보다 더 큰 문파도 몇 개 무너뜨려 왔다. 호혈방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어.”
자운이 반지화의 지도를 보며 손에 단검을 집었다.
파악-
그의 단검이 지도 위를 찌르고 탁자까지 깊숙하게 파고든다.
자운이 단검을 내려찍은 부위는 정확하게 호혈방이 있는 부분이었다.
“돌입은 내일, 호혈방은 무너진다.”
자운이 씨 익 하고 웃었다.
* * *
밤이 깊어지자 백정명이 살그머니 반성련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담을 타고 반성련의 거점을 넘어 밖으로 사라졌다.
자운이 그의 뒤를 쫓았다.
암룡올 부릴 정도의 은신술을 갖추고 있는 자운이었기 때문에 절대로 백정명에게 들킬 일은 없었다.
‘그래. 어디로 가는 것이냐.’
백정명은 어딘가의 꼬리로 보였다.
자운은 그 꼬리를 따라가 볼 작정이었다.
이 꼬리의 끝에 놈들이 사파와 협력하고 있는 것이 보인 다면 그 자리에서 검을 휘두를 생각이었다.
‘정파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지.’
무림에 위기상황이 오면 사파랑 충분히 연합을 할 수 있다. 이전에도 역사를 찾아보면 몇 차례의 정사연합군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적성에 협조하고 있는 사파였다.
그런 사파랑 손을 잡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백정명이 계속해서 어딘가로 향한다.
자운이 몸 주변으로 어둠을 칭칭 휘감은 채 백정명의 뒤를 쫓았다.
백정명의 몸 위로 차가운 달빛이 쏟아졌다. 그 달빛을 가르고 그가 향한 곳은 반성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구릉 위였다.
백정명이 당도하자,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인영 하나가 백정명을 향해 다가온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얼굴 위로, 달빛이 쏟아지자 그녀의 얼굴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자운이 검병을 움켜쥐었다.
‘역시. 그녀였나.’
달빛에 얼굴이 드러난 인물, 그는 바로 자운에게 반성련의 위치를 가르쳐 준 여인이었다.
사파의 여인과 내통하는 것이 확실해진 이상, 자운이 더는 봐주지 않고 배겠다는 듯 의지를 불러 일으켰다.
그 순간, 여인의 목소리가 자운의 귀에 들려왔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백 가가.”
자운의 머릿속으로 의문이 떠오른다.
갑자기 가가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라는 말인가.
자운의 의문이 채 해소되기도 전에, 백정명이 입을 열어 그녀를 불렀다.
“오래 기다린 것이오, 가려?”
그녀가 고개를 흔드는 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아니요. 그보다 오늘 제가 보내 드린 분들은 반성련에 잘 도착했나요?”
그녀의 물음에 백정명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파인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매번 도와주는 그대의 마음씨에는 매번 감사하오. 덕분에 이번에야말로 황검의 악행을 끝낼 수 있을 것이오.”
‘황검?’
황검이라는 말에 자운이 머리를 굴렸다. 호혈방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꽤나 비중 있는 위치에 있었던 인물로 기억된다.
잠시간 머리를 굴리자 그가 어떤 위치에 있는 자인지 단번에 떠올랐다.
‘호혈방의 부방주, 그자에 관한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것이지?’
여인이 백정명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아니, 황검을 쓰러뜨릴 방법이 있나요?”
황검은 호혈방주에 비견될 정도의 고수였다. 그래서 백정명 역시 황검을 쉬이 쓰러뜨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기회만 엿보고 있지 않았던가.
그녀의 물옴에 백정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가려. 그대가 보내준 이들이 황룡문의 협객 분들이셨소.”
“아!”
백정명의 말에 탄성을 터뜨리는 가려, 그녀 역시 주변의 소식을 들은 바 있었다. 황룡문의 협객들이 나서 사파들을 징죄하고 다니며 다시 정파들의 세상을 만들어놓았다는 소문은 이미 사천성 전체에 파다하게 퍼진 지 오래였다.
그들이 치죄하는 사파는 적성에 가담한 사파, 엄밀히 말하자면 호혈방 역시 적성에 가담한 사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와 저희 아버지도 무사하지 못하겠군요.”
가려의 말에 백정명이 세차게 고개를 흔든다.
“그럴 리가 없소. 황룡문의 협객들께서 설마 호혈방의 사정에 대해서 조사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의 말에 자운이 의문을 가졌다.
호혈방의 사정이라니, 설마 호혈방에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정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자운이 움켜쥔 검병에서 손을 살짝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