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34화 (134/175)

# 134

전형적인 사파의 행세였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서슬 퍼런 목소리가 들려오자 상인은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아무런 힘도 없는 가판상인으로서는 무공을 익히고 칼까지 든 무림 무사를 상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무사가 떠나가자, 꽤나 비싼 노리개였던 듯 그의 어깨가 추욱 쳐졌다.

자운이 그를 향해 다가갔다.

아무래도 상인이라면 지금 주변에 무사들이 왜 이리 많은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보시오.”

“예? 왜 그러십니까?”

상인의 눈초리가 바로 자운의 허리로 향했다. 허리춤에 차여져 있는 검, 검갑 속에 갈무리되어 있어 황룡신검이라는 것이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분명 무림인들이 차고 다니는 장검이었다.

상인은 조금 전에 겪었던 일을 되새기는 듯 목소리에 겁이 실려 있었다.

자운이 그를 한 번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물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무사들이 왜 이렇게 주변에 많은 거지?”

자운의 물음에 상인이 한숨을 푸욱 하고 내쉰다. 아무래도 이 무림인 아무것도 모르고 반지화에 들어선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에 들어오셨습니까?”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사파 하나가 있어서 박살을 내러 왔을 뿐인데 주변이 소란스러우니 궁금해서 묻는 것이었다.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상인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얼마 전에 호혈방(虎血)이 습격을 당했습니다. 그 때문에 호혈방주가 아주 뿔이 났지요.”

“그거랑 지금 일어나는 일이 무슨 상관이지?”

“그 호혈방을 습격한 게 바로 반성련(反星聯)인 게 문제입니다.”

반성련, 이름을 들어보니 적성에 반하는 단체인 듯 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반성련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아무래도 이 지역에서만 활동을 하는 단체가 분명했다.

“반성련?”

대략적인 의미는 어감으로 파악했지만,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었던 자운이 반성련에 대해서 상인에게 물었다.

그의 말에 상인이 고개를 낮추더니 자운에게 손을 움직여 보인다.

자운이 손짓을 따라 고개를 내렸다.

그러자 그가 주변을 한번 휙휙 살피더니 낮은 목소리로 반성련에 대해 설명했다.

“적성에 가담한 사파에게 반하는 단체입지요. 정검문주께서 반성련을 이끌고 계시는데 사파를 몰아내기 위해 가끔씩 사파를 급격하고 계십지요. 이번에는 반지화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파인 호혈방을 습격했더랍니다.”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목을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그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파의 무사들이 쫘악 깔린 모양.

“정검문주가 이쪽으로 도주했나?”

자운의 말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거야 저도 모릅죠. 무림인이야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들이지, 다만 바라는 것은 하루빨리 다시 정파가 세상을 평안하게 해줬으면 한다는 겁니다. 어휴. 옆 현은 황룡문에서 다녀가서 정파가 다시 득세하게 되었다는데 우리는 이게 뭔지. 우리 쪽에도 황룡문의 협객들이 한번 와줬으면 하는데 말입니다.”

그 말에 자운이 피식 하고 웃었다.

“언젠가는 한 번쯤 오겠지.”

자운이 고개를 돌려 상인에게서 멀어지려던 때였다. 한 무리의 무사가 자운의 근처로 다가왔다.

무사들이 다가오자 황룡문도들 역시 자운의 주변으로 모여든다.

미연에 일어날 사태를 방지하려는 것이다.

“거기 당신들. 칼을 차고 있는데 어디서 온 사람들이지?”

자운이 놈들을 향해 웃었다. 마치 사신의 미소처럼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자운이 허리춤의 검병을 움켜쥔다.

“우리? 우리가 어디서 온 것 같아?”

자운이 능글맞게 웃으며 허리춤의 검병을 움켜쥐자 다른 황룡문도들 역시 허리춤의 검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여차하면 단번에 출수 할 수 있는 자세.

이런 하급 무사들 정도는 단번에 생의 끝을 마감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호오. 그러고 보니 이놈들 칼을 차고 있군. 네놈들 혹시……?”

자운이 득의양양하게 소리치려 했다.

“그래, 우리는 황룡…….”

“반성련의 잡졸들이구나!”

자운이 단번에 무사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뭐 이 새끼야?”

검으로 베려는 게 아니라 당장에 주먹으로 한 대 치려는 기세였다.

“이, 이놈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나는 바로!”

자신의 멱살이 단번에 움켜쥐어지자 당황한 무사가 호혈방의 이름을 대려 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들려온 여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자운과 무사의 사이로 날아들었다.

“그만두세요.”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자운이 움켜쥔 멱살을 놓고 음성의 주인을 찾았다.

주인은 젊어 보이는 외모의 여인이었다. 이제 스물두셋 정도 되었을까.

머리를 올리지 않은 걸로 보아 아직 미혼의 여성이었다.

명문의 규수가 스물두셋에 미혼이라면 혼기를 훨씬 넘긴 것이었지만, 무림의 여인들에게 스물두셋은 절대로 혼기를 넘긴 나이가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눈앞에 보이는 여인은 혼기가 꽉 찬 여인.

‘하긴 이백 살이 넘도록 혼인을 안 한 애도 있는데 뭐.’

자운이 설혜를 떠올리며 피식 하고 웃었다.

“아, 아가씨.”

자운의 옆에서 그녀를 지칭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 다.

‘아가씨?’

자운이 다시 여인을 바라보았다. 가벼워 보이는 경장 차림, 그 가슴팍에 붉은 화염을 휘감은 호랑이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자운이 고개를 흘깃 들려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사파 무사의 어깨를 바라본다.

사파 무사의 어깨에도 역시 같은 무장이 새겨져 있었다.

‘뭐야. 같은 문파였어?’

그럼 베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었다. 자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다가와 자신의 옆에 있는 무사의 손을 움켜쥐었다.

“또 애꿎은 사람들 괴롭히고 있는 건가요?”

“아, 아니, 아가씨. 그게 말입니다 이놈들은 칼도 차고 있고…….”

자운의 눈썹이 꿈틀 하고 움직였다.

‘뭐지?’

같은 한패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다가오더니 사파의 무사들을 말리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한참을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여인이 무사들을 물리고는 자운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보인다.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이렇게 나오니 자운으로서도 뭘 할 수가 없다.

사실 이런 경험은 자운이 이백 년 인생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그래 봐야 실제로 산 건 한 삼십 년 정도밖에 안 되지만, 이백 년 제대로 살았어도 이런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속마음은 속마음이고 자운이 일단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뭐 피해를 본 것도 없고. 당신이 안 말렸으면 죽어 나자빠지는 건 저 녀석들이었거든?”

자운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실력에 자신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동시에 자운의 귓가로 그녀의 전음이 들려왔다.

[정파의 무사 분들이신가요?]

자운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당연하지.”

겉으로는 평범한 대화와 별 차이가 없었으나 실제로는 전음과 대화가 오가는 것이었다.

“당당하신 게 보기 좋네요.”

[그럼 이곳에 있으면 위험해요. 제가 한 곳을 알려 드릴 테니 그곳에 가서 쉬도록 하세요.]

그 후에 곧 어딘가를 가리키는 말을 전해준다. 자운이 함정인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친절한 여자다.

“자신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겠지.”

함정이면 뭐가 어떤가. 그대로 부숴주면 그만이다. 지금 자운을 막을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기껏해야 삼봉공급에 해당하는 실력이나 일성 정도가 전부였다.

이런 곳에 자신을 막을 실력자는 없다는 강한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 후로도 몇 마디 말이 전음으로 더 오간 후에 그녀는 떠나갔다. 자운이 고개를 갸웃하며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운이 황룡문도들을 이끌고 향한 곳은 반지화의 외곽에 있는 작은 장원이었다. 무사들도 지키고 서 있지 않은 것이 영락없이 힘을 잃은 장원이었다.

끼익-

자운이 문을 밀자 녹슨 경첩 소리가 나며 문이 열린다. 동시에 철컥 하고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매우 작은 소리였기 때문에 자운 정도 되는 고수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그 증거로 운산과 우천이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자운의 뒤를 따라 들어오지 않는가.

“대사형. 여기는 갑자기 왜 온 것입니까?”

자운이 고개를 으쓱해 보인다.

“조금 전에 만난 사파의 여자 기억해?”

운산과 우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이 알려주던데?”

“예에?! 그럼 함정이 아닙니까?”

자운이 이번에도 고개를 으쓱해 보이며 운산과 우천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알 게 뭐야. 여차하면 너네 둘이 나갈 건데.”

“대사형은 이번에도 안 싸우시려고요?”

“늙으면 쉬어야지. 에구에구.”

말을 하며 자운들은 장원의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속속들이 자신들을 포위하는 기척이 느껴진다.

‘역시 함정이었나.’

아마도 조금 전에 난 철컥이는 소리는 경고 장치를 발동 시킨 소리였던 듯하다.

자운이 씨익 하고 웃었다. 앙큼한 여자가 연기를 제법 잘 했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자운을 향해 누군가가 검을 쭈욱 뻗었다.

자운의 손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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