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자운의 외모는 알려진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얼굴만 보고 그가 난신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바로 눈앞에서 웃고 있는 자운의 존재를 간과했다.
“흐흐흐. 난신은 오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가 웃으며 검을 움직였다.
쉭쉭쉭-
뱀이 혓바닥 날름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의 검이 곡선을 그렸다.
운산이 검을 움직였다. 황룡의 움직임이 검끝에서 꿈틀거리며 팔달의 검을 차단한다.
촤자장-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대사형이라면 저기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운산으로서는 굳이 설명해 줄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알면 절망밖에 더하겠어.’
자운이 황룡무상십이강 중 하나인 호룡만 꺼내서 밀어버려도 이런 문파 하나는 단번에 날아간다.
그 자리에서 문파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버릴 것이다.
운산이 검을 휘둘렀다.
황금빛 광채가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에서 폭발한다.
쾅 하는 소리가 들리며 팔달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하지만 피해는 없어 보인다. 하기사, 피해를 줄이기 위해 팔달 스스로 몸을 뒤로 물린 것이니 거기서 피해를 입는다면 우스울 것이다.
운산이 팔달에게 쉬는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쫓아서 내달렸다.
파바밧-
모래먼지가 일어나며 운산의 몸이 단번에 팔달의 지근거리까지 도달한다.
쾅-
허공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검날!
팔달이 고개를 숙이며 운산의 힘을 비스듬하게 흘렸다.
하지만 내려치는 힘이 워낙 무지막지했는지라 힘을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비집고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큭.”
신음성을 흘리면서도 팔달이 몸을 비틀었다. 허리가 휙 하고 돌아가며 발 뒤축에서 시작된 회전력이 검에 머금어졌다.
까가가강-
검과 검이 연달아 충돌하는 소리가 들리며 운산의 검이 뒤로 밀려났다.
그 틈을 타서 팔달이 뒤로 몸을 뺀다.
“어딜 도망가!”
운산이 손을 뻗었다.
허공에 용음이 울리며 펼쳐지는 것은 용구절천수.
하늘이 아홉 번 끊어지며 용의 입이 팔달의 어깨를 움켜쥔다.
꽈드득-
“으아아아아악!”
어깨가 틀어지는 비명 소리와 함께 팔달이 기겁을 하며 뒤로 내뺐다. 운산의 용구절천수에 왼쪽 어깨가 그대로 박살이 난 것이다.
팔달이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자신의 어깨를 살폈다.
팔의 근육과 뼈가 멀쩡한데도 불구하고 팔을 움직일 수 가 없다. 어깨 쪽의 뼈가 완전히 박살 났음이 틀림없었다.
“크옥.”
난신이 오지 않았다면 황룡문 따위 별것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난신이 오지 않더라도 황룡문은 특히 강했다. 더군다나 눈앞의 황룡문 문주라는 녀석은 자신을 압도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
그가 눈을 뒤룩뒤룩 굴렸다.
눈을 굴리자 전장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온다. 황룡문의 인원이 적기는 하였으나 확실히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황룡문의 문주라는 애송이에게 진다면 사기가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필패.’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가슴팍에 품어둔 마지막 한 수 가 떠오른다.
‘이걸 단번에 쓰면 절대로 통하지 않겠지.’
그가 조용히 운산의 눈치를 살폈다.
자운이 전장을 돌아보던 와중에 운산과 대치하고 있는 팔달을 발견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전장에 개입할 생각은 없었지만, 눈빛이 너무 찝찝했기에 자운은 계속해서 놈을 주시했다.
팔달은 자운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운산과 대치하며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저거 느낌이 더러운데?’
자운이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귀살문도의 뺨을 때렸다.
우직 하는 소리가 들리며 놈의 입이 그대로 틀어진다.
그 속에서 하얀 이빨 몇 개가 핏물에 범벅이 된 채로 우수수 하고 떨어져 내렸다.
“그러니까 칼질을 하지 말라고, 니들이 안치면 나도 칠 생각은 없어.”
자운이 조소를 머금으며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린다.
‘그래 봐야 전멸이라는 사태는 피하기 어렵겠지만 말이야.’
주변을 대충 살피니 황룡문이 확실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자신이 폐관수련에 든 동안 실전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쌓아온 경험들이 빛을 발하는 둣했다.
자운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쁘지 않군.’
문제는 지금 운산과 대치 중에 있는 팔달이었다. 그 순간 운산의 몸이 번쩍하며 팔달을 향해서 날아든다.
‘그래. 무슨 수를 쓰기 전에 끝을 내버려.’
그게 속이 시원하고 편할 것이다. 운산이 날아오자 팔달 역시 검을 움직였다.
한쪽 팔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균형을 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찌어찌해서 운산의 검을 비켜내었다.
그리고는 단번에 운산의 가슴팍을 향해 치솟는다.
운산이 손을 움직여 놈의 움직임을 막았다.
팍팍-
공수의 전환이 일어나며 운산의 손에 팔달의 모든 공격이 차단된다.
운산의 손발이 어지러워진 순간 팔달이 자신의 검을 버렸다.
쨍그렁 소리가 들리며 검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무슨?’
팔달과 공수를 나누던 운산이 당혹감을 머금었다. 지금은 전투 중이 분명한데 검을 버리다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지만, 몸은 그보다 빠르게 행동한다.
검을 버린 적을 살려두지 않고 베어버리기 위해 운산의 손이 움직였다.
팔달의 손 역시 움직였다. 하지만 그 행동은 운산의 검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가슴팍으로 손을 쑤욱 집어넣는 팔달, 그가 한 움큼 움켜쥔 것은 바로 독모래였다.
파앗-
독모래가 사방으로 뿌려진다.
동시에, 자운의 몸이 빛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콰앙-
자운의 손에서 뿜어진 한줄기 화염이 운산과 팔달의 사이를 갈랐다. 독에는 상극이라는 극염의 기운, 화끈한 열풍이 불어닥치며 독모래를 모두 날려 버렸다.
갑작스럽게 불어온 열풍에 운산과 팔달이 모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몸을 뺐다.
“젠장!”
몸을 빼며 팔달이 욕을 토했다. 회심의 한 수였는데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 그 한 수를 방해한다는 말인가.
그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놈을 향해서 뛰어갔다.
젊어 보이는 것이 썩 강해 보이지도 않는다. 아마도 평범한 황룡문의 문도 중 하나일 것이다.
무슨 수룰 써서 화염을 쏘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횃불이나 화섭자 따위를 이용한 것이 틀림없다.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계책을 틀어버린 놈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노옴! 죽어라!”
자운이 피식 하고 웃었다.
동시에 주먹을 뻗는다.
“개소리하지 말고 네가 뒈져!”
뻐억-
자운을 향해 뛰어가던 팔달의 몸이 허공중에서 몇 번이나 회전했다.
회전을 마친 그의 몸이 실 끊어진 추 마냥 아래로 뚝 떨어져 내린다.
떨어진 그의 입은 함몰되어 있었다. 그 입으로 무언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으어. 으어어. 으어우부어어어어.”
운산이 검을 들고 팔달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가 다가오자 팔달의 괴성이 더 커진다.
“으어어어어! 으어부어어엉!”
운산이 괴성이 듣기 싫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검을 하늘 높게 치켜든다.
“말을 할 거면 똑바로 해. 멍청아.”
콰득-
팔달의 목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운산이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목을 들어 올렸다.
그가 굳게 붙잡은 팔달의 목을 흔들며 소리쳤다.
“우리가 이겼다아!!”
황룡문은 또 하나의 사파를 멸문시켰다.
제4장 젠장. 독거노인한테 염장을 지르는구나.
반지화(攀枝花).
사천성의 끝자락에 걸려 있는 현으로서 운남으로 넘어가는 주요 길목이기도 하다.
운남성과 거래하는 상단들이 넘나드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현의 규모는 사천성에서도 나름대로 꽤 컸다:
자운들이 반지화에 도착한 것은 해가 서산 너머로 넘어갈 무렵이었다.
자운이 반지화의 시내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게 칼 찬 사람이 많이 보이네.”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살피는 자운, 자운의 눈에 비친 시장거리에는 칼을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칼을 찬 이들이 주변을 돌아다닌다는 말인가.
그 궁금증은 오래지 않아 해소되었다.
칼을 찬 무사 중 하나가 시장 상인에게로 다가가더니 뾰족한 검극을 불쑥 하고 들이민다.
“혹 이 주변에 수상한 놈들 본 적 있어?”
날카로운 예기가 목을 저릿저릿하게 하자 상인은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수, 수상한 사람이라니요. 그, 그런 사람 본 적 없습니다.”
“그래? 정말로 본 적이 없다는 말이지? 혹시 그놈이 정검문주의 문주라서 숨겨주는 건 아니고?”
상인이 고개를 세차게 휘저었다.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 그럴 리가요. 절대로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의 말에 그제야 무사는 검을 검갑 속으로 갈무리했다.
“혹시라도 놈을 보면 꼭 연락을 해야 한다. 알겠어?”
“예. 예 당연하지요. 꼭 연락을 하겠습니다.”
상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그가 씨익 웃으며 가판대에서 노리개 하나를 집어 들었다.
딱 봐도 제법 값이 나가 보이는 듯한 노리개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품속으로 챙기는 무사.
“어이쿠. 무사님 그건…….”
“왜, 내가 이걸 가지고 가는데 불만이라도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