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32화 (132/175)

# 132

그에 비해 일공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무공으로 스스로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버린 존재, 육체의 한계 역시 마찬가지로 뛰어넘었다.

당연히 일성이 담고 있는 힘보다 일공이라는 그릇에 담긴 힘이 훨씬 강했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마공의 상관관계라는 것이 문제였다.

“아니, 나뿐만이 아니라 마공으로는 절대로 일성을 죽일 수 없지.”

그래서 다른 이의 힘을 빌리려 한 것이다. 일공은 계획을 세우는 즉시 가능성이 있는 고수들을 찾았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자운을 시험했다.

삼공을 죽일 정도의 무력이 있다면, 몇 가지 수가 더 더해진다면 능히 일성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일공이 내린 판단이었다.

적의 손을 빌려 적을 제압한다.

그래서 이이제이.

일공이 씨익 하고 웃었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말을 자네에게 해주었을 것이라 생각하나?”

대계라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어 사람의 입을 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공은 이 대계를 자신의 수하에게 태연하게 일러주었다.

왜 그랬을까?

주륵-

눈앞이 흔들렸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자 가슴팍에 길게 이어진 자상과 함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일공을 마주했다.

“그건 자네가 이미 시체이기 때문이지. 시체가 일어나 소문을 내는 경우는 없으니까.”

일공이 히죽 하고 웃었다.

* * *

“뭐? 퇴로가 차단되었다고?”

자운의 말에 운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 무림맹에서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무상부의 인원,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황룡문도들이 무림맹으로 돌아올 퇴로가 차단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바로 이공이라는 존재 때문.

자운이 자신의 앞에 가슴이 쩍 벌어진 채로 핏물을 쏟아내며 죽어 있는 존재를 발로 툭 찼다.

시체에 대한 모독이다 나발이다 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이 중에는 그런 말을 할 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노인공격 경로사살이라는 농을 던지는 자운인 만큼 시체해손 따위는 아무렇지 않은 문제였다

“그러니까 이런 새끼가 하나 더 튀어나와서 길을 막았다는 말 아니냐?”

자운이 머리를 굴렸다.

지금 속이 온통 진탕된 상태고 내상도 조금 입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좀 많이 입었다.

검강을 상대하는 고수 수준까지는 손쉽게 상대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힘을 내어도 절대고수들과의 싸움에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절대고수가 아니라 이런 괴물 같은 놈과 싸워 길을 뚫는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냥 입에 칼 물고 고꾸라져 죽는 편이 오히려 편할 것이 분명했다.

욕지기가 입 끝으로 치밀어 올랐다.

“씨발!”

이건 그냥 죽으라는 꼴이지 않은가. 괜히 하늘이 원망스러워진다. 이백 년이나 지났다고 해서 절대적인 무위를 가지고 천하를 떵떵 울리면서 편하게 살 줄 알았더니 이게 뭔가!

천하를 떵떵 울리고 있기는 한데 전혀 편하지가 않다!

“빌어먹을 하늘!”

자운이 하늘을 향해서 소리쳤다. 도대체 왜 이딴 시대에 잠을 깨워서 날 귀찮게 한다는 말인가.

자운이 속에 담긴 말을 주르륵 쏟아내려고 자세를 잡는 찰나, 운산이 자운을 불렀다.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자운이 하늘에 대고 냅다 욕을 하려던 표정 그대로 운산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뭘 말이야, 씨발! 지금 여기서 칼 물고 죽을지 아니면 가서 싸우다 죽을지 결정해야 한다는 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운의 머리는 상당히 냉정히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 이공이라는 자와 충돌을 하면 필패다. 차라리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운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운산의 말에 자운이 깊은 숨을 토해낸다.

“그렇지. 젠장. 좋아. 생각을 해보자고. 지금 이대로 이 공을 향해 달려가면 우리는 죽어. 절대로 죽는다. 목이 잘려서 하늘을 훨훨 날겠지. 허공답보 따위 쓰지 않아도 모가지가 하늘을 촌각 정도는 비행할 수 있을 거야. 음음, 좋아. 나쁘지 않은 수법이야. 다른 수법은 뭐가 있는지 알아?”

자운의 말에 황룡문도들이 시선을 집중했다. 지금 자운이 웃으며 말한 것은 최악의 수였다.

전열하는 방법을 가장 희극적으로 표현한다면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은 무엇일까?

“놈들의 퇴로를 우리가 다시 한 번 잘라 버리는 거다.”

자운이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둥그렇게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 청해라고 적는다.

청해성은 무림맹이 있는 곳이었다.

그 아래로 차례로 사천, 운남, 감숙, 귀주, 중경, 섬서를 그려 넣었다.

정확하게 천하의 서쪽을 그려낸 절반, 자운이 사천땅과 감숙을 검게 칠했다.

“여기서부터가 지금 적성놈들의 땅이라는 말이지.”

자운이 손가락으로 운남부터 귀주, 중경, 섬서를 연결시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곳을 먹어서 놈들을 다시 한 번 고립시킨다. 그동안 난 내상을 회복해서 이공과 싸울 준비를 하는 거지.”

그렇게 된다면, 사천땅과 감숙땅은 무림맹과 자운으로 인해서 수복된 정파의 지역 사이에 끼게 될 것이다.

내상을 회복한 자운이 이공을 막을 수만 있다면, 절대고수의 숫자로는 적성을 압도하는 무림맹이 사천땅과 감숙땅을 수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천하의 절만이 다시 정파의 아래로 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꽤 큰 위험이 따를 거야. 우리는 수도 많이 없는데 우리 힘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다. 지금 당장 무림맹은 사천 땅을 넘어 지원군을 보내줄 수 없어. 난 안 죽겠지만 전투를 하며 우리 중에서 몇 정도는 죽겠지.”

자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단체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의리 지키면서 죽을래, 몇 명 정도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정파의 영웅으로 기억되어 볼래?”

자운이 묻지 않아도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황룡문도들이 힘차게 소리쳤다.

“정파의 영웅이 되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자운이 씨익 하고 웃었다.

“그렇지? 사실 나도 입에 칼 꼬나물고 뒈지기는 싫었어.”

결정을 내린 황룡문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단번에 사천 지역 주요 문파들을 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적성에 붙어서 한몫 잡아보려던 일부 사파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자운이 내상을 입어서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 까지나 자운의 기준이었다. 사파의 문주들이 자운의 일검을 막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한, 황룡문의 문도들 역시 격전을 겪으며 고수가 되어 있었다.

그 수는 적었지만 단번에 적들을 쓸어버리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고수, 그 선두에 서 있는 이들은 당연히 운산과 우천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자운은 싸움에 크게 개입하지도 않았다.

중간 중간 끼어들기는 했으나 황룡문도들이 위험할 경우에만 잠시간 도와주고 빠지는 식이었다.

실질적으로 그들을 앞에서 이끄는 이는 운산과 우천이었다.

운산의 검에서 황금색 검강이 번득였다.

쩌억-

땅이 그대로 갈라지며 앞으로 황금색 강기가 쏘아졌다.

검의를 담은 강기는 그대로 날아가며 앞을 막아서는 모든 것들을 베어버린다.

콰과과광-

강기와 충돌한 기둥이 무너져 내리며 건물이 통째로 무너졌다.

그 사이에서 인영 하나가 솟구쳤다.

콰드드득-

날아오르며 운산을 향해 검을 뿌린다.

귀살문의 문주 팔달이었다.

“이놈! 네놈들은 누구인데 귀살문의 영역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냐. 적성이 무섭지 않느냐?”

운산이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강기의 다발을 그대로 쳐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 무서워. 우리는 황룡문이니까.”

검을 쥔 손 가득 힘이 들어가고, 운산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단번에 팔달이 있는 곳으로 솟구친 운산이 검을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황룡문?!”

팔달이 검을 움켜쥐며 땅을 향해 수평으로 휘두른다.

쾅-

팔달의 검과 운산의 검이 충돌했다. 팔달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쿵-

팔달의 다리가 휘청하고, 운산 역시 팔달의 맞은편에 내려선다.

“그래. 황룡문.”

팔달이 얼마 전에 들려온 소문을 곱씹었다. 황룡문의 손에 강시당이 멸문당했다는 소식.

그리고 그 후에도 적성에 협력했던 몇 개의 크고 작은 사파가 박살 났다는 소식들이 팔달의 귀에 들려왔었다.

하지만 팔달은 헛소문이라고 치부했다.

이곳은 적성의 땅이다. 그것도 적성의 땅 한복판이었다.

무림맹과 전쟁을 하고 있는 사천성 외곽 쪽이라면 모를까, 여기는 황룡문이 절대로 나타날 수 없었다.

그래서 헛소문이라 치부했다.

한데 나타났다. 팔달이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황룡문이 나타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황룡문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귀살문 역시 강했다.

황룡문이 몇 개의 크고 작은 군소방파를 몰락시켰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몰락시킨 문파보다 귀살문은 훨씬 강했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이가 있었다.

바로 난신!

온몸에 황룡을 휘감고 지나가는 모든 자리를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난신의 존재는 귀살문 전체가 나선다고 할지라도 한 줌 혈수로 만들어 버릴 정도의 고수였다.

황룡문도들과 함께 그가 왔다면 귀살문은 필패다.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황룡을 휘감고 싸우고 있는 사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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