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양날의 칼이라는 말인가.’
괜히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다. 자운에 대해서 생각하자 그들이 사천 땅의 강시당에 임무를 처리하기 위해 나가 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무상은, 지금 무림맹이 뒤로 물러선다면 무상 은 어떻게 되는 것이오?”
자운 혼자라면 얼마든지 사천 땅에서 몸을 뺄 수 있겠지만, 지금 그의 주변에는 황룡문의 문도들이 있었다.
또한, 자운이라 할지라도 삼공을 상대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지 않은가.
남궁인의 물음에 제갈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난신이라 할지라도 힘들 것 같습니다.”
그의 얼굴이 착찹한 표정으로 변했다.
삼공이라는 존재들은 그야말로 전설 속에 나오는 괴물과 같았다. 그래서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는 감히 대적할 수 없다.
제갈운의 말에 남궁인이 손으로 빙글 하고 탁자 위롤 그으며 말했다.
“세상에서 무상을 부르는 이름은 난신 말고 하나가 더 있더군.”
아직 난신에 비해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난신이라는 별호에 비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싸울 때의 모습을 보면 그 별호가 비슷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그가 지나간 자리를 확인한다면 사람들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난신이라 칭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용제 말씀이시군요.”
용제(龍帝).
여섯 마리의 황룡을 휘감고 구름 속에서 춤을 추듯 적성의 고수들을 쓰러뜨린 자운을 몇몇은 그리 불렀다.
용제라, 참으로 오만한 별호가 아닌가.
“괴물이라면 괴물끼리 싸우게 해야겠지. 그래도 그가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나?”
제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처음 대항마로 떠올린 이가 바로 난신이라 불리는 자운이었다.
그래서 검토해 보았다.
몇 날이고 검토해 보았지만, 지금의 자운으로서는 절대로 삼공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것은 철저하게 모든 감정을 배제하고 머리로만 내린 결론이라서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예.”
그 말에 남궁인이 빙긋 하고 웃는다.
“자네의 말대로라면 정파의 무림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으시는 데는 연유가 있겠지요?”
제갈운의 말에 남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인은 단 한 번 자운을 만나보았을 뿐이지만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네.”
“한 번의 만남일 뿐이었습니다.”
“그의 성품 따위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네. 나는 그저 그의 무위의 끝자락을 읽어내는 것도 어려웠네. 마치 안개가 낀 호숫가를 걸어가는 듯했지. 발끝은 보이지만, 그 앞은 보이지 않는 매우 진한 안개가 낀 호숫가였네.”
그 말에 제갈운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절대고수가 있어 무의 극을 보았다고 한다.
확실히 절대고수들은 무의 극을 보았다고 봐도 좋을 만큼 강한 이들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무림에, 그들을 훨씬 능가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적성의 주구이며 스스로를 삼봉공이라 칭하는 이들이었다.
지금 남궁인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자운이 그들과 같은 경지에 올라 있다는 말이 아닌가.
절대고수를 아득히 넘어선, 현재로서는 지칭할 단어조차 없는 경지에 자운이 올라 있다는 말인가?
제갈운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남궁인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문상, 나랑 내기 하나 하겠는가?”
“…무슨 내기를 말씀이십니까?”
“무상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관한 내기 말이네.”
“…….”
그 순간이었다. 맹주전의 문이 왈칵 하고 열리며 무림맹의 정보를 담당하는 천이각주(天耳閣主)가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다.
그 채신머리없는 모습에 제갈운이 엄하게 한마디를 하려 했으나 천이각주의 입에서 튀어나온 급보라는 말이 제갈운의 입을 틀어막았다.
“급보! 급보입니다. 사천성 강시당에 나타난 삼봉공 중 삼공과 무상께서 충돌하셨다고 합니다!!”
그 엄청난 소식에 제갈운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쿵-
그가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넘어가고 탁자가 그 바람에 흔들리며 차가 쏟아질 뻔하였으나 남궁인이 탁자를 가볍게 두드려 쏟아지는 차를 모조리 담아내었다.
신기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나 제갈운으로서는 그런 남궁인의 신기에 감탄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천이각주의 다음 말이 무림의 운명을 가를 만큼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자운이 삼봉공을 상대할 수 있는가 없는가!
무림의 운명은 여기서 갈라질 것이다.
“그 결과 무상께서는 열한 마리의 황룡을 휘감고 삼공과 충돌, 수 시진에 이어지는 격전 끝에 승리하셨다고 합니다!”
열한 마리에 이르는 황룡이라는 단어도 들려오지 않았고 수 시진에 이어지는 격전이라는 단어도 들려오지 않았다.
제갈운의 귓가에 들려오는 글자는 단 두 글자, 승리라는 단어였다.
그것은 남궁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식을 전해들은 남궁인이 고개를 끄덕 이며 허허로운 웃음을 털어낸다.
“허허허. 내 뭐라고 했는가. 괴물과 괴물을 싸우게 한다면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했지 않은가.”
그 뒤로 남궁인이 한마디를 더했다.
“이미 결론이 내려졌으니 안타깝게도 내기를 할 수는 없을 읏하군.”
제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말, 정도무림의 구성이었군요…….”
남궁인이 제갈운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지. 근데 주변을 좀 파괴한다는 게 홈이지. 흠흠.”
* * *
자운의 승리 소식이 무림맹에 들어갔을 무렵, 같은 소식은 일공의 귀에도 역시 들어가 있었다.
일공이 수하가 전하는 소식을 귀를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는 삼공의 죽음을 알리는 장면에서는 박장대소를 토한다.
“옳거니! 결국, 삼공이 죽었다는 말이렷다?”
일공의 말에 수하가 속으로는 찌그러진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숨기기 어려웠다. 지금 그가 보고를 하고 있는 인물은 삼봉공 중 최고라는 일공, 한데 그가 같은 동료인 삼공의 죽음을 듣고서 저렇게 웃음을 터뜨린다.
어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군. 그랬어. 과연 난신이라는 말이지.”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호기심은 그 크기를 부풀려갔다.
“슬프지 않으십니까?”
급기야 그 호기심은 자신을 단번에 집어삼켜 버릴 수 있는 맹수 같은 존재에게 물음을 청하게 하기까지 한다.
말해놓고 그는 헙 하며 헛바람을 들이쉬었다. 고개를 들어보자 일공의 동그란 눈동자가 그룰 바라보고 있었다.
죽는다.
필히 죽을 것이다.
수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어깨위의 것이 피를 홀리며 떨어질 것이다. 고통이 느껴질 때 즈음이면 이미 그는 죽어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죽음은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일공은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파하하하하핫. 슬프지 않냐고? 당연히 슬프지 않지.”
그가 자신의 손바닥을 쫘악 하고 펼쳐 수하의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갑자기 손바닥을 왜 보여주는 것인가.
의문이 일었으나 이번에 물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지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술이 달달달 떨린다.
그런 그의 궁금증을 일공이 해소해 주었다.
“내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던 장기말 중 하나가 장기판 위에서 떨어졌다고 슬퍼할 것 같나?”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그 의미가 가진 파장은 엄청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삼공이라는 존재가 고작해서 일공의 장기말일 뿐이었다니.
일공의 설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슬프지 않네. 단언하는데 절대로 슬프지 않네. 삼공은 난신이라는 아해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에 충분한 존재였지. 그라면 충분히 일성을 죽일 수 있을 걸세.”
일성을 죽인다는 말은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적성의 우두머리를 죽인다는 의미였다. 지금 일공은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낸 것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하지. 자네는 내가 일성보다 약하기에 일성의 아래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가?”
일공이 일성보다 강하다?
말을 듣는 수하의 머릿속에서 온갖 의문이 소용돌이쳤다. 어느 하나 혼란스럽지 않은 말이 없었다.
일성올 죽인다는 말은 또 무엇이고 일공이 일성보다 강 하다고 말하는 듯한 말투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 하나 이해하기 쉬운 것이 없었다. 그런 수하를 향해 일공이 친절하게 입을 연다.
“마공에는 엄격한 상관관계가 있어 하위의 마공은 상위의 마공을 절대로 이길 수 없네. 일성의 무공은 마공 중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것이지. 나는 그의 눈빛만 봐도 오금이 떨리고 몸이 저려온다네.”
하여 일공은 일성보다 월등히 강한 무력을 가지고도 그를 죽일 수 없다.
사실 월등히 강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공의 무공은 일성의 경지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일성의 무공이 별의 힘을 받는 무공이라고는 하나 인간의 육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별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