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옥.’
운산이 코를 부여잡았다.
냄새가 너무 강했던 것이다.
냄새가 강한 것도 있었지만 동시에 역했다. 시체 썩는 냄새 역시 진동을 한다.
‘어둡군.’
계단을 좀 내려가자 한치 앞도 확인할 수 없는 어둠이 찾아온다.
빛이 전혀 닿지 않아서 그런 것이 틀림없었다.
얼마쯤 내려갔을까.
한참을 지하로 내려가자 넓은 동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롱거리는 빛이 들어왔다.
그림자가 보이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들린다.
“이번에는 제조가 성공적으로 되었군.”
“이것으로 오십 구째. 강기에도 잘리지 않는 강시가 무려 오십 구라는 말이지.”
그중 강시라는 단어가 정확하게 귀에 들렸다.
‘역시 이들은 강시를 만들고 있었구나.’
운산이 몸을 숨기며 계단에서 놈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슬쩍 눈을 돌려 내부를 확인했다.
‘헙!’
입술 사이로 헛바람이 비집고 나오려 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동공의 내부에는 오십 구나 되는 강시가 제조되어 있었고, 그 외에도 약 서른여 구의 강시가 제조되고 있었다.
이걸로 확실하다.
증거로 내놓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여기서 나가서 알려야겠다.’
운산이 슬그머니 발을 뺐다.
다시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르고 있었다. 운산의 존재를 눈치챈 이들이 있었음을…….
운산이 눈앞을 살폈다. 지하에서 올라와 다시 창고로 올라서는 순간, 눈앞에 강시당의 무사들이 나타나 운산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들의 선두에 서 있는 이는 강시당의 당주 고준이었다.
그가 비릿한 웃음을 띠며 운산을 노려보았다.
“무사들이 쓰러져 있길래 혹시나 했는데 역시 확인해 보기를 잘했군. 너는 누구길래 이곳에 들어온 것이냐?”
운산이 답 대신 침음성을 흘리며 고준을 향해 역으로 질문했다.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줄 아는가?”
그 말에 고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그럼 무사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누가 나를 벌한다는 말이지? 지금처럼 힘이 없는 정과가 나를 벌한다는 말인가?”
“으음.”
“지금은 적성의 시대야. 사마외도의 천하란 말이지. 그런데도 정의랍시고 협객이랍시고 칼 들고 설치는 것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알아?”
강시당의 당주가 검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운산이 올라온 곳에서 획 하는 소리가 나더니 두 구의 강시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죽여 버리고 싶단 말이지. 너도 마찬가지야. 어디서 온 놈 인지는 모르지만 죽여주마.”
그가 검을 휘두르며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물론 그 수하에 강시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죽여라!”
앞에서는 무사들이, 뒤에서는 강시들이 뛰어들었다.
운산이 칫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바닥에 비스듬히 눕혔다.
그의 검에서 검기가 솟구친다.
검기를 만들어내는 속도가 예전에 비해서 확연히 달라졌다.
족히 두 배는 빨라진 듯한 속도. 자운의 수련을 통해 육체를 단련함으로 해서 내공을 지탱하는 근간이 강해진 탓이었다.
혈맥이 예전보다 튼튼하고 그것을 보조하는 근육이 두터워 졌으니 그 길을 타고 흐르는 내력이 더욱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운산의 검으로 빠르게 검기가 집약되었다.
이런 창고의 옥상 정도는 충분히 베어버릴 수 있었다.
화악-
검기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강시의 공격이 운산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퍼석-
강시의 손이 운산의 바로 옆에 박혀들었다. 몸을 굴리는 것이 조금만 느렸어도 당할 뻔했다.
그 사이 검기가 지붕을 부수고 솟구쳤다. 운산이 몸을 튕겨 일어났다.
콰과과광-
허공으로 높게 비산하는 황금색 검기를 자운이 확인했다. 황금색의 특이한 검기를 보이는 무공은 황룡문의 무공밖에는 없다.
“신호가 왔군.”
자운이 황룡문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돌입하도록 한다.”
황룡문의 제자들이 돌입을 하자 전투는 곧 난전으로 변했다.
물론 자운이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투의 양상은 팽팽했다.
움직이는 두 구의 강시가 활보하고 다녔고, 강시당의 문주라는 녀석도 제법 실력이 있어 운산과 호각으로 겨루고 있었다.
운산의 검이 움직였다.
카앙-
고준의 검이 뒤로 주르륵 밀려난다.
“제법! 네놈이 요즘 이름을 날린다는 황룡문의 문주구나.”
그가 운산의 검에 새겨 진 황룡을 보더니 말했다.
“난신은 같이 오지 않았나?”
그렇다면 겁을 낼 것은 없다. 그가 이죽였다.
그가 웃자 운산 역시 마주 웃는다.
“대사형이 왜 안 왔을 거라고 생각하지?”
그의 눈이 전투의 양상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자운을 향한다.
고준의 눈이 운산의 눈을 쫓았다. 매우 젊어 보이는 사내가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황룡난신이 무림의 절대자 중 가장 젊어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들렸다.
‘저자가 난신인가. 그런데 왜 나서지 않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화끈해지는 감각과 함께 귀 언저리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운산의 검이 스친 것이다.
“다른 생각하지 말라고. 대사형이 개입 안 하는 게 너네들 한테는 좋은 거니까.”
그의 말에 고준의 미간이 깊게 패여든다.
“이, 이놈이!”
동시에 그가 입으로 작은 소리를 내었다.
새를 부르는 소리 같기도 했고 동물을 부르는 소리 같기도 했다.
휘익-
우우우우-
두 개의 소리가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온다. 그것은 강시를 부르는 소리였다.
운산이 들어갔던 창고에서 강시들이 꾸역꾸역 기어나온다.
“흐호흐. 난신이 왜 개입하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많은 수의 강시들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놈이 웃음을 홀렸다.
운산이 놈의 눈을 노려봤다.
“망할 놈.”
욕지기와 함께 운산이 검을 휘둘렀다.
쏘아 보내는 것은 황룡검탄, 기다란 황룡이 울음을 터뜨렸다.
우우우우-
동시에 그를 향해서 쏘아진다.
고준이 몸속에 있는 기운을 일깨웠다. 그의 내공은 강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시독이다.
시독을 몸속으로 넣어 내공으로 바꾼 것이다.
시독의 기운이 검을 타고 좌르륵 흘렀다.
스치기만 해도 살이 썩는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흐흐흐. 이 시독에 닿으면 넌 그 자리에서 바로 썩어버릴 것이다.”
운산이 몸 위로 기운을 덮었다.
“닿지 않으면 그만이야.”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시독의 기운이 가득 담긴 검이 움직였다.
고준이 강시당의 보법인 사인행(死人行)을 밟으며 운산을 향해 날아들었다.
죽은 강시가 움직이는 것처럼 뻣뻣한 움직임.
하지만 예비동작이 전혀 없기 때문에 쾌속하기 그지없다.
단번에 운산을 향해 날아든다.
운산이 검으로 용린벽을 세웠다.
파바바밧-
흙이 솟구치고, 시독의 검이 용린벽을 때린다.
쾅-
시독이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운산이 호흡을 멈췄다.
동시에 검을 휘둘러 반월형으로 그려내었다.
콰과과광-
땅이 깊게 패여들고, 고준이 뒤로 날아갔다.
운산이 쫓아가는 대신 검을 한 번 더 휘둘렀다.
일전에 그려낸 반월이 가로라면 이번에는 세로, 직도황룡과 함께 강기가 쏘아진다.
일곱 변화가 강기된 가미, 그것을 알지 못하는 고준이 보법을 밟아 피하려 했다.
“이 까짓 거!”
그의 몸이 우측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직도황룡의 변화에 포함되어 있었다.
일곱 개의 변화가 사방을 에워싸고 그를 묶었다.
“이, 이런!”
당황성을 터뜨렸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팔이 서걱하고 잘려 나간다.
검이 허공으로 날았다.
동시에 잘려 나간 팔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쩡그런-
두 번 다시 검을 잡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운산이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강시들과의 싸움에서 고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사상자는 없는 것이 자운이 나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운은 정확하게 황룡문의 제자가 위험할 때만 몸을 움직였다.
강시를 파괴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밀어내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서 구해주기는 하겠지만 강시를 이겨내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할 일이었다.
‘역시. 대사형은 우리를 훈련시킬 생각이었군.’
자운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운산이 피식 웃었다.
운산이 다가오자 고준이 잘려 나간 자신의 어깨를 움켜쥐며 소리쳤다.
“다, 다가오지 마!”
운산이 검을 들었다.
“누가 벌을 내리느냐고? 정파는 힘이 없어서 벌을 못 내린다고?”
운산이 그가 했던 말을 상기하며 묻는다. 하지만 고준은 이미 죽음의 영역에 발을 걸치며 제정신이 아니었다.
운산의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 오지 말란 말이다!”
그가 하나 남은 손으로 시독을 마구 뿌려대며 외쳤다.
운산이 용린벽을 펼쳐 날아오는 시독을 모두 막아내었다.
그리고 검을 휘둘러 하나 남은 그의 팔을 잘라 버렸다.
서걱-
피와 함께 주인을 잃은 팔이 높게 치솟았다.
“정파가 심판 안 해. 심판은…….”
푸욱-
그의 검이 고준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단전에 뭉쳐 있던 고준의 독기가 땅으로 토해져 스며든다.
주변의 풀이 모두 죽어버리고, 운산이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 채로 고준에게서 멀어졌다.
“내가 한다.”
제12장 장애로 만들어주마.
고준이 죽고 나자 문제가 되는 것은 오십 구나 되는 강시떼였다.
주인을 잃은 강시들이 이리저리 폭주하며 날뛰었다.
이들이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민초들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막아야 한다.
황룡문의 제자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만돌이 강시를 때렸다.
까앙-
검이 그대로 튕겨 나온다.
일전에는 일류에 오르지 못했지만 황룡문에 들어오고 전장을 경험하며 일류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 고수가 되었는데, 자신의 검이 강시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으으으.”
만돌이 검을 다시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