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21화 (121/175)

# 121

이공이 가볍게 뿌려내는 공격에도 신승은 위태로웠다.

‘이런 이가 사마외도에 있다니.’

무림의 앞날이 걱정된다. 최소한 이 자리에서 나의 목숨을 바쳐 이자의 목숨을 끊어 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무림의 앞날에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다.

'부처님, 이 부족한 이의 목숨으로 무림의 앞날에 한줄기 희망이 비치게 해주시읍소서. 아미타불.’

속으로 결심을 다지며 두 손을 뻗는다.

미륵삼천해(彌勒三天解).

소림에서 자랑하는 금나수법 중의 하나인 미륵삼천해가 펼쳐졌다.

신승은 미륵삼천해의 수법에 탄지신통을 녹여내었다.

손가락으로 뿌리는 지법이 미륵삼천해의 수법을 타고 흐른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변할 때마다 탄지신통의 기운이 손에서 쏘아졌다.

쾅쾅쾅쾅쾅-

붕괴되는 공간에 탄지신통이 작열한다.

그러자 멸공지력이 다가오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자신의 공격이 막힌 것을 알면서도 이공이 비릿하게 웃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막을 수 있을까.”

지금 하는 것은 그야말로 제 살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탄지신통이 내력을 적게 소비하는 무공이 아님이 분명한데 마구잡이로 쏘아내고 있는 것이다.

신승이 답을 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대부분의 이들이 대피를 했다.

지금 상황이라면, 멸공지력을 정면에서 상대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가 탄지신통을 쏘아내는 것을 그만두고 나한보를 펼쳤다.

휘익-

쾅- 퍼퍼퍼펑-

그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로 멸공지력이 지나가며 모든 것이 무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뒤집어진 땅이 속살을 보이며 깊게 패여 있다.

신승이 나한보와 함께 소림오권을 펼쳤다.

다섯 마리의 동물을 흉내 낸 소림오권이 펼쳐지는 순서대로 이공을 향해 날아든다.

쌍룡도미(雙龍掉尾).

백호추산(白虎推山).

금표직권(金豹直拳).

팔괘사형(八卦蛇形).

백학량시(白鶴亮翅).

소림오권은 순서대로 정력기골신을 단련하는 무공이다.

쌍룡도미는 용권연신, 백호추산은 호권연골, 금표직권은 표권연력, 팔괘사형은 사권연기, 백학량시는 학권연정!

다섯 가지가 단련된 무공이 남김없이 이공과 충돌했다.

쿠웅-

이공의 옴이 앞뒤로 크게 흔들린다.

자욱한 모래가 일어나고, 이공이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크으. 제법이군.”

소림오권이 간단하지만 왜 무림에 이름 높은지 알 수 있었다.

기골연정신의 단련이 하나가 된 무공에 당하자 한순간이 나마 몸이 흔들렸다.

“허억, 허억, 허억. 아미타불.”

그러나 오히려 만신창이인 쪽은 신승이었다.

이공이 소림오권에 당하는 순간 폭발시킨 멸공지력에 휘말린 것이다.

그의 한쪽 팔은 짐승에게 물려 뜯겨 나간 것처럼 흉측하게 잡아 뽑혀 있었다.

두 다리 역시 멀쩡하지 않았다.

멸공지력의 권역에서 몸을 빼며 두 다리를 버린 탓이다.

흉측하게 앞뒤로 뒤틀려 있는 다리, 이래서는 무공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

‘이대로 정파는 끝이 나는 것인가.’

신승이 생각한 정파의 미래가 암울했다.

그가 나지막이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그럴 수는 없다.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신승이 온 힘을 다해 단전 속의 기운을 모았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공이 히죽 하고 웃으며 신승을 향해 다가왔다.

“제법이었지만 아쉽게도 그게 끝인 것 같군.”

신승의 목을 움켜진 이공이 그대로 끌어 올린다.

신승의 노구가 너무도 쉽게 이공의 손에 딸려 올라왔다.

“마지막은 편하게 보내주지.”

그의 목을 움켜쥔 이공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뿌득하고 신승의 목이 꺾이는 순간, 신승의 주먹이 번개처럼 내질러졌다.

마지막으로 펼쳐 내는 호신유성권(護身流星拳)!

사력을 다한 무공이 그대로 이공에게로 작열한다.

콰앙-

목이 부서진 신승의 몸이 훨훨 날았다.

긴 포물선을 그리더니 모래 바닥을 형편없이 뒹굴었다.

모래먼지 속에서 이공이 몸을 일으켰다.

“중놈 같지 않게 끝까지 송곳니를 품었단 말이지.”

그가 호신유성권이 작열한 심장어리를 만지며 말했다.

선명한 권인이 남아 있다.

내력을 조금만 더 모으게 해뒀어도, 마지막에 자신이 어깨를 틀지만 않았어도 호신유성권의 힘은 그의 심장을 부쉈을 것이다.

그가 선명한 권인을 어루만지며 히죽하고 웃었다.

“주인께서 무림을 재미있어 하는 이유가 있었군. 흐흐흐흐흐흐흐.”

웃음이 터지는 그의 발치 아래, 목이 부러진 신승이 형편없이 뒹굴고 있었다.

무림을 대표하던 절대고수 중 한 명이 그렇게 또 죽음을 맞이하였다.

* * *

강시당은 사천에서도 남쪽인 서창(西昌)에 위치하고 있었다.

자운 일행은 다른 이들이 시간을 벌어주고 시선을 끌어준 틈을 타서 무사히 서창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자운이 강시당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사실 자운이 이 임무를 한 것은 그가 전면에 나서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실전 훈련을 시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간 갈고닦은 것이 허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는 동시에 무상부의 실적을 만들려는 셈이었다.

그러니 자운은 스스로가 전면에 나설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가 가볍게 목을 쓰다듬었다.

단숨에 강시당을 전멸시킬 수 있었지만, 그 전에 먼저 증거를 확보하고 정보의 내용을 확실히 하는 것이 우선이다.

자운이 우천과 운산을 바라보았다.

“너네 둘 중에 한 명이 들어가서 증거를 찾아야겠는데, 누가 할래?”

자운이 운산과 우천을 번갈아 바라보자 운산이 손을 들었다.

“제가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위험할지도 몰라.”

운산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는 무인이 아닙니까.”

항상 생과사의 경계점에 있는 것이 무인이다. 위험하면 어떻고 위험하지 않으면 또 어떻다는 말인가.

운산의 말에 자운이 씨익 하고 웃었다.

“짜식. 제법 무인다운 말을 하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러고 보면 기골이 괜찮기는 했다. 자신을 적인 줄 알고 소리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는 철모르는 애송이의 모습이 강했다면 지금은 노련한 무인과 같다.

자운이 운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들어가 보도록 해. 정보를 잡으면 신호를 보내라. 그럼 우리가 돌입하도록 하겠다.”

운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둠 속으로 녹아내렸다.

그의 신형이 훌쩍 강시당의 담을 넘었다.

후다닥-

강시당의 담을 넘은 운산이 주변을 살폈다. 먼저 지나가는 이가 있는지 확인을 하는 것이다.

마침 감시의 교대 시간이었는지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온다.

운산이 모퉁이에 모습을 숨겼다, 그리고는 그림자로 어림짐작을 하며 놈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온다.’

아니나 다를까.

운산의 짐작대로 일반 무사로 보이는 이들이 모퉁이를 돌아 운산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

운산을 확인한 그들이 소리를 치려는 순간, 운산의 손이 번개같이 출수되었다.

콱콱-

그대로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무사 둘, 운산이 둘을 한쪽 구석으로 옮겨 둔 후에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겨 움직였다.

‘강시를 대놓고 제조하지는 않을 거야.’

아무리 적성이 득세한 무림이라고는 하지만 강시는 대놓고 제조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철저한 곳에 숨겨두고 있을 것이다.

‘숨겨 뒀다면 어느 쪽일까.’

찬찬히 강시당의 건물들을 살폈다. 대부분 지상에 있는 건물, 무언가를 숨겨가며 만들기 에는 조금 부적합하다.

‘응? 지상?’

지상이 안 된다면 지하에서 만들면 그만이 아닌가.

운산이 미간을 찌푸리며 기감을 넓게 펼쳤다. 지하에 있는 건물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그의 기감이 강시당의 끝에 달했을 무렵, 지하에 있는 꽤나 넓은 공간이 잡힌다!

‘저곳이다!’

운산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곳에서 강시가 제조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적당히 넓은 공간, 여러 구의 시체를 놓기에도 안성맞춤이 아닌가.

추측되는 장소를 찾아낸 그가 몸을 움직였다.

발견한 장소는 아무래도 쌀을 보관하는 곳간인 듯했다.

하지만 평범한 곳간을 다섯이나 되는 무사가 지키고 있을 리가 없다. 저 곳간 아래에 있는 공간이 강시를 제조하는 곳이라는 확신이 섰다.

‘시체 위에 있던 쌀로 밥을 해먹는 녀석들이라니.’

비위가 상했다.

그 사실을 일반무사들이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속이 역겨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비위 상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저 아래로 내려가서 지하가 무엇에 쓰는 곳인지를 알아내어야 했다.

운산이 몸을 움직였다.

최대한 빠르게, 소리없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무사들을 쓰러뜨린다.

“어엇!”

운산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무사 하나가 소리를 치려했다.

하지만 운산의 움직임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퍼벅-

그의 주먹이 무사의 안면에 틀어박히고, 이빨 몇 개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무사의 목이 뻑 하고 돌아가며 부러진다.

이렇다 할 틈도 없이 동료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이들이 운산을 바라보았다.

당황해서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잊어버린 것이다.

운산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번개처럼 휘두른다.

파바바밧-

그대로 허공을 가르는 검, 동시에 피분수가 뿜어졌다.

푸아악-

허공으로 피가 솟구치고, 운산이 곳간 안을 향해 몸을 날린다.

수많은 쌀이 그득그득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곳간이기는 했다.

아래쪽에 있는 공간만 제외하면 말이다.

운산이 천천히 곳간을 살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곳을 찾기 위함이었다.

약 일각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쌀포대를 치우는 것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람 하나가 드나들 정도의 구멍, 그 아래로는 꽤나 넓은 공간이 이어졌으며 사람이 내려갈 수 있도록 계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운산이 계단의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의 매캐한 냄새와 함께 기이한 약초 끓는 냄새가 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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