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또한 절대고수를 압도하는 기운이라니, 그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대는 적성의 인물이요?”
“믿지 못하는가 보군.”
솔직히 말하면 괴걸왕은 두려웠다. 이런 이가 적성의 인물 이라니.
또한 저자는 삼봉공 중 이공이라 했다.
그 말대로라면, 저런 이가 앞으로 둘이나 더 있는 것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보여주지.”
그가 한껏 숨을 들이쉬었다.
거인이 태산을 빨아들이듯 호흡을 들이쉬고, 호흡을 타고 단전에서 마기가 뻗어나간다.
휘류류류류-
그의 양팔을 휘감는 와선류, 그 속에는 붕산(崩山)하고 파천(破天)할 만한 힘이 담겨 있었다.
그가 주먹을 내지름과 동시에 한줄기의 굵은 흑선이 전장을 꿰뚫었다.
콰앙-
바다가 두 쪽으로 쩌억 하고 갈라지는 것처럼, 무림맹 진형이 쩍하고 갈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시체와 피가 강을 이루고 흘러내렸다.
단 일 수에 벌어진 참상, 괴걸왕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이놈!”
그의 몸이 펄쩍 날아오른다.
동시에 괴장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개방의 신물이라 할 수 있는 용두괴장이 시퍼런 뇌전을 뿜었다.
자운의 친우였던 공우가 남긴 무공, 그것은 무공에 뇌전을 담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파지지직-
용두괴장이 뇌전에 휩싸이고 푸른 빛살이 뿜어진다.
그대로 이공의 팔을 때리는 뇌전 하지만 이공 아직 하나의 흑색 와류가 남아 있었다.
“제법이군.”
이공이 감탄하며 와류를 쏘아 보냈다.
콰르르르르르-
천지가 뒤흔들리며 괴걸왕의 몸이 뒤로 날았다. 촌각의 차이로 생사(生死)가 갈릴 뻔했다.
이공이 괴걸왕을 보며 말했다.
“이백 년 전의 나 정도는 되는 것 같군. 하지만 아직 부족해.”
이공을 상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이공이 다시 두 손을 뻗었다.
콰르르릉-
공간이 어둠으로 물들어가며 그의 두 손으로 딸려 들어왔다.
와선류가 주먹을 휘감고 회오리치기 시작한다.
쿠구구구구-
이공이 좌수를 내질렀다.
통째로 일그러진 공간이 그대로 먹에 물들어가듯 부서져 내렸다.
쾅쾅쾅-
괴걸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주선이 그대로 술독에서 손으로 술을 퍼 먹색으로 부서 진 공간을 향해 뿌렸다.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내력을 가득 담은 술이 날아들었다.
촤라라락-
술이 단번에 뭉치며 으깨진 공간과 충돌했다.
펑-
검은 공간이 한순간 흔들렸지만 전혀 붕괴되지 않는다.
이공이 주선을 향해 씨익 하고 웃으며 말했다.
“흐흐. 그 정도로는 나의 멸공지력을 막을 수 없다.”
주선이 욕지기를 뱉었다.
“빌어먹올.”
그리고는 술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한다. 거한 취기가 돌고, 온몸에서 주향이 확 하고 뿜어졌다.
동시에 주향이 손끝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주향과 바람이 뭉치고 거대한 륜이 이루어졌을 때, 주선이 곰방대를 입에 물고 연초 향기를 후욱 하고 들이켰다.
순간 륜이 이공의 멸공지력을 향해 쏘아진다.
콰아아아아-
소림의 신승 역시 백보신권을 멸공지력을 향해 쏘았다.
공간을 통째로 붕괴시키던 멸공지력과 주선의 주향, 신승의 백보신권이 충돌한다.
쾅-
지축이 한차례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대기가 금이라도 간 것처럼 쩌저적 하고 갈라진다.
공간에 금이 가는 것이었다.
또한 바닥 역시 거미줄 같은 문양이 생기며 갈라졌다.
멸공지력과 주향, 백보신권의 치열한 힘겨루기, 그 사이를 뇌력이 가미된 강룡장이 날아든다.
괴걸왕이 뿌린 장법이었다.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세 개의 힘에 하나의 힘이 더 해졌다.
그러자 그 균형이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이공의 멸공지력이 그대로 소멸됐다.
쾅-
자신의 멸공지력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이공이 씨익 하며 웃는다.
그로서는 가볍게 주먹을 뻗었을 뿐이다. 고작 그 정도의 권력 하나가 사라졌다고 놀랄 이유는 없었다.
“제법이군. 하지만 언제까지 나의 멸공지력을 막을 수 있을까?!”
웃으며 그가 두 손을 흔든다.
쾅-
양쪽으로 쏘아지는 멸공지력, 정파의 인원들이 쫘악 하고 갈라졌다.
동시에 피가 사방으로 쏟아진다.
“으아아악!”
“크아아악!”
“으어어어억”
단번에 죽은 이들은 그나마 행복한 것이었다.
공간에 통째로 신체의 일부분을 잡아뜯긴 이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팔다리가 하나씩 없는 이들이 바닥을 기었다.
“이놈이…….”
괴걸왕이 용두괴장을 들었다. 간단하게 만들어낸 참상 치고는 너무 섬뜩했던 탓이다.
당장에 놈을 막지 않는다면, 분명 정파 측에 엄청난 피해가 올 것이 분명했다.
주선 역시 입에 술을 머금으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런 주선과 괴걸왕을 말린 것이 바로 신승이었다.
신승이 합장을 하며 앞으로 나선다.
“아미타불. 소승이 이 자리에 서 있을 테니 거지 시주와 술꾼 시주께서는 빨리 사람들을 데리고 대피하십시오.”
그의 말에 놀란 괴걸왕이 소리친다.
“이 땡중아! 네놈은 부처님을 만나러 가려는 것이냐!”
절대고수 삼 인이 합격을 한다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이가 바로 눈앞에 있는 이공이었다.
그런 이공을 신승 혼자서 막겠다니, 자살을 하러 가는 길이 아닌가.
괴걸왕의 말에 신승이 조용히 합장을 했다.
“부처님께서 나 한 사람의 목숨을 받아 다른 이들의 목숨을 거두지 않는다면 정말로 감사하겠지요.”
그가 씨익 하고 웃었다.
주선이 술을 한 다발 퍼서 그에게 내민다.
“땡중. 세상 가는 길 마지막인데 술이나 한잔해.”
본래 절에서는 술을 엄격히 금한다. 하지만 신승은 주선이 주는 술을 두 손으로 받았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불호를 외며 술을 천천히 들이켰다.
빈 그릇을 주선에게 돌려주는 신승, 그가 온화하게 웃어 보인다.
“아미타불.”
그가 다시 돌아서 이공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서 확고한 결심을 느낀 괴걸왕과 주선 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하도록 하겠네.”
괴걸왕이 소리를 치며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주선 역시 누렁이의 둥에 올라타더니 그 자리에서 곧 벗어난다.
이공이 자신의 앞을 막아선 신승을 바라보았다.
“자네 혼자라면 백의 백은 죽을 텐데.”
“얼마나 버티는지가 관건이겠지요. 아미타불.”
이공이 웃었다.
신승이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그럼 버텨보게.”
그가 양손으로 공간을 우그러뜨렸다.
쾅-
흑색 선이 쏘아지고, 신승이 그 선을 향해 백보신권을 뻗었다.
퍼엉-
하지만 단 한 발의 백보신권으로는 흑선을 막을 수 없다.
연달아 쏘아지는 세 발의 백보신권!
펑펑펑-
흑선이 휘청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건재하게 신승을 향해 날아든다.
아군이 모두 후퇴하지 못했다. 여기서 신승이 흑선을 피해 버린다면 엄청난 피해가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아미타불.’
속으로 외운 불호와 함께 그의 몸에서 금강부동의 구결이 운용된다.
몸 전체가 은은한 불광에 휩싸이고, 그의 몸은 금강불괴의 경지에 오른 것 마냥 단단하게 변했다.
쾅-
불광에 휩싸인 그의 몸과 흑선이 그대로 충돌했다.
신승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밀려날망정 부서져 내리지는 않는다. 자신의 흑선을 막은 모습에 이공이 눈에서 이채를 발했다.
“과연. 한 수 재간은 있다는 말이군.”
신승의 입을 타고 주르륵 피가 흘러내린다.
단 한순간에 이 시대의 절대고수에게 내상을 입혔다.
이공의 무력은 어쩌면 하늘에 닿아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이번에는 그쪽에서 오게.”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가 등에 메고 있는 거대한 철봉을 내려놓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소림의 권법은 백보신권과 마찬가지로 기격을 중시한다.
정교하면서도 일면 단조로워 보이기는 하나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변화무쌍하기 그지없다.
‘일기가성’ 이라 하여 우렁찬 고함 소리를 동반하는 소림의 권은 가히 무림일절로 불릴 만했다.
파앗-
“합!”
뻗어내는 것은 단순한 금강권!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무리는 평범한 금강권이 아니었다.
금강권이 뻗어 나감과 동시에 나한보가 펼쳐진다.
신승의 몸이 금강권과 동시에 바닥을 박차는 듯 유려하게 움직였다.
스스스스스-
“금강권은 눈속임인가.”
이공이 금강권이 날아오는 공간을 그대로 움켜쥐고 비틀었다.
쾅-
공간이 비틀리자 경로가 바뀐 금강권이 허공에서 폭발한다.
그 사이를 노려 움직인 신승은 이미 이공의 지척에 도착해 있었다.
“제법이군.”
“아미타불.”
지근거리까지 다가간 신승이 이공의 몸에 도장을 찍는 듯 손을 올려놓는다.
쾅-
이공의 몸이 휘청하며 뒤로 날았다.
신승이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기합을 넣으며 동시에 백보신권을 쏘아 보냈다.
“허업!”
쾅-
주먹에서 새하얀 권강이 뿜어진다. 백보 앞의 사물이라 할지라도 격할 수 있다는 백보신권이 뒤로 밀려나는 이공의 몸을 쫓았다.
이공이 날아가던 도중에 다리를 바닥에 뿌리박았다.
쾅-
한순간 흔들리기는 했으나 그의 몸이 더 이상 날아가지 않는다.
그 상태로 다가오는 백보신권을 향해 마주 주먹을 뻗었다.
두 손에 담긴 힘을 멸공지력 !
쾅-
공간이 통째로 부서져 내리며 백보신권을 파괴했다.
“보리옥룡인(菩提玉龍印)인가 과연 소림이군.”
이공이 자신의 몸에 남은 손바닥 모양의 선명한 장인을 보며 말했다.
“무너졌다 하더니 제법 날카로운 이를 숨기고 있지 않은가?”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에 신승이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그 또한 부처님 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이공이 땅에 못 박았던 두 다리를 뺐다.
“이보게, 중. 난 지금 선문답을 하려는 것이 아니네.”
콰앙-
그의 두 손에 잡힌 공간이 부서져 내리며 신승을 향해 질주했다.
“그저 즐기려는 것이지.”
이공과는 다르게 신승은 그야말로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