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18화 (118/175)

# 118

바람이 불어왔다.

태원삼객의 첫째인 적상지의 몸이 흔들렸다.

“으옥.”

그가 신음을 흘렸다.

지금 그들이 매달려 있는 곳은 이 층과 삼 충의 사이. 이런 높이에서 내력을 사용하지 않고 떨어지면 크게 다친다.

어디 한 군데가 부러지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온몸을 타고 아찔한 감각이 전해 졌다.

‘그럴 수는 없지.’

딴생각을 하면 죽을 것이다.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것은 최대한 안전하게 벽을 타는 것. 적상지가 부들거리는 두 팔을 움직여 다른 곳을 움켜쥐었다.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곳을 잡아야 한다.

그곳을 찾기 위해 적상지를 비롯한 황룡문의 모든 제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집중하고 있었다.

삼 충의 꼭대기에서 , 황룡문의 제자들이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던 남궁인이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허허허허.”

‘도무지 무상은 이해할 수가 없군.’

마지막 훈련은 가장 훈련다운 훈련이었다. 절대고수의 기세를 참아내는 훈련이라니, 이 얼마나 훈련다운 훈련인가?

사실 별로 훈련스럽지 않았지만 앞의 두 훈련이 너무 개같아서 이번 것이 훈련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자, 그럼 오늘도 잘해보라고.”

동시에 자운의 몸에서 화악 하고 기운이 뿜어졌다. 천하에 이름 높은 절대고수의 기운.

처음에 이 훈련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절반 이상이 시작 하는 동시에 픽픽 쓰러졌다.

자운은 그때마다 쓰러진 이들을 일일이 깨워 기세를 견뎌 내게 했다.

쓰러지는 것마저 마음 편히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삼 일째 정도가 되자 그들에게도 독기가 생겼다.

매번 쓰러지기만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 번 정 도는 자운의 기세를 견뎌보고 싶었다.

그들의 눈에 독기가 어리고, 업에서 거품을 물면서까지 기절을 하지 않는다.

자운이 미소를 지었다.

‘제법이군.’

확실히 처음에 비해서 늘었다. 기운에 대처하는 자세부터가 다르다.

차옴에는 무조건 자운의 기세를 정면에서 막아내려 했는데, 이제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기세를 홀려내고 있지 않은가.

그 모습이 마옴에 든 자운이 기세를 더욱 강하게 키웠다.

화아아아악-

일전보다 훨씬 강력한 기운이 그들을 향해 뿜어지고, 입에서 거품을 물던 이들이 그 자리에서 픽픽 쓰러졌다.

“야. 일어나. 벌써 쓰러지면 재미없지.”

자운이 일일이 그들을 찾아가 깨우고 일으켜 세웠다.

일어난 이들은 자운에 대해서는 한결같은 생각을 가지는 수밖에 없었다.

‘악마.’

‘악마다. 호법은 악마야.’

‘황룡문이 아니라 악룡문이었구나.’

물론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괴걸왕은 자운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그냥 미친 줄 알았더니 이주 악독하게 미쳤구나.’

제자들의 훈련을 모두 마친 자운의 다음 일정은 취록과 만나는 것이었다. 무상부의 정보를 관리하는 일을 취록이 하고 있는 만큼 정보의 전달을 받기 위해서는 그녀와의 접촉이 필 수였던 것이다.

“그래. 뭐 좀 재미있는 정보가 들어온 것 있어?”

자운이 손끝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툭툭툭-

지단목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자운의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서 둥둥하고 잘게 떨렸다.

취록이 그것을 잠시 바라보더니 손에 들고 왔던 서류철을 자운의 앞에 내려놓았다.

“오늘 들어온 정보 중에 골라낸 정보예요. 비선망을 통해서 간신히 들어온 정보는 특급으로 분류해 두었어요. 아직은 문상부에서 입수하지 못한 정보도 있을 거예요.”

자운이 취록이 내려놓은 정보 뭉치를 받아 들었다.

대부분 적성의 활동에 관련된 것이었다. 사실 적성이라고 할 만한 이들이 남았나 싶다.

“이제 일성만 죽이면 되는 일 아닌가?”

자운의 말에 취록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칠적이 모두 죽었으니, 일성만 죽이면 되겠지요.”

그들은 아직 삼봉공에 대한 정보를 전혀 입수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삼봉공 중에서 무림으로 나온 이는 단 하나, 자운을 찾기 위해 나선 삼공이 전부였으니 무림에 알려질 리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자운과 취록이니 일성만 처리해 버리면 되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한참을 자료를 넘기던 자운의 눈동자가 딱 하고 멈추었다.

그의 눈이 반짝하고 빛이 난다.

취록이 자운이 보고 있는 자료를 흘깃하고 확인해 보니 특급의 자료다.

조금 더 자세히 보니 그녀 역시 꽤 신중하게 읽었던 자료였다.

“흥미가 생겨요?”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흥미가 안 생긴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겠지?”

취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무림 전역에 있는 고수들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였다.

은밀하게 약 백 명 정도 되는 고수가 실종되었다.

고작 백 명, 구주무림에서 고작 백 명이 사라졌다.

아마도 대부분의 정보단체는 그마저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취록이 움직이는 비선도 아주 우연한 기회에 무언가를 포착하고 추적한 결과 알게 된 정보였다.

“이 많은 고수가 사라졌다는 거지. 그래서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내었어?”

취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운의 손에 들려 있는 자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예. 뒤에 있어요.”

자운이 미간을 찌푸리며 문서를 넘겼다.

“뒤에?”

정말로 뒤에 관련 내용이 더 있었다.

“아, 있군.”

자운의 눈이 다시 자료의 글들을 읽어내려 간다. 그리고는 그가 탁하고 자료를 때렸다.

“이 많은 고수가 한 곳으로 집결되었는데, 그 장소가 바로 강시당이라는 말이지?”

강시당은 사천의 아래쪽에 위치한 사파다.

본래는 그 규모가 그리 크지 많고 강시라고 해도 동물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강시가 전부였던지라 정파에 의해서 토벌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금의 사파는 정파의 영역이 아니라 적성의 영역이 되었다.

사라진 고수들이 그곳을 향한다?

당연히 무언가 냄새가 났다.

자운이 자료를 이리저리 곱씹었다.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겠군.”

그들은 강시를 만들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강시라니, 무림에서 금지된 술법이 바로 강시가 아닌가.

잘 만들어진 강시는 강기에도 쉽게 상하지 않으며 상대하기 또한 까다롭다.

또한 이미 죽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조종자의 명령에 따라서는 죽기를 불사하고 덤비는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까놓고 쉬운 말로 말한다면, 고수 하나 상대하는 것보다 강시 한 구 상대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 강시가 무려 백 구 이상이 제조되고 있다는 소리였다 자운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서류를 내려놓았다.

“애들 모아봐. 우리 무상부도 놀고만 있을 수는 없지. 한 건 해야 하지 않겠어?”

할 일을 결정한 직후 자운은 바로 무림맹주 남궁인을 만나러 갔다.

아무리 무상부가 맹주의 명을 제외한 다른 누구의 명도 받지 않는 독자적인 조직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큰일을 하는데 무림명주의 제가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다.

자운이 무림맹주의 방을 찾자 남궁인이 갑작스러운 그의 방문에 눈을 크게 치켜떴다.

“무상이 이곳에는 웬일입니까?”

그 말에 자운이 탁 하고 취록에게서 받은 자료를 내려놓았다.

“할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그의 말에 남궁인이 서류를 받아 들어 천천히 살피기 시작한다.

그가 남궁인에게 내려놓은 서류, 그것은 강시당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게 사실입니까?”

문상부나 무림맹의 정보망에도 걸리지 않았던 이야기다. 그런 자료를 자운이 제시하니 그로서도 쉽게 믿기 힘들었다.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은 그 내용이었다.

지금 당장 사천 땅이 무림맹의 구역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같은 사람으로서 이런 천인공노할 일을 벌이고 있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남궁인의 말에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독자적인 정보망이 있습니다. 거길 통해서 알아본 것이니 아마 확실할 겁니다. 아마 오래지 않아 무림맹의 정보망에도 들어오겠지만, 그건 너무 늦었을 때이겠지요.”

이 사실이 천하에 알려지게 되면, 비록 지금 사천이 정파의 영역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막지 못한 무림맹은 천하인의 질타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무림맹의 정보망에 이 소식이 전해질 무렵이라면 천하에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자운의 말대로 그때는 너무 늦었다.

남궁인이 자운을 바라보았다.

자운이 이 서류를 가지고 왔을 때에는 무언가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남궁인이 알고 싶은 것은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습니까?”

그의 말에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상부에서 움직일 생각입니다. 재가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무상부가 말입니까?”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무상부가 움직이지요. 그 사이 다른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들은 다른 현장으로 투입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른 현장이라면?”

“전장 말입니다. 칠적으로 대표되는 절대고수들은 모조리 제가 죽였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처죽였지요.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적성 측에는 절대고수를 막을 전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자운의 말에 남궁인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것은 그랬다.

“음. 확실히 그렇군요. 그렇게 된다면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승기를 채어 오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시선을 끄는 동안, 저는 무상부를 이끌고 강시당을 치겠습니다.”

승기를 이쪽으로 당겨올 뿐만이 아니라 강시당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강시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자운은 절대의 고수, 절대의 고수를 강시로 막을 수는 없다.

자운이 씨익 하고 웃었고, 남궁인 역시 허허 웃었다.

“과연. 좋은 책략입니다.”

“제가 한 머리 합니다.”

자운도 웃었고, 남궁인도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