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주선과 함께 술을 마시러 오기는 했는데 조금 늦게 도착한 괴걸왕이 아래쪽에서 뜨헐 하는 표정으로 자운과 주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래쪽에 비어버린 술병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건 아무리 괴걸왕이라고 할지라도 말릴 수 없다.
주선에게 있어서 술은 보물이었다.
그런 걸 말도 없이 한 독이나 마셔 버렸으니, 자운이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주선에게 최소한 세 대는 맞아줘 야 할 것이 분명했다.
“이거나 먹어라! 푸웁!”
주선이 그대로 입에서 술을 뿌렸다.
화살 같은 술이 자운을 향해 단번에 날아든다.
몇 개는 그대로 황룡검탄을 꿰뚫었다.
술의 화살에 맞은 황룡검탄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주선의 무학은 검기나 검강으로 대변되는 일반적인 무학과는 분명히 다르다.
술을 이용해 펼치는 무학이라니!
자운이 두 다리 가득히 내력을 모았다.
그리고 주전을 발로 밟았다.
파앗-
허공으로 솟구치는 자운의 몸, 하지만 주선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허공으로 쏘아내는 술줄기!
자운이 대뜸 욕을 했다.
“씨앙!”
자신의 얼굴을 향해 근접한 술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가 허리를 비틀었다.
부웅 하고 허리가 돌았다.
주전이 아슬아슬하게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다.
“잘생긴 얼굴에 흠 잡힐 뻔했네!”
자운이 버럭 하고 소리치며 염룡교를 펼쳤다.
극성에 이른 염룡교가 펼쳐지자 자운의 손에서 화룡이 뿜어진다.
콰우우-
화끈한 바람이 주성의 얼굴을 향해 불어 닥쳤다.
“지랄! 내가 만든 술을 처먹었으면 그 정도 대가는 치를 생각을 해야지!”
주선이 소리치며 곰방대를 움직였다.
곰방대에서 갑자기 불이 화악 하고 일어나더니 염룡교를 그대로 끌어당긴다.
두 불의 충돌!
쾅-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다.
괴걸왕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뿌헐헐. 아뜨뜨뜨뜨거!”
그대로 있다가는 몸이 익어버릴 판이었던 것이다.
자운의 몸이 허공에서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이놈아. 왜 내 술을 한 독이나 마신 거냐?”
주선이 자운을 향해 버럭 하고 소리친다.
그 소리에도 내력이 담겨 있는 것이 정말 적당히는 끝나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개코로도 신경 쓰지 않는 자운이 당당하게 소리쳤다.
“맛있으니까!”
괴걸왕이 속으로 자운을 미친놈이라 욕했다.
‘미친놈이야. 홀홀홀. 저건 정말 미친놈이야.’
그리고는 주선의 반응을 살폈다.
아마도 화가 나서 씩씩거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선의 행동은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
지금까지 주선이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었다. 여염집 규수 같이 얼굴을 붉히며 자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 정말로 술이 맛있었어?”
자운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술맛 죽여주던데!”
“그, 그렇지?”
동의를 구하듯 주선이 다시 물었다.
“그럼!”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 십대 명주라고 해도 주선이 만든 술을 따라가지는 못할 것이 분명했다.
주선의 몸을 휘감고 있던 전투적인 기세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괴걸왕이 멍한 표정으로 지금의 상황을 살폈다.
‘얼레,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래?’
술을 칭찬하니 태도가 바로 바뀐다. 거기다 선머슴 같기로 유명했던 주선이 저런 여염집 규수 같은 느낌을 보이다니!
거기다 자운과 주저앉아서 술판까지 벌인다!!
“이 술도 맛있지 않아?”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이건 이거대로 좋은데? 최고다!”
“그렇지? 이것도 먹어봐!”
한참 술을 마시던 주선과 자운이 구석에 있는 괴걸왕을 발견했다.
그들이 각자 손을 까딱까딱한다.
“이리 와서 너도 마셔!”
주선이 괴걸왕을 불렀다. 괴걸왕은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술판에 참여했다.
그리고 말도 되지 않는 상황으로 치달았던 사태가 술판으로 끝을 맺었다.
자운이 술을 마시던 와중에 그녀 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굉장히 젊어 보이는데……?”
주선의 외모 때문에 말을 높여야 하는지 낮춰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말꼬리를 흐렸다.
주선이 웃으며 답한다.
“호호호. 이건 타고난 동…….”
괴걸왕이 술 한 잔을 쭈욱 들이킨 후에 그녀의 말을 잘라먹었다.
“헐헐헐. 주안술 덕분이… 케엑!!”
주선의 주먹에 맞은 괴걸왕이 구석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자운이 그를 보며 중얼거린다.
“병신.”
괴걸왕이 소리쳤다.
“뭐? 미친놈아?!’
물론 속으로만.
제10장 꼭 훈련을 이렇게 해야 하나?
남궁인은 약속했던 대로 황룡문의 모든 제자들을 소집해 주었다.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운산과 우천은 그 전부터 만났다고는 하지만, 다른 황룡문의 제자들을 보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그중에는 태원삼객도 있었다.
자운이 그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다들 잘 살아 있었구나.”
이렇게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혹시라도 죽었으면 지옥까지 쫓아가서 염라대왕을 집어 던져 버리고 잡아올 생각이었다.
자운이 그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들 역시 자운을 보며 마주 미소했다.
자운이 웃으며 그들의 기도를 읽어 내린다. 못 본 사이에 기도가 얼마나 변했는지 확인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휘리릭-
자운의 기세가 풀려 나오며 그들을 옭아매었다.
아직까지는 견딘다. 전장에서 살아남으며 조금은 강해진 모양이었다.
‘호오. 제법인데?’
조금 더 기세를 강하게 끌어 올렸다. 쉰 정도 되는 인원 중 둘 정도가 쓰러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정도의 기세를 견뎌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못해도 열 명 정도는 쓰러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고작 둘이라니, 자운이 웃었다.
“제법이군.”
태원삼객이 기세를 버텨내며 웃었다.
“이 정도에 쓰러지면 전장에서 지금까지 쉽게 살아남지 못 했을 겁니다.”
그 말에 자운이 웃었다.
“그래. 그럼 어디까지 버티나 해보자고.”
자운이 또 기세를 끌어 올렸다.
화악-
이전에 비해서 족히 두 배는 강해진 기세가 사방을 휩쓸었다.
그 기세가 황룡문의 제자들을 눌렀다.
그들이 이를 악물었다.
열다섯에 달하는 이들이 털썩 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입에 게거품을 물고 기절을 한 것이다.
자운이 그들에게서는 기세를 거두어들이고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태원삼객이 그나마 제일 수월하게 버려내고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여기서 기세를 한 번 정도 더 끌어 올린다면 태원삼객 정도만이 버티고 나머지는 모두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이쯤에서 그만둬야겠군.’
“생각보다 잘 버티네.”
자운이 말을 마치며 기운을 다시 단전 속으로 갈무리했다.
웅혼한 기세가 단번에 사라진다.
“만족하셨습니까?”
태원삼객의 물음에 자운이 씨익 하고 웃었다. 어딘가 사악해 보이고 골려주고 싶다는 마옴이 보이는 듯한 웃음에 그의 몸에 소름이 쫘악 하고 돋는다.
자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이 정도로는 안 되지. 너네는 무림맹 무상부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니까.”
자운이 씨익 하고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당분간 빡세게 굴러보자고.”
그 미소가 그렇게 사악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 * *
“헉. 헉. 헉.”
장석지가턱 끝에 닿은 숨을 억지로 쉬었다.
지금 몸의 내공이 모두 봉해진 상황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자운은 정말 미쳤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훈련을 시켰다.
작은 돌을 손에 들려준 후, 산을 오르며 힘껏 던지라고 했다. 그리고 던진 것을 뛰어 올라가 받으라는 것이다.
내공을 봉하고 던졌기에 돌은 십여 장 정도를 날아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이 십여 장을 내공을 봉한 몸으로 쫓아가서 잡는 것은 힘들었다.
돌이 떨어지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산을 뛰어 오르는 훈련이다. 쉬울 리가 없었다.
온몸의 근육이 끊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이, 이걸 정말로 해야 하는 겁니까?”
운산 역시 헉헉거리는 숨을 참으며 자운을 향해 물었다. 자운이 편안한 표정으로 뒤따라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해야 하지. 너네 실력이 높아질 테니까.”
자운 정도 되는 고수가 무공에 관해서 거짓을 말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그들은 이를 악물고 산을 올랐다.
온몸의 다리가 후들거린다.
땀은 이미 축축하게 옷을 적시고 있었다.
산을 오르는 것만이 끝이 아니었다. 산을 오르면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며 뛰어 내려와야 했다.
산을 뛰어 내려오는 일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오르막에 비해서 내리막이 내려오는 것이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균형은 더욱 잡기 힘들었다.
가속도가 붙어 몸이 흔들릴 뿐만이 아니라 단번에 멈추기 역시 어려운 것이다.
“어어어?”
달리던 이들 중 하나가 넘어졌다.
그 뒤를 따라오던 이들 셋 정도가 줄줄이 그 자리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조금만 방심해도 저렇게 되기 십상이었다.
내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내력을 금하자 그들은 그야말로 평범한 범인보다 조금 뛰어난 정도였다.
훈련된 범인이나 외공을 조금 익힌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그들 정도의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더 공포스러운 것은, 이것이 단순한 하루 일과의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후의 수련이었다.
'내력을 제한하고 창천궁의 벽을 타라니.’
말도 안 되는 수련이었다.
창천궁은 높이가 삼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그런데 그 벽을 내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기어오르라고 한 것이었다.
벽에서 튀어 나온 부분을 잡고 있는 두 팔이 후들후들 떨렸다.
이런 수련이 정말로 효과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순히 놀리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