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13화 (113/175)

# 113

자운은 그 점을 노려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겨 줄 생각이었다.

“으아아아. 거기 서!”

태허 진인의 말에 자운이 소리쳤다.

“너 같으면 서겠냐!”

보법을 밟는 그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고, 신법 역시 더욱 가벼워져 이내 눈으로는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다.

“서라앗!”

태허 진인이 자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육합권(六合拳)!

무림에서 굉장히 유명한 권법이지만 태허 진인의 손에서 펼쳐지는 공격인 만큼 평범하다 할 수 없었다.

아니, 일반적인 초식들과는 비교를 거부한다.

자운이 태허 진인의 지근거리에 잡혔다.

“잡았다!”

태허 진인의 주먹이 자운을 때리는 순간, 자운의 신형이 양기처럼 사라졌다.

부웅-

허공을 가르는 태허 진인의 손, 이형환위에 그대로 당한 것이다.

“어어?”

당황하는 태허 진인의 뒤에서 나타난 자운이 수도를 이용해 그대로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케엑!”

태허 진인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앞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옷이 흙으로 더럽게 변한다.

코의 한쪽에서는 피가 흐르고 나머지 한쪽에서는 콧물이 흘렀다.

“에이씨! 아프잖아! 나도 때려줄 거야!”

한 대 통쾌하게 후려갈긴 자운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어서 와봐!”

이번에도 똑같은 수법으로 후려갈겨 줄 참이라 즐겁기까지 하다!

자운의 그런 기쁜 마음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태허 진인이 그를 향해 빠르게 뛰어왔다.

이전과 같이 빠른 움직임, 자운이 그에 맞춰 뒤로 몸을 뺐다.

“이익!”

주먹을 움직이는 태허 진인!

부웅-

하지만 이번에도 그가 때린 것은 허상이었다.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자운이 그의 뒤통수에서 나타났다.

빠악-

“케엑!”

전과 같은 비명과 함께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다. 청수 진인이 그 모습을 보며 머리를 짚었다.

뻔히 보이는 수법인데, 태허 진인의 머리가 아이와 같은 탓에 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뒤통수를 문지르던 태허 진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익! 나도 때릴 거야.”

자운이 두 팔을 벌리며 환영한다는 듯이 웃었다.

“응, 때리렴!”

두 팔을 환하게 벌린 자운을 향해 그가 날아들었다. 그에 무섭게 자운이 보법을 밟고, 이번에도 허상을 때리며 허공을 가르는 태허 진인의 주먹!

태허 진인이 뒤를 돌았다.

“또 뒤통수 때리려고 그러지!”

그가 빙글 하고 돌자 정확하게 자운의 모습이 나타난다.

“헙!”

헛바람 들이켜는 소리와 함께 자운의 신형이 흔들렸다.

“이제 진짜로 잡았어!”

그가 자운을 때리려고 좌수를 움직였다.

퍼엉-

공기가 밀려날 정도로 강력한 일격, 하지만 태허 진인의 손끝에 걸리는 건 없었다.

“하긴, 원숭이도 같은 수법에는 안 속겠지!”

이형환위를 동시에 두 번이나 펼친 것, 자운이 나타난 곳은 이번에도 태허 진인의 뒤였다.

그가 살짝 수도를 뻗었다.

빠악-

“케엑!”

태허 진인이 또 앞을 굴렀다.

그날 그렇게, 태허 진인은 자운에게 서른여섯 대의 뒤통수를 맞았다.

빠악-

“케에엑!”

그날 이후로, 태허 진인은 자운에게 두 번 다시는 비무를 하자고 하지 않았다.

물론 태허 진인을 만족할 때까지 후려갈긴 자운의 얼굴에는 하루종일 웃음이 걸려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제8장 이, 이건 오해다.

“후우.”

운기조식을 막 끝낸 우천이 깊은 숨을 토해내었다.

단전 속으로 스며들었던 탁기가 호흡을 통해서 밖으로 빠져나온다.

단번에 몸이 개운해지는 감각이 들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한가함도 정말 오랜만이군.”

마옴 놓고 운기조식을 해본 것이 얼마 만이던가.

및 년을 치열한 전장 속에서 몸을 누비다 돌아와 잠시나마 예전과 같은 생활을 보내니 오히려 어색함이 느껴졌다.

검을 휘두르지 않으면 몸이 불편할 것 같은 감각을 느낀 그가 검을 움켜쥐었다.

황룡문의 대장장이라 할 수 있는 조고가 만든 검이었다.

물론 황룡신검에는 비할 바가 안 되지만 실력이 뛰어난 대장장이인 조고가 만든 검, 일반적인 검들에 비해서는 훨씬 뛰어났다.

우천이 검을 챙겨 연무장으로 나섰다.

해질녘의 연무장에는 사람이 그리 많이 없다. 대부분 훈련을 아침 중에 끝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공이라는 것에 푸욱 빠진 인물 몇이 검을 휘두르고 있기는 했다.

우천 역시 그 속에 녹아들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검을 움직였다.

물론 문파의 절초 따위라든지 그런 것을 펼친 것은 아니다. 문파의 절초는 이런 개방된 장소에서 펼치는 것이 아니었다.

흔하디흔한 움직임, 하지만 고수의 반열에 오른 우천이 펼치는 것이다.

평범할 리가 없었다.

팡팡-

공기가 뒤로 터져 나가고, 뻗었던 주먹을 회수함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반월 형태로 대기를 잘라내는 예리한 검격, 귓가에 서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중을 하자 전장의 공기가 물씬 살아난다.

피비린내가 코를 통해 풍겨오기 시작하고, 적들이 일어났다.

그가 적들 사이를 누볐다.

익숙하게 기억 속에 있는 전장, 몇 년을 봐온 전장이었다.

그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적들 역시 살아났다.

카가가각-

하지만 우천은 그때의 우천이 아니다. 적들을 이겨내고 더욱 성장했다. 검을 휘두르자 검기의 파도가 일어났다.

단번에 적들을 쓸어버린다.

촤좌좌좌좌좌-

한참을 몸을 움직이던 그가 검을 멈추었다.

연무장에 들어선 지 약 반 시진이 지난 후였다. 호흡은 흐트러져 있다.

전장 속에서는 아무리 오랜 시간 훈련을 한다고 해도 호흡이 흐트러지게 마련이었다. 훈련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전장이었다.

비록 심상으로 그려낸 전장이라고는 하지만 무섭도록 흡사했기 때문에 호흡이 흔들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우천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내었다.

“후우. 이제야 좀 몸이 익숙해지는군.”

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바로 뒤쪽에서 박수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짝짝짝-

바로 뒤까지 접근할 동안 기척을 전혀 읽어내지 못했다. 아무리 우천이 집중을 해 훈련을 하는 중이었지만, 그래도 상대의 기척을 읽지 못했다는 것은 조금 충격이었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고수.’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기척을 놓칠 것이다.

우천이 입술을 씹으며 뒤를 돌아보고는 곧 탄성을 터뜨렸다.

“아!”

상대는 한 번 정도 안면이 있는 자였던 것이다.

“그간 실력이 더 느셨더군요.”

그가 먼저 운신을 향해 알은체를 했다.

우천이 그를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해 보이고, 그 역시 우천을 향해 마주 포권을 취해 보였다.

“제갈소협이셨군요.”

그는 바로 무림의 뛰어난 후기지수로 평가받고 있는 현룡(賢龍) 제갈수였다.

일전에 화산으로 향하며 우천과 비무를 해본 적이 있는 후기지수이기도 했다.

현 후기지수 중 유일하게 우천과 안면이 있는 이라고 해도 될 것이었다.

“오랜만이군요. 우 소협.”

제갈수의 말에 우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의 비무 후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 몇 년 만에 만나는 것이다.

“그렇군요. 한데 이곳에는 무슨 일로……?”

우천의 물음에 그가 자신의 머리를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리더니 곧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또 가볍게 두드렸다.

“너무 문서만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머리가 아파서 말입니다. 바람이라도 쐴 겸 연무장으로 나왔는데 우 소협이 계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 소협은 이곳에 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갈수는 제갈세가의 사람답게 군사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비록 아직 후기지수이기는 하지만 그 머리와 재능이 비상하여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문상부로 차출된 것이었다.

“하하하. 그렇군요. 저 역시 몸이 좀 뻐근하던 차라 이렇게 나와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제갈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의 검을 움켜잡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직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일전의 비무 문제, 우천과 제갈수는 둘 다 그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긴장을 풀지 않고 있었다.

우천 역시 검을 움켜쥐었다.

“지금 해결을 보자는 말씀이시군요.”

제갈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염치없지만, 이런 기회가 또 몇 번이나 있겠습니까.”

“저도 찬성입니다. 그럼 제가 선공하도록 하지요.”

우천의 말에 제갈수가 소리쳤다.

“오십시오!”

황룡진기의 강력한 내력이 우천의 몸을 휘감고, 제갈수의 몸에서는 대천성신공의 웅혼한 기운이 휘감기었다.

둘 모두 예전과는 다르다.

당시의 비무에서 둘이 보여준 모습이 뛰어난 후기지수의 모습이었다면, 이제 들의 몸에서는 어엿한 고수의 기세가 풍겨지고 있었다.

선공은 말한 바 있듯 우천이 시작이었다.

우천의 몸에서 일어난 기세가 바닥을 헤집으며 자욱한 모래먼지를 일으켰다.

“운해황룡입니다.”

이제는 운해황통까지 펼쳐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욱한 모래먼지 속을 황룡이 노닌다.

제갈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 대신 기감을 넓게 퍼뜨려 운산의 움직임을 잡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검을 움켜쥔 자세는 항시 천지호연검을 펼쳐 낼 수 있을 듯한 자세다.

우천이 검을 움직였다.

번쩍하는 소리와 함께 자욱하던 운무가 갈라지고, 황룡문의 검법이 쏟아진다.

촤좌좌작-

그 속을 제갈수의 천지호현검이 얽혀들었다.

단번에 수번의 충돌이 이어지고, 번쩍하는 빛과 함께 우천이 뒤로 물러났다.

제갈수 역시 마찬가지.

“굉장하군요.”

제갈수가 순수한 감탄을 토했고, 우천 역시 제갈수에게 감탄했다.

“제갈 소협 역시 만만치 않군요.”

“패배는 그날이 처음이라 말입니다. 열심히 갈고 닦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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