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안휘성 태평호의 일대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잎이 가늘고 침형이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자운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차 맛이 좋다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자운이 차를 반 정도 비워내었을 무렵, 남궁인과 자운의 사이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무상(武上)을 말인가요?”
자운의 말에 남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운이 맡고 있는 자리가 무림맹의 군사 자리라고 할 수 있는 문상, 별개로 무상의 자리는 비워져 있는 상황이었다.
맹주와 후상의 자리는 오대세가에서 차지했으며 그보다 한 배분 아래인 맹의 장로위는 모두 구파일방에서 가져갔다.
거의 공평하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힘이 무림맹의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구도였다.
이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 무상의 자리를 차지해 버리면 그 구도가 무너지게 된다.
간신히 잡아 놓았던 중심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머리를 굴려 내놓은 한 가지 방법은 무상의 자리를 구파일방, 오대세가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선(酒仙)께도 부탁을 드려 봤는데 거절을 하시더군요.”
“주선(酒仙) 말입니까?”
갑자기 술에 취해 사는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대충 어떤 모습일지는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 역시 자운이 알지 못하는 절대의 고수 중 하나인 모양이다.
“예. 본래는 천 대협께 부탁드릴 생각이었으나 천 대협께서 삼 년간 모습을 보이지 않던 터라…….”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폐관에 들어 있었지요.”
“그렇군요. 원하시던 바는 이루었습니까?”
“어느 정도는 이루었으니 나왔지요.”
자운의 말에 남궁인이 호탕하게 웃었다.
“허허허허. 그렇군요. 제가 괜한 질문을 했습니다.”
자운이 마지막 한 모금을 마셔 차를 비워내었다.
깨끗하게 찻잔을 비워낸 자운의 눈을 남궁인이 응시했다.
“무상의 자리, 수락한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흠…….”
턱을 가볍게 쓸어내리는 자운. 무상의 자리를 맡아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대가로 자신 역시 얻는 것이 있어 야할 것이다.
“조건을 두도록 하지요.”
조건이라는 자운의 말에 남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 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군요. 무리가 가지 않는 일이라면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황룡문의 문도들이 뿔뿔이 흩어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소재를 파악할 수 있습니까?”
자운의 말에 남궁인이 눈을 감고 찬찬히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예. 아마도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들에 대한 소식이라면 무림맹의 정보력을 이용해 얻어 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을 무림맹으로 불러 모아 제 아래에 독자적인 조직을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독자적인 조직이라면?”
남궁인의 미간이 좁혀졌다.
“별거 아닙니다. 문상부가 있듯 무상부를 만들겠다는 거지요. 문상부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위치는 어느 정도 되어야 합니까?”
“맹주인 저와 군사가 아니라면 그들에게는 절대로 명을 내릴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운이 마옴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저도 만족합니다. 맹주님과 무상인 저의 지휘만을 받는 독자적인 조직, 그 조직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들이라면 무림맹에서도 충분히 조직해 줄 수 있는 문제 입니다. 황룡문의 사람들만을 데리고 그 조직을 이끌겠다는 연유는 따로 있는지요?”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 검지 두 개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두 손가락 검지를 맞닿게 해 이리저리 굴린다.
“일은 함께 해본 사람들과 해야 손발이 맞는 법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다. 또한 더없이 간단한 답이기도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답이었는지 남궁인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수용이 가능한 조건입니다.”
자운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조건만 들어주신다면, 무상의 자리를 맡도록 하겠습니다.”
귀빈관의 방으로 돌아오자 운산과 우천이 자운의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도 자운이 맹주전에 불려갔다기에 궁금해하고 있던 차였다.
“다녀오셨습니까. 대사형.”
“그래. 귀한 차 한 잔 얻어먹고 왔지.”
“귀한 차요?”
자운의 말에 운산과 우천이 갸웃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 그것보다 너네가 이곳에는 웬일이냐?”
“대사형께서 맹주전에 갔다고 하시길래 이유가 궁금해서 여쭈어보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운산의 말에 자운이 윗옷을 벗어 놓고 의자에 털썩 걸터앉으며 말했다.
“별거 아닌 일이었는데. 한 자리 주겠다고 해서 받아먹으려고.”
“한 자리요?”
우천의 의문에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무상의 자리 준다고 해서 받기로 했어.”
말을 들은 운산과 우천은 경악했다.
무상의 자리라니, 무림맹이 설립된 이후로 지금까지 주욱 비워져 있던 자리가 바로 무상의 자리이다.
이번 무림맹은 생긴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가 어떤 자리를 의미하던가.
운산과 우천이 경악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자운은 태연자약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뇨.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자운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무상 자리 수락하는 대가도 하나 받기로 했다.”
무려 조건까지 달았단다.
무림맹의 무상을 하는 대가로 조건을 달다니, 운산과 우천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들에게 무림맹의 무상을 하라고 하면 '아이고, 감사 합니다’ 라며 단번에 넙죽 수락할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역시 정상인은 아니야.’
‘대사형…….’
제7장 케엑!
콰앙!
자운의 방문이 단번에 날아갔다. 날아간 문이 자운을 향해 덮쳐온다.
“뭐야!”
자운이 경악을 토하며 손을 뻗었다. 문에 담긴 힘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맞아줄 수 없었던 탓이다.
자운의 손에서 경력이 일어났다.
황금빛 서기가 손끝을 맴돌고, 단번에 날아온 문짝을 후려친다.
쾅-
손끝에 담겨 있던 기운이 문짝과 충돌하며 퍼져 나갔다.
동심원이 퍼져 나가듯 넓게 문을 때리는 내력,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갈라진다.
퍼엉-
자운의 손에 닿은 문이 포탄에라도 맞은 것처럼 허공중에서 폭발했다.
자운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떤 놈이야!”
그런 그를 향해 뛰어오는 노인 하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자운이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 켰다.
“어어?”
정말 익숙한 얼굴이었던 것이다.
무당의 태극고수이자 동시에 자운이 말하기를 벽에 똥칠 하는 병을 아직도 고치지 못한 인물이었다.
자운이 놀라 소리쳤다.
“태허 진인!”
자운이 소리치고, 그가 해맑은 얼굴로 자운을 향해 웃어 보인다.
자운이 머리를 짚었다. 치매가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 뒤를 따라 그의 제자라 할 수 있는 무당의 현 장문인, 청수 진인이 뛰어 들어왔다.
“사부님, 그리로 가시면 안 됩니다!”
역시 자운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무량수불. 천 대협이셨군요. 또 저희 사부님이 피해를 입히신 것은 아닌지…….”
그의 말에 자운이 박살이 나버린 문짝을 바라보았다. 사실 박살 낸 것은 자운의 손이기는 하다만 원인 제공은 태허 진인이 한 것이 아니던가.
그가 미간을 좁혔다.
“이미 피해는 입은 거 같은데?”
박살 나버린 문을 바라보는 자운의 시선을 따라 청수 진인의 시선 역시 움직였다.
그리고는 짤막하게 도호를 외운다.
“무량수불.”
“지랄. 그놈의 무량수불은.”
자운이 혀끝을 차며 청수 진인보다 먼저 들어와 문을 박살내는 만행을 벌인 태허 진인을 바라보았다.
“넌 또 왜 들어온 거야?”
“형! 형! 비무하자!”
그때 그 미련을 아직 버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자운이 머리를 짚었다.
그런 자운을 태허 진인이 유심히 살핀다.
“팔 다 나으면 비무해 준다며. 비무하자, 비무!”
‘유심히 살피는 이유가 그거였냐!!’
자운이 버럭하고 올라오는 것을 꾹 누른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애 좀 끌고 나가라.”
자운의 말에 청수 진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 힘으로 안 됩니다. 무량수불.”
자운이 쾅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빌어먹을! 너 또 맞았냐!”
“무량수불.”
고개를 숙여 보이는 그의 머리 위로 볼록한 혹이 솟아 있다. 분명 주먹으로 맞아 생긴 상처가 분명했다.
“그렇게 맞고도 넉살 좋게 웃는 걸 보니 넌 천생 말코구나.”
“그렇게 봐주신다니 감사드립니다.”
“칭찬 아니라고!”
“무량수불.”
“아오. 젠장! 지랄 같은 무량수불, 그만하고 얘 돌려보낼 방법 좀 생각해 봐!”
그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청수 진인이 묘안이랍시고 방안을 내놓았다.
“그냥 비무 한번 해주는 거 말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운이 머리를 짚었다. 귀찮아 죽겠는데 비무는 또 무슨 비무라는 말인가. 해맑게 웃고 있는 저 얼굴 그냥 콱 하고 쥐어 박아 버렸으면 좋겠다.
‘어? 쥐어박아버려?’
자운이 씨익 하고 웃었다.
비무를 빙자해서 한 대 쥐어박아 버리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 비무 한판 하자.”
자운이 웃었다.
‘쥐어박아 주마.’
그런 자운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허 진인이 따라 웃었다.
“헤헤헤. 비무다. 비무야!”
* * *
바람이 불었다.
쓰스스스스스-
그들이 부러 선택한 곳은 사람이 적은 야외연무장이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연무장에도 갈 수는 있었지만 그곳에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다. 그들을 모두 물리고 비무를 한다고 하여도 절대의 경지에 오른 이들끼리의 비무, 상상도 하지 못 할 여파가 뿜어질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