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일적의 장창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장창은 어느 새 다른 무기로 바뀌어져 있었다.
“왜 그러나? 곧 죽을 생각을 하니 고통이 좀 느껴지나?”
“홀홀. 개고기 뒷다리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
장법을 펼칠 수 있는 우수를 이용해 연달아 선풍팔수(仙風八手), 천풍경도(天風輕導), 망향회수(望鄕回首)를 펼쳐 낸 그가 동시에 괴장을 휘둘렀다.
타구봉 삼절초라 불리는 타단구퇴 , 구구입동, 취구번신이 쉬지 않고 일적의 야망갑을 후려쳤다.
방어력이 낮아진 야망갑이라고 하나 그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격을 견디는 것은 무리였다.
“크옥!”
이번에 인상을 쓰고 물러난 것은 당연히 일적, 그의 팔을 휘감고 있는 야망갑이 흉측하게 일그러져 근육을 누르고 있었다.
“아직 제법 하는군.”
그가 팔 쪽의 야망갑을 풀었다가 다시 휘감았다.
휘리리릭-
언제 일그러졌냐는 듯 모습을 드러내는 멀쩡한 야망갑, 그 모습에 괴걸왕은 신음을 홀리는 수밖에 없었다.
“으음…….”
이대로 간다면 확실히 패배하게 될 것이다.
저 야망갑은 부서뜨린다 해도 일적의 내공이 계속되는 한 완전한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 분명했다.
“왜 그러지? 이제 좀 자신이 없나? 하하하하하! 나의 야망갑은 부서진다 해도 다시 재생이 되는 천고의 절기지. 이 절기 앞에 할 말이라도 잊었나?”
괴걸왕이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고 있는 순간, 어둠을 가르고 황룡이 날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봐. 계속 부쉬 줄 테니.”
콰앙-
패룡이 그대로 일적을 바닥에 메다 꽂아버린다. 산산이 부서지는 야망갑의 기운, 허공에 떠 있던 여러 종류의 무기들 역시 단번에 사라졌다.
그리고 금빛 선기를 휘감은 지운이 허공에서 내려섰다.
“오랜만이네. 삼 년만인가?”
그가 운산과 우천을 향해 인사를 건네었다.
“아야야. 좀 살살 내려서면 안 돼요?”
뒤에는 취록이 업혀 있었다.
자운이 엉덩이가 아프다며 불평하는 취록을 내려놓았다.
“말이라도 타고 왔냐. 볼 것도 없는 엉덩이가 아파서 뭘 하려고 계속 그렇게 주무르는 거야.”
“캬악!”
자운을 향해 소리치는 취록을 뒤로하고 자운이 운산과 우천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운산과 우천으로서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황룡무상십이강을 날려 일적을 패대기쳐 버리더니, 첫 인사가 오랜만이네 삼년만인가. 그 다음으로 한말이 ‘어이. 오랜만이네’ 였다.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 대사형은.’
그나마 빨리 정신을 차린 것은 운산이었다. 지난 삼 년간 자운에 대한 면역이 조금 약해졌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나자 한결 대하기가 편해졌다.
“예. 오랜만입니다. 대사형.”
곧 정신을 차린 우천 역시 자운을 향해 뛰어갔다.
“대사형?”
“야야! 저번에도 내가 말했지. 난 남자 취향 없다고. 제발 와서 안기지 마라.”
자운이 우천의 움직임을 휙 하고 피해 버렸다.
하지만 우천 역시 예전의 우천이 아니다. 지금은 강기를 사용하는 경지에 다다른 고수가 아니던가!
우천의 보법이 단번에 일변했다. 그리고는 방향을 틀어 다시 자운을 향해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본 자운의 미간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이게. 죽을래?”
퍼억!
단번에 주르륵 하고 밀려나는 우천의 몸뚱이. 코에서는 피가 주르륵 흐르지만 그래도 우천은 뭐가 좋은 것인지 웃었다.
“헤헤.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대사형.”
그 자리에 주저앉아 코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웃는 우천을 향해 자운이 돌멩이 하나를 발로 찼다.
빠악-
“내가 죽기라도 했냐? 살아 있으니 당연히 돌아왔지. 난 지옥에 가도 염라대왕 코털을 부여잡고 살아날 놈이야.”
취록이 옆에서 딴지를 걸었다.
“살아나는 건 좋은데 염라대왕 코털은 왜 잡는 건데요?”
“응? 그거야 뽑으면 아프니까 그런 거고. 어디보자, 익숙한 거지 냄새도 나던데…….”
자운이 고개를 휙 하고 돌린 곳에는 괴걸왕이 허허 하고 웃으며 서 있었다.
“꽤 고전하셨던 모양이군요.”
일단 육성으로는 존댓말이 나왔지만, 전음으로는 전혀 다른 말이 갔다.
[더럽게 처맞고 있더만. 삼 년간 실력이 더 줄었나?]
“고전은 무슨. 그저 잠시 놀고 있었을 뿐이지.”
[선배님이 괴물이 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렇군요. 그럼 계속 노세요. 전 구경할 테니.”
일적과의 싸움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듯한 자운의 말투에 괴걸왕이 다급해졌다.
[난 괴물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이었어.]
“어이쿠. 늙은이 부려먹을 생각하지 말고 자네가 좀 움직이게. 홀홀홀.”
[예. 인두겁을 쓰고 있으나 일단 겉은 사람이겠지요.]
[속은?]
괴걸왕이 실수로 속마음을 전음으로 보내 버렸다.
[미친놈?]
자운이 아무도 모르게 암경을 뿌려 괴걸왕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빠악-
[뒈진다?]
다시 시선을 운산과 우천에게도 돌린 자운이 턱 끝을 매만졌다.
그가 가볍게 눈을 감았다 떴다.
“둘 다 실력이 꽤 오르기는 했네. 저번에 먹은 내단의 약력은 모두 흡수한 모양이군.”
운산과 우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분에 내공의 양이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올라갔다.
태청신단만으로도 내공이 꽤 올라갔는데 거기에 순수한 내단이 더해졌으니 올라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전에 비해서 족히 배는 늘어난 듯했다.
“둘 다 강기지경에 들기는 했는데, 아직도 임독양맥을 타통하지 못했네. 쯧쯧.”
자운이 혀를 찼다. 내단의 힘을 한 번에 폭발시켰으면 예전에 타통해 버렸을 임독양맥을 아직 타통하지 못했으니 자운으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운산과 우천은 계속 해서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무시된 이가 하나있었다.
바로 일적이었다.
일적의 몸에서 마기가 피어오르더니 다시 야망갑이 입혀진다.
그가 이를 뿌득하고 갈았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난신이 아니던가!
화가 나지만, 그가 감히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아니었다.
칠적 중 여섯이 모두 저자의 손에 생을 마감했다.
그 역시 다르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적은 분노하기는 했으나 냉철하게 자신의 상황을 평가했다.
거기다 지금은 옆에 괴걸왕까지 있는 상황, 몸을 빼야 한다.
야망갑을 두르고 몸을 움직이면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는 난신이라면 몸을 뺄 확률이 더 높아진다.
‘도망가자!’
그 순간, 난신이 일적을 바라보았다.
“벌써 가려고? 좀 더 놀다가지?”
일적의 등이 단번에 축축하게 젖었다.
도망가기는 이미 글렀다. 그렇다면 선제공격, 괴걸왕이 끼어들기 전에 공격을 해서 그를 전투 불능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죽어라!”
놈이 손을 주욱 하고 뻗었다.
일곱 개의 병기가 단번에 자운의 몸에 박혀들었다.
퍼버버버버벅-!
하지만 피는 튀지 않았다.
이미 자운은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찌른 것은 허상이었다.
허상이 연기로 변해 허공중으로 사라지고, 자운이 황룡무상강기를 둘렀다.
일룡부터 육룡까지 단번에 여섯 마리의 용이 자운의 몸을 휘감는다.
“그렇지. 그렇게 놀다가야지. 값으로 어깨 위에 달린 거 지불하고 가라.”
콰앙-
패룡이 날았다.
묵직한 충격이 대지를 흔들고 금이 쩌저적 하고 간다.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얼마나 강했던지 괴걸왕이 피해야 할 정도였다.
몸을 움직여 충격파를 피하는 괴걸왕을 보며 자운이 중얼거렸다.
“너는 나서지 마. 저건 내 유홍거리니까.”
절대의 고수가 단번에 유흥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이노옴!”
일적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솟구치고, 거대한 망치가 허공에 모습을 이루었다.
쾅-
바닥을 내려찍은 패룡의 머리를 일적이 그대로 망치로 후려친다.
반발력이 패룡을 타고 자운의 몸으로 전해졌다.
자운의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인다.
“좀 찌릿한데?”
이윽고 움직인 것은 환룡과 암룡.
환룡이 찰나의 시간에 여럿으로 불어났다. 저 먼 왜국의 신화에 나오는 머리 아홉 달린 뱀과 같기도 했다.
“이런 빌어먹을!”
어지럽게 움직이는 환룡에 마침내 일적이 욕지기를 토했다.
하지만 아직도 황룡무상강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환룡이 그의 눈을 어지럽히는 동안 허공에 녹아든 것은 암룡.
그 이름답게 기척이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일적이라고 할지라도 주변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뿐,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위치를 알 수 있는 건 느긋하게 암룡을 조절하고 있는 자운 말고는 없을 것이다.
“하암.”
자운이 하품을 했다.
암룡을 다른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단 한 순간밖에 없다.
암룡이 공격을 위해 실체화되는 순간, 그 순간을 느껴을 비틀어야 한다.
피슛-
암룡의 뿔이 실체화가 되며 공간을 찔렀다.
파바바밧-
온 감각을 집중하고 있던 일적 이 힘을 다해 몸을 틀었다.
“'어? 그쪽은!”
하지만 그것은 일적에게 있어 또 하나의 재앙이었다.
그가 몸을 튼 곳으로 패룡이 날아왔던 것이다.
일전의 거대한 망치에 머리를 맞은 것을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 무지막지한 육탄돌격이었다.
콰앙-
일적의 몸이 낫의 형상으로 접어졌다. 온몸으로 충격파가 타고 뻗어나갔다.
척추가 부러지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갈비뼈가 서너 대는 나간 듯하고, 속에서는 피가 왈칵왈칵 개어져 나왔다.
‘이런 괴물이라니.’
새삼 삼공이 아니라면 이 괴물을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괴물은, 칠적 정도의 실력으로는 감히 가늠하기도 힘든 경지에 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