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자신들의 우두머리 격인 두 사람이 잡히자, 주변의 다른 무사들이 칼을 뽑아 들었다.
“너네 덕분에 크게 웃기는 했는데, 입맛이 확 떨어졌다. 이걸 어떻게 보상할 거지?”
살기 섞인 자운의 목소리에 조천룡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히익. 내,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환신방을 믿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적성을 믿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놈은 자운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럼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자운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타고 살기가 객잔 가득히 퍼져 나갔다.
가벼운 옷음일진대, 단번에 객잔의 분위기가 물 먹은 솜 마냥 축 하고 늘어져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그 무게는 조천항의 어깨를 무겁게 눌렀다.
“네, 네가 누구인지는 상관없다. 나, 나를 손대면 아버지께서 너를 살려두지 않으실 테니까!”
자운이 피식하고 웃는다.
그리고 동시에,
우득-
그의 왼팔이 뒤로 우드득 하고 꺾였다.
뼈가 부러지는 고통에 조천룡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털썩-
“시끄러워.”
비명을 지르는 조천룡을 한쪽에 던져 버린 후에 자운이 귀를 막았다.
그리고는 그의 호위무사를 발끝으로 찼다.
“으악!”
치대골이 발끝에 맞자 호위무사가 펄쩍 뛰었다.
“네 주인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가서 내 말을 전해라.”
자운이 얼굴을 한없이 차갑게 굳히고는 그를 향해 낮게 말했다.
“사신이 찾아갈 테니 온 힘을 다해서 맞을 준비를 하라고.”
그 스산한 살기에 호위무사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주인을 버려둔 채로 빠르게 객잔 밖으로 뛰어나갔다.
자운이 놈의 뒷모습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남아 있는 무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해? 너네 주인 챙겨서 너네 문파로 꺼져. 내가 한 말 꼭 전하고.”
제2장 역시. 내 생각대로……
조일융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호색한.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단어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술을 좋아하며 여자를 밝힌다.
하루라도 계집이 없이는 잠에 들지 못할 정도로 여색을 탐하며 술을 한 동이 이상 마시지 않고는 정상적인 걸음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중독자였다.
“낄낄낄. 속살이 곱구나.”
환신방의 방주라는 자리에서 그가 손을 뻗으면 얻지 못할 것은 없었다.
고급 술이 먹고 싶으면 뺏으면 되는 것이고 계집이 가지고 싶다면 취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가 손을 뻗어 몸을 떨고 있는 여인의 가슴을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아아!”
신음성인지 침음성인지 알 수 없는 비음을 흘리는 여인을 내려다보며 그가 혀를 이용해 입술을 축인다.
“좋구나. 좋아.”
음색에 가득 찬 눈이 희번득 하고 빛났다.
그가 단번에 여인을 탐하려는 찰나, 그의 수하가 그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방주님! 방주님!”
지금 막 재미를 보려던 그로서는 그야말로 방해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 일로 단칼에 부하를 죽일 수는 없다.
그가 불편한 심기를 미간 가득히 드러내며 방금 뛰어 들어온 수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소란을 떠는 것이냐?”
수하가 보는 앞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탐하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 그는 수하가 보든 말든 여인의 가슴팍에 넣은 손을 계속해서 움직여 여인의 가슴을 희롱했다.
“아아.”
여인의 입에서 비음이 흘러나오고, 그 모습에 수하가 한순간 흠칫했다.
하지만 지금 이 말은 전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지금부터 그가 전하려는 말이 환신방의 소방주인 조천룡에 관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소방주님께서…….”
그가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짤막하게 조일융에게 고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와의 충돌과 그 고수가 했던 말까지.
조일융은 술과 여자를 탐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아들을 챙기는 이이기도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치자 여인의 가슴을 떡 주무르듯하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으으아.”
조일융의 손길이 아팠던 것인지 그녀가 고통스런 신음을 흘린다.
하지만 조일융은 손에서 전혀 힘을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 아들의 팔을 부러뜨린 것으로 모자라서 뭐? 이곳으로 찾아오겠다고 했다고?”
수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주무르던 여인을 방 한쪽 구석에 집어 던졌다.
강한 힘으로 집어 던진 것이라 무공을 모르는 여인으로서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악!”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바닥으로 굴렀다.
정신을 잃은 듯 고개를 떨구어 내렸다.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은 것인지 그가 주먹을 말아 쥐어 탁자를 내리쳤다.
쾅!
나무로 만들어진 두툼한 탁자가 단번에 박살이 나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래. 온다고 하면 친히 맞아줘야겠지. 죽으러 온다고 하는데 묏자리는 거창하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
놈을 찢어죽일 생각이었다.
감히 자신의 아들의 손을 부러뜨려?
적성의 비호를 받고 있는 환신방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별채에 머무르는 적성의 객들께도 말씀을 알릴까요?”
그 말에 조일륭이 콧방귀를 낀다.
고작 의협심 하나 주체하지 못하는 애송이를 처리하는 데 무슨 적성의 힘을 빌린단 말인가.
비록 환신방이 적성의 하부단체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일까지 일일이 말해야 한다면 적성 내부에서 환신방의 위상이 떨어질 것이다.
그것은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이런 일 정도는 스스로 처리해 보이고, 적성에게 더욱 잘 보일 수 있을 만한 일을 해야 한다.
그리해야만 적성 내부에서 환신방과 자신의 위치가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홍. 그런 일은 본 방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다. 모든 제자들을 불러 모아 대기를 하도록 하게 해라.”
“이보시오. 당신들 이제 큰일이 났소!”
객잔의 주인이 호들갑스럽게 자운과 취록을 향해 말했다.
그의 말에 자운이 눈을 가늘게 뜨고 객잔 주인을 바라본다.
“큰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오리를 내려다본다.
“어! 누가 오리다리 다 먹었어!”
취록이 무사태평하게 보이는 자운의 모습에 피식하고 웃었다. 당금에 있어 누가 지금 이 사람을 위협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천하제일인에 가깝다고 추앙받는 이들이 이 시대의 절대자들이고, 그 절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고수가 적성의 칠적이었다.
그중 서열 이 위를 아주 처참하게 짓뭉개어 버렸다.
그런 무력을 가진 이가 눈앞에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다 먹었잖아요.”
그런 이가 이리도 가벼운 농을 던지는데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취록의 말에 자운이 뜨악하는 얼굴을 해 보였다.
“아아. 젠장. 역시 오리는 다리가 제맛인데. 이보시오, 주인장. 여기 오리 통구이 하나만 더 해줘요.”
안일하게 오리를 한 마리 더 주문하는 자운을 보며 주인이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아니, 이보시오. 제발, 제발 도망을 가란 말이요. 아까 당신이 발을 부러뜨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오?”
자운이 피식하고 웃었다.
“환신방의 소방주라고 지들 입으로 말했었지.”
“그럼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모른다는 말이요?”
자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다리 없는 오리를 보며 입맛을 다신다.
“잘 모르겠는데. 그것보다 주인장은 정말로 오리 한 마리 더 안 구워줄 거야?”
주인이 발을 더욱 동동 굴렀다.
“지금 당신들이 죽게 생겼단 말이요. 오리는 도대체 무슨 오리!”
버럭 하고 소리를 지르는 듯한 외침, 지운이 탁 하고 탁자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때렸다.
“죽긴 누가 죽어. 오리 구워주기 싫으면 말아. 객잔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자운이 취록을 흘깃 하고 바라보았다. 폐관에서 나왔기 때문에 자운은 돈이 한 푼도 없다. 지금까지 계산은 전부 취록이 한 것이었다.
취록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전장을 뒤져 셈을 한다.
“여기 밥값이요.”
쩔그렁-
식탁 위에 값을 올려두는 그녀를 보며 자운이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객잔의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런 자운을 취록이 뒤따랐고 두 사람의 모습을 객잔 주인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앞으로 걸어 나가던 자운의 걸음이 우뚝 하고 멈추고, 그가 고개를 돌려 객잔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말이야 환신방 녀석들 나쁜 새끼들이지?”
자운이 씨익 하고 웃었다.
환신방으로 가기 전, 자운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환신방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역시. 내 생각대로…….”
그 결과 자운이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개자식들이네.”
불법적인 사채로 서민들을 뜯어먹는 걸로도 모자라서 인신매매까지 강행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사파의 모습. 자운이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자운의 모습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인지 취록이 자운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이런 것들을 조사하고 다니는 이유가 뭐죠?”
자운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키가 머리 하나만큼 더 큰 자운의 눈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왜, 내 성격상 그냥 달려가서 다 부수고 끝내 버릴 거라고 생각했나 보지?”
취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꼭?“
“…….”
자운이 과장스럽게 이마를 잡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야. 이건 이거대로 슬프네. 내가 그렇게 앞뒤 없는 놈인 줄 알았다니. 굉장히 슬퍼.”
그가 몇 차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취록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꽤나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사실 나도 확신이 서지 않았거든.”
“뭐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