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97화 (97/175)

# 97

“난신 천 대협에 관한 소식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소문의 주인공은 삼층 누각을 단 일검에 무너뜨리고, 그사이 하오문의 지부장 취록을 등에 업은 채로 오백 명의 포위망을 유유히 벗어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벌써 삼 일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 정도의 신위를 보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황룡문의 무공을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철현난신 말고는 없었다.

운산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때렸다.

탕?

“대사형입니다! 대사형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대사형은 지금 어쩌고 있다고 합니까?”

“과연 검 대협께서도 그리 생각하고 계셨군요. 사실 무림맹의 수뇌부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검 대협께 알려 드리러 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후의 난신대협의 움직임에 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운산이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운산이 자리에 앉자 구일청은 무림맹에서 운산에게 전하고자 했던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하여 무림맹에서는 소문의 주인공이 철현난신 천 대협이라는 확신이 서는 대로 구조대를 보낼 생각입니다.”

“구조대… 말입니까?”

구일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천 대협이 절대의 경지에 오른 고수라고는 하지만, 그곳은 적진의 한복판이 아닙니까. 또한 살아남은 칠적과 일성 역시 소문의 진의가 파악되는 대로 몸을 움직일 것입니다. 그 모두를 천 대협께서 상대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내려진 결론입니다.”

확실히 아무리 자운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합공을 받으면 힘들어질 것이다. 삼 년 전에도 두 명의 칠적과 싸우면서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적이 있지 않는가.

구일청의 말을 알아들은 운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구조대는 언제쯤 출발할 생각입니까?”

“이미 구조대로 갈 사람들은 모두 선별해 두었습니다. 괴걸왕께서 지휘를 맡으실 것이고, 그중에는 역시 황룡문 소속의 우 소협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천이 말입니까?”

구일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본래는 명단에 없었는데 우 소협이 끝까지 구조대에 참가하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운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천이 움직였다고 하는데 자신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저 역시 구조대에 참여하겠습니다.”

“검 대협께서 말씀이십니까?”

운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당장에 강기를 뽑아 올려본다.

화르륵?

타오르는 선명한 금빛 강기. 이전에 비해서 훨씬 실력이 향상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강기가 매끄러워졌다.

그 속에서 타오르는 기운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으니 외유내강의 형태의 잘 이루고 있는 강기라고 할 수 있었다.

자운이 갑작스럽게 강기를 피워 보이자 구일청으로서는 조금 당황했다.

“제 대사형입니다. 그러니 제가 구조대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지요. 또한 저는 강기지경에 올랐습니다. 이제 막 강기지경에 오른 것이 아니라 완숙하게 되었으니 구조대의 일원으로서 한 사람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구일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형제가 정말로 비슷하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 소협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며 제 앞에 강기를 보여주셨지요.”

그 말에 운산이 깜짝 놀랐다.

“우천이 강기지경에 들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검 대협처럼 그렇게 완벽한 강기는 아니었지만, 강기지경에 든 지 일 년 정도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괜히 코가 시큰해진다. 이런 전장 속에서도 자신의 사제가 잘 성장해 주었다는 사실이 기쁜 것이다.

‘하루 빨리 이 소식을 대사형께 알리고 싶구나.’

예전이었다면 자신과 같은 경지에 올라선 우천을 조금이나마 질투했을 텐데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질투를 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이유도 없었다.

그저 사제가 잘 성장을 해준 것이 기쁘기만 할 분이다.

“그럼 저도 구조대에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구일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구조를 지휘하시는 걸왕께서 말씀하시기를, 두 분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구조대의 일원으로 이름을 올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에 운산이 주먹을 꽉 쥐었다.

적진의 한복판으로 몸을 날리는 것이지만, 대사형을 보러 갈 수 있다, 그 사실에 희열로 주먹을 꾹 쥔 것이다.

‘대사형, 지금 만나러 갑니다.’

* * *

오백이나 되는 포위망을 취록이라는 혹을 달고도 유유히 빠져나온 자운의 신위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자운의 등에 매달려 있던 취록은 휙 하는 순간 공간이 늘어나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절대의 고수들이 사는 세계는 모두 그런 것일까 하는 상상도 했다.

자운이 걸음이 멈춘 것은 여산의 근처에 이르러서였다.

해가 지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춘 것이다.

“우리 여기서 하룻밤 묵어갈까? 잠도 오고 좀 피곤한데 말이지.”

유수의 무(武)에 이르러 몸을 움직이는 동안 단 한 번도 잠을 청하지 않았다. 그 기간이 일 년인지 이년 인지는 자운으로서도 감 잡을 수는 없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 잠을 자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무아의 경계에 들어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해도 피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잠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꼭 필요하다는 것이 자운의 지론이었다.

“여기는 적진 한복판인데, 여기서 잠을 자자는 말씀이신가요?”

취록은 이렇게 여유자적한 자운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절대의 고수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적진의 한복판이다.

열 손으로 한 손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강호의 지론. 하지만 절대고수는 그것마저도 초월한 존재라고 했다.

그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자운의 태도는 너무나 여유만만했다. 삼 년 전에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칠적 중 두명의 공격으로 죽을 위기를 넘겼다지 않던가. 지금 당장에라도 자운의 소식을 들은 칠적이 공격을 해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여유만만한 태도는 무엇인가.

‘설마 폐관에 들어 있는 동안 또 무엇이라도 손에 넣은 걸까?’

칠적 중 둘이 덤벼도 이길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말도 되지 않는 상상에 취록이 스스로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지.’

자운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혼자서 뭐 하는 거야? 실실 웃지를 않나, 고개를 흔들지를 않나. 내 멋진 외모와 강력한 무력에 반해서 미치기라도 한거야?”

취록이 일언지하에 자운의 말을 잘랐다.

“그럴 리가요. 그보다 제 질문에 대답 먼저 해주시지요.”

자운이 픽 웃었다.

“자, 내가 널 업고 허공답보로 날아간다고 생각을 해보지. 그럼 잔챙이들은 상대도 하지 않고 넘어가겠지만, 오히려 그게 더 놈들의 주의를 끌 거라고는 생각 안해?”

“아!”

자운의 말에 취록이 입을 크게 벌리며 탄성을 터뜨렸다.

확실히 허공답보를 사용하면 이목의 집중이 더 될 것이다. 자운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서, 이렇게 평범한 척 움직이면 잔챙이들의 이목도 좀 덜 끌고, 칠적 놈들의 시선도 막을 수 있겠지.”

말을 마치며 자운이 한마디 더 덧붙였다.

“뭐, 둘 정도는 몰려와도 상관없지만.”

“예?”

자운의 말에 깜짝 놀란 것은 취록이었다. 자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고, 이 동네 객잔이 여기뿐이야?”

자운이 마을에서 하나밖에 없는 객잔을 보며 말했다. 낡고 허름한 것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마을의 객잔은 여기 한 군데뿐이었다.

“어쩔 수 없네요, 여기서 자는 수밖에.”

취록의 말에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끼이익?

녹슨 경첩에 기름칠이 제대로 되지 않은 듯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고 보니 황룡문에 처음 들어갔을 때도 이런 소리를 들은 것 같다.

객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심드렁한 표정의 주인이 그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객잔 내부로 들어가자 생각보다 사람의 기척이 많이 느껴진다. 암살자 따위의 기척이 아니라 말 그대로 투숙객의 기척이었다.

마을이 크지는 않지만 가끔 상단이 지나가기도 하고 왕왕왕래가 있던 곳인데, 객잔이 한 곳밖에 없어 사람이 몰리는 듯했다.

그러니 이런 낡은 시설에 심드렁한 주인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장사가 되는 것이리라.

“방 있습니까?”

자운의 말에 객잔 주인이 장부를 살피며 빈방을 찾았다.

“부부요? 마침 빈 방이 하나 남아 있기는 한데.”

부부냐는 말에 취록이 손을 흔들며 부인하려 했다.

그런 취록의 입을 자운이 혈을 짚어 막아버리고는 전음을 날렸다.

[위장, 위장.]

자운의 말을 들은 취록이 찌릿 한번 노려보더니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운이 객잔 주인의 말에 답했다.

“예, 이제 결혼한 신혼부부입니다. 아내의 고향에 가는 중인데, 방 하나면 됩니다.”

그 말에 객잔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딱 봐도 신혼부부 같았어. 어쩐지 갓 성혼한 티가 나더라니까. 좋을 때네, 좋을 때야.”

자운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하….”

자운에게 아혈이 점해져 입을 움직이지 못하는 취록은 입가만 미미하게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자운과 취록은 객잔 주인에게서 방을 안내 받아 들어갔다. 방문을 닫은 후에 자운은 점혈을 했던 취록의 혈을 풀어주었다. 점혈이 풀리자 취록이 자운을 쏘아본다.

“능청이 대단하시던군요.”

자운의 능청스럽게 받았다.

“타고난 재능이라 미안한데 넌 못 줘.”

“준다고 해도 안 받아요. 그것보다, 처녀를 단번에 유부녀로 만들어 버리셨네요?”

자운이 귀를 팠다. 그리고는 귀지를 입으로 후욱 불었다.

“고개를 끄덕였잖아. 너도 동의한 거 아니었어?”

“그럼 아혈이 눌러져 있는데 어떻게 해요!”

“어쨌든 동의한 건 인정한다는 거네. 그것보다 그 나이 먹도록 기루에서 일하면서도 처녀였어?”

취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녀라고 전부 몸을 파는 기녀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음악과 노래를 파는 기녀도 있고, 저는 기녀가 아니라 루주였습니다.”

“그래도 그런 데서 일하는 사람이 그 나이까지 처녀라니, 너 올해로 나이가 몇이었지?”

“서른셋이요.”

“이야, 젊네. 아직 앞날이 창창하네. 처녀여도 상관없겠다. 내가 아는 애는 이백 년이 넘게 처녀인 애도 있어.”

사람이 이백 년이나 산다는 사실부터가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취록은 그 의미를 진짜 이백 년이 아니라 그 정도로 오랫동안이라는 과장법으로 알아들었다.

“그 여자, 참 불쌍하네요. 그럼 당신은 총각 아닌가요? 나이도 많아 보이지 않는데.”

자운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취록의 머리를 눌렀다.

“아가야, 이백 년 전부터 이몸은 총각이 아니었단다. 그런 말 할 거면 이백 년이나 먹고 나서 말해라.”

이번에도 취록은 이백 년을 매우 오랜 세월의 과장법 정도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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