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95화 (95/175)

# 95

그들은 난신을 배출해 낸 문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성의 공격을 받았고, 기적적으로 몇몇의 황룡문도가 탈출했다고 한다.

물론 그중에는 운산과 우천이 섞여 있었고, 거기에는 괴걸왕의 도움이 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성의 진격은 계속되었고, 정파 무림은 계속해서 뒤로 밀렸다는 사실이다. 남존북승이라 불리는 무당과 소림마저 무너졌다.

정파 무림의 자존심뿐만 아니라 정사를 통틀어 중원 무림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림과 무당이 무너지고 폐퇴를 거듭한 것이다.

살아남은 무당과 소림의 생존자들이 다급하게 퇴각하기는 했으나, 한번 무너진 자존심은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적성은 소림과 무당을 무너뜨린 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무림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지금 삼 년에 걸쳐 최후의방어선이 결성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감숙과 녕하, 그리고 청해였다.

자운이 자신이 앉은 자리를 내려다봤다.

“한마디로 여기는 적진이라는 소리네. 그것보다 살아나간 우리 애들 소식은 없어?”

그 말에는 취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소식은 없어요. 하지만 간간이 들여오는 소문에는 무림맹이 있는 곳에 가끔 황룡문의 무공을 사용하는 자가 나타난다고 해요.”

“무림맹?”

자운이 무림맹이라는 말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전에 구파일방이 무림맹을 형성한다고 했을 때 자운이 오대세가 역시 끌어들인 후에 무림맹을 만들라며 면박을 준 적이 있다.

“예.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연합을 했어요. 그리고 살아남은 정파인들을 끌어모아 무림맹을 형성했습니다. 무림맹이 있었기에 그나마 지금 방어선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군.”

자운이 필요로 한 정보를 다 얻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움직여 주변을 휘휘 살폈다.

“그것보다 지금 주변의 쥐새끼들, 네 새끼야?”

그의 말에 취록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쥐새끼라니, 누가 숨어 있다는 말인가?

혹시라도 절대고수의 이목을 거스를까 걱정해서 자신의 비밀 호위마저 물렸던 그녀다.

주변에 아무도 숨어 있지 않은데 자운이 누군가 있다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감정이 그녀의 얼굴에 바로 드러났다.

자운이 피식 웃었다.

“그래, 네 새끼들은 아니니 모두 죽여도 상관없겠군.”

그 순간 수십 자루의 비도가 자운과 취록을 향해 쏘아졌다. 그와 동시에 자운이 입고 있는 낡은 옷에 가득하게 기운을 불어 넣었다.

콰과과광?

옷이 넓게 펼쳐지고 수십 자루의 비도와 충돌한다. 폭음이 울리는 와중에 자운의 옷이 넓게 펼쳐지며 취록을 감쌌다.

단 하나의 비도도 그의 옷을 뚫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타다다당?

자운이 떨어진 비도 중 하나를 집어 들어 손가락으로 날을 만졌다

보라색 액이 손가락에 묻었다.

이 정도의 독으로 자신을 해하려 했다는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는 게 아니라 귀엽기까지 하군.”

자운이 일순간 기세를 해방했다.

그의 몸속에서 인간의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 기도가 한순간 뿜어지고, 천장에서 일곱에 이르는 암살자가 떨어져 내렸다.

자운이 친히 그들의 가슴팍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솟구친다.

단번에 취록의 방이 피와 시체로 난장판이 되었다. 자운이 취록을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거 참, 미안한데?”

취록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사람을 불러서 치우면 됩니다.”

자운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아니, 이게 끝이 아닌 거 같거든. 그게 문제야.”

자운의 몸이 날았다. 지금 이곳은 실내 삼층이다.

누각에서 가장 높은 층이었으니 이대로 솟구친다면 지붕의 뚫고 기루의 꼭대기에 서게 될 것이다.

자운의 발이 삼층의 천장을 때렸다.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이 부서지고, 자운이 그 부서진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가 기루의 아래를 내려다봤다.

와글와글한 숫자의 무림인들이 검을 들고 기루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하나같이 적성(赤星)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소속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운이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적성의 개새끼들이구나.”

그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여 무리를 확인한다. 무리 중에는 자운을 취록에게 아내를 해준 총관 만일 역시 섞여 있었다.

자운이 그를 향해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 너구나. 사람들을 이렇게 끌어 모은 것이.”

놈이 자신의 주변에 있는 적성의 대군을 믿은 것인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흥! 얼굴이 익숙해서 확인했더니 역시 난신이었구나. 네 목에 걸린 금화가 무려 심만 냥이다!”

자운이 아쉽다는 듯이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아아, 고작 십만 냥이라니. 나도 아직 부족하군. 하긴, 백만 냥이 되어도 너네는 나를 잡을 수 없지. 근데 말이지, 고작 목표가 십만 냥이었어? 십만 냥 하나만 보고 나와 척을 지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지.”

자운의 말에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네놈과 루주가 내통하고 있는 사실 역시 적성의 지부에 밀고했지. 널 죽인 후에 루주도 죽이고 내가 이 루의 주인이 될 것이다!!”

놈이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자운이 고개를 숙여 지붕에 뚫린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봤다.

그 속에는 여전히 취록이 앉아 있었다.

“저 새끼가 너도 죽인대. 어쩔래?”

취록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태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 난신이라면 놈들 사이를 빠져나갈 수 있겠지만, 난신과 내통한 것이 들킨 취록으로서는 절대로 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입술이 새파랗게 물들고, 얼굴이 백짓장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자운이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왜 이래. 아까는 나보고 죽어도 정보는 못 준다더니.”

그 말에 취록이 답했다.

“거래를 하는 것과 이건 분명히 다른 일이니까요.”

“역시 강단이 세군.”

자운이 다시 고개를 들어 적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놈들은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지만, 자운을 위협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밑에서 만일이라는 놈은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었다.

“하하하! 십만 냥과 루주의 자리가 내 것이 되는구나!”

자운이 개똥같은 소리 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후비적대며 귀를 팠다.

그리고는 다시 취록을 내려다보았다.

“너에게 거래를 하나 제안하지.”

자운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들어 자운을 바라보았다.

무슨 거래를 말하는 것이냐고 묻는 듯한 표정. 자운이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네가 앞으로 나와 함께 다니며 정보를 준다고 약속하면 저 개똥같은 말을 지껄이는 녀석에게서 탈출시켜 주지.”

자운의 말에 그녀는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것이 지금 이 상황에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운이 아래쪽에 있는 만일을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거래가 성립되었어. 그런 고러 너는…….”

자운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푸확?

만일의 가슴팍이 쩌억 벌어지며 피가 쏟아졌다. 그 사이로 잘려 버린 내장 또한 떨어져 내린다.

“즉결 처분이다, 개똥같은 자식아!”

제11장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감숙(甘肅) 천수(天水), 지금 그 속에서는 무림맹 소속의 사람들과 적성 소속의 무인들이 피 말리는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으아아아!”

여기저기서 피 튀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누군가가 죽은 것이다. 시산혈해. 감숙의 경계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무림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천수를 따라 흐르는 강에는 사람의 시체가 매일 떠내려갔고, 핏물이 넘쳐흘렀다.

휘이익?

그 속에서 한 남자가 움직였다. 매끄럽게 뻗은 검신을 움직이며 적 사이를 종횡무진 움직인다.

그의 팔에 수놓아진 황룡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강기가 거세게 피어오르고, 그의 검에서 황룡검탄이 쏘아졌다.

우우우우?

완전히 형상을 이룬 황룡검탄이 적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며 밀고 다녔다.

누군가가 사내를 보고 소리쳤다.

“황룡대협이시다!”

“오오, 동부 전선의 무신!”

그들이 소리치는 황룡대협은 바로 운산이었다. 황룡문이 침공당했을 때 괴걸왕과 개방의 도움으로 우천과 함께 무사히 황룡문을 탈출할 수 있었고, 무림맹이 있는 감숙까지 갈수 있었다.

그 후 무림맹에 소속하게 된 운산은 적성과의 여러 전투에서 숱한 성과를 올려 ‘황룡대협’ 이라는 무림명까지 얻었다.

운산이 눈앞의 적을 거침없이 베며 소리쳤다.

“여기서 밀리면 감숙의 성도가 코앞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는 청해만이 남게 된다! 절대로 밀리지 말고 싸워라!”

운산의 인상은 조금 더 날카롭고 사내답게 변해 있었다.

이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된 전장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볼에는 검에 입은 상처가 나 있었고, 몇 번의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 속에서 그는 강해졌다.

그것은 남부전선으로 가 있는 우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 번이고 생과 사의 고비를 넘긴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는 했다. 하지만 절대로 죽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두 사형제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들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고 다시 눈앞에 그 사내가 나타나 줄 것이라는 희망!

적 사이를 누비는 운산의 앞으로 거부를 두 손으로 휘두르는 사내가 나타났다.

“네놈이 황룡대협인지 지렁이 대협인지 하는 애송이냐!”

운산이 밟던 보법을 멈추고 사내를 노려보았다.

사내의 몸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기도가 제법이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적발라라는 사내보다 강했으면 강했지 약하지 않은 기도였다.

운산이 검을 움켜쥐었다.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또 다르다.

지금은 적발라와 일대일로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내가 바로 그가 맞다.”

운산이 그를 향해 반말로 답했다. 그러자 놈의 미간이 꿈틀 움직인다. 외모로 보나 연배로 보나 자신이 분명 열 살은 족히 많은데, 이 애송이는 존대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모양이다.

“푸흐흐, 네놈이 전장에서 하찮은 무명을 좀 날렸다고 어르신 알기를 개같이 아나 본데, 이 거암도의 실력을… 이놈이!”

놈이 떠드는 사이에 운산이 몸을 움직였다.

손목을 까딱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검격이 놈을 후려쳤다.

카앙?

갑작스럽게 이어진 공격에 당황한 것은 거암도였다. 거암도의 두 손이 꼬이고, 운산은 놈이 꼬인 손을 풀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쳤다.

쾅쾅쾅쾅쾅?

“크윽! 이 개 같은 놈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