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93화 (93/175)

# 93

자신을 걱정해 주는 운산과 우천의 마음에 자운이 피식 웃었다.

“내상도 안 입었고, 난 이런 거 안 먹어도 내공이 너무 넘쳐흘러서 문제다. 누가 감히 내 대해와 같은 내공을 따라잡겠냐.”

확실히 내공 하나만 놓고 본다면 자운은 천하제일을 논할 수준일 것이다. 물론 무공도 천하제일을 논할 수준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별일 없으면 너네가 먹어라.”

자운이 손을 뻗어 단번에 내단을 운산과 우천의 입안에 밀어 넣었다. 무언가 말을 하려던 운산과 우천은 갑자기 입안으로 내단이 들어오자 당황했다.

뱉으려 했지만 그런 의식조차 하기 전에 내단이 스르륵 녹아버렸다

청아한 향기가 입안으로 퍼져 나가고, 기이한 열기가 몸속에서 끓었다.

자운이 그런 운산과 우천을 보고 중얼거렸다.

“지금 당장 가부좌 틀지 않으면 너네 뒈진다.”

죽기는 싫었던 것인지 운산과 우천이 다급하게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운공을 시작했다.

황룡문의 심법이 그들의 몸속에서 회전했다.

가진 바 실력은 이미 능히 대주천을 이루고 남을 정도라 자운은 딱히 걱정하지 않고 그 둘을 바라보았다.

“그걸로 단번에 임독양맥을 타통해 버리면 좋겠는데 말이지.”

내단에 담긴 내력이 적지 않으니 잘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둘 중 조금 더 가능성이 높은 것은 우천. 운산이 비록 강기지경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그의 혈맥은 얇았다. 그에 비해서 우천의 혈맥은 튼튼하고 두꺼웠다.

아마도 내력을 휘몰아치면 임독양맥을 타통하기 쉬운 쪽은 우천일 것이다.

그렇게 자운은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운산이 먼저 눈을 떴고 일각 정도가 더 지난 후에 우천이 눈을 떳다. 자운이 그 둘을 보고 혀를 찼다.

“못난 놈들.”

운산과 우천이 자운의 말에 당황해서 물었다.

“옛?”

자운이 아무렇게나 손을 휘둘렀다.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운산과 우천을 욕하고 있었다.

‘아오, 병신 같은 녀석들’

내단을 모두 흡수하라고 줬더니 누가 둘이 사형제 사이가 아니랄까 봐 딱 절반의 내력만 흡수했다.

계산하자면, 본래 내단이 가지고 있던 내력의 사분지 일 정도만 각자 운산과 우천의 몸속에 녹아내렸다는 의미. 아직 나머지 산분지 일이 둘의 몸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니 바보라고 한 것이다.

그걸 모두 녹였다면, 임독양맥의 타통은 운에 맡겨야겠지만, 운산과 우천은 모두 지금보다 한 단계는 더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하지 못했으니 자운으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운공을 하는 도중이었다면 몸으로 퍼져 나가는 남은 기운을 강제로 끌어올려 단전에 처박아 버렸겠지만, 지금은 남은 내단의 기운이 모두 사지백해로 뻗어 나갔을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자연스럽게 약효가 녹아내리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일을 번거롭게 하는 데는 진짜 뭐 있다니까.’

자운이 혀를 찼다.

상황을 모르는 운산과 우천만이 멍하게 있을 뿐이다.

그런 운산과 우천을 향해 자운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아, 나 폐관에 좀 들어가야겠다.”

운산과 우천이 말렸지만 자운은 기어코 폐관에 들어갔다. 아직 부족함을 스스로 느꼈기 때문이다. 큰일이 없는 한 목적한 바를 이룬 후에야 폐관을 나설 생각이었다.

목표한 바는 황룡무상십이강. 전부는 무리겠지만 하다못해 육룡까지라도 깨워야 일성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둘 이상이 다음번에 합공을 한다 해도 목숨이 경각에 다다르지 않으려면 그 정도는 필요했다.

자운이 의식을 깊은 곳으로 침전시켰다.

의식은 몸속을 내려가고 내려가, 이윽고 단전에 도착했다.

단전에서 대해와 같은 내공이 느껴진다. 그 속에서 황룡 세 마리가 노닐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자운의 의식이 멈춘 곳은 그 황룡 세 마리의 앞이었다.

주인이 내려온 것을 아는지 대해와 같은 내공 속을 노닐던 황룡들이 낮게 울었다.

우우우우?

자운을 향해 반가움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황룡들 사이로 네 번째 여의옥이 모습을 살짝 드러낸다.

자운이 의식의 끝으로 여의옥을 살짝 두드렸다.

‘그럼 제대로 한번 해볼까?’

* * *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이 흐르도록 자운은 폐관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찌 된 것인지 그 후로 적성의 움직임 역시 잠잠해졌다.

칠적 중 넷을 잃은 것에 대한 경각심을 보이는 것일까?

그 어디서도 적성의 움직임은 전혀 잡히지 않았다.

우천의 시선이 자운이 폐관에 들어선 곳을 향했다. 자운이 선택한 폐관 수련장은 이전에 자운이 나온 곳과 같은 곳이었다.

거대한 바위를 밀치고 폐관에 들어간 것이다.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운산과 우천이 한 일은 수련장 앞에 자운이 먹을 벽곡단을 놓아두는 일밖에 없었다.

한데 이상하다. 한 달 전부터 밖에 놓아둔 벽곡단을 자운이 전혀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가 걱정을 했지만, 자신이 먼저 나오기 전에는 절대로 들어오지 말라는 자운의 말이 있었던 터라 감히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운산이 우천의 고개가 폐관 수련장을 향해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대사형 생각해?”

운산의 말에 우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지난번에 놓아둔 벽곡단이 그대로 있더군요.”

그것은 운산 역시 걱정하는 바였다. 절대의 경지에 오른 무인들은 몇 날 며칠을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그들이 아는 자운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족히 백 년은 제대로 먹지 못한 사람처럼 배가 고프면, 때가 되면 먹어야 했다.

굶는 것은 자운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인데, 지금은 벽곡단조차도 먹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천이 걱정스러워한다고 사형이자 황룡문의 문주인 운산까지 그런 표정을 지어 보일 수는 없었다.

“대사형을 믿자.”

운산의 말에 우천이 운산을 바라보았다.

“꼭 나오실 게다. 아마도 천하제일, 아니, 고금제일이 되어 나올지도 모르지.”

운산의 과장스러운 말에 우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신들의 대사형이라면 고금제일이 되고도 남을 사람이다.

“예, 꼭 나오실 겁니다.”

우천 역시 운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독 붉게 빛나는 별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부르기를 천살성이라 한다.

일성이 천살성을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늘이 바로 그날, 자신의 무공이 완성되는 날이었다.

지존천살기(至尊天殺氣).

11성에 오르는 것은 인간의 힘이더라도 대성하는 것은 천살성의 기운을 받아야 한다.

그의 옆에는 각기 살아남은 육적 셋과 적성에 포함된 무림인들이 부복 자세로 있었다.

오로지 서 있는 것은 단 한 사람, 일성뿐이었다.

일성이 하늘에서 빛나는 천살을 매혹적인 눈으로 바라보다가 일적을 향해 물었다.

“난신의 손에 죽은 이가 벌써 넷이군.”

일적은 죄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더욱 숙였다.

“역시 무림이라는 괴물은 재미있어. 부숴뜨릴 가치가 있단 말이지.”

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흥분으로 온몸이 들뜬다.

그 정도는 되어야 산산이 부수고 지배하는 재미가 있지. 마치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놈은 내가 부서뜨린다.”

그의 말에 일적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의 구세주로 추앙받고 있는 난신을 쓰러뜨린다면 자신들의 군주인 일성의 힘을 더욱 확고히 무림에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달이 가려졌다.

적성의 환한 빛이 천지를 덮었고, 밤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일성이 천살성을 향해 손을 ㅃ?ㄷ었다. 그의 손에 붉은 빛이 맴도는가 싶더니 그대로 직선으로 뻗어진다.

동공에 유일하게 나 있던 구멍을 통해 하늘로 솟구친 붉은 빛이 닿은 곳은 바로 천살성이었다.

두 개의 붉은 빛이 하나가 되었다.

기둥을 타고 천살성의 힘이 전해져 내려온다.

꿈틀?

일성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다. 가히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의 힘이 온몸으로 흘러넘쳤기 때문이다.

“아아!”

그가 쾌감에 환호성을 질렀다. 이런 쾌감이라니, 여자를 품는 것에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사람을 잡아다가 마취를 하지 않고 산 채로 몸을 헤집고 근육을 발라내며 뼈를 갈아버릴 때, 그가 내지르는 비명 소리를 듣는다면 과연 이런 쾌감이들까?

아니, 아마도 그것보다 더한 쾌감일 것이다.

온몸이 희열로 가득 차올랐다.

그다음으로 차오른 것은 힘이었다. 단전에서 빠져나온 힘이 온몸으로 뻗어 나갔다.

곧 사지백해마저 별의 힘으로 가득 찬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그의 육체는 더욱더 천살성의 힘을 탐했다. 천살성 역시 쉬지 않고 그의 몸을 향해 힘을 내려 보내주었다

얼마나 빛의 기둥이 지속되었을까?

일각, 이각?

약 반 시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빛의 기둥은 집중이 되었고, 천살성의 빛이 조금씩 약해졌다.

그와는 반대로 일성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절대의 기운은 더더욱 강해졌다.

마침내 천살성의 빛이 꺼지고, 하늘을 찌를 듯 솟았던 붉은 기둥이 점점 짧아졌다.

이윽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일성 하나뿐이었다.

일성이 희열에 찬 신음을 흘렸다.

“아아아!”

지금 당장 누구 하나 죽이지 않고는 버티지 못할 감각이었다.

그가 혀를 이용해 입술을 적시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의 수하들이 모두 부복 자세로 있었다.

일성이 손을 뻗었다.

백흥에 속하는 이들 중 하나가 단번에 그의 손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가 일성 내부에서 어느 서열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죽이고 피를 마시고 싶었다.

온몸으로 갈증이 차올랐다.

일성의 입술 안쪽에서 송곳니가 예리하게 빛났다.

그것을 본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아아악!”

하지만 비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성이 사내의 목을 단번에 꺾어버린 탓이었다.

“시끄럽군.”

사내의 목을 단번에 꺾어버린 일성이 이빨을 사내의 목으로 가져갔다. 곧 날카로운 송곳니가 그에게 박혀든다.

딱히 흡혈을 하는 마공 따위는 익힌 적이 없는데 왜 이리이자의 피가 달콤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피가, 피가 달아. 하아! 하아! 하아! 정말로 피가 달아.’

피를 마시며 일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을 바라보던 일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예언에 나온 그대로였다. 천살성의 힘을 받아 지존천살기를 완성하면 완성직후에는 인간의 피를 탐하게 된다고. 그래서 이렇게 부하들을 불러 모아 제물을 마련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마침내 만족할 만큼 피를 마시고 나서야 일성은 사내의 목을 놓아주었다.

아니,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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