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자운이 호룡을 움직였다. 호룡과 유성이 충돌한다.
쾅?
호룡의 몸이 한순간 휘청했다.
금강불괴의 방어력을 가진 호룡이라 할지라도 패도 일변도, 그중 단연 손에 꼽히는 육적의 무공에는 흔들리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흔들린 것이 기분이 나빴던 것인지 호룡이 크게 울었다.
우우우우?
“그래, 기분 나쁘면 가서 씹어야지.”
호룡이 다시 자운의 주변으로 돌아오더니 몸을 배배 꼬았다. 뱀의 똬리처럼 몸을 만든 호룡. 용수철은 줄어들면 다시 튕겨 나가게 마련이다.
호룡 역시 그랬다.
콰앙?
허공이 갈가리 박살나며 호룡이 솟구쳤다. 연달아 패룡이 함께 솟구친다.
호룡의 강도와 패룡의 힘이 만났으니 정면으로 막는다면 육적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너도 한번 맞아봐. 얼마나 아픈지.”
“허허, 노인을 때릴 생각인가?”
자운이 소리쳤다.
“꺼져! 내 나이가 너보다 두 배는 많아!”
콰앙!
육적의 신형에 그대로 호룡과 패룡이 꼬라박혔다. 이번에는 호신강기도 끌어 올리지 못했으니 분명히 충격이 들어갔을 것이다.
“큰일 날 뻔했군.”
호룡과 패룡에게 공격을 당한 육적의 신형이 흔들리며 사라졌다. 그는 십여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는데, 미처 다 피하지 못한 것인지 손에 남은 상처 자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형환휘! 예상하고 있었다!”
자운이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소리쳤다.
콰드득?
섬뜩하게 땅 갈라지는 소리가 나며 어느새 비룡이 육적을 덮쳐 가고 있었다.
“굉장하군. 하지만 한 마리라면 못 막을 것도 없지.”
육적이 검을 횡으로 그었다. 단번에 비룡의 아가리를 베어버리려는 듯한 칼질. 검끝에서 유성의 기운이 화악 일었다.
일어난 기운과 자운의 기운이 충돌한다.
번쩍?
한순간 허공에서 번개가 떨어진 듯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이 가셨을 때 사파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황룡과 육적의 검이었다.
둘 모두 한 치의 밀림도 없다.
그 순간, 호룡과 패룡이 연달아 울며 몸을 움직였다.
우우우?
측면과 상간을 점해 버리는 공격. 육적이 호신강기를 입었다. 이번에는 다섯 겹에 이르는 호신강기. 두 마리의 황룡무상십이강이 노리는데 세 겹으로는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육적의 몸과 패룡과 호룡이 충돌했다.
패룡의 힘은 압도적이다.
호룡의 힘은 패룡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강도가 금강불괴에 준할 정도라 적중당하면 적지 않은 충격을 입게 된다.
콰앙?
호신강기가 산산이 부서지며 육적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하지만 충격은 없을 것이다.
자운은 느낄 수 있었다.
‘충돌하기 직전에 몸을 뒤로 빼서 충격을 줄였어.’
자운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쉽게 되는 일이 없군.”
패액!
육적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그 후에 자운의 머리 위로 육적의 검이 내리꽂힌다.
허공에서 일곱 개의 별이 떨어졌다.
칠성락(七星落).
쉐에에에에엑?
쾅! 쾅! 쾅!
자운이 호신강기 대신 호룡으로 온몸을 둘렀다. 그리고 칠성락에 정면으로 마주쳐 갔다.
한 번의 충돌 때마다 대지가 진동하며 땅이 움푹움푹 파여 들었다.
그 충돌의 힘이 자운의 몸을 타고 대지로 뻗어 나가 파도치듯 땅이 출렁였다.
그 위에 서 있던 사파인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크윽! 무슨 내력이…….”
바닥을 바다처럼 출렁이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많단 말인가.
그 정도의 공격을 연이어 펼쳐 내는 육적도, 그것을 온몸으로 견디며 막아내는 자운도 그들의 눈에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일곱 번째 공격이 내려올 때, 자운이 피하지 않고 검을 올려쳤다.
황룡신검이 거침없이 바닥을 때리며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그 길을 따라 황룡이 올라갔다.
일도양단이 아닌 등룡의 수법으로 펼치는 직도황룡. 일곱 개의 분영이 일어나며 단번에 칠성락의 마지막 공격과 충돌한다.
쾅쾅?
쾅쾅쾅쾅?
여섯 번의 폭음이 울리며 칠성락의 궤도 바뀌었다. 자운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틀었다.
허리가 비틀어지는가 싶더니 부드럽게 몸이 다라 돌아 육적의 뒤를 점했다.
아직 직도황룡이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의 검초, 그것이 육적을 노렸다.
쐐애애액?
육적이 뒤로 발을 뻗었다. 검을 돌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발을 뻗고, 상처를 입지 않도록 다리를 강기로 단단히 감쌌다.
콰앙?
육적의 다리와 자운의 신검이 충돌했다. 넘실거리는 황룡신검의 금빛 강기가 육적의 다리를 타고 넘어 때렸다.
쾅?
육적의 몸이 훨훨 날았다. 자운 역시 가슴팍을 움켜쥐며 뒤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힘을 모두 죽이지 못해 바닥을 주르륵 끌었고, 잠깐의 찰나에 반격당한 가슴팍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충격은 자운보다 육적이 더할 것이다. 육적이 그 자리에서 피를 왈칵 하고 게워내었다.
“쿨럭!”
자운이 그 모습을 보고 이죽거렸다.
“왜, 죽을 맛이냐?”
그거 참 고소하다고 말하는 듯한 자운의 말에 육적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호룡과 패룡만으로도 오적을 이겼던 자운이다. 비록 한쪽 팔이 불편하다고는 하지만, 비룡까지 깨어난 지금 육적을 상대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일성께서 네놈을 왜 위험하다고 했는지 알겠구나.”
“위험 저도밖에 안 된다니, 그건 개인적으로 좀 실망이네. 일생일대의 생사대적? 적성의 유일한 맞수? 그 정도는 해줘야 내 체면이 서는데 말이지.”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놈이로고.”
말을 하며 육적이 기운을 끌어올려 좌수에 검결지를 맺었다.
검결지와 두 손이 연달아 교차된다.
단번에 강기가 날아왔다.
자운이 머리를 빠르게 좌우로 한 번씩 틀었다. 그의 귀밑머리를 강기가 스쳐 지나가고, 뒤에서 폭음이 터졌다.
뒤에 서 있던 사파인들이 갑자기 날아온 강기에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크아아아악!”
자운이 그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러길래 조준을 좀 잘해야지.”
“이노오옴!”
육적이 분노에 차서 양손을 연달아 교차시켰다.
십자형의 강기가 연달아 자운을 향해 쏘아졌다.
패애애액?
그 모두가 유성의 무리를 담고 있었던지라 위력이 작지 않았다.
한 대라도 잘못 맞으면 큰일이 날 것이 분명했다.
자운이 황룡신검으로 땅을 그었다.
콰과과광?
땅이 폭발하며 그 폭발력에 바위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콰과과과과?
허공으로 솟구친 바위가 십자 강기와 충돌하며 힘을 줄였다. 자운이 그 속으로 몸을 날렸다.
부드럽게 춤을 추며 움직이는 자운. 그의 손에서 이화접목과 사량발천근의 묘리가 그대로 펼쳐졌다.
우천에 비해서 훨씬 부드럽고 매끄럽게 펼쳐지는 무리. 받을 수 있는 힘은 받아낸다. 그렇지 못할 공격은 사량발천근으로 비틀어 빗겨내었다.
이화접목을 이용해 흡수한 힘은 빙글 회전력을 더해 그대로 육적을 향해 쏘아 보냈다.
“요거나 먹어라.”
자신이 날린 공격이 갑작스럽게 돌아오자 당황한 것은 육적이었다.
육적이 다시 십자형 강기를 쏘았다.
두 개의 십자강기가 충돌하며 모래먼지가 사방을 휩쓸었다.
육적이 기감을 높인다.
이런 사이에 자운이 기습을 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운의 기척을 쫓았다.
“아래!”
육적이 놀라 소리치는 순간, 자운의 몸이 육적의 바로 아래에서 솟구쳤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호룡과 패룡, 그리고 비룡이 연달아 올라와 육적을 들이받았다.
무시무시한 육탄 공격. 자운의 어깨가 육적을 밀고, 호룡이 머리로 때렸다.
연달아 팔꿈치가 육적의 복부를 후려쳤고, 그 길을 따라와 비룡이 섬광처럼 육적을 때리고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호룡이 감싼 발끝이 치대골을 산산이 부숴 버릴 기세로 충돌했다.
콰앙?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모래먼지가 일고, 그 위로 육적의 몸이 훨훨 날았다.
허공의 나는 육적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쿨럭쿨럭!”
한가득 토해진 피가 길게 기른 수염을 축축하게 적셨다.
자운이 놈을 쫓았다.
눈을 번득이는 것이 먹이를 노리는 한 마리의 맹수와 같은 느낌이다.
“죽어라.”
자운의 검이 번득했다.
단번에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쐐애애애액?
콰앙?
갑작스러운 공격에 자운이 몸이 뒤로 날았다.
날아가며 자운이 고개를 비틀어 자신을 공격한 놈을 찾았다.
암갈색의 고급스러워 보이는 경장 차람의 노인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구구도. 거대한 톱날이 날카로워 보이는 구구도였다.
자운의 어깨가 땅에 닿았다.
“크으으윽!”
그대로 추락해 땅에 주르륵 흔적을 남긴 자운이 옷에 묻은 모래를 털며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한 터라 몸에 받은 충격이 적지 않다.
몸을 일으키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호홉을 들이쉬고, 그 호홉에 내공을 담아 다리로 흘렸다. 그러자 충격이 완화되며 한층 견디기 편해진다.
자운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기습을 가한 놈을 노려보았다.
“너도 칠적 중 하나냐?”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육적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자운의 말에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좌는 사마의 지존이자 칠적 중 세 번째, 삼적이라 한다.”
자운이 작게 불평 담긴 욕을 뱉었다.
“시발.”
제7장 개자식드랑, 죽이긴 누굴 죽이냐!
새롭게 나타난 적. 어쩐지 느껴지는 힘이 육적에 비해 전혀 모자람이 없다 햇더니 삼적이라고 한다.
육적보다 세 단계나 높다. 지금까지 나타난 그 어떤 칠적보다 높은 순위가 삼적이었다.
자운의 몸을 바로 세우고 삼적을 노려보았다.
“혼자서는 안 되니까 이제는 둘이냐?”
자운이 퉤 하고 침을 뱉으며 말했다. 피가 섞인 가래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모래와 얽혀들었다.
삼적이 그런 자운의 눈을 마주 보며 답했다.
“그저 우리 주인이 자네의 목을 원할 뿐이지.”
그사이 육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단번에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었는데, 자운이 안타깝다는 듯 육적을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일성의 개새끼들.”
“그렇다네. 우리는 그분의 충직한 개지. 어떤가, 자네도 적성으로 들어온다고 하면 칠적의 자리는 줄 수 있네. 자네가 오적을 꺾었다니, 그럼 오적의 자리를 주겠네. 마음에 드는가?”
자운의 마음이 동한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글쎄, 내가 사적보다 더 강할지도 몰라.”
“그럼 사적과의 정당한 비무 자리를 마련해 주지. 그와의 비무에서 이긴다면 자네는 사적이 되는 걸세.”
자운이 피식 웃었다.
이야기를 끌어 나가며 호홉을 충분히 회복했다. 육적이 둘이라 조금 버겁긴 하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싸워야 한다.
그런 적들을 앞에 두고 호홉이 흐트러진 채로 싸울 수는 없었던지라 수를 쓴 것이다.
“너보다 강할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