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87화 (87/175)

# 87

그런 곳에 자운을 두고 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대사형…….”

그들의 생각을 읽은 자운이 손으로 탁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왼팔은 아직 자유롭게 쓸 수 없으니, 한 손으로 각기 한 대씩 때렸다.

“걱정 말고 도망가라. 나중에 줄 게 있으니까 꼭 찾아갈 거다.”

확답하듯 말하는 자운의 말에 운산과 우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사파인들은 자운이 만들어 놓은 길을 다시 막아 나가고 있었다.

쐐액?

자운의 손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

“길을 열어, 개자식들아! 다 죽여 버리기 전에!”

“으아악!”

“내 팔, 내 파알!”

“내 다리가 잘려 나갔어! 으아악!”

사파인들 사이에서 비명이 흘러나며 아비규환 사이로 다시 길이 열렸다. 자운에게 등이 떠밀린 운산과 우천이 그사이로 뛰었다.

그들이 나가는 것이 보이자, 자운이 고개를 돌려 다시 육적을 바라보았다.

이기어검으로 허공을 배회하던 검은 어느새 육적의 손에 다시 들려 있다.

유성과 같이 무거운 검법, 매화검선이 죽은 장소에서 익히 보았던 검법이다.

조심해야 할 검법이기도 하다.

자운이 육적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고맙군.”

운산과 우천을 보내주는 것을 기다려 주어 고맙다고 말한 것이다. 육적은 언제 낮게 으르렁거렸냐는 듯 다시 허허롭게 웃으며 자운에게 화답해 주었다.

“허허, 고맙기는. 본래부터 우리의 목적은 자네가 전부였네."

“그것 참 고마운 말이군.”

운산이 단전을 열었다. 천산에서 감숙까지 쉬지 않고 질주 하면서 세 번째 황룡이 깨어났다.

조건은 한계를 돌파한 빠름, 쾌(快)였다.

자운의 주변을 세 마리의 용이 휘감는다.

첫 번째는 패룡이었으며 두 번째는 호룡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가장 최근에 깨어난 비룡(飛龍)이었다.

섬전과 같은 빠르기를 자랑하는 비룡 패룡을 선두로 세 마리가 울었다.

우우우우우우우?

우우?

우우우우우?

용 울부짖는 소리에 사파인들이 귀를 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공이 부족한 이들은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크아아악!”

“내, 내 귀! 내 귀이!”

자운의 내공을 견딜 만한 이는 세상에 몇 없다. 육적마저 미간이 꿈틀 움직였을 정도니 말이다.

“내공이 엄청나구만.”

“뿐만 아니라 정순하고 깊기까지 하지.”

넉살 좋게 받아치는 자운. 육적의 발이 흔들렸다.

“시험해 보기로 하지.”

피잉?

육적의 신형이 사라졌다.

단번에 나타난 곳은 바로 자운의 뒤쪽이었다. 놈의 검이 흔들리듯 움직였다.

중심을 잃은 듯 끌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자운은 느낄 수 있었다. 그 속에 담긴 유성의 거대한 힘을. 자운이 침을 꿀꺽 삼켰다.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난다.

자운의 몸이 움직였다.

발이 보법을 밟고, 교룡번신의 수법과 철판교가 동시에 펼쳐졌다. 자운의 몸이 인간의 몸으로는 불가능할 것만 같은 각도로 기이하게 꺾여졌다.

육적의 공격이 단번에 허공을 갈랐다. 허공을 갈랐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담긴 힘이 적지 않았던 터라 풍압이 날아왔다.

날카로운 풍압이 자운의 얼굴을 때렸다.

“바람 한번 참 난폭하게 부네.”

자운의 몸이 바람 속으로 녹아내렸다. 단번에 바람을 타고 움직였다.

용이 구름을 휘감고 바람을 부린다.

운해황룡과 풍룡신탄이 동시에 펼쳐졌다.

자욱한 모래먼지가 일어나며, 풍룡신탄이 육적을 향해 쏘아졌다.

한 발이 아니다.

동시에 여러 발에 이르는 풍룡신탄이 거침없이 나아갔다.

콰과과과?

대기가 진동하며 흔들렸다.

“흐읍!”

육성이 자운의 공격을 막기 위해 호홉을 들이쉬었다. 호홉이 진기를 타고 사지백해로 뻗어 나가 단전을 돌아 내공을 끌어 올려온다.

육성의 검이 아홉으로 갈라졌다.

어느 것도 허초가 아니었으며 진상이다.

아홉 개의 검이 모두 유성을 머금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대지가 흔들리고, 유성과 풍룡신탄이 연이어 충돌했다.

쾅쾅쾅?

폭음이 울리고, 세상이 절단 날 듯 허공이 쪼개졌다.

마침내 유성과 풍룡신탄의 충돌이 끝이 나고, 육적이 자운을 찾았다.

자욱한 먼지 속에 모습을 숨기고 있는 자운, 그가 기감을 일으켰다.

육적의 몸에서 일어난 기감은 단번에 자운을 쫓는다.

“거기냐!”

육적이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갈리는 곳에는 모래먼지만이 있을 뿐이다.

콰과과과?

육적이 연달아 공세를 펼쳐 내었다. 자운이 그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피해내고, 계속해서 모래먼지를 피워 올린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모래먼지가 일어나며 하늘을 향해 용권풍이 치솟았다.

콰앙?

풍룡신탄이 연달아 육적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육적이 몸을 움직여 모든 풍룡신탄을 피해내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뒤쪽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캉?

자운이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아직 안 끝났는데?”

자운이 이죽거렸다.

육적의 바로 뒤에서 패룡이 그를 씹어 삼킬 듯 밀고 들어왔다

우우우우?

패룡의 울음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육적이 검을 뒤로 세웠다.

“알고 있었네.”

그의 검과 패룡의 어금니가 충돌하고, 육적의 몸이 한차례 크게 흔들리기는 하였으나 버텨냈다.

자운의 공세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미안한데 또 남았어.”

이번에는 비룡이었다.

비룡이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속도로 육적을 향해 내달렸다.

육적이 손을 뻗었다. 한 손으로 비룡을 막으려 하는 것이다. 자운의 눈썹이 꿈틀했다.

“본 문의 황룡무상십이강이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더냐?”

비룡이 자운의 의지를 받았다.

분뢰의 속도로 육적을 향해 질주하면서도 나지막이 울음을 터뜨렸다.

우우우우?

그리고 육적의 손과 비룡이 충돌했다.

육적의 손이 변화를 일으킨다. 그것은 마치 일곱 개의 별이 회전하는 모습 같았다.

단번에 비룡의 힘이 일곱 갈래로 갈라졌다.

엄청난 속도로 힘을 동반하던 비룡이었지만, 그 힘이 일곱 개로 나누어지자 그리 강하지는 않았다. 손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의 손이 떨렸다.

파르르르?

단번에 일곱 개의 기운을 쳐 낸다.

쳐 낸 기운 중 하나를 틀어 자신의 뒤에서 검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패룡을 때렸다.

콰과과광?

패룡의 몸이 틀어지고, 그 잠깐의 틈을 타서 육적이 자운을 향해 내달렸다.

파사사삿?

허공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며 육적이 검을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쩌엉?

자운이 횡으로 세운 검과 육적의 검이 충돌한다.

자운의 주변으로 대지가 쩌저적 하고 갈라졌다. 검과 검의 충돌로 쏟아지는 힘 때문에 자운과 육적을 둥글게 감싸고 있던 사파인들이 물러났다.

“으아아악!”

물러나지 못한 사파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몸이 붕괴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절대에 오른 고수들의 싸움이다.

육적의 검이 다시 들어 올려지고, 그 틈을 노린 자운의 검이 공간을 찢었다.

단번에 공간을 가르며 황룡이 쏘아진다.

황룡검탄!

운산이나 우천이 보냈던 황룡검탄과는 형체부터가 다르다.

고작 꿈틀거리는 검기에 불과하던 운산과 우천의 황룡검탄과는 달리, 자운의 황룡검탄은 비늘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완벽한 황룡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강기였다.

육적이 그대로 허공을 밟아서 물러났다. 그가 물러서자 이번에는 패룡과 비룡이 움직였다.

패룡의 거대한 존재감이 하늘에서 노닐고, 어금니가 육적을 향해 내리 꽂혔다.

패룡이 입을 벌리고 육적을 단번에 삼켜 버리려는 듯 날아왔다.

육적이 검을 흔들었다.

그의 검 끝에 유성의 기운이 담기고, 하늘을 질주하는 별의 힘이 그대로 검에 집중되었다.

콰앙?

유성과 황룡이 충돌했다. 팽팽하게 맞서는 기의 격돌, 그 사이로 분뢰의 속도를 자랑하는 비룡이 날았다.

쐐애액?

비룡이 움직이고 찰나가 지난 후에야 소리가 들렸다.

음속을 돌파한 속도. 육적이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콰앙?

육적의 바로 옆으로 길게 비늘 자국이 생기며 꿈틀거리는 용이 지나간 듯 한 골이 형성되었다.

육적이 솔직한 탄성을 토했다.

“엄청나군!”

“뭘 칭찬까지야!”

자운이 답하며 세 마리의 황룡을 거두어들였다.

지금까지는 간을 본 것이다.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며 탐색전을 펼쳤다는 말이다. 자운과 육적의 기운이 허공중에 얽혀 들었다.

파지짓?

기운의 충돌만으로 불똥이 튀고, 자운이 몸을 날리며 황룡신검을 뻗었다.

패애애애애액?

허공이 황룡의 어금니에 갈가리 찢어졌다. 단번에 황룡의 아가리가 황룡신검이 솟구치고,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공격이 육적을 때렸다.

육적이 내공을 다리로 움직여 축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발끝에서부터 뿜어낸 기운을 이용해 몸을 겹겹이 덮어갔다.

세 겹에 이르는 호신강기가 육적의 몸을 완전히 덮었을 때, 자운이 만들어낸 황룡의 입과 육적의 호신강기가 충돌했다.

쾅?

콰지직?

두 개의 호신강기가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세 번째 호신강기마저 부서질 듯 철렁했으나 부서지지 않고 자운의 공격을 견뎌내었다.

“역시 세 겹이면 충분했군. 허허허.”

육적의 몸은 전혀 밀려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이 우세한 증거인 줄 알았는지 육적이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자운이 허공에서 호신강기를 내려치고 있는 그대로 마주 웃었다.

“글쎄, 그건 내 공격이 한 번으로 끝났을 때 이야기지.”

이전처럼 큰 기술을 쓸 시간은 없지만, 검에 남은 여력을 이용해 연격을 펼친다.

쐐애액?

일격(一擊).

패액?

이격(二擊)

콰앙?

삼격(三擊)

쩌엉?

사격(四擊)

여력을 이용한 공격이 연달아 네 번 더 이어지자, 호신강기가 산산이 부서졌다. 그 틈을 비집고 자운의 검이 들어갔다.

“나 역시 기다리고 있었네!”

호신강기가 부서지기만을 기다린 것은 비단 자운만이 아니다.

육적 역시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검이 바닥에서 하늘로 솟구쳤다.

향하는 곳은 자운의 검이었다. 유성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솟구쳤다.

별이 떨어져 바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위가 솟구쳐 유성이 되었다.

유성과 자운의 검이 충돌하고, 여력을 연격으로 모두 소비한 자운의 검이 밀렸다.

“캐액!”

자운이 날아 바닥을 굴렀다. 허공을 회전해 충격을 줄일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충격이 강해서 줄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신검이 이름값을 하는 것인지 부서지지는 않았다.

다만 아직도 모두 해소되지 않은 떨림이 남아 진동하고 있을 뿐이다.

지이이잉?

“윽.”

자운이 신음을 흘리며 내공을 신검에 불어넣었다. 주인의 내공을 받아들인 황룡신검이 떨림을 멈추며 투명한 황금빛이 났다.

육적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자운의 머리 위로 유성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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