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85화 (85/175)

# 85

그런데 놀기라도 하는 것인지 이상하게 늦어지는 것이다.

“내가 한번 가보도록 하겠네. 흘흘흘.”

삼적이 고개를 끄덕이고, 육적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려졌다.

적발라는 운산과 우천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운산의 경우에는 강기지경에 올랐기 때문에 언제든지 적발라의 머리카락과 동수를 이룰 수 있었고, 공격 면에서도 뛰어났다.

우천의 경우는 강기지경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뛰어난 기교를 통해 적발라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사량발천근과 이화접목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수법에는 적발라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놈들!”

눈앞에 있는 쥐새끼를 언제든지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잘되지 않자 적발라가 분기탱천했다.

그의 머리칼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양쪽으로 쏘아진다.

쐐애애액?

머리칼 하나하나가 무시하지 못할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나누지 않고 겹치면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한다.

고작 두 갈래로 나누어진 머리카락이라도 엄청난 힘을 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운산이 적발라의 머리칼을 막기 위해 강기를 피워 올렸다. 그의 검에서 용린벽이 펼쳐졌다.

카가가가가강?

용린벽과 적발라의 머리칼이 충돌했다. 용린벽이 깨어질 듯 흔들렸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강기로 펼친 용린벽이라 이전과는 다르게 훨씬 강력했던 탓이다.

하지만 운산의 몸이 바닥을 깊게 파며 뒤로 밀려났다. 운산의 신발은 바닥이 다 찢겨 나갔다, 발의 뒤쪽으로는 흙이 발목까지 쌓일 정도였다.

우천을 향한 공격 역시 막아내었다. 강기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가능한 한 검기를 최대로 뽑아내었다.

먼저 수 발의 강기를 황룡검탄의 수법으로 날려 머리칼의 힘을 줄인다. 그리고 줄어든 힘의 일부를 이화접목으로 흡수한 후에 사량발천근의 수법으로 막아내었다.

동시에 여러 개의 수를 펼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근육의 고통이 수반되었으나 막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번의 공격마저 막히자 적발라가 노성에 가득 찬 음성을 터뜨렸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적발라가 화가 난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가슴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검상 때문이다. 깊지는 않았으나 일 촌 정도만 더 깊었더라면 목숨이 위험할 뻔했다.

방심하고 있던 차에 운산과 우천이 합공을 했고, 그때 입은 상처였다.

고작 쥐새끼들에게 이토록 심한 상처를 입자 적발라의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적발라의 머리칼을 이용한 공세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공격을 할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 공세가 이어졌기 때문에 운산과 우천은 호홉을 고를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적발라의 공격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이전에는 한 번의 충돌에도 손이 얼얼할 정도였는데, 이제 전혀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손에 전해지는 고통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적발라가 약해지고 있는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또 아니다. 그의 몸에서는 아직도 힘이 팔팔한 것이 느껴졌으며, 분노에 휩싸여 뻗어내는 공세는 이전의 그것보다 공기를 더욱 강하게 진동시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확실하다.

‘성장하고 있다.’

운산과 우천은 목숨을 경각에 달하게 할 정도의 실전을 치르며 성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것이 얼마 티가 나지 않았으나, 불과 며칠 전부터 치러온 전장 속에서 쌓인 것들이 지금 터지고 있는 것이었다.

쌓이고 쌓여 거대한 산을 이루듯, 그들의 잠재 능력이 터진 둑의 물 쏟아지듯 흘러나왔다.

적발라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화가 나고 초조해진다. 상대하는 적 둘 다 점점 성장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둘이 이 속도로 성장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적발라를 위협할 정도까지 올라오게 될 것이다.

적발라는 지금 화가 나서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운산과 우천은 이미 지금도 적발라를 위협할 정도의 경지에 올라서 있었다.

다만 그 정도가 미미하여 크게 티가 나지 않을 뿐이었다.

“크윽!”

이번에 신음을 흘린 것은 적발라였다. 우천의 주먹이 적발라의 오른쪽 어깨를 때렸기 때문이었다.

신음을 흘린 적발라가 단번에 머리칼을 이용해 우천의 발목을 잡아챘다. 그대로 바닥에 메다꽂아버릴 생각이었다. 발목이 잡힌 우천의 몸이 회전했다.

휘리릭?

머리카락이 휘감긴 채로 우천의 몸이 허공에서 회전했다.

“사제!”

그 회전 때문인지 바닥에 떨어지는 낙하 시간이 길어졌다. 그 덕분에 운산이 대번에 우천을 향해 달려왔다.

강기를 검날에 집중시킨다.

그리고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적발라의 머리카락이 베였다.

적발라의 눈썹이 꿈틀한다.

지금까지 머리칼이 꺾일 듯 휘어진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잘린 적은 없었다. 우천이 바닥을 구르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적발라가 멍하게 자신의 잘린 머리카락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눈 위로 붉은 마기가 치솟는다.

“이…….”

입가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화를 숨길 수 없는 모양이다.

“이 죽일 것들이!!”

적발라가 분기탱천하며 공세를 펼쳤다. 머리카락이 부챗살처럼 쫙 갈라지며 운산과 우천을 노리고 들어온다.

머리카락 끝에서 묻어나는 진한 살기는 그가 진심으로 운산과 우천을 죽이려 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운산과 우천이 몸을 뒤집었다. 허공중에서 몸을 뒤집는 경신술. 휘릭 하는 소리와 함께 포물선이 그려지고, 운산의 몸이 뒤에서 나타났다.

“놓치지 않는다!”

적발라의 머리카락이 운산이 그려낸 포물선을 정확하게 쫓아왔다.

계속 피하기만 한다면 세상의 끝이라도 쫓아올 기세다. 운산이 검을 들었다.

화악?

검 위로 검강이 타오르고, 강기와 적발라의 머리칼이 연달아 충돌한다.

카앙? 캉캉?

적발라의 공격은 수도 없이 많다. 그 모든 공격을 단 하나의 검으로 막아내기 위해서는 쾌(快)의 묘리를 연달아 담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운산의 검이 눈으로 좇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다. 종국에 이르러서는 허공중에 휙휙 잔상이 남아 검이 하나가 맞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빨라졌다.

‘공수의 전환이 이토로 자연스럽다니!’

이전까지만 해도 공수의 전환에서 틈이 보였는데, 그사이에 또 성장한 것인지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적발라가 모든 머리칼을 끌어왔다. 그러고는 운산을 향해 거침없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폭풍과 같은 공세. 운산의 온몸이 난자되듯 머리칼이 운산을 때렸다.

콰과과과쾅?

양옆으로 폭음이 피어오르고 바위가 튀었다.

다행히도 운산의 몸이 난자되지는 않았다. 종이 한 장 차이로 모든 공세를 간신히 피해낸 덕에 난자된 것은 몸이 아니라 옷이었다.

조각조각 잘려 나간 상의가 떨어져 내리고, 하의 역시 볼품없는 걸레짝이 되어 있다.

그 속으로 완전히 피해내지 못한 공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상처가 운산의 온몸 위로 흐른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아 출혈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적발라가 운산을 노려보며 웃었다.

“흐흐흐, 너도 이제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구나.”

적발라의 눈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절대로 당할 리 없을 것이라는 애송이들에게 허용한 두 번의 공격. 그것이 그의 자존심을 있는 대로 붕괴시켰다.

지금까지 쌓아온 자존심이 붕괴되자 속에서 꿈틀거리던 마성이 일어났다.

그 마성이 눈으로 뻗쳐 붉은 마기가 뿜어지는 것이다.

적발라의 몸이 운산을 향해 뛰쳐나갔다.

“저승 구경을 시켜주마!”

운산 역시 적발라를 향해 쏘아졌다.

“저승 구경은 늙은이가 먼저 하시지!”

둘의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고, 우천이 그 둘 사이로 녹아들었다.

기운을 주변과 동화시킨다.

본래의 적발라라면 단번에 우천의 움직임을 알아챘겠으나, 그의 시선은 지금 온통 운산을 향해 쏠려 있다.

점점 상장해 오는 운산의 속도가 너무나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천의 성장 속도를 잊었다.

우천은 접전을 거치며 적발라의 이목을 어느 정도 속일 만큼 올라섰다. 그리고 이성을 잃고 시선은 운산에게만 집중시키고 있는 적발라에게는 충분히 통했다.

우천의 기감이 허공중으로 녹아들며 사라진다. 황룡문의 무공인 은룡보(隱龍步).

은룡이 그림자를 타고 넘었다. 향하는 곳은 적발라의 두쪽. 머리칼이 모두 앞으로 쏟아지며 운산과 접전을 나누고 있던 터라 적발라의 목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천이 눈을 빛내었다.

비록 강기지경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검기라면 충분히 적발라의 목을 베어낼 수 있다.

우천의 몸이 단번에 적발라의 뒤쪽에서 솟구치고, 검이 높게 들어 올려졌다. 이대로 내리그어 버린다면 단번에 적발라의 목을 베어낼 수 있을 것이다.

‘베어낸다!’

검기가 요란하게 솟구친다.

우천의 검이 허공을 가르고 적발라의 목에 닿는 순간, 머리칼이 움직여 우천의 검을 막아내었다.

타앙?

머리칼과 충돌한 우천의 검이 반발력으로 인해 나가떨어지고, 우천의 몸 또한 허공을 나뒹굴었다.

쐐애액? 파악?

길어진 머리칼이 우천의 어깨를 꿰뚫었다. 왼쪽 어깨가 그대로 박살이 나듯 뚫린다. 우천이 피를 뢍칵 토했다.

“커헉!”

우천의 공격을 방어하고 다시 반격까지 성공하기는 했으나, 적발라 역시 매우 놀란 상태였다. 눈앞에 거친 호홉을 몰아쉬고 있는 운산, 그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한 탓도 있었지만, 우천의 성장 속도 역시 놀라울 정도였다.

검기를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적발라 역시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적발라가 자신의 목을 만졌다.

“큰일 날 뻔했군.”

정말로 죽을 뻔했다. 우천은 왼쪽 어깨가 박살 났다. 운산은 이제 움직일 힘마저 없어 보인다. 그제야 문득 육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둘은 죽이지 말라고 했다. 아직 죽지는 않았으니 상관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운산을 바라보려는 찰나, 거대한 기운이 움직였다. 적발라가 반사적으로 시선을 움직여 기운이 솟구치는 곳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아래!

“설마…….”

강기.

운산의 검에서 강기가 솟구치고, 단번에 적발라의 머리를 통째로 베어버렸다.

적발라는 하려던 말도 채 다 마치지 못하고 목과 어깨가 분리되어 버렸다.

푸확?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서 폭포수마냥 떨어져 내린다.

“큰일은 지금부터… 헉헉… 났지. 헉헉!”

운산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적발라가 죽자 사파인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그토록 강해 보이던 적발라가 비록 합공이라고는 하나 둘의 손에 죽은 것이다.

운산이 그 틈을 타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우천을 향해 다가갔다.

우천은 왼쪽 어깨를 파고든 적발라의 공세로 인해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우천이 걸레짝이 되어버린 바지의 일부를 찢어 우천의 어깨를 동여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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