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적발라의 머리카락이 수십 갈래로 갈라졌다. 머리칼을 이용한 무공인만큼, 단번에 뻗어낼 수 있는 공격의 수는 수도없이 많다. 일일일 세기가 힘들 정도의 공격이 주욱 늘어나며 운산과 우천을 향해 날아왔다.
“크윽.”
운산이 신음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수 발의 머리칼, 그 너머로 황룡문도들을 향해 날아가는 수십 발의 머리칼이 눈에 들어온다.
저것을 막지 못한다면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다.
‘얻은 것은 없지만 뼈를 취한다.’
휘이익?
운산의 몸이 날았다. 단번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공세를 향해 돌진했다. 태풍 속에 몸을 던지는 것과 같은 상황. 그 모습에 적발라가 이채를 띠었다.
“과연 일문의 문주다운 생각이로군.”
문도들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포기하고 몸을 날린 셈이다.
‘육적께서 이 둘은 죽이지 말라고 하셨지.’
적발라가 공세에서 힘을 살짝 뺐다. 그 틈을 운산이 비집고 들어와 보법을 이용해 피해낸다.
공세를 피해낸 운산의 몸이 향하는 곳은 황룡문도의 앞이었다.
그가 기운을 끌어올린다.
펼치는 것은 용린벽!
용린벽과 붉은 머리칼이 연달아 충돌한다.
따다다다당?
깨어지면 다시 펼친다. 또 깨어진다면 또다시 펼친다.
운산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네 번이나 연거푸 용린벽을 펼쳐 내었을 때, 적발라의 공세가 끝났다.
‘후욱! 후욱!’
거친 호흡을 들켜서는 안 된다.
오랜 시간 이어진 전투로 인해서 이미 체력은 바닥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시간을 끌고 있어봐야 좋을 것이 없다.
시간을 끌면 적은 더 몰려올 것이고, 그럴수록 탈출은 더욱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운산이 우천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내가 운해황룡으로 적의 눈을 가릴 테니 네가 그 틈을 타서 문도들을 이끌고 달아나라.]
바론 우천에게서 답음이 전해져 온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형이…….]
[걱정하지 마, 사제. 나도 저런 괴물과 싸울 생각은 없어. 틈이 보이는 즉시 뒤쫓아 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가.]
우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적발라가 한 걸음씩 운산과 우천을 향해 다가온다.
“자, 작전회의가 끝이 났으면 한번 놀아보겠나?”
적발라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틀어져 올라갔다.
운산과 우천의 몸에 순식간에 소름이 돋는다.
쫘악 올라오는 섬뜩함이 공기를 통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운산이 신호를 보냈다.
“사제!”
운산의 발이 화려하게 움직인다. 바닥을 스치듯, 용의 손이 구름을 이끌 듯 마른 모래를 때렸다. 용은 허공에 구름을 수놓고 휘감아 몸을 숨겼다.
구름이 일었다.
모래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운산이 운해황룡을 이용해 적발라의 주변을 회전했다.
그의 주변으로 원을 그리며 모래먼지가 차오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로도 차오르는 모래먼지를 보며 적발라가 미소 지었다.
“제법 머리를 쓰는군.”
하지만 눈에 안 보인다고 하여 적의 위치를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운산이 무슨 수를 쓰려고 하는 것인지도 알아버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정말 문주다운 생각이야. 실수를 한 것이 있다면…….”
적발라가 손을 들었다.
휘이익?
그의 손이 향하는 곳을 향해 단번에 붉은 머리카락이 내달렸다. 허공을 질하는 머리칼, 그것이 노리는 것은 황룡문도들이었다.
적발라는 모래먼지가 눈앞을 가리는 와중에도 놓치지 않고 이동 중인 황룡문도들을 발견한 것이다.
운산이 그것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크윽.’
그의 몸이 어느샌가 나타나 적발라의 공격을 막아낸다. 손아귀가 찢어질 듯 저릿하게 하는 공격. 적발라가 씨익 웃는다.
운산이 조금씩 멀어지는 황룡문도들을 바라보았다.
‘미안하네, 사제.’
운산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검 위로 검강이 화르륵 타오른다.
황금빛 서린 어린 불꽃. 적발라가 그것을 보고 이채를 띠었다.
“굉장하군, 강기라니. 나 역시 그 정도 수준은 보여줘야겠구먼.”
적발라의 머리를 붉은 강기가 휘감는다.
그리고 수십 발에 이르는 강기의 머리칼이 운산을 향해 쏘아졌다.
‘아무래도 쫓아간다는 약속, 못 지킬 것 같아.’
카라락?
허공중에 강기와 운산의 검이 얽혀들었다. 검이 빙글 회전한다. 향하는 곳은 적발라의 심장. 무서운 찌르기가 섬전과 같은 속도로 쇄도했다.
단번에 적발라의 심장을 찌르고 들어가려는 찰나, 그 사이로 적발라의 머리카락이 끼어들었다.
카앙?!
아주 미세한 틈을 비집고 들어온 머리칼 다발이 정확하게 운산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마치 공격과 같다.
붉은 강기와 황금빛 강기가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하고, 운산의 머리 위로 힘에 겨운 듯 핏줄이 도드라졌다.
“으으윽.”
검을 쥔 손아귀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잊었나? 내가 통제하는 강기는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촤악?
허공이 갈리는 소리가 나며 머리칼이 운산의 허리를 노렸다. 찔리더라도 죽지는 않을 위치. 하지만 움직임이 상당히 불편해질 것이다.
운산이 온 힘을 다해서 허리를 비틀었다.
향하는 곳은 반대편. 허리를 비틀었기 때문에 적발라의 심장을 노리던 검도 회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네.”
적발라의 손톱이 뾰족하게 서서 날아왔다. 운산이 눈을 번쩍 빛내며 손을 마주 뻗었다.
황룡문의 조법 중 하나인 금룡추뢰(錦龍追雷)가 펼쳐졌다.
황금빛 서기를 휘감은 용이 번개를 쫓는다.
쾌(快)의 묘리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 조법이었다. 손톱역시 날카롭고 품고 있는 기세 또한 굉장했기 때문에 거대한 나무둥치라도 단번에 부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적발라의 공격 역시 그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었다.
두 개의 조법이 충돌한다.
캉?
반발력이 운산의 몸을 타고 들어오고, 그 반발력을 해소하기도 전에 수발에 이르는 붉은 머리카락이 운산을 찔러 들어왔다.
“커억!”
운산이 검면을 이용해 그것을 막아내었지만 검은 흔들리지도 않았고, 그대로 충격이 복부를 향해 넘어왔다.
격산타우(隔山打牛).
산을 이용해 소를 친다. 검을 쳤으나 검에는 일체의 여력도 소비하지 않은 채로 운산의 가슴을 후려친 것이다.
“캐애액!”
운산이 뒤로 날아가며 비명을 질렀다. 주변으로는 점점 적이 모여들고 있었으나, 적발라의 얼굴을 알아본 것인지 움직이지는 않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까마귀와 같다. 상대가 지쳐 쓰러지기를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적발라가 운산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더 해볼 텐가?”
운산이 검을 지팡이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나는 죽지 않았어.”
적발라가 혀끝을 찬다.
“쯧쯧, 이쪽도 사정이 있는데 말이지, 자네는 너무하는구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적발라. 운산이 적발라를 노려보던 중에 피를 왈칵하고 쏟아냈다.
“웨에엑!”
피가 한 사발이나 토해진다.
색이 거무죽죽한 것이 죽은피가 분명했다. 중간 중간 내장조각도 섞여 있는 것이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듯했다.
운산이 자신의 떨리는 손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한 시진?
반 시진은 견딜 수 있을까.
하다 못해서 일각만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자 눈마저 흔들리는 것 같다. 운산이 애써 자신의 눈을 비볐다.
“사형!”
저 먼 곳에서 우천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자신이 오지 않자 우천이 직접 달려온 모양이다.
아무래도 황룡문도들은 무사히 이곳을 벗어난 듯하다.
운산이 온 힘을 다해 우천을 향해 소리쳤다.
“사제! 돌아가!”
우천이 무어라 소리치는데, 다른 이들의 외치는 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는다.
“죽여 버려! 저놈이 오지 못하게 죽여 버려!”
“저놈의 목에도 황금이 걸려 있다! 죽여라!”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적발라가 가볍게 발을 굴렀다.
쾅?
진각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우천의 몸이 흔들렸다. 다른 사파인들은 갑작스러운 적발라의 진각으로 인해 모두 조용해졌다.
“길을 열어줘. 그 편이 더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육적께서도 그걸 원하고 계시니까.”
적발라의 명을 받은 사파인들이 길을 열어주고, 우천이 대번에 그 길을 쫓아 운산을 향해 달려왔다.
우천이 운산을 흔들었다.
“사형, 사형, 괜찮습니까?”
운산이 고개를 들어 우천을 마주 본다.
“왜 돌아온 것이냐.”
우천이 시큰거리는 코끝을 한번 쓸었다. 손에 검을 쥔 채로 그가 적발라를 노려보았다.
“여기 사형을 버려두고 가면 전 대사형한테 정말 뭐 털리도록 처맞을 겁니다.”
“여기 있으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웨엑!”
이번에도 피를 토해낸다. 세 번이나 연달아 피를 토해내자 머리가 어질어질하기는 했으나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죽은피가 몸을 빠져나가서 생긴 일시적인 현상이다. 빨리 요상을 하지 않으면 언제고 죽은피는 다시 차오를 것이다.
“염라대왕보다 대사형이 무서우니까 말이죠.”
우천이 씨익 웃었다. 지금 이 상황이 농을 던질 만큼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우천은 농을 던져 보였다.
운산이 웃었다.
확실히 그들의 사형이 염라대왕보다 무서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 염라대왕이 아무리 무서워 봐야 대사형만큼 무섭겠나.”
“차라리 여기서 뼈를 묻지요.”
운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좀 나아진 틈을 타서 자세를 바로잡고 적발라를 노려보았다.
적발라가 손뼉을 몇 번 마주쳤다.
“대단한 우애로군. 사형과 사제의 사이가 참 좋아. 하지만 걱정은 하지 말게. 죽을 일은 없을 테니.”
인질로 잡으려는 것이다. 우천이 적발라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냥 죽여, 개새끼야! 안 그러면 혀를 깨물고 죽어버릴 테니까.”
적발라의 미간이 꿈틀하며 단번에 공격이 날아왔다. 우천이 검을 사선으로 세워 적발라의 공격을 튕겨낸다.
손이 얼얼하기는 했으나 검을 놓칠 정도는 아니었다.
“사제 쪽은 입이 험하군. 사형에게 좀 배워야겠어.”
그 말에 운산이 웃었다.
“지랄하네. 개자식아, 내 입도 만만치 않게 험하거든.”
적발라의 미간이 꿈틀했다. 우천 때문인지 운산 역시 여유를 찾은 것 같다.
“그렇군. 사형제 모두에게 교육이 필요하겠군.”
운산과 우천이 단 한 마디로 적발라의 말을 받아쳤다. 굉장히 간단하고 짧은 말이었다.
“염병, 지랄을 한다.”
제5장 지금까지 즐거웠냐?
“적발라가 늦는군.”
삼적이 전방을 주시하며 말했다. 적발라의 실력은 믿을 만했다. 한데 이렇게 늦어지자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삼적의 말에 육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역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실력이라면 단번에 모든 황룡문도들을 죽이고 난신의 사형제만 인질로 쓰기 좋게 잡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