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83화 (83/175)

# 83

강기가 단번에 운산의 몸을 향해 날아들었다.

“사형!”

우천이 운산을 부르지만, 운산은 아직 채 빠져나오지 못했다.

운산의 눈에 검강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그의 머리가 팽팽 회전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검기로는 검강을 막을 수 없다. 막아낸다 하더라도 속이 뒤틀리는 내상과 함께 검이 부서질 것이 분명했다.

검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같은 검강뿐. 운산의 몸이 움직였다.

그것은 머리로 생각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다. 몸이 반응했을 뿐.

그의 검 위로 검기가 솟아오르고, 검강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몸의 움직임에 머리가 따랐다.

‘더 단단하게, 더 강하게.’

그의 의지가 몸을 순회하고, 단전을 휘감았다. 태청신단으로 늘어난 내력이 의지에 감응해서 솟구친다.

화라락?

검으로 집중되는 검기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검강이 검기에 닿았다.

패웅마가 쾌재를 불렀다.

“넌 죽는다!”

하지만 r 순간, 거대하게 덩치만 불리던 검기가 환한 빛을 터뜨리며 압축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아?’

환한 빛이 터져 나오는 순간, 패웅마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감지했다. 분명 상대의 것은 검기가 분명한데, 검강이 더 이상 파고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리가 없다.

무림의 상식으로 검기로는 검강을 절대로 막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그 일반적인 상식에 반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패웅마가 소리쳤다.

운산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힘이 든 가운데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이 안 되는 일이 아니야.”

마침내 빛이 사라지고, 운산의 검 위에서 찬연히 빛나는 정제된 내공의 결정체, 황금색 검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강기(?氣).

검 위에서 솟구쳤으니 검강이라 해야 할 것이다.

운산이 검강을 뽑아낸 것이다. 그러자 꽤 많을 것이라 자부했던 내공이 쭉쭉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며칠간 이어진 전투로 인해서 피로가 누적된 탓도 있었지만, 검강 자체가 소비하는 내공이 워낙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너는 성장을 했다는 말이냐!”

패웅마가 놀람을 숨기지 못하고 외쳤다. 그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분명 강기를 사용하는 자신이 훨씬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놈이 이렇게 쫓아온 것이다.

“원래 성장은 위기 중에 오는 법이지.”

운산의 몸의 떨림을 숨기며 말했다.

몸의 부담이 너무 크다. 체화되지 않은 강기를 지금 당장 장시간 동안 유지하는 것은 무리였다.

단번에 끝을 보아야 한다.

운산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속전속결.’

네 글자를 뼈에 새길 듯 입으로 곱씹는다.

“하나 아직은 내가 이긴다!”

패웅마는 잠시 당황했지만, 자신이 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같은 강기지경의 고수라고 하더라도 급이 있는 법이다.

강기지경에 들어선 것도 운산에 비하면 자신이 오래되었고, 경험 역시 자신이 월등히 많다.

그의 거검이 크게 휘둘러진다. 느리기는 했지만 주변의 바람이 휩쓸려 나갈 정도의 패도적인 움직임. 운산이 웃었다.

“아니, 내가 이겨.”

같은 강기라면 놈의 강기를 막을 수 있을 뿐만이 아니다. 상처 역시 입힐 수 있다.

이전에 말했다시피 움직임은 운산이 훨씬 빨랐다. 운산의 몸이 놈의 앞에서 대번에 사라졌다.

“허엇!”

패웅마가 대경실색하며 거검을 회수했다. 운산의 검과 놈의 거검이 충돌하고, 운산의 검이 튕겨져 나갔다.

그 순간 운산은 빠르게 검을 회수해 다시 공세를 다잡았다.

하지만 반대로 패웅마의 거검은 타고한 신력으로도 쾌(快)를 추구하지 못할 정도로 패(覇)에 집중된 패검. 공수의 전환이 빠를 리가 없다.

그의 거검이 채 반도 회수되기 전에, 운산의 공세가 놈을 향했다.

“말했잖아. 내가 이겨.”

운산의 검강이 놈의 목을 벴다.

차악?

검강으로 단번에 뼈까지 잘라 버린 놈의 목이 높이 솟구치고 피가 허공에 뿌려졌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운산이 거침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빨리 빠져나가자!”

제4장 염병, 지랄을 한다

“뒤쪽이 소란스럽군.”

삼적이 무신경한 눈으로 황룡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의 말에 육적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삼적과 육적의 시선이 적발라를 향했다.

한꺼번에 칠적 중 둘의 시선을 받은 적발라의 몸이 움찔 했다.

하지만 곧 그는 노련한 적성의 일원답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원하는 바를 알아오겠습니다.”

육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적발라의 몸이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진다. 물론 삼적과 육적에게는 훤히 보이는 움직임이었으나, 어지간한 고수가 봤다면 눈으로 좇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와 감탄을 토할 정도의 무리가 가미된 움직임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본 삼적이 육적에게 말했다.

“쓸 만한 수하로군.”

육적이 고개를 끄덕인다. 적발라를 곁에 두고 있는 것은 그의 무공 때문이 아니다. 그가 쓸 만하다고 육적에게 판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발라는 무공 역시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그 점은 꽤나 육적으로서도 흡족해하는 바였다.

곧 허공이 스르륵 흔들리며 적발라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알아왔습니다.”

“말해보게.”

육적의 말에 적발라가 북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간략하게 요약하여 정했다.

적발라의 말을 모두 들은 육적이 너털 웃음을 터뜨린다.

“허허허, 의표를 찌른다는 게 이런 것인가 보군. 꽤나 재미있는 녀석들이야. 이봐, 삼적. 자네는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육적의 물음에 삼적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깎지 않아 자란 수염의 까끌까끌한 촉감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난신이라는 놈의 사형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여도 좋아.”

그 말에 육적이 고개를 끄덕이며 적발라를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하는군. 번거롭겠지만 자네가 좀 수고를 해주었으면 하네.”

육적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적발라가 고개를 크게 숙였다.

“존명!”

육적의 명을 받은 적발라는 단번에 북문을 향해 이동했다. 북문 쪽의 포위망이 다른 쪽에 비해서 두텁지 않다고는 하지만, 고작 팔십의 인원으로 단번에 뚫고 나갈 정도는 아니었던지라 황룡문의 문도들은 조금씩 움직이는 와중에도 여전히 고전하고 있었다.

그가 전장속에서 눈을 빛내며 황룡문도들을 노려보았다.

‘난신의 사형제들을 제외하고 모조리 사살한다.’

적발라의 눈이 붉게 빛난다. 그의 단전에서 기운이 일었다.

기운이 전해진 붉은 머리카락이 꿈틀거린다.

적발라가 익히고 있는 무공은 중원의 무공이 아니다. 적성 내부에서도 몇 없다는 서방의 무공. 서방의 무공 중에서도 특이하게 머리칼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경지에 이를 경우 그 길이가 자유롭게 늘어날 뿐만 아니라 강도가 강기와도 비견될 정도의 무공이다.

적발라의 머리카락이 쭈욱 길어졌다.

그 끝은 날카롭게 세워져 있어 마치 창의 끝을 보는 것만 같았다.

머리칼의 끝이 예리하게 빛나는 순간!

푸욱?

단번에 황룡문도의 하나의 가슴을 꿰뚫었다.

“커억!”

가슴을 꿰뚫린 이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하지만 난전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 다른 이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적발라가 씨익 웃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다시금 꿈틀거렸다.

운산이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다섯 명째 황룡문도가 쓰러졌을 때였다.

또 한 명의 황룡몬도가 가슴이 뻥 뚫린 채로 죽은 것이다. 운산이 우천을 불렀다.

“사제!”

그의 두 눈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벌써 다섯 명이 누군가에게 죽을 동안,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고수가 그들을 노리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운산의 부름을 받은 우천이 단번에 달려왔다.

“사형, 무슨 일입니다?”

운산이 긴장한 채로 검을 꾹 쥐며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온몸의 감각 역시 완전히 개방하여 다가오는 기척을 모두 감지해 내었다.

“주변에 누군가가 있다. 그것도 아주 높은 경지의 고수가.”

운산의 눈으로 가슴이 뻥 뚫려 죽은 황룡문도를 가리켰다. 우천이 운산의 시선을 좇아 주변을 확인하자 그와 같은 수법으로 죽은 이가 넷이나 더 있다는 사실이 파악되었다.

그제야 우천 역시 긴장감으로 침을 꿀꺽 삼킨다.

운산의 감각은 매우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강기지경에 오르면서 한층 빛을 발했다. 이전의 기감과 감각에 비해서 진일보한 것이다.

감각과 기감이 넓게 퍼지며 황룡문도들을 감쌌다.

황룡문도들을 향해 접근하는 모든 공격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휘이익?

그리고 운산의 기감에 대번에 걸려드는 기이한 움직임 하나. 허공을 날아든 공격이었는데, 뱀과 같이 꿈틀거리면서 빠르기는 섬전과 같은 공격이었다.

운산이 그것을 향해 검을 뻗었다.

카앙?

검과 충돌하는 순간 붉은 실 뭉치가 운산의 검을 휘감았다.

“사형!”

우천이 그것을 보고는 대번에 운산을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운산은 우천을 볼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기이한 병기를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공격을 막아?”

스르륵?

검을 묶고 있던 붉은 실타래가 소리와 함께 풀려 나갔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 그것은 실타래가 아니었다.

붉디붉은 머리카락.

그것도 아주 풍성한 머리카락 이었다.

마치 사자의 갈기를 보는 듯하다. 붉은 갈기를 휘날리는 수사자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자, 고수다.’

운산이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그의 입에서 유부의 소리와 같은 음성이 흘러나온다.

“나는 적발라다.”

휘이익?

바람이 갈라지며 붉은 머리가 사방으로 쏘아졌다. 노리는 것은 운산과 우천. 하지만 운산과 우천을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적발라의 눈에 살기가 담겨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무심함 그 자체의 눈. 적당히 공격했으니 막을 수 있다면 막으라고 말하는 듯한 눈이었다.

“크윽.”

우천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반면에 운산은 강기지경에 올라 우천에 비해서는 쉬이 적발라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타앙?

운산의 검과 충돌한 적발라의 붉은 머리카락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적발라가 희미하게 미소 지어보였다.

“사형이라고 그래도 위쪽이 제법이군.”

하지만 운산은 적발라를 향해 감히 미소 짓지 못했다.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손을 타고 전해진 반발력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도 한번 막아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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