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폭풍전야는 그야말로 바람 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우천이 황룡문의 담벼락을 타고 돌며 밖을 한번 살피고 돌아왔다.
“사제, 좀 보고 왔어?”
운산의 말에 우천이 고개를 끄덕인다.
“북문 쪽이 가장 경계가 허술하더군요. 그쪽을 잘 이용한 다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습니다.”
우천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을 타고 긴장이 흐른다. 근육이 수축과 팽창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운산이 근육의 긴장을 풀기 위해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리고는 자신의 눈앞에 모인 황룡문도들을 바라본다.
“그럼 작전대로 하는 겁니다.”
그들이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작전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불화살을 날리는 일이었다.
기름에 먹인 천을 화살에 감싸서 불을 붙인다. 그리고 순서대로 불이 붙은 불화살을 날렸다.
동이 트기 전, 가장 어두운 어둠의 중의 허공을 불화살이 갈랐다.
피융?
기름을 듬뿍 먹인 화살에서 떨어진 불은 바닥에 내려서는 순간 활활 번져 나간다.
“으아아악!”
사파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불에 대항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수든 고수든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던 불의의 일격에 당황한 것이다. 그 틈을 노려서 운산과 우천을 필두로 한 황룡문이 움직였다.
피비비빙?
연달아 불화살이 쏘아지고, 불화살에 맞은 이들이 비명을 질러대었다.
“내 몸이, 내 몸이 타들어간다!”
“으아아악! 불, 불이 내 다리에 붙었어!”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으나 운산과 우천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돌진했다.
그들의 몸이 화마 속으로 말려들어 갔다.
검을 휘둘러 화염을 비집고 들어가 놈들과 싸운다. 당황 속에 빠져 있는 적들을 베었다.
불화살을 쏘던 황룡문도들도 제각기 검을 뽑아 들었다.
직도황룡(直途黃龍)!
운산이 눈앞을 막는 적을 단번에 여덟 조각으로 토막 내버렸다.
지금은 잔혹해져야 한다.
적이 나를 우습게 보지 않도록 더욱 거대하게 몸집을 부풀려야 한다.
일말의 자비도 두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강호다.
운산은 자운에게서 배운 것을 상기했다. 내가 맹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적을 잡아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잡아먹힌다.
운산이 주먹을 꾹 쥐었다.
콰직?
그의 주먹에서 염룡교의 초식이 뿜어지고, 화의 기운에 이끌린 불덩이가 운산의 주먹을 타고 돌았다.
그의 주먹이 그대로 사파인들의 얼굴에 작렬했다. 황상과 동시에 두개골이 으깨져 바닥을 구르는 사파인들. 우천 역시 망설임없이 적을 베고 있었다.
“이노옴!”
꽤 고수로 보이는 이가 운산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 순간, 운산의 보법이 일변했다.
휘리릭?
회전하며 한없이 가벼워지는 경신술, 그리고 그것에 맞는 보법을 이용해 운산의 몸은 적을 향해 빠르게 파고들었다.
적의 거도가 허공을 가르고, 운산의 움직임에 놈은 헛바람을 들이켜며 대경한다.
“허엇!”
놀라기 전에 반응을 했다면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운산의 검은 쾌속무비했다.
단번에 놈의 허벅지를 베어내고, 놈이 고통으로 바닥에 주저앉은 틈을 타서 등에 칼을 박았다.
삐죽 튀어나온 검이 정확하게 심장을 뚫고 가슴팍으로 올라온다.
운산이 검을 뽑자 피가 분수처럼 튄다.
사방에는 불이 가득하고,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하나 아비규환에 빠져 있는 것은 황룡문도들이 아니었다. 갑자스럽게 번진 불에 넋을 잃은 사파인들일 뿐.
운산이 숨을 들이쉬었다. 매캐한 탄내가 코를 타고 들어왔다.
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빠르게 돌파해야 한다.
북문의 포위망이 가장 약하다고는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 적들이 몰려들 것이다. 그전에 빠져나가 최대한 거리를 벌려야 한다.
“사형!”
우천이 운산을 불렀다.
“간다!”
운산이 기합을 넣듯 크게 답하고는 눈앞의 적을 베어내었다. 그의 검에서 검기가 주륵 솟구친다.
싸움은 최대한 피하고 가능하다면 속전속결로 끝내면서 전진해야 한다.
벌써부터 다른 곳에 있던 적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놈들이 탈출한다! 잡아라!”
운산이 이를 악물었다.
검풍이 날아든다. 운산이 검기가 묻어나는 검을 이용해 검풍을 튕겨내었다.
그리고는 단번에 달려가 검풍을 날린 이의 얼굴을 베어버린다.
얼굴에 사선으로 핏물 자국이 생기고, 놈의 몸이 허물어졌다. 운산이 발끝에 내공을 집중하여 놈의 몸을 발로 찼다.
바닥으로 허물어지는 바람에 불이 옮겨 붙은 시체가 발길질에 휠휠 날았다.
시체가 적 두셋 위에 떨어진다.
“으아악!”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시체에 그들이 기겁한 듯 비명을 질렀으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그들의 몸 위로 불이 옮겨 붙은 것이다.
운산은 그 방법을 이용하여 시체가 아닌 불이 붙은 나무더미 등등을 마구잡이로 발로 찼다.
그의 발길질에 불이 점점 심하게 번져 나간다.
이리저리 산불 맞은 멧돼지처럼 뛰어다니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고, 계속해서 혼란이 커졌다.
운산이 혼란을 크게 만든 후 빠르게 발을 놀려 우천을 향해 다가갔다.
“빨리 나가야겠군요.”
우천의 말에 운산이 고개를 끄덕인다.
“누구 마음대로 이곳에서 나간다는 말인가?”
얼굴에 흉측하게 칼자국이 있는 이가 그들의 앞에 나서며 말했다. 우천이 그를 알아보고는 소리쳤다.
“패웅마(覇雄魔)!”
타고난 거력이 곰과 같아 그 신력으로 한 자루의 거검을 자유롭게 휘두르는 사파인.
운산과 우천이 패웅마를 노려보았다.
패웅마는 강기지경에 오른 고수, 그가 뒤를 흘깃 바라본다. 운산과 우천이 발걸음을 멈추자 다른 황룡문의 문도들 역시 그들의 뒤에 멈춰 서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운산과 우천이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신호를 주고받았다.
운산의 신호를 받은 우천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 순간 운산의 몸이 튀어나갔다.
섬전과 같은 움직임. 뒤이어 펼쳐지는 것은 우천의 운해황룡이다.
마른 모래가 일어나며 운산과 우천의 모습이 사라졌다.
섬전과 같은 움직임으로 패웅마의 주변을 돌던 운산이 대번에 검을 휘둘렀다.
노리는 것은 몸의 주축이 되는 다리, 다리의 힘줄을 잘라내려는 생각이었다.
패웅마의 거검이 움직인다.
카앙?
타고난 신력을 통해 일어난 반발력이 운산의 손을 비집고 들어왔다.
패웅마가 막아낸 것이다.
반발력 때문에 운산이 모래먼지 속에서 신음을 흘렸다.
“크윽!”
“거기 있었구나!!”
그 소리를 놓치지 않은 패웅마가 단번에 몸을 움직여 달려들었다.
운산이 검을 이용해 패웅마의 거검을 막았다. 하지만 그의 두꺼운 근육에서 나오는 힘은 놀라울 정도의 것이라서 쉬이 막아낼 수가 없다.
쐐애액?
카앙?
운산의 검이 한순간 부러질 듯 휘청거렸다.
그의 몸이 날듯이 멀리 떨어진다. 거력으로 인해 몸이 날아간 것이다.
경공술을 이용하여 날아가던 도중에 몸을 가볍게 하지 않았다면 낭패를 보았을 것이 분명하다.
“우천!”
운산이 소리치자 패웅마의 뒤쪽 모래안개가 갈라졌다. 검기를 뿜어내며 우천이 튀어나왔다.
“이놈이!”
패웅마가 대번에 두로 돌며 검을 휘둘렀다. 단전에서 솟구친 기운이 패웅마의 거검을 타고 흘렀다.
우천의 눈이 빛났다.
초와 초를 연결해 불을 이어 붙이는 듯한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이어지고, 우천의 검이 패웅마의 거검과 충돌한다.
거대한 폭음은 울리지 않았다. 패웅마의 힘이 이화접목의 묘리에 따라 운산의 검으로 흘러들었다.
그 거대한 힘이 분출된다.
쾅?
패웅마의 몸이 한순간 휘청한다. 그의 손에 들린 거검에 금이 가 있다.
패웅마 본신의 내력과 우천의 내력이 합쳐져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놈, 한 수 재간을 부리는구나.”
놈이 우천을 찾으며 으르렁거렸으나 이미 우천은 모래먼지 속으로 모습을 감춘 후였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운산이었다. 놈이 운산을 향해 웃음을 흘렸다.
“그대로 베어주마.”
위이잉?
그의 거검이 진동하고, 내력이 타고 흐르며 강기가 형성되었다.
거대한 검강, 그것을 보는 순간 운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검강과의 정면승부는 장담할 수 없다. 운산과 우천이 모두 검기지경에 오르기는 했으나 검강은 그보다 더 높은 경지.
바위라 하더라도 무 자르듯 잘라 버릴 수 있는 것이 검강이 아니던가.
운산의 표정을 읽은 패웅마가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두려운 것이냐?”
운산이 마음을 다잡으며 고개를 흔든다.
“검강이 상대하기 어려울 뿐이지 상대를 못할 정도는 아냐.”
운산의 말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지금까지 검강지경에 올라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고 적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가.
그런 패웅마의 자존심에 운산이 정면으로 대결을 신청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 어디 한번 상대해 보아라!”
부웅?
거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운산이 감각을 개방하고 집중했다. 검을 봐야 한다. 보고서 피해야 한다.
검강은 검기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천의 이화접목이라 할지라도 검강에 담김 힘을 모두 해소해 내지는 못할 것이다.
운산의 눈에 거검이 움직이는 것이 들어온다.
운산이 몸을 낮게 눕혔다. 그리고는 발끝으로 바닥을 때렸다.
콰앙?
거검이 운산의 옆에 내리꽂히고 돌조각이 튀어 올랐지만 운산에게는 피해가 없다. 회전을 해 돌조각을 튕겨냈기 때문이었다.
그가 단번에 튀어나간다. 거검과 신력을 이용한 패도적인 공격은 패웅마에게 뒤질지 모르나, 속도가 뒤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운산과 우천의 움직임은 패웅마에 비해서 한 수 앞선다고 할 수 있었다.
단번에 품으로 파고든 그가 검을 들었다.
“네 뜻대로 될 줄 아느냐!”
패웅마가 무릎을 움직여 운산의 머리를 노려오고, 운산이 머리를 비틀었다. 그 바람에 그의 검이 패웅마의 몸에서 빗나갔다.
머리와 함께 몸이 틀어지며 검의 각도가 바뀌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는 바닥을 구르며 패웅마의 다리를 움켜잡았다.
“사제!”
큰 목소리로 우천을 부르는 운산. 운산의 외침을 들은 우천이 운해황룡 사이에서 나타났다.
거대한 구름의 바다를 가르고 우천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검에서 금색의 검기가 빛나고,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패웅마의 좌수가 잘려 나간다.
그 엄청난 고통에 패웅마가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이놈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 갈아 죽일 놈들!!”
놈의 분노가 하늘 끝에 닿은 듯 검강이 묻어나는 검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마구잡이로 이루어지는 공격. 우천이 그 공격에 훌쩍 물러났다. 하지만 패웅마의 다리를 부여잡고 있던 운산은 몸을 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