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80화 (80/175)

# 80

왜 자운이 싸우면서 여유를 잃지 않으려 했는지 절실히 느껴진다.

“글쎄? 흐흐. 확실한 것은 너는 내 손에 죽는다는 거다!”

놈의 창이 빠르게 쏘아졌다.

회전까지 가미된 창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한 발의 쏘아진 화살과 같다.

“크윽.”

운산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었다. 최선을 다해서 비틀어야 한다.

그의 볼을 창이 스치고 지나갔다.

파샷?

옅게 상처가 생기며 피가 흘러내렸다. 신경을 쓸 정도는 아니었으나 완전히 피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귀혼객(鬼魂客) 우무청이다. 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귀혼객이라고 한다면 근처 사파에서 꽤 이름을 날리는 고수다. 당연히 그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못 들은 척했다.

“아니, 못 들어본 걸 보니 이제 갓 강호에 나와서 본인이 직접 지은 무림명인가 보군.”

운산의 말에 귀혼객이 발끈했다.

그의 근육이 연달아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놈이 손을 뻗었다.

운산의 몸이 흐릿하게 흔들리며 낮게 바닥을 스쳤다.

철판교의 수법. 눈 바로 위로 놈의 창이 지나간다. 한 치만 높았더라면 코를 베일 뻔했다.

운산의 몸이 용수철처럼 튕기듯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바닥을 밟았다. 묵직하게 이어지는 보법 때문인지 흙바닥에 선명하게 족적이 남았다.

이어지는 것은 무게를 실은 가로 베기. 횡으로 베는 운산의 검에 망설임이란 없었다.

자운에게 배우지 않았던가.

무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맹수가 되어야 한다.

적을 위압할 정도의 맹수가 말이다. 최대한 크고, 최대한 강하게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절대로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다.

캉?캉?

검과 창이 연달아 여러 번 충돌했다. 그 수는 십여 합이 넘어갔다.

충돌이 오가는 동안, 운산은 빠르게 눈을 굴려 전장을 살폈다. 확실히 황룡문도의 숫자가 조금 더 많았기 때문에 전장을 압도하는 것은 그들이었다.

한 명에게 두셋이 달라붙는 경우도 있어 적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제인 우천 역시 검을 들고 적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운산이 다시 눈앞의 적을 노려보았다.

귀혼객 우무청.

‘일단은 이자를 제압해야겠군.’

대충 살펴보니 이번에 들어온 자들 중에 가장 고수가 이자다. 이자를 제압하면 나머지는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파라락?

그의 검이 춤을 추었다.

단번에 검기 다발이 일어나고, 귀혼객의 창을 때렸다.

창과 검이 연달아 충돌하고, 귀혼객의 창날에서 기다란 창기가 일어나며 운산의 검기를 효과적으로 막아낸다.

원을 그리듯 회전하는 창과 검이 얽혀들었다.

따다다당?

대장간에서 들릴 법한 소리와 함께 검기와 창기의 충돌로 불꽃이 튀었다.

파바밧?

운산이 보법을 묵직하게 하고 무게중심을 앞으로 모랑ㅆ다. 그의 다리 가득 모인 힘이 팔을 타고 흘러 검으로 향했다.

묵직하게 뻗어나는 검, 검이 창을 누른다.

카라락 하고 듣기 거북한 소리와 함께 창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그 회전에 묵직하게 창신을 누르던 운산의 검이 튕겨져 나갔다.

힘의 반동 때문인지 운산의 신형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운상이 흔들리자 귀혼객이 단번에 젖히고 들어왔다. 거대한 창을 앞세운 저돌적인 움직임. 그 모습은 흡사 멧돼지가 이를 앞세우고 달려드는 듯했다.

‘용린벽!’

운산이 온 힘을 칼끝에 집중했다. 그리고는 사력을 다해 용린벽의 초식을 그려낸다.

자극된 단전에서는 힘이 끓어오르고, 그 힘이 수증기처럼 뿜어지며 용린벽의 초식에 맞추어진다.

콰앙?

용린벽과 충돌한 귀혼객의 몸이 휘청한다.

하지만 완전하지 못한 용린벽이었던 탓인지 그 적은 충격만으로도 단번에 부서져 버리고 만다.

‘대사형의 용린벽은 완벽했다.’

세차게 강기로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것이 자운의 용린벽이었다.

한데 운산 그 스스로가 펼쳐 낸 용린벽은 육탄 공격에 막혀버린 것이다.

‘이래선 안 돼’

운산이 마음을 다잡을 때, 신형을 회복한 귀혼객이 냅다 창을 찔러 들어왔다.

쑤욱 허공을 밀어내는 창법이 귀혼객의 손에서 펼쳐진다.

“다시 막아낸다!”

운산이 기세 좋게 기합을 불어넣으며 양손에 힘을 가득 모았다.

두 손 가득 뻗어 나간 진기가 손바닥에서 뭉쳐지고, 운산이 바닥에 칼을 박아 넣었다.

푸욱?

그가 쌍장을 교차하여 뻗어낸다.

황룡문의 장법! 풍룡신탄이 펼쳐진 것이다.

물론 자운이 펼친 풍룡신탄처럼 거대한 와류를 형성하며 용권풍을 이룬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못했지만,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모여든 바람이 내공을 품고 날아갔다.

펑펑?

날아간 바람은 귀혼객의 창과 충돌해서 폭발하고, 그 때문인지 귀혼객이 움찔움찔했다.

그 틈을 노리고 운산이 대번에 검을 뽑아 들었다.

“치잇! 이놈이 약은 수를 쓰는구나.”

풍룡신탄 때문에 흙먼지가 날리며 눈앞이 가려진다. 그것을 보고는 귀혼객이 두 손에 잡은 창을 이용해 바람을 불러왔다.

위위위윙?

창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바람을 불러오고, 불어온 바람이 창을 쫓으며 먼지를 몰아내었다.

하지만 운산의 신형은 이미 정면에 없다.

운산이 빙글 돌아 귀혼객의 뒤로 향한 것이다. 귀혼객이 뒤를 쳐다보지도 않고 기다란 창대를 이용해 휘저었다.

까앙?

그 공격에 휘말린 운산이 검으로 창대를 막아내며 물러섰다.

“흐흐흐, 네까짓 게 머리를 써봐야 그정도지.”

운산이 뒤로 물러서는 틈을 타서 놈이 몸을 돌렸다.

그의 창이 일곱 갈래로 갈라지며 찔러들어 온다.

칠독사창(七毒蛇槍).

모두가 먹이를 탐하는 독사와 같이 휘어지며 들어온다. 창끝은 지독한 독을 품고 있는 독사의 어금니마냥 매섭게 빛났다.

‘막아낼 수 있을까?’

피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었다. 단 한 번에 일곱 곳을 공격하는 창법을 지금 운산의 보법으로 피해낸다는 것은 무리였다.

거기다 용린벽은 단순한 육탄 돌격에도 깨어진 바가 있다. 그런데 저런 고급의 창술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운산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지금 당장 수를 쓰지 않으면 위험할 것이다.

‘막아낸다.’

운산이 의지를 굳혔다.

굳혀진 의지는 온몸을 순회하여 단전으로 향하고, 단전이 내공을 일깨운다.

심장 박동 소리가 거세지고, 고동이 점차 커졌다.

그리고 단전에서 솟구친 내력이 운산의 두 팔로 향했다.

태청신단인지 태청신떡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먹은 덕분에 내공이 급격하게 향상되었다.

그래서인지 어지간히 싸워도 내공이 부족한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하압!”

운산이 기합성을 터뜨렸다. 그의 검이 용린벽의 초식을 그려낸다.

거북의 등껍질처럼 용의 비늘이 촘촘히 생겨난 용린벽이 칠독사창과 충돌했다.

쾅?

첫 번째 충돌, 그 충돌에도 용린벽은 굳건하게 버티고서 운산을 지켜주었다.

이윽고 두 번째 충돌이 이어졌다.

쾅?

이번에도 역시 용린벽은 굳건하게 운산의 앞을 막아내고 있었다. 운산의 의지가 전해진 용린벽이다. 그리 쉽게 부서질 리가 없다.

이어진 세 번째와 네 번째 역시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었다.

쾅?쾅?

문제가 생긴 것은 다섯 번째였다. 아무리 강한 의지를 품고 내공을 움직여 세운 용린벽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미숙하다.

쾅?

폭음과 함께 용린벽이 살짝 떨렸다. 이어지는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

운산의 머릿속에서 의문이 들었다.

‘약해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곧 운산은 약해지려는 마음을 스스로 다잡았다.

견뎌낼 수 있다. 견뎌내고 버텨야만 다음 공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운산이 온 힘을 다해 용린벽에 의지를 집중했다.

쾅?

여섯 번째 공격, 용린벽이 크게 휘청했다. 이제 남은 공격은 한 번이지만, 용린벽에 남은 떨림은 그치질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판가름이 될 일곱 번째 공격이 이어졌다.

콰앙?!

자욱하게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시야를 가리는 흙먼지. 귀혼객으로서도 그 먼지 사이로 결과를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확실한 것은 무언가 느낌이 들기는 했다는 것이다.

그가 창을 움직여 이전과 같이 바람을 불러왔다.

모래먼지가 걷히고, 눈앞에 핏방울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공격이 성공했군.’

그가 희열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 때문인지 그의 시야에 운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의 앞에 남은 핏자국은 돌아서 귀혼객의 뒤를 향해 있었고, 귀혼객이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푸욱?

자신의 가슴팍을 찌르고 들어온 기다란 검의 날. 가슴팍에서 솟구친 검끝이 귀혼객의 눈에 들어왔다.

“이, 이건…….”

무언가 말을 하려 했는데, 피가 왈칵 솟구쳐 흘러내린 탓에 귀혼객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그리고 검이 빠져나갔다.

푸욱?

피가 앞으로 분수처럼 솟구치고, 귀혼객의 신형이 풀썩 쓰려졌다.

그에게 귀혼객이라는 별호를 가지게 해준 창이 아무렇게나 바닥을 뒹굴고, 그 위에 서 있는 이는 운산이었다.

오른쪽 팔에 창에 찔린 상처가 남기는 했지만, 마지막에 조금이나마 용린벽이 버텨주었기에 상처가 심하지는 않았다.

‘으윽’

그렇다고 해서 고통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상처는 심하지 않았지만, 몸 안으로 들어온 귀혼객의 경력이 날뛰고 있었다.

운산은 전장의 중앙이라는 것도 잊고 그 자리에 서서 귀혼객의 경력을 몰아내었다.

찌이익?

그리고는 이빨로 옷소매를 잡아 뜯어 상처 난 곳을 단단히 묶었다.

이내 곧 피는 멈추고, 운산이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전장은 이미 정리가 된 상황이었다.

운상이 환호로 뒤덮인 외침을 쏟아내었다.

“이번에도 이겼다!”

그를 따라서 많은 황룡문도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 * *

전투가 끝나고 남은 것은 상처뿐이다. 다행히 수가 절반 이상 많았던 황룡문도에게 큰 피해는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잘하게 남은 상처들, 그리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공세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철혈난신이자 무림의 절대자 중의 한명인 자운이 빨리 황룡문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희망의 존재였다.

“후우!”

운산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식을 취하는 중인데도 상처 입은 팔이 욱신거린다.

“사형…….”

운산이 걱정되는 듯 우천이 다가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상처 입은 운산의 팔을 바라본다.

그런 우천의 허리에도 역시 핏물이 번져 있다. 허리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비록 운산에 비해 약한 이들과 싸웠으나, 그렇다고 하여 전혀 상처를 입지 않을 순 없었다. 그렇게 입은 상처 중 가장 큰 곳이 허리에 입은 상처라 할 수 있었다.

운산이 고개를 흔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