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계속해서 상처를 입히자 놈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힘도 이전에 비해서 훨씬 떨어졌다. 자운이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곧 죽을 놈이 울어봐야 하나도 안 무섭단다.”
자운이 씨익 웃으며 놈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이제 놈은 온몸에 입은 상처로 인해 운신조차 어려운 상화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몸으로 놈이 계속해서 자운을 위협하듯 울었다.
쿠어어어어?
이런 놈의 목울 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운의 황룡신검이 추켜올려진다.
곧 한줄기의 황금빛 강기가 자운의 검 위에서 타오르고, 자운이 놈을 내려다보았다.
“잘 먹을게.”
푸욱?
자운의 검에 놈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날아오른 목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따.
자운이 피를 피해 놈의 등에 올라탔다.
등을 갈라 해체를 하고 내단을 꺼낼 생각이었다.
푸욱 하고 껍질을 가른다. 자운의 검이 놈의 근육 결을 타고 막힘없이 들어갔다.
물론 검 위에 강기를 입히는 것은 잊지 않았다.
꼴에 영물이라고 검기로는 가죽에 생채기도 나지 않는다. 그러니 해체를 하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강기를 입히는 수밖에 없었다.
자운이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황룡신검을 내려놓았다.
일반적으로 영물에게 있어 기운이 뭉치는 곳이 몇 곳 있는데 그중 한곳이 심장이다.
자운이 가른 부분은 바로 심장의 뒤쪽. 어느 정도 등이 갈라지자 자운이 양손으로 가죽을 잡았다.
가죽과 가죽 사이의 근육을 천천히 벌렸다.
우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나며 놈의 등이 쩍 벌어졌다. 그 속에는 아직도 뜨거워 보이는 심장이 들어 있었다.
화끈한 감각이 전해오는 것이 열양지기를 품은 영물이 분명했다.
“다행히 헛칼질 한 건 아니네.”
자운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놈의 심장 언저리를 더듬었다.
하나 원하던 촉감은 느껴지지 않고 근육과 힘줄만이 손에 잡힐 뿐이었다.
“어라? 심장이 아닌가?”
심장 다음으로 내단이 생기기 쉬운 곳은 바로 무인에게 있어 단전과 같은 곳, 배꼽의 아래쪽이다.
자운이 놈의 거대한 몸을 쪼르르 타고 넘었다.
이번에 자운이 향한 곳은 놈의 배꼽이 있는 부분이었다.
손에 들린 황룡신검이 다시 푸욱 파고들었다. 단번에 파고들어서는 살을 한 움큼 도려낸다.
자운이 도려낸 살 속으로 다시 손을 밀어 넣었다. 근육과 근육 사이로 손을 밀어 넣는 느낌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으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참으면 내단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깟 느낌이 무엇이라고 참지 못하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자운의 손을 타고 화끈한 감각이 전해졌다.
자운의 눈이 번득였다.
“있다, 있어.”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웃으며 자운이 손을 더욱 밀어 넣어 화끈한 감각이 느껴지게 하는 것을 움켜쥐었다.
손을 타고 전해지는 뜨뜻한 감각.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아주 알찬 것이 분명한 내단이었다.
자운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으히히, 드디어 나왔구나.”
둥근 것을 붙잡아 손을 뽑아내자 후끈한 열기가 밖으로 뻗어 나온다.
자운의 손에 들린 자그마한 구슬. 그 크기는 손톱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열기 하나만은 이것이 내단이라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크지는 않은데, 영단보다는 확실히 내단이 도움이 되지.”
영단의 경우는 영초를 이리저리 섞고 배합해 만든 것이라 순수한 내단이나 영초에 비해서 한 수 접어주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먹은 태청신단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태청신단이 영단 중 상위에 속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순수한 내단에 비해서 손색이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다.
자운이 손에 들린 내단을 이리저리 주물거리다가 영물의 가죽을 벗겨 내단을 감쌌다.
그것을 품속에 챙겼다.
품속이 뜨끈한 것이 내단이 들어 있는 게 느껴진다. 자운이 그 뜨끈한 기운을 느끼며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처리해야 할 것은 뒤에 있는 저 빙정이다.
자운이 고개를 휙 돌려 빙정을 향해 걸어갔다.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는 빙정. 그 위로 알 수 없는 장치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빙정이 아니라 무언가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이곳에 둔 것인 듯했다.
자운이 빙정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으아! 차가워!”
그리고는 곧바로 손을 물렸다.
빙정에서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자연의 빙기가 여과없이 뭉친만큼 빙정이 가진 힘은 대단했다. 빙정에 가까이 다가갔던 자시운의 소매가 얼어 있다.
영물의 속을 파헤치며 소매에 피가 범벅이 되었는데 그 피가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자운이 자신의 소매를 한번 보더니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그 자리에서 유리조각처럼 깨지는 옷소매. 자운이 그것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맨손으로 만지면 엄청 차갑겠구만.”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려 빙정을 만질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영물의 가죽뿐이다. 자운이 다시 몸을 움직여 영물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황룡신검을 이용해 내단을 쌌던 것과 비슷한 크기로 영물의 가죽을 잘라내었다.
“이 정도 크기면 충분하겠지?”
나름대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가죽을 이용해 빙정을 덮어버렸다.
확실히 가죽을 이용해 냉기를 차단하자 한결 수월하게 빙정을 만질 수 있었다. 자운이 조심스럽게 빙정을 감싸 품속에 밀어 넣었다.
“자, 그럼 이제 돌아가 볼까?”
* * *
빙정이 사라지자 살판이 난 것은 설혜였다. 본래 설혜가 공격을 할 때마다 같은 양의 기운이 돌아오는 것은 빙정의 힘이었다. 빙정 역시 기관을 구성하고 있던 일부로서 그 힘을 이용해 절대고수의 힘을 받아치는 것이었다.
한데 자운이 빙정을 그 자리에서 뽑아버리자 설혜의 검을 막아낼 기운이 기관으로는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스윽?
검강에 닿은 기관장치가 여지없이 잘려 나간다.
쾅쾅쾅?
사방이 부서졌다.
가벼운 칼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과는 달리 너무도 쉽게 부서진다.
설혜의 고개가 으쓱 움직였다. 갑작스럽게 줄어들어 버린 기관의 힘에 당황스러웠던 탓이다.
하지만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기관이 약해졌다면 그 약해진 틈을 타서 빠져나오면 그만이다.
쾅쾅?
설혜의 검이 미친 듯이 기관 사이를 누볐다.
이제 튕겨져 나오는 반발력도 없으니 갈라 버리고 베어버리면 그만인 기관이다.
쾅?
설혜가 검을 이용해 철저하게 기관 내부를 파괴하며 움직였다.
오는 공격은 모두 잘라 버렸고, 기관은 박살내어 두 번 다시 활동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사실 설혜도 이 기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운처럼 티를 낸 것은 아니지만, 설곡의 곡주를 인정하는데 시험을 치른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손속에 자비가 있을 리 없었다.
모두 부숴 버릴 생각이었다.
두 번 다시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말이다.
설혜의 내공이 그런 그녀의 의지를 받고 검을 타고 뻗어 나갔다.
콰과과과?
사방이 단번에 부서지며 얼어붙었다.
그녀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다.
오래지 않아 설혜의 발이 기관의 끝에 도달하고, 모든 기관이 동시에 작동을 멈추었다.
위이잉?
기관 끝에서 설혜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것으로 천산설곡의 시험을 통과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구그그그긍?
들어올 때 본 것과 마찬가지로 육중한 문을 열고 나서자 설곡의 인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천산설곡의 부곡주라고 할 수 있는 유월이었다.
유월이 설혜를 향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곡주를 뵙습니다.”
그러자 천산설곡의 인물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곡주를 뵙습니다.”
“곡주를 뵙습니다.”
설혜가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북해빙궁의 궁주가 된 것은 아니지만 빙궁의 전신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천산설곡의 곡주가 되었다. 문파를 재건하는 일이 생각보다 쉬워진 것이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렸다. 자운의 모습을 찾는 것이다.
하나 자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혜가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자 부곡주 유월이 다가와 물었다.
“찾으시는 분이 계십니까?”
설혜가 단답형으로 답했다.
“자운 오라버니.”
무감각해 보이는 말투였으나 그를 찾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잠시 다녀온다고 움직이더니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문으로 들려오는 그의 일신의 무력이라면 천산에서 그를 어찌할 존재는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설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운을 어찌할 수 있는 존재는 천산에 없다.
광활한 대자연을 제외하면 말이다.
자운이 출렁이는 눈 위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시발.”
지금 대자연의 재해가 자운을 덮치려 하는 중이었다.
자운이 출렁이는 눈 위에서 조용히 이를 갈았다.
“어쩐지 운수가 너무 좋더라니, 왜 내단을 얻어도 편히 돌아가질 못하니.”
제2장 좋은 거, 좋은 약? 비싼 약으로 가져와 봐!
자운의 몸이 동공에서 높이 치솟았다. 허공답보였다. 그는 들어온 구멍으로 단번에 몸을 뺏다.
눈밭 위에서 높이 솟구치는 자운의 몸이 아래로 풀썩 떨어졌다. 그의 품속에는 방금 얻은 내단과 빙정이 들어 있었다.
자운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손가락 끝으로 내단과 빙정을 툭툭 두드리던 그때, 눈밭이 출렁였다.
자운의 눈이 꿈틀 움직이고, 그의 귀에 특이한 소리가 들려온다.
두두두두?
무언가 저 멀리서 눈이 밀려오는 것이 보인다. 자운이 욕을 뱉었다.
“이런, 시발.”
눈사태, 거대한 누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사실 자운은 잘 알지 못했지만 천산설곡을 만든 이들은 빙정이 도둑맞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 한 가지 장치를 해두었다. 빙정이 본래의 위치에서 빠져나오게 될 경우, 거대한 눈사태가 인위적으로 발생하는 기관을 설치해 둔 것이다.
그리고 기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자운이 빙정을 뽑아버리자,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거대한 눈의 파도를 바라보는 자운의 눈이 흔들리고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어쩐지 운수가 너무 좋더라니, 왜 내단을 얻어도 편히 돌아가질 못하니.”
그리고 자운의 몸이 날았다.
천지가 흔들리는 듯한 굉음이 여러 번 울렸다. 눈사태가 밀려오며 모든 것을 쓸어내리는 중이었다.
“으아아아!”
자운이 비명을 질렀다.
그 와중에도 그의 다리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전투로 지쳐있어 느려질 법도 한데 전혀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