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제1장 어쩐지 운수가 너무 좋더라니, 왜 내단을 얻어도 편히 돌아가딜 못하니
자운이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금 전까지 자운이 서 있던 자리가 움푹하고 파였다.
“빌어먹을, 더럽게 빠르네.”
곰의 상반신과 뱀의 하반신을 하고 있는 영물,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저 뱀처럼 꿈틀거리는 꼬리는 그야말로 천고의 채찍과 같은 것이어서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운해황룡을 펼친다 해도 모두 피해낼 수 없으니 자운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자운이 허리춤에서 황룡신검을 뽑았다.
스르릉?
검집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자운의 부름을 받은 황룡이 우렁차게 운다.
우우우?
기분 좋은 검명에 자운이 씨익 영물을 노려보며 웃었다.
“그 꼬리 그대로 잘라주마, 이 미친놈아!”
자운이 튀어나갔다.
허공을 휘저으며 뛰어나가는 보법, 그의 발에서 광룡폭로가 펼쳐졌다.
미친 용의 걸음에 모든 바닥이 부서져 내린다.
콰지지직?
자운의 신형이 돌진해 오자 놈 역시 거대한 꼬리를 꿈틀거리며 자운을 향해 돌진해 왔다.
무지막지한 육탄 공격. 자운의 어깨와 놈의 몸이 맞부딪치기 직전, 자운이 어깨를 틀었다.
그가 황룡신검을 휘둘렀다.
카앙?
놈이 자운의 속셈을 눈치 챈 것인지 황룡신검을 꼬리로 막아내었다. 자운이 안타깝다는 듯 입맛을 다신다.
“빌어먹을, 그 한 방에 좀 잘려주면 좋겠는데 말이지.”
자운의 검 위로 다시 강기가 불타올랐다.
크허허허헝?
곰의 얼굴이 울부짖는다. 그리고는 단번에 자운에게로 돌진!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게 쾌속한 속도로 자운을 향해 날아든 놈이 그대로 앞발을 휘둘렀다. 곰의 그것을 하고 있는 앞발은 무척이나 거대해 육중했다. 잘못 맞으면 뼈가 나갈지도 모르는 힘.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깔린 돌이 들썩했다.
앞발이 바닥을 내려친 것이다.
본래는 자운을 노린 것이었는데, 자운이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기에 놈은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자운의 몸은 휙 하고 돌아 놈의 뒤로 가 있었다.
꿈틀거리는 꼬리가 자운의 눈에 들어온다.
“그놈 참 실하게 생겼다.”
자운이 진득하게 웃고, 검 위로 검강이 겹겹이 쌓였다.
황금빛 불꽃이 찬연히 모습을 드러내고 검의 형상을 이루는 순간, 직도황룡의 일곱 변화가 단번에 꼬리를 향해 몰아친다.
뱀의 비늘을 하고 있는 꼬리가 꿈틀거린다.
보지도 않고 꼬리를 휘두르는 것이 뒤에 눈이라도 달린 듯 했다. 자운의 검과 놈의 꼬리가 충돌했다.
깡?
순간 자운의 눈이 놀란 듯 치켜떠졌다.
놈의 꼬리가 검강을 막아낸 것이다. 뱀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비늘이 검강을 막아낼 정도로 강했던 모양이다. 자운의 눈가가 꿈틀하는 순간, 놈의 꼬리가 휙 하고 움직이며 자운을 때렸다.
자운이 빠르게 퇴법을 밟아 놈의 공격을 빗겨내고, 바닥을 내려친 꼬리로 인해 먼지가 솟아올랐다.
“더럽게 강하네.”
다친 왼팔만 자유롭게 쓸 수 있어도 상황이 달라지기는 할 텐데, 그게 되질 않으니 문제였다.
자운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등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의문을 느꼈다. 분명 놈의 뒤쪽에 은색으로 회전하는 무언가가 있기는 했는데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
자운의 고개가 뒤로 휙 돌아가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빙정?”
자운의 입에서 경악에 가까운 소리가 튀어나왔다.
영물도 모자라서 이제는 뒤쪽에 있는 것이 빙정이라니.
빙정이 어떤 것이던가. 금음지기에서 몇백, 몇천 년 동안 그 기운이 쌓이고 모여야만 생겨나는 것이 빙정이 아니던가. 엄지손톱만 한 크기로 보아 족히 백 년은 넘은 시간 동안 쌓인 듯한 빙정이 분명했다.
“설혜 가져다줘야겠군.”
빙정은 자운이나 황룡문의 무공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열양지기를 근본으로 하는 황룡문의 무공에 해가 되었으면 되었지 득이 되지 못할 것은 분명했다.
자운이 입맛을 한번 쩝 하고 다신 후에 눈앞의 괴물을 노려보았다.
“일단은 이놈부터 처리해야 하는데…….”
그의 시선이 영물의 뱃속으로 향한다. 말했다시피 이런 추운 곳에 사는 영물들이 가지고 있는 내단은 둘 중 하나가 분명하다. 추운 기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속에 화(火)의 기운을 키워 내단을 만든 영물과 반대로 적응을 하여 빙(氷)의 기운을 키워 내단을 만든 녀석들. 놈의 뱃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화의 내단이기를 바랐다.
“그래야 우리 애들 좀 가져다주지.”
자운의 시선이 기분 나빴던 것인지 놈의 눈가가 꿈틀했다. 자운을 향해 동공이 흔들릴 정도로 거대한 포효를 터뜨렸다.
크아아아?
자운의 몸이 휙 하고 날았다.
단번에 뻗어나간 보법의 끝이 도달한 곳은 놈의 미간이 있는 곳이었다. 콩 하는 소리와 함께 각법이 펼쳐지고, 놈이 한 순간 흔들린다.
거대한 내력이 담긴 찍어 누르기를 미간에 맞았으니 쉽게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크어어엉?
고통으로 놈이 비명을 질러대고, 자운이 이리저리 검강을 휘둘렀다. 단번에 허공을 날아간 검강이 놈의 몸을 때렸다.
쾅쾅쾅?
놈의 몸과 검강이 충돌하고, 고통 때문인지 놈이 커다란 앞발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자운의 공격에 마구잡이로 반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자운을 맞추지는 못하고 애꿎은 공동의 내부만을 후려친다.
쾅?쾅?
그 충격이 적은 것이 아니라 공동이 흔들거리며 가루가 떨어졌다. 앞발에 맞고 바위가 뜯겨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자운이 멀찍이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한마디 감상평을 내뱉었다.
“그놈 참 발광을 귀엽게도 하는구나.”
* * *
자운이 괴물의 형상을 한 영물과 열심히 싸우고 있을 때, 설혜 역시 치열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비록 만들어진 기관이라고는 하나 그 힘이 설혜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기관, 뭐지?’
설혜가 눈앞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도끼를 막아내며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손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충격이 느껴졌지만 그녀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절대의 고수와 비등한 기관이라니……. 기관에 있어서 문외한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기관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전혀 없었다.
얼마나 검을 휘둘렀을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들어 가기 시작했는데도 설혜가 기관 내부로 들어와 움직인 걸음은 채 스무 걸음이 되지 않았다.
앞을 내다보니 이제 절반 정도 온 듯하다. 사십 걸음 남짓의 짧은 기관이 분명한데 이렇게 힘이 들다니.
설혜가 다시 검을 튕겨내었다.
퉁?
손을 타고 전해지는 감각. 한데 이전만큼 충격이 묵직하지 않다. 설혜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리고는 다시 또 하나의 기관장치를 빗겨내었다.
투웅?
‘역시 힘이 줄었어.’
어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설혜가 보낸 힘을 똑같이 보내오던 기관이 약해졌다. 말했다시피 기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어떤 원리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설혜에게 득이 되는 일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그녀가 검을 단단히 움켜쥐며 무감각하게 중얼거렸다.
“할 수 있어.”
* * *
기관의 힘이 약해진 것은 자운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자운도 잘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가 영물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곳은 천산설곡이 처음 만들어질 때 함께 만들어진 통제실과 같은 것이었다.
무인으로 이루어지는 통제실인데 영물은 그곳을 보호하기 위해 데려다놓은 것이었다.
그것이 이백 년이 지난 지금 감히 자운이라고 할지라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뽐내며 침입자를 처단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백 년이나 된 사실이기 때문에 천산설곡 내부에서도 이곳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자운과 놈의 충돌로 또 벽 한쪽이 허물어졌다.
쾅?
이렇게 점점 동공이 무너져 내리면서 기관이 약해지는 것 이었다. 자운은 그것을 모랗ㅆ지만 일단 살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검 끝에 검강이 더욱 진하게 압축된다. 다행히 뱀의 비늘이 감싸고 있는 하반신을 제외하면 상반신에는 검강이 통했다.
자운의 검강이 놈의 두꺼운 가죽을 서걱 하고 잘라내었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고, 놈이 아픔으로 인해 괴성을 질렀다.
쿠어어어어?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자운에 대한 분노를 죽이지 않은 듯 연신 앞발을 휘둘렀다. 자운이 보법과 경신술을 이용해 놈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했다.
“빌어먹을, 덩치가 워낙 크니 한 번에 썰리지도 않네.”
자운이 반도 채 썰리지 않은 놈의 앞발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놈의 크기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검이 모두 들어가도 다 잘리지 않았다.
황룡신검을 꽤나 깊이 찔러 넣어 베어냈다고 생각했는데도 놈의 앞발 삼분지 일이 채 잘리지 않았으니, 그 크기는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상만으로 무서울 정도였다.
놈과 자운의 눈이 마주친다.
놈이 울음을 터뜨리며 멀쩡한 앞발을 휙 하고 찔러 넣었다.
“이크!”
자운이 화들짝 놀라며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켰다. 그의 몸이 회전을 통해 힘을 얻고, 찔러오는 앞발을 피해낸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부드럽게 회전한 몸이 놈의 팔을 타고 들어갔다. 단번에 앞섶을 갈라내는 공격.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가슴팍에 사선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자운이 길게 내려 그은 것이다.
“덩치가 거대해서 한 번에 잘리지 않으면 상처를 크게 내어버리면 그만이지.”
자운이 산불 맞은 멧돼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놈을 공격하고 주변을 부쉈다. 발에 닿는 모든 것이 부서지는 게 꼭 그의 별호와 잘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난신(亂神)
어지러운 귀신. 그의 몸이 향하는 곳은 꼭 무언가가 부서지고 어지러워진다.
자운이 상처를 다시 한 번 길게 그려내었다.
크어어엉?
어깨에서 뱀으로 이어지는 하반신 직전까지 상처가 난 놈이 매섭게 울었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서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놈이 이백 년 이상 된 영물이라고는 하나 자운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왼팔이 조금 불편했을 뿐이지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