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74화 (74/175)

# 74

그리고는 고개를 갸우뚱해 보인다. 소녀의 화후가 너무도 낮았기에 뿜어져 나오는 기운으로 그녀가 익히고 있는 무공을 알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한참 기운을 읽어내던 설혜가 말했다.

“역시 빙옥도(氷玉道)…….”

소녀가 앙증맞은 모습을 취해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이로써 오호맥의 전승자를 모두 찾아낸 것이다.

이것은 궁주 정통의 심법을 익히지 않았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궁주의 전통 심법인 천설적공만이 민감하게 그들의 기운에 반응하여 오호맥을 찾아낼 수 있다.

설혜가 모두 찾아내자 유월이 놀란 눈을 치켜떴다.

“진정으로 천설적공법이군요.”

설혜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운이 나서서 설혜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이제 정통성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

그 말에 우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설혜가 천산설곡의 주인임을 인정하는가?”

“아니에요. 정통성은 인정하겠지만, 본 곡은 아직 설소저를 설곡의 주인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말에 자운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다. 허리춤의 검을 움켜쥔다.

여차하면 뽑아서 휘두를 듯한 기세가 자운의 몸에서 흘러 나오고, 유월은 그런 자운의 기세를 정면으로 받아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설곡을 설립하고 처음 저희들의 조상님께서는 궁주님의 정통성을 이은 분이 찾아올 때를 대비하여 한 가지 시험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자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 가지 시험?”

유월이 고개를 끄덕인다.

“기관장치를 마련해 두시고, 정통성을 이은 후계자가 찾아왔을 때 그 기관장치로 무력을 시험해 보라 하셨습니다.”

자운이 웃었다.

“가지가지 하는구만.”

그리고는 설혜를 바라본다.

“어떻게 할래? 여차하면 힘으로 다 뒤집어 버리는 수도 있는데 말이야.”

주인을 시험하는 개는 필요없다는 것이 자운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설혜의 생각은 자운과 달랐던 모양이다. 그녀가 유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 기관.”

자운이 중얼거렸다.

“스스로 고행 길을 걸어가는구만. 귀찮게 말이지.”

하지만 그리 기분 나빠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저 웃고 있을 뿐. 엄밀히 말하면 자운은 설곡 내부에서는 제삼자다.

과거 황룡문과 빙궁의 관계가 지극히 우호적이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때도 내부의 문제에는 개입할 수 없었다.

설혜의 말에 유월이 웃었다.

“과연 빙궁의 정통성을 이으신 분이십니다. 기관을 준비해야 하니 하루 정도 푹 쉬면서 기다려 주시지요.”

유월이 사람을 불러 자운과 설혜를 설곡 내부로 안내했고, 자운이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구그그긍―

육중한 철문이 열리었다. 설곡 양쪽으로 나 있는 거대한 절벽. 그 아래에 기관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었고, 날이 밝는 대로 설혜는 다른 이들과 함께 그 앞으로 가서 섰다.

설혜가 기관으로 등러서기 전, 뒤를 슬쩍 돌아본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자운이 서 있었다.

자운이 그녀를 향해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가 그녀에게 전음을 보낸다.

[설곡에 있을 테니 안심하고 기다리라고.]

자운의 전음이 전해진 것인지 그녀가 각오를 다지고 차가운 얼굴을 더욱 차갑게 한 채로 기관진식 내부로 들어간다.

어둠 속으로 설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곧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히었다.

그그그그긍―

저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운으로서는 절대로 알 리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설곡을 만든 이들이 곡주의 자격을 시험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곳이니 쉽지만은 않으리라는 점이다.

자운이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수에 고개를 돌렸다.

‘뭐, 잘하겠지.’

제11장

기관 내부로 들어간 설혜를 처음으로 반긴 것은 어둠이었고, 뒤이어 엄습한 것은 얼어 죽을 듯한 한기였다.

빙공을 익힌 자가 한기를 느낀다?

어지간한 한기라면 설혜는 절대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진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설혜마저도 한기를 느낄 정도로 강했다.

기기깅―

어디선가 기관 울리는 소리가 들려와 설혜의 귀를 자극했다.

그녀가 전방을 주시했다. 그리고는 내공을 움직여 기감을 넓게 펼쳤다.

설혜의 기감이 주변을 장악하고, 무언가가 움직이는 기척을 잡아내었다.

‘온다.’

설혜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도끼가 날아온다. 설혜가 검을 들어 도끼를 막았다. 육중한 충격이 검을 타고 손으로 엄습했으나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설혜의 미간은 놀란 듯 꿈틀하고 움직였다. 도끼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힘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설혜가 놀란 것은 전혀 다른 이유, 거대한 도끼에서 설혜 그녀 자신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듯한 엄청난 한기가 느껴진 것이다.

찌릿찌릿―

한기가 예민한 감각을 타고 내부로 들어왔다. 그에 대응하기 위해서 설혜 역시 천설적공으로 쌓은 내공을 움직였다.

밀폐된 기관 내부에서 바람이 불었다. 불어온 바람이 사방을 휩쓸고 눈가루가 휘날린다.

휘날리는 눈가루 속에서 설혜의 검이 푸른색으로 빛이 났다.

검강(劍?).

얼음과 같이 차가운 불꽃이 검 위에서 타올랐다. 베지 못할 것이 없으며 막을 수 있는 것은 같은 검강뿐이다.

설혜가 눈앞의 도끼를 쪼개어 버릴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그에 대응해서 도끼가 마치 추와 같이 뒤로 밀려났다 단번에 설혜를 향해 날아온다.

이번에는 그 수가 하나가 아니었다.

세 개의 도기가 설혜를 삼분해 버릴 듯 날아들었다.

설혜는 자신의 검강이 도끼들을 쪼개어 버릴 것이라 확실했다.

그리고 유려하게 검을 휘두른다.

투캉―

하지만 설혜의 생각과는 달리 자신이 검에 밀어 넣은 내력과 정확하게 같은 양의 반발력이 튕겨져 올라왔다.

그녀가 대경실색하며 황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머리 위로 나머지 두 개의 도끼가 지나간다. 한순간만 늦게 반응했더라도 몸이 두 쪽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설혜의 눈이 침착해졌다. 곧 지나간 도끼가 돌아올 것이다.

쐐애액―

아니나 다를까, 뒤로 간 도끼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설혜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양의 내력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뛰어오르며 검을 연달아 뿌렸다. 검과 도끼가 충돌한다.

쾅― 쾅―

기이한 일이다.

이번에도 도끼는 잠시 흔들렸을 뿐 베이지 않는다. 동시에 검에 들어간 것과 정확하게 일치 하는 반발력이 설혜에게로 몰려왔다.

설혜가 놀라며 도끼를 바라보았다. 도끼에도 푸르스름한 기운이 맻혀 있고, 그 형이 뚜렷하게 날을 따라 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검 위에 타오르는 검강과 기관으로 움직이는 도기의 위에서 타오는 기의 모습이 똑같이 일치했다.

설혜가 이를 악물었다.

‘강기.’

그것은 분명한 강기였다. 어찌 기관진식으로 이루어진 장치 주제에 선명한 강기를 뿌릴 수 있는 것인가?

많은 의문이 오갔지만, 지금 그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머리 위로 섬칫할 정도의 기운을 뿌리는 장치가 스치고 지나갔다.

파앗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려 허공중에 날리었다.

설혜가 빠르게 발을 놀려 도끼를 피해 내었다. 뒤이어 돌아오는 다른 토끼들, 검이 검막을 일으켰다.

검막과 도끼가 충돌한다.

따다다당―

한순간의 틈을 노려 설혜가 다시 한 걸음을 움직였다. 허공으로 몸을 날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위에서 오가는 기관 장치들 때문에 그것은 여의치 않다.

그렇다고 큰 기술을 사용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이곳은 한정된 공간이라 자칫하면 무너져 내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작은 잔기술로 기관들을 막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설혜가 검강을 더욱 집약시켰다.

검 위로 새하얀 빛무리가 모여들고, 주변으로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더욱 거세어졌다.

설혜가 끌어올린 기운에 천설적공의 내공의 반응하는 것이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사이, 도끼가 번쩍하며 설혜의 정면에서 날아들었다.

설혜가 검을 들어 그대로 도끼를 쳐낸다. 설혜의 검면을 타고 도끼가 위로 올라가고, 비껴낸 도끼의 뒤를 이어 이번에 날아든 것은 창이었다.

기다란 창이 창날을 번뜩이며 설혜를 향해 쏘아졌다.

그녀의 몸이 빙글 하고 회전했다. 검끝은 창끝을 때려 진로를 바꾸고, 좌수를 움직여 창대를 움켜쥔다.

움켜쥔 창대를 설혜는 회전하는 채로 다시 쏘아 보냈다.

콰직―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전방에서 날아오던 도끼 하나가 그대로 멀어졌다. 창과 충돌하며 한순간 방향이 뒤틀린 탓이었다.

설혜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틈이 생겼을 때,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또 수십 개의 무기가 자신을 위협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가 오가는 도끼를 막아내는 동안, 설혜를 위협하는 것들의 가짓수는 더욱 많아졌다.

처음에는 도끼로 시작했을 뿐인데, 이제는 검과 도, 유성추까지 있었다.

십팔반병기를 모두 기관 속에 담아둔 듯했다. 그 수는 기백에 달할 정도라 피하고 있는 설혜가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설혜가 이를 악물었다.

이곳도 통과하지 못하면 설곡의 곡주가 될 자격이 없다는 의미다.

그녀에게 있어 설곡의 존재는 희망이었다. 자운처럼 패도적인 추진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 망해버린 빙궁을 살릴 자신이 없었다.

하여 막막하게 있던 차인데, 후인들이 이렇게 문파를 세워두지 않았는가.

그녀에게 있어 이번 일은 빙궁을 재건할 수 있는 기회와도 같았다.

그녀의 얼굴에 기관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표정이 어리었다.

독기를 품은 얼굴. 그녀의 얼굴이 샐쭉하게 변하고, 그녀의 몸에서 뿜어지는 눈보라가 더욱 강해졌다.

마치 기관 전체를 얼려 버리려는 듯한 모습. 눈보라가 몰아치고 기관이 설혜의 몸을 휩쓸었다.

그녀의 검이 분광을 일으키고 여러 개로 늘어난다.

그 검영 역시 기백. 기백에 이르는 검영과 거의 비슷한 수로 보이는 기관의 병기가 동시에 충돌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병기들이 한순간 뒤로 물러난다.

설혜라고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온몸을 타고 들어오는 반탄력 때문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그녀는 쓰러지지 않았다.

두 다리로 굳건하게 땅을 딛고 서서 다음 공격을 기다렸다.

기관은 총 하나의 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이 관문만 통과한다면 일이 끝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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