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71화 (71/175)

# 71

설마 하는 자운의 촉이 섰다.

태허 진인이 품속으로 손을 넣어 휘휘 젓더니 주먹을 꼭 말아 쥔 채로 꺼냈다.

저 주먹 속에 무언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손 틈 사이로 청량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자운이 눈치를 채었을 정도인데 무당의 장문인인 청수 진인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사부님, 설마 그것은…….”

청수 진인의 말을 무시하고 태허 진인이 손을 쫙 펼쳤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청량한 향기가 활짝 벌려진 틈에서 만개한다.

자운이 눈을 부릅뜨고 태허 진인이 벌린 손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이게 뭐냐?”

태허 진인이 웃는다.

“헤헤헤, 몸에 좋은 약이야.”

자운이 태허 진인의 손에서 시선을 떼고, 청수 진인을 바라보았다.

청수 진인이 도호를 왼다.

“향기로 봐서는 태청신단이 분명하군요.”

자운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태허 진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네 눈에는 이게 태청신단으로 보여?”

“무량수불…….”

자운이 태청신단이라 불린 물건을 집어 들었다. 태허 진인이 웃었다.

“헤헤헤, 힘들게 들어가서 안 들키게 가지고 나온 거니까 꼭 먹어야 해. 나 배고프니까 밥 먹으러 갔다가, 다 나으면 꼭 비무해 주는 거야.”

아까 허공섭물로 연 문을 통해 태허 진인이 재빠르게 나갔다.

자운이 청수 진인과 함께 그런 태허 진인의 모습을 멍하게 보고 있다가 자신의 손에 들린 태청신단을 바라보았다.

“이거 무당에 몇 개 없다는 태청신단 확실하지?”

청수 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의 향을 보이는 것이라면 분명 태청신단이로군요.”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한데 내 눈에는 이거 태청신단이 아니라 태청신떡으로 보인다?”

자운의 말에 청수 진인은 감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못했다. 꺼내면서 태허 진인이 신단을 너무 강하게 움켜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신단은 떡이 되어 있었다.

본래 신단이었으니 신떡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자운이 청수 진인을 바라보았다. 이건 무당에서 소중한 것이었다.

“돌려줄까?”

자운의 배려를 청수 진인이 거절했다.

“무당을 구해주신 감사의 표시로 본래 하나 드리려 했던 것입니다. 받아두시지요.”

자운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럼 새 걸로 가져와. 남에게 주는 물건이 이게 뭐냐.”

청수 진인은 답 대신 도호를 외웠다.

“무량수불…….”

“씨발…….”

“이거 이렇게 생겼어도 약효는 확실한 거지?”

청수 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 * *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자운은 황룡문으로 돌아갔다. 무당에서 보름 정도 머물렀는데 초인적인 회복력 덕분에 움직임에 무리가 없을 정도는 되었다.

물론 부러진 왼팔은 아직 움직이지 못해 부목을 대고 있었다.

자운이 황룡문으로 돌아왔을 때, 황룡문의 문도 수는 어느새 오백에 가깝게 늘어나 있었다.

이 정도라면 한 지역의 패자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규모다. 물론 어중이떠중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규모만큼은 어지간한 문파에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사람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늘어난 것은 이번 무당에서의 일 때문이었다.

화산에 드리운 암운의 실마리를 걸왕과 함께 잡아낸 인재.

떠오르는 초고수, 당문의 참사를 막아내다.

당문의 참사를 막아낸 고수, 이번에는 무당을 구해내다.

이런 소문이 무림에 돌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문파도 아닌 다른 곳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 자운을 대협이라 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사람들, 확실하게 가려 뽑은 거 맞지?”

자운의 말에 운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사형. 걱정하지 마십시오. 확실하게 골라 뽑았습니다.”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공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건 사람이지. 나 봐. 내가 얼마나 대단해. 우리 문파도 아닌데 두 번이나 구해준 내가 진짜 대협이지. 암, 그렇고말고.”

자운이 한껏 기고만장해진 콧대를 들어 보이며 당당하게 말했다. 우천과 운산이 한숨을 쉬고, 설혜는 무언가를 천천히 읊었다.

“당가가 입은 피해, 금전으로 환산했을 때 이천 냥 이상. 당가의 일 년 예산 삼천오백 냥,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

자운이 움찔했다.

“무당산에서 무너뜨린 봉우리가 하나. 반쯤 무너진 봉우리가 하나. 무너진 건물, 헤아릴 수 없음. 피해액, 천문학적임.”

이번에도 자운이 움찔했다. 설혜가 자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거 전부 오라버니가 만든 거야.”

자운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하하, 대의를 행하다 보면 사소한 문제가 생기는 법이지.”

설혜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운에게서 시선을 홱 돌렸다.

“그렇다고 해둘게.”

말투에 고저가 없어 판단하기 어렵지만, 분명 떨떠름한 의미가 분명했다.

자운도 크게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는 않은지라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는 않았다.

“우천아, 내가 너희들에게 주고 싶은 게 있으니까 물 두 사발만 들고 와라.”

자운의 말에 우천이 의문을 표했다.

“대사형, 갑자기 물은 왜……?”

자운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땅―

“걱정 마. 너희들한테 좋은 거니까 가지고 오라면 가지고 와.”

자운의 말이 조금 의문스럽기는 했으나 우천은 곧 자운의 말대로 물 두 사발을 가지고 왔다.

우천이 가지고 온 물 사발을 받아 든 자운은 품속에서 목합 하나를 꺼냈다. 태청신단, 아니, 태청신떡이 들어 있는 목함이었다.

목함을 열자 청아한 향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자운이 목함 속에 담겨 있는 신단을 집어 들었다.

보기 흉측하게 일그러진 신단. 그런 흉한 모습에서 이런 청아한 향기가 나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지 운산과 우천이 놀라 눈을 치켜떴다.

“그게 뭡니까?”

“좋은 약이란다. 훔쳐 오기 힘들었으니까 꼭 먹으라고 누가 주더라.”

자운이 떡이 된 태청신단을 정확하게 반으로 나누었다. 그리고는 물에 풀어 휘휘 저었다. 태청신단이 물속에 녹아들고, 완전히 사라지자 자운이 휘젓던 손가락을 쪽 하고 빨아 맛을 봤다.

“달콤 쌉싸름하네. 쭉 마셔라.”

자운이 물을 우천과 운산의 앞에 내려놓자 그들이 이게 뭔가 하는 표정으로 사발을 바라보았다.

자운이 피식 웃는다.

“별건 아니고, 태청신단이다. 먹고 운기를 바로 하면 각자 반 갑자 정도의 공력은 건질 수 있겠지.”

본래 태청신단을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가 먹으면 평생 무병장수한다. 무공을 익힌 이가 먹고 좋은 심법이 뒷받침해 준다면 일 갑자에 달하는 내공을 얻을 수 있다.

그 태청신단을 반으로 나누었으니, 아마 그 절반인 반 갑자 정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태청신단이라는 말에 운산과 우천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튕기듯이 일어났다.

“이게 왜 대사형의 손에 있는 겁니까? 이건 무당 건데 설마…….”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그 설마다.”

그 순간, 운산과 우천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아, 역시 훔친 겁니까? 농담이 아니었던 거에요? 대사형, 지금이라도 무당에 돌려주고 용서를 빌지요. 무당에 왜 갔나 했더니…….”

쾅쾅―

자운이 주먹을 휘둘러 둘의 이마를 때렸다. 단번에 운산과 우천이 뒤로 넘어가며 비명을 질렀다.

“캐액.”

“크악!”

자운이 손을 턴다.

“이것들이 도대체 평소 날 어떻게 생각한 거냐. 응? 훔치긴 뭘 훔쳐! 고맙다고 받았다.”

“그게 왜 이렇게 떡이 되어 있는 겁니까?”

이번에 머리를 부여잡은 쪽은 자운이었다. 그가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아아, 젠장. 치매 걸린 영감탱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먹어라. 복잡한 사정이 있으니까.”

“어찌 되었든 훔친 건 아니라는 거군요?”

자운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마시고 운기를 시작하라고.”

자운의 말에 운산과 우천이 다시 한 번 눈앞에 놓인 것을 바라보았다. 태청신단이 녹아내린 물이다.

이것을 마시면 분명 어느 고수 부럽지 않은 내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손을 움직인 것은 운산이었다.

운산이 물을 그대로 마시고, 뒤이어 우천이 마셨다.

단번에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태청신단이 녹은 물이라 그런지 달콤한 향기와 쌉싸래한 약재 향이 느껴진다.

일반적인 차에서 느낄 수 있는 맛과는 분명 다른 맛이다.

하나 나쁘지 않은 청량한 기운이 입속을 맴돌다가 물과 함께 식도로 넘어갔다.

자운이 그들의 어깨를 부여잡고 말했다.

“지금 당장 운기조식에 들어간다.”

운산과 우천은 자운의 도움으로 무사히 반 갑자의 내공을 몸속에 녹여내었다.

반 갑자의 내공은 적은 것이 아니다. 비록 내공의 차이가 고수의 자격을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차이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내공은 무림인에게 있어 목숨과 같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내공이 무려 반 갑자나 늘어났다. 일반적으로 한 지역의 패주로서 날리는 고수들을 살폈을 때, 그들은 평균적으로 이 갑자 언저리의 내공을 가지고 있다.

이 갑자라 하면 백이십 년에 달하는 내공. 그중 사분지 일에 해당하는 반 갑자의 내공이 운산과 우천의 몸속에서 솟아난 것이다.

본래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내공과 합산하자 그 양은 일 갑자에 준할 정도.

일 갑자에 달하는 내공은 운산과 우천의 또래 중에서는 파격적으로 많은 양이라 할 수 있었다.

한 지역의 패주라 자처하는 이들의 세수가 오십을 넘어가서야 이 갑자가 나오니 현재 둘이 가지고 있는 내력의 양은 절대로 적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 일 갑자 내공의 세계를 맛본 게 어때?”

자운의 말에 운산과 우천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손끝으로 무공을 펼쳐 보기도 한다.

파앙―

손끝에서 터져 나오는 파공음이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 강해졌다.

“일 갑자의 내공은 확실히 다르군요. 예전보다 초식이 더욱 강맹해진 거 같기도 하고 더욱 매끄러워진 것 같기도 합니다.”

자운이 자신의 가슴을 탕탕 때렸다.

“그렇지. 그 정도의 장점도 없으면 내가 너희들한테 그 아까운 걸 먹여야 할 이유가 없지.”

자운이 속으로 입술을 곱씹었다.

‘그게 가격이 얼마짜린데…….’

비록 모습이 흉물스러운 떡의 모습이었다고는 하지만, 감히 가치를 매기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걸 꿀꺽했으니 저 정도도 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자운이 씨익 웃었다.

“그럼 나가서 둘이 드잡이라도 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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