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평소라면 저 정도의 격장지계에는 넘어오지 않겠지만, 자신의 금강불괴에 흠집이 나는 바람에 심지가 흔들린 상황이다.
그사이를 자운의 격장지계가 보기 좋게 비집고 들어갔다.
"이노옴!"
놈이 주먹을 뻗었다.
주먹이 허공을 격했다. 공간을 찢어버리고 들어오는 육탄돌격은 과연 무서웠다. 자운이 검을 비스듬하게 세웠다. 주먹과 검면이 충돌한다.
쾅―
검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충격이 전해지고, 자운이 지체할새 없이 검을 뒤집었다. 날을 세워 펼치는 공격, 검이 뱀과 같이 놈의 팔을 타고 올라갔다.
휘리릭―
황룡신검이 자신의 팔을 휘감으며 들어오자 칠적이 대경실색하며 두 팔을 뺐다.
"이놈이!"
황급히 빼긴 했으나, 팔에 남은 긁힌 자국은 어쩔 수 없다.
마치 뱀이 지나간 것과 같은 상처가 칠적의 팔에 남아 있었다.
자운이 웃었다.
"교룡도라는 수법인데 좀 마음에 들었나?"
칠적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이제 자운의 공격은 금강불괴를 부수고 들어온다.
물론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금강불괴가 부서졌다는 사실이 그의 머릿속에 경종을 쳤다.
"그 칼이 문제구나!"
"너한텐 문제지만 나한테는 감사하게도 호재(好在)다."
자운이 웃었다. 그리고는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 스무 겹의 검기가 뿜어져 허공을 베었고, 베어내린 그대로 칠적의 몸을 때렸다.
허공에서 검기의 비가 내렸다.
따다다당―
검기의 비는 시야를 어지럽히며 칠적의 몸 위에서 튕겨 나가고, 칠적이 검기의 비를 무시한 채로 자운에게 돌격했다.
"그 검을 부숴주지."
자운이 정말로 그러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 이거 비싼 건데 새로 사줄 돈 있어?"
이 순간에도 격장지계를 멈추지 않는다.
자운의 도발이 이어지자, 놈의 미간이 계속해서 꿈틀거렸다.
"검을 정말로 부숴주마!"
거마혼의 주먹이 힘을 모으고 황룡신검을 때렸다.
자운이 황룡신검을 어지럽게 움직였다.
따당―
따다다당―
황룡신검과 거마혼이 연달아 충격을 거듭하지만 황룡신검은 부러지지 않는다.
자운이 단단한 황룡신검을 한차례 보고는 거마혼의 이마를 때렸다.
쾅―
한순간 거마혼이 흔들하며 뒤로 넘어갔다.
칠적의 몸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마혼이 뒤로 넘어지자 칠적의 몸 역시 뒤로 넘어졌다.
그 바람에 몇 개의 무당파 건물이 무너지고 바닥이 깊게 패였다.
"이거 신검이라니까? 어지간해서는 안 부서져. 네가 뭐 대장장이도 아니고 상대방 무기를 부수고 싶다고 막 부수냐? 그건 명장도 불가능하겠다, 멍청아."
말을 하며 무너진 무당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저거 나보고 물어내라고는 안 하겠지?'
그럴 리야 없겠지만 조금 불안해졌다.
자운이 건물들의 가격을 셈하는 사이, 놈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난 자리에 먼지가 일었다. 그가 자신의 옷에 묻은 먼지를 쳐서 털어버린다.
자운을 노려보는 눈동자가 매섭기 그지없다.
"아까도 말했지만 넌 심즉살 못한다."
자운이 계속해서 피식피식 웃었다.
"크아아악! 이놈!"
놈이 소리쳤다.
쾅―
바닥이 한순간 파도치는 것 마냥 출렁이며 칠적의 몸이 자운을 향해 솟구쳤다.
대포와 같은 빠르기로 날아오는 칠적의 몸은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허공을 격해 날아오는 육탄돌격. 자운이 검으로 권격을 흘려버리고는 허공을 밟았다.
그의 몸이 허공중에서 기기묘묘하게 비틀어진다.
절정에 이른 허공답보(墟空踏步).
아무것도 없는 허공중을 자운이 연달아 밟았다. 이곳에서 계속하다가는 무당이 형체도 없이 내려앉아 버릴 것이다.
자운이 허공답보를 펼치고, 놈 역시 허공답보를 펼쳤다.
내력의 수발이 자유롭고 양이 충분히 넘치기에 어렵지 않게 허공답보를 펼친 자운이 다른 봉우리를 향해 날아가며 시선을 슬쩍 돌렸다.
"이놈, 또 도망치는 것이냐!"
놈의 말에 자운이 웃었다.
'그래, 계속 따라와라.'
자운의 위에서 날고 있는 황룡이 그런 자운의 의지에 반응하듯 울었다.
우우우우우―
쾅―
자운의 몸이 처박히듯 무당의 이름 없는 봉우리 하나에 처박히고, 봉우리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우르르르르―
그 위로 거마혼이 네 개의 손을 들어 자운을 찍어온다.
자운이 검을 회전시켰다. 검 주위로 황룡의 기운이 흐르고, 황룡검탄과 황룡무상강기가 동시에 쏘아졌다.
둘 모두 패도적인 초식. 두 마리의 황룡이 거마혼에 기기묘묘하게 얽혀들었다.
황룡검탄은 거마혼과 충돌하는 즉시 굉음을 내며 터져 나갔고, 황룡무상강기는 그 형태를 유지한 채로 거마혼을 휘어 감는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내리찍어 버린다.
쾅―
한 차례 더 지축이 크게 울렸다. 봉우리가 무너지려는 듯 크게 휘청거리고, 바닥에 생겨난 금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거마혼과 칠적이 떨어진 자리에는 그야말로 운석이 충돌한 것과 같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그 깊이를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그곳을 향해 자운이 황룡문의 검초를 연달아 풀어내었다.
강기가 줄기줄기 뻗치고, 검초를 타고 황룡무상강기가 날아든다.
용이 고개를 들었다 다시 처박으며 무섭게 구덩이 속을 내리찍는다.
쾅―
쾅― 쾅―
저 속에 들어간 것이 평범한 사람, 아니, 평범한 고수였다면 피륙도 남기지 못하고 끝이 날 것이다. 하나 상대는 금강불괴지신을 완성한 절대의 고수. 자운이 검을 물리고 호흡을 골랐다.
폐부 깊이 들어온 숨이 한 줌의 진기를 머금고 사지백해로 뻗어 나갔다.
근육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오히려 더욱 힘을 준다.
"기어나와."
자운이 차갑게 반짝이는 눈으로 낮게 이죽거렸다.
"그 정도에 죽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기어나와라. 좋은 말로 할 때 나와야 덜 맞을걸."
자운의 말에 구덩이 아래가 들썩였다. 깔려 있는 바위가 들썩이고, 그 자리에서 모래 알갱이가 투두둑 하고 흘러내린다.
그리고 곧…….
거마혼이 불쑥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황룡무상강기와 충돌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마혼은 끄떡도 없는 모습이었다. 거마혼의 아래에서 칠적 역시 몸을 일으켰다.
"이노옴……."
자운이 검을 움켜쥔다.
"이놈 저놈 하지 마라. 너보다 백 살은 족히 많으니까."
사실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칠적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놀리려 한다고 생각하고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나며 네 개의 주먹이 뻗어온다.
평범한 주먹이 아니다.
주먹이 하늘을 가리고, 파천(波天)했다. 조각난 하늘이 자운의 머리 위로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미친."
강기를 비처럼 떨어뜨리는 것. 당문에서도 이런 초식이 있다. 암기에 강기와 독을 둘러 비처럼 떨어뜨리는 만천화우(滿天花雨)라는 초식이다.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의 꽃비가 내리고, 그 꽃비에 닿는 순간 죽어버린다는 당가의 절기.
지금 칠적이 펼쳐 보이는 것과 당과의 만천화우는 기본 골자는 비슷했으나 이루고 있는 것이 암기가 아니라 권강이라는 점이 달랐다.
콰과과과광―
"유성대륙파(流星大陸破)다! 받아봐라, 이놈아!"
'저건 좀 힘들겠는데.'
하나 피하기는 범위가 너무 넓다. 자운이 무릎을 살짝 숙이며 바닥에 발을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는 위에서 떨어질 충격에 대비하며 온몸에 황룡무상강기를 두른다.
'빌어먹을. 이룡이법만 슬 수 있어도 막을 수 있겠는데.'
본래 황룡무상강기는 일룡일법과 같이 움직이며 공격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각기 가지는 특성이 있었다.
황룡무상강기는 황룡문의 개파조사가 무로서 이룰 수 있는 경지의 극의(大극의?)에 오르기 위해 창안한 무공. 그 속에는 무로서 보일 수 있는 모든 경지가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일룡일법이 가지는 힘은 패(覇)다.
가장 패도적이며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패룡(覇龍)이라고도 불린다.
자운이 지금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것은 이룡이법(二龍二法)이었다.
이룡이법은 호(護)이자 금(金)이다.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철벽을 이루듯 시전자를 싸고도는 것이 황룡무상강기의 이룡이법이었다.
달리 부르는 이름은 호룡(護龍). 하나 자운은 지금 호룡을 이루지 못했다.
패룡에 닿은 것도 아주 우연한 기회였을 뿐, 실제로 황룡무상십이강은 무의 경지가 아니라 무의 갈래이기 때문에 깨달음이 아닌 어떠한 조건의 충족으로 깨어난다.
하나 자운은 이룡이 이르는 진입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냥 몸으로 때워야겠다. 으아아아아!"
자운이 기합성을 내질렀다. 그에 부응이라도 하듯 자운의 몸을 휘감고 있는 패룡이 용음을 터뜨린다.
우우우우―
한차례 용음이 울고, 허공에서 권강의 비가 떨어져 내렸다.
쾅― 쾅―
콰과과과과광―
천지사방이 뒤집어진다.
권강이 떨어질 때마다 대지가 뒤집어지고, 벗겨지며, 찢어졌다. 바닥이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지고, 봉우리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운이 이를 악 물었다.
"캐액."
입에서는 절로 피가 나온다. 이를 악물고, 황룡을 자신의 몸 주변으로 더욱 강하게 둘렀다.
권강이 패룡을 때릴 때마다 자운의 몸이 휘청한다. 그와 동시에 침투경이 자운의 몸속으로 침입했다.
'젠장. 무슨 이런 무식한 무공이 다 있냐.'
자운이 입에 고인 피를 퉤 하고 뱉어냈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검결지를 맡아 쥔다.
자운의 사방으로 용의 비늘을 뽑아 만든 듯한 벽이 일어서고, 일어선 벽이 사방을 보호했다.
검으로 펼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일단은 용린벽이다.
쩌억―
하나의 용린벽에 금이 가고, 자운이 빠르게 다시 용린벽을 펼쳤다.
겹겹이 용린벽을 펼쳐 사방을 메워 나간다.
틈이 하나라도 생기는 날에는 그 사이로 권강이 침입할 것이다.
용린벽으로 막아내자, 침입하는 침투경의 양이 훨씬 적어졌다.
용린벽이 가지는 힘은 이화접목의 묘리.
상대 힘의 일정량을 적에게 그대로 되돌려 주는 것이다.
한 점에 모아서 돌려주지 못한다는 것이 태허 진인이 그렸던 태극과는 달랐지만, 그것만 되더라도 충분히 견딜 만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운으로서는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거대한 충격을 견디지 못한 봉우리가 위에서부터 무너져 내린다.
그러니 발을 지탱할 발판이 없어지고, 발판이 사ㅏ진 칠적이 허공으로 몸을 날리며 공격이 끊어졌다.
쿠구구구구구―
그 틈을 타서 자운이 몸을 뒤틀어 봉우리에서 벗어난다.
칠적 역시 마찬가지였다.
칠적의 몸이 자운의 뒤를 쫓았다.
“이 괴물같은 놈, 그걸 받아내다니.”
자운이 허공을 연달아 밟으며 맞대꾸했다.
“내가 그럼 그거 맞고 죽기를 바랐냐?”
말은 여유롭게 하고 있었지만, 자운의 속은 사실 그리 여유롭지만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