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거마혼(巨魔魂)이다. 재주껏 막아봐라.”
거대한 마신상. 눈으로는 흉흉한 시세를 뿌리는 것이 분명 만만치 않다.
그가 주먹을 뻗었다. 절대로 닿지 않을 거리. 그 움직임에 맞추어 거마혼의 팔이 움직인다.
그그그그그―
흑색 마신이 주먹을 들어 자운을 내려친다.
자운이 대경실색을 하며 소리쳤다.
“이런 미친.”
설마 저 거대한 게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ㅇ낳게 움직임 또한 빠르다.
자운이 잽싸게 바닥을 박찼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거마혼의 주먹이 바닥을 내리찍고 바위가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그중 하나가 자운을 향했다. 자운이 발 끝에 힘을 모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바위를 박살내었다.
그 너머로 드러난 칠적은 그야말로 악마였다.
거대한 마기를 몸 줄기줄기 휘감았다. 그 모습이 마치 갑옷과 같다.
흑색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한 지옥의 신장과 그 신장이 부리는 마귀와 같다.
자운이 식은땀을 흘렸다.
“젠장. 네가 숨겨둔 마지막 한 수라 이거냐?”
칠적이 으스스하게 웃는다.
“얼마 전 무공을 대성했지. 이걸 한다면 육적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 육적이 내 손에 죽었어.”
“흐흐흐. 독성과 합공을 했지.”
“젠장. 왜 그 영감탱이는 끌어들인 거냐.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다고. 너 정말 죽고 싶냐?”
자운이 버럭 화를 냈다. 재주는 자기가 부렸는데 왜 그 공을 독성과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말인가. 안 그래도 마지막 육적의 숨통을 끊은 것이 독성인지라 소문도 그렇게 났는데 말이다.
자운의 물음에 놈이 웃었다.
“어디 한 번 죽여봐라.”
마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오고, 그 속에서 거마혼의 주먹이 회오리쳤다.
두 주먹으로 용권풍을 만들어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거마혼이 그러했다.
두 주먹을 휘둘러, 총 네 개의 팔을 움직여 두 개의 용권풍을 만들었다.
거대한 자연 재해가 그대로 자운을 덮쳤다.
자운이 용권풍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으아아! 으아아아아아! 으아아아! 이 미친놈아!”
저 용권풍에 휩쓸린다면 자운으로서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운이 좋으면 몸이 갈가리 찢겨 시체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운이 좋지 않으면 정말 시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조각나 버릴 것이다.
‘이백 살이나 먹었지만 아직은 못 묵어주겠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으니까.
자운이 우득우득 양손으로 검결지를 말아 쥔다.
용린벽, 두 개의 용린벽이 자운의 앞을 단단하게 마주하고, 용권풍과 용린벽이 충돌했다.
“크윽.”
자운의 입가로 피가 흐른다. 몸속의 핏줄을 벌레가 갉아 먹는 기분. 침투경이 자운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아직 많은 양은 아니지만 쌓이고 쌓인다면 위험하게 될 것이다.
‘검만 있었어도…….’
용권풍째로 두 조각을 내어버렸을 것이다. 자운이 눈을 돌렸다.
아직까지 검이 오지 않는다.
하나의 용린벽이 깨어지고, 하나의 용권풍이 사라졌다.
꽈과과광―
“큭.”
용린벽을 이루고 있던 자운의 우수가 튕겨 나갔다. 자운이 튕겨 나간채로 흡자결을 운영했다.
자운의 손에서 강력한 흡기가 발생하고,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무당의 검 하나가 자운의 손아귀로 빨려들어 왔다.
“황룡신검보다는 못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자운의 검에서 황룡이 꿈틀 거린다.
의형강기가 일어났다.
용린벽을 회수하고 뻗어내는 것은 황룡검탄(黃龍劍彈)!
그리고 질주하는 것은 광룡폭로(狂龍爆路)!
황룡검탄이 용권풍을 집어삼키고, 자운의 발이 향하는 곳이 터져 나갔다.
꽝―
꽝―
꽝꽝꽝―
지진이라도 일어난 양 자운이 밟은 곳이 터져 나간다.
땅이 쩌적 갈라지고, 구덩이가 이리저리 생겼다. 광룡폭로와 칠적이 연달아 충돌했다.
까앙―
직도황룡으로 그어내렸으나, 놈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는다.
‘강환이 아니면 먹히지 않는 건가.’
자운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하여 팔짝 뛸 지경이었다. 강환을 쓴다면 어찌어찌 놈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다.
강환에 들어가는 내력은 자운으로서도 감당하기 힘들 전도로 많기 때문이다. 아마 강환을 뿌리며 싸우면 이각 안에 자운의 내력이 바닥날 것이다.
이각, 무림인들이 이 소리를 들었다면 기겁했을 것이나 지금 당장 자운에게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이각 안에 결판을 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광룡폭로의 보법을 회수한 자운이 운해황룡의 퇴법을 밟았다.
자욱한 모래 먼지가 일고, 자운이 기감을 넓게 퍼뜨려 그 속으로 녹아내렸다.
자운의 신형이 모래 먼지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놈! 또 도망가는 것이냐!”
자운이 답했다.
“어. 미안한데 칼이 나갔다. 다른 걸로 좀 바꾸게.”
그 소리가 허공에서 울리는지라 소리를 듣고도 칠적은 자운의 위치를 잡아내지 못한다.
그 틈을 타 자운이 다른 검을 집어 들었다.
몇 번 충돌하지도 않았는데 이가 나갔다.
‘더럽게 단단하네. 저게 사람이야, 쇳덩이야.’
정확하게 말하면 쇳덩이처럼 되어버린 사람일 것이나, 자운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혹으로 욕이라도 좀 해야 답답한 것이 풀릴 것 같아 그리했을 뿐이다.
검을 바꾼 자운이 모래 먼지 속에서 튀어나갔다. 이번에도 발에는 광룡폭로의 초식이 운용되고 있었다.
바닥이 터져 나가고, 그대로 빛살처럼 튀어나간 자운의 몸과 칠적이 연달아 충돌한다.
쩡―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자운이 인상을 썼다. 이 거마혼과 충돌할 때마다 적지 않은 양의 침투경이 흘러들어 왔다.
충돌할 때마다 침투경이 흘러들어 오는 무공이라니, 칠적이 왜 육적과 싸워도 지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칠적의 거마혼이 움직인다.
자운을 정면에서 찍어 내렸다.
자운이 검면을 들었다.
강기가 피어오르고, 검면과 거마혼의 주먹이 그대로 충돌한다.
쩡―
자운의 손에 들린 검이 부서졌다. 조각난 파편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고, 자운의 몸에 그대로 거마혼의 주먹이 작렬했다.
뻐엉―
터진 공처럼 자운의 몸이 날아갔다. 줄 끊어진 추가 그러할까?
자운의 몸이 허공을 훨훨 난다. 자운이 몸을 수습했다. 바닥을 미끄러지듯 착륙하며 피를 게워내었다.
“캐액! 웨엑!”
내상을 입은 것인지 흘러내린 피 사이로 내장 조각이 섞여 있었다.
자운이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었을 때 청수 진인이 소리쳤다.
“검을 가져왔소!”
청수 진인의 손에 들린 검. 그것은 분명한 황룡신검이었다. 자운이 손을 뻗었다. 자운의 손에서 흡자결이 일어나 황룡신검을 잡아 당겼다.
황룡신검이 주인에게 반응이라도 하듯 떨리며 검명을 토한다.
우우우우우우―
착―
자운의 손에 황룡신검이 감겨들고, 자운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마지막으로 입에 남은 피를 침에 섞어 뱉었다.
“퉤. 지금부터 다시 해보자, 이 개새끼야.”
제8장
우우우우우―
자운의 의지에 따라 황룡무상강기가 일어났다. 일룡일법, 패도일변도의 황룡이 자운의 몸을 휘감으며 일어난다.
허공을 향해 포효를 내지르는 황룡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황룡이 허공 높이 고개를 치켜들고는 아래를 내려다본다. 마주하는 것은 거마혼. 황룡무상강기의 크기 또한 거마혼에 비교하여 뒤지지 않는다.
"자, 이제 칼도 들었고, 한번 해보자고."
자운이 씨익 웃자 칠적이 자운의 몸을 휘감고 있는 거대한 황룡을 보며 말했다.
"황룡무상강기......."
"어, 정답이다."
자운의 몸이 튀어나왔다. 방금 전까지 자운이 서 있던 자리에 쾅 하는 폭음이 울리며 구덩이가 파였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뒤에 있던 건물 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자운의 몸이 눈의 인지를 넘어서 움직이고, 칠적이 거마혼의 모든 팔을 끌어당겼다.
네 개의 팔을 겹겹이 둘러 자운의 공격을 막아낼 셈인 것이다.
번쩍하는 빛과 함께 자운이 회전한다. 그리고 뻗어내는 황룡신검. 그 검을 따라 황룡무상강기가 움직였다.
쾅―
황룡무상강기가 큰 입을 벌려 거마혼을 찍어 누르고, 거마혼이 두 개의 팔을 들어 황룡무상강기의 입을 부여잡았다.
먹기 위한 자와 먹히지 않기 위한 자의 싸움. 거신들의 싸움이 저러할까.
아래에서는 자운이 몸을 돌렸다. 황룡신검이 금빛 강기로 물들고, 자운의 검이 번쩍하고 허공을 갈랐다.
단번에 아래로 베어내리는 일도양단의 수법. 거마혼의 두 개의 팔이 자운의 검을 막았다.
까앙―
피가 튄다. 자운의 피가 아니다.
칠적의 피. 거마혼으로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금강불괴시진에 이른 몸에 상처가 났다. 긁힌 정도의 상처에 불과했으나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이제 자운의 공격이 통한다는 것이다.
"내 몸에 흠집을 만들어?"
강환도 아니고 고작 강기 따위로 흠집이 났다는 사실이 칠적으로서는 매우 불쾌했다. 하나 자운으로서는 반가운 조짐이었다. 자운이 웃었다.
"이쪽도 신검이라고, 그 정도는 해줘야 체면이 서지."
자운의 웃음과 함께 다시 황룡신검이 허공을 갈랐다.
분광(分光)의 속도를 흉내 내는 절초, 직도황룡이 쾌의 묘리를 담아 펼쳐진다.
향하는 곳은 심장. 일곱 개의 변화가 주변으로 뻗어 나가는가 싶더니 단박에 칠적의 심장으로 모여들었다.
일곱 개의 검이 연달아 칠적의 심장을 가르고, 피슉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그 자리로 거마혼의 주먹이 자운의 몸을 노리고 들어온다.
"젠장. 얕았나?"
자운이 칠적의 심장을 살피며 빠르게 퇴법을 밟았다. 한번 맞아봐서 아는데, 저런 주먹질 두 대 정도만 더 맞아도 운신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천주가 반으로 접히는 고통이 주먹질에서 느껴졌다고 하면 믿을까?
자운이 뒤로 물러나는 동안, 칠적은 이미 심장의 지혈을 마친 상태였다.
심장 부근에 난 상처이기는 했으나, 고작해야 긁힌 정도의 상처다. 자운이 입맛을 다셨다.
"그 한 방에 꽉 죽어주면 정말로 좋았을 텐데 말이지. 쩝쩝."
자운의 위에서 황룡이 낮게 울었다.
크르르―
황룡 역시 거마혼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운 모양이다. 자운이 입맛을 다시고, 칠적의 미간이 꿈틀 좁혀졌다.
"이놈, 네가 정말로 나를 이길 수 있을 줄 아느냐?"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내가 이기는 건 당연한 사실이고, 얼마나 빨리 이기는지가 문제였는데?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