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그 강함은 자운이 몸소 느끼고 있었다. 눈앞에서 먹잇감을 빼앗긴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놈은 자운을 향해 세찬 기파를 보내었고, 그 기파 때문에 피부가 저릿저릿하고 따끔거릴 정도다.
자운이 자신의 옆에 있는 청수 진인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이런 거 잘못 먹으면 배탈 나니까.”
자운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발끝이 바닥에 닿고,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자운이 바닥에 내려선다.
“넌 누구지?”
칠적이 자운을 향해 묻자 자운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요즘 꽤 유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닌 모양이네. 좀 더 노력을 해야 하나?”
자운이 이죽거리며 자신의 팔에 수놓아져 있는 황룡이 잘 보이도록 들어 보였다.
금빛 황룡이 자운의 팔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꿈틀거린다. 그것까지 확인한 후에도 자운의 정체를 알지 못할 리가 없다.
“철혈난신인가?”
“물론 바로 그게 나야.”
자운이 당당하게 가슴을 들며 그렇게 말하자 칠적이 이죽거렸다.
“검도자는 왜 안 나오고 누런 지렁이가 나온 거지?”
“아, 검도자는 아직 뻗어 있어. 그보다 지렁이가 아니다.”
뻐억―
자운이 주먹을 휘둘렀다. 단번에 강력한 권풍이 몰아치고, 그 사이로 권강이 질주한다.
대기를 꿰뚫어 버린 권강은 그대로 칠적의 몸을 후려치고, 칠적이 두 손을 포개어 자운의 권강을 막았다.
퍼억―
반보도 미끄러지지 않는다. 자운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과연 적은 적이란 말이지.”
“이것도 주먹이라고 날린 거냐?”
칠적이 손을 털어 남은 통증을 모두 흘려버리며 말했다. 권강이라 하면 상당히 강력한 기의 집약체이지만, 금강불괴지신을 이룬 칠적에게 이 정도 권강은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아니다.
“물론 인사치레로 한번 날려본 거였는데, 어때? 마음에 들어?”
자운이 이죽거리고, 칠적이 웃었다. 누런 이가 다 드러나도록 웃어 보이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역겹게 보인다.
금강동인과 같은 구릿빛 피부를 빛내며 누런 이를 내보이는 모습은 상상 속에서도 보기 싫은 모습이다.
자운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다른 한 손을 흔들었다.
“어우 야, 좀 가려라. 역겹다.”
자운의 말에 그가 미간을 꿈틀거리며 주먹을 높게 쳐 들었다. 그의 두 손으로 대기가 빨려들어 가고 정면에서 느껴지는 중압감은 거대한 화포를 마주한 듯하다.
단번에 포탄을 쏘아 보내고, 일대를 초토화시켜 버릴 포탄이 그의 손에 장전된다.
꾸드드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났으나 실제로 뼈가 뒤틀리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대기가 비틀어지는 소리였다.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공간이 일그러졌다. 단 한 수에 자운을 쳐 죽이려는 것인가?
자운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찾았…….
‘빌어먹을, 해검지에 풀어놨지.’
어쩔 수 없다. 두 손으로 막아야 한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검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검결지다.
두 다리를 땅에 박아 넣어 굳건하게 하고 말아쥔 검결지 위로 힘을 더했다.
단전에서부터 노도와 같이 휘몰아친 내력이 폭포수처럼 검결지 위로 쏟아진다.
자운이 용린벽을 세우며 소리쳤다.
“빨리 내 칼 가져와! 내 칼!”
용린벽이 흔들린다. 자운이 그 흔들림 속에서 몸을 뒤로 회전시켰다.
한 바퀴 회전한 자운의 몸이 뒤쪽의 벽을 박찼다. 그와 동시에 칠적을 향해 솟구치는 자운의 신형, 그의 손이 빙글빙글 돌았다.
염룡교의 수법이 자운의 손끝에서 튀어나온다.
“소용없다!”
놈이 소리를 치며 자운의 공격을 너무도 쉽게 막아내었다.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염룡교가 통하지 않는다.
과연 금강불괴, 자운이 침음 성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손을 타고 얼얼한 감각이 흘러들어 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놈과 격돌하는 순간, 아주 작은 조각의 침투경이 파고들어 왔다. 침투경이 기맥 속에 들어 있는 아릿아릿한 감각이 선명하다.
자운이 아픔을 참으며 뒤에 내려섰다.
“빌어먹을 몸뚱이가 더럽게 단단하네.”
“그게 바로 내 자랑이지.”
“머릿속까지 단단하면 그게 바로 돌대가리겠지?”
그가 웃었다.
“어설픈 격장지계가 통할 거라고 보는가?”
자운 역시 웃었다. 어느새 얼얼한 손의 통증은 모두 털어 버린지 오래였다.
“글쎄, 막 던지다 보면 하나 정도는 걸리지 않겠어?”
자운의 말에 놈이 단번에 튀어나온다.
격장지계에 휩싸인 것이 아니다.
놈은 조롱의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그렇게 평생 해봐라.”
자운이 피식하고 웃으며 놈의 몸에 마주쳐갔다.
육탄돌격처럼 보였으나 단순한 육탄돌격이 아니다.
놈의 몸에 부딪치는 순간, 감당하지 못할 고통이 느껴질 거라는 것은 자운도 잘 알고 있었다.
자운의 손이 변화를 그렸다.
그리고 뻗지 않은 손과 칠적의 몸이 충돌한다.
“그 전에 넌 죽어.”
손에 그려낸 문양이 칠적의 공격을 허공중으로 와해했다.
자운이 다른 한 손으로 권격을 뻗었다.
직접 타격할 경우 침투경이 타고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권강을 날렸다.
금빛 권강이 찬란한 빛을 발하며 자운의 손끝에서 튀어나왔다.
“내 칼만 오면 말이야.”
“흥.”
칠적이 콧방귀를 뀌었다.
칠적의 몸과 권강이 충돌했다. 권강이 한순간 눈이 멀어버릴 듯한 빛을 발하며 터졌다. 그 틈을 타서 자운이 뒤로 몸을 뺐다.
자욱하게 모래 먼지가 일고, 그 속에서 칠적의 신형이 점차 드러났다.
어느 정도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다.
“괴물 같은 놈.”
칠적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칭찬으로 듣지.”
“역겨우니까 하지 말라고 했지.”
자운의 몸이 빙글 하고 회전했다. 양손으로 주변의 바람이 딸려 들어온다.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 자운이 두 손으로 바람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의 손에서 바람이 압축되고 또 압축되었다.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압축되는 바람은 이윽고 두 개의 구체를 만들어 내었다.
자운이 구체를 던졌다.
풍룡신탄(風龍申彈)!
바람을 부리는 용이 폭풍을 날렸다.
작은 바람의 구는 칠적을 향해 날아가며 그 세를 불렸고, 주변의 바람을 잡아 당겼다.
주변의 바람이 그 작은 구체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세가 불어나자 그것은 진정 폭풍이 되었다.
폭풍이 놈을 덮친다.
아무리 금강불괴라 할지라도 밀려오는 바람에 몸이 뒤로 밀려나지 않게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자운이 펼치는 풍룡신탄은 그야 말로 천재, 대막의 용권풍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힘이다.
바람이 회전하며 칠적의 몸을 세차게 때렸다.
상처는 입지 않았으나, 그 힘이 적지 않아 칠적이 뒷걸음질을 치며 두 주먹에 한 가득 힘을 불어넣었다.
그대로 풍룡신탄을 때려 버릴 생각이었다.
그의 두 손이 붉게 물들 정도의 내공이 피어오르고, 선명한 권강이 풍룡신탄의 핵을 때렸다.
쾅 하며 지축이 흔들렸다.
한순간 대지가 뒤집히고, 그 너머의 대지가 파도치듯 출렁였다.
출렁이는 바닥에도 다리가 흔들리지 않고 그 위에 가볍게 내려서는 자운.
칠적의 주먹과 충돌한 풍룡신탄은 힘을 잃었다.
두 개의 풍룡신탄이 사라지고, 칠적이 그 속에서 허리를 일으켰다.
“잔재주가 재미있구나. 하지만 수준은 네 어설픈 격장지계와 다르지 않다.”
자운이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이것도 막 던지다 보면 하나는 효과가 있지 않겠어?”
자운이 다시 솟구쳤다. 이번에는 이전과 다르다. 대각선으로 솟구치고, 그의 몸이 향하는 곳은 칠적의 머리가 있는 곳이었다.
“이것도 맞아보라고.”
자운이 세차게 다리를 회전시켰다. 다리 끝에서 강력한 힘이 일어나고, 용이 발톱을 내리긋는 듯한 각법이 펼쳐졌다.
따다당―
한 번에 세 개의 발톱이 상에서 하로 내리그었으나 칠적은 두 팔을 교차하여 금강불괴로써 막아낸다.
“이제 내 차례겠지?”
자운이 칠적의 지근거리에 있을 때, 칠적이 씨익 하고 웃으며 두 주먹으로 허공을 때렸다.
자운이 욕지기를 뱉었다.
“젠장.”
동시에 검결지를 말아 허공중에 용린벽을 세운다.
급하게 세운 용린벽이라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자운이 냉정하게 상황을 읽었다. 공격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거대한 권격과 용린벽이 충돌했다.
콰앙―
거대한 힘의 충돌, 그 속에서 소용돌이가 발생하고, 하늘을 뚫을 듯 힘의 기파가 솟구쳤다.
검도자는 무당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칠적의 공격을 분산시켰지만, 자운은 칠적의 공격을 분산시켜야 할 이유가 없다. 편하게 막아내고 흘려냈다.
세찬 기파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청수 진인이 올라서 있던 누각이 무너지고, 청수 진인이 풀쩍 뛰어 다른 곳으로 건너가며 말했다.
“다들 피하거라. 절대의 영역에 접어든 고수들의 싸움이다. 감히 우리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해 기파를 막았다.
무당의 제자들로 향하는 기파를 막아내는 것이다. 검을 쥔 손아귀가 터져 나갈 것 같다.
기파에 충돌하는 것만으로 찢어져 피가 흐른다.
막아내지 못한 기파 몇 개가 뻗어 나가 무당의 건물을 무너뜨렸다.
“무량수불.”
분명 깊은 역사가 담긴 건물이다. 하나 건물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 아니겠는가.
‘사부님, 죽어서 선대의 죄를 받는다면 제가 다 받겠습니다. 그러니 저는 지금 제자들을 지키겠습니다. 무량수불.’
무당의 정순한 내공심법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온몸을 순환하고, 온 힘을 다해 뻗어 나오는 힘의 줄기를 막아내었다.
고작 줄기일 뿐이다. 고작 줄기 하나를 막는 것이 이렇게 힘든데, 저 힘의 폭발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자운과 칠적은 정말로 사람인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허허, 정말 저들은 사람이 아니구나.’
사람이 아닌 초인이다. 한참을 힘이 더 뻗어 나가고, 그 속에서 자운의 몸이 날았다.
“캐액!”
빙글빙글 날아가 충격을 줄인 자운이 바닥에 가볍게 떨어져 내리며 손을 털었다.
“으아아, 아퍼라, 아퍼. 이 무식한 놈아, 때리면 때린다고 말을 하고 때려야지 갑자기 주먹질을 하면 어쩌자는 거냐.”
자운이 틀어진 손가락뼈를 오만상을 쓰며 맞추었다.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움직이기는 한다. 부러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자운이 아직도 아픈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자운의 말에 놈이 흐흐 하며 웃는다.
“이게 비무인 줄 아느냐. 웃기는 소리를 다 하는군, 이 미친놈이.”
자운이 이죽거렸다.
“지랄. 연습은 실전같이, 실전은 연습같이, 몰라? 그럼 연습같은 실전을 해야 할 거 아냐. 앞으로 때리면 때린다고 말하고 때려라.”
“미친놈이 발광을 하는구나.”
“발광이 아니라 이렇게 말하라고. 나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