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수십, 수백에 이르는 도관에서 수백, 수천, 수만에 이르는 갈래의 무공들이 파생되어 나왔고, 이것들이 계승된 곳이 무당이다.
그 무학의 깊이는 얕으나 방대하고 넓어 무시하기 힘든 곳, 소림과는 다른 의미로 무공의 조종이라 불릴 만한 곳이 무당 인 것이다.
자운의 발걸음이 그 무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당의 개파조사는 장삼봉으로서 그의 도호가 삼풍진인이었기에 달리 무림에 알려지기를 장삼풍으로도 알려져 있다.
시대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으나 본래 소림에서 공부했다는 일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나 후에 소림에서 하산하여 천하를 주유하였고, 무당산에 이르러 영기에 취해 세 봉우리를 보고서 득도하여 무당파를 개파하였다고 한다.
삼풍진인에 관한 이야기는 수년, 수십 년에 거친 것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거쳐 흔적이 전해져 오고 있음으로 사기에서 이르기는 달리 장삼풍은 한 사람이 아니라 수십 명의 신선관 도인들을 하나로 엮어 부르는 것이라고도 한다.
한 가지 대단한 것은, 그 삼풍진인이라는 존재가 현 구파 중 하나인 무당의 개파조사라는 것이다. 그가 규합하고 창안한 무공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으니, 가히 무림을 대표하는 걸출한 대종사일 뿐만이 아니라 전설적인 인물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자운의 걸음이 천천히 무당을 올랐다.
“하아, 역시 나는 도사는 못 될 놈이야.”
자운이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장삼봉에 대한 일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장삼봉이 무당에 이르러 영기에 휩싸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무당을 오르고 있는데도 깨달음은커녕 영기를 한 줌도 느끼지 못하겠다.
자운이 무당산의 봉우리 한 자락에다 대고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이 무당산! 더럽다! 나도 영기 한 조각만 나눠달라고! 등선할 필요까지는 없으니까! 그게 그렇게 아깝냐!”
발을 굴러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 자운이 피식 웃었다.
“그래, 너 그렇게 쉬운 산이 아니란 말이지? 졸을 대로 해라.”
말하고 보니 웃기다. 또한 꼭 미친놈 같지 않은가.
무당산에 영기가 충만하여 개나 소나 그 영기를 느낄 수 있으면 무당의 개도 장삼봉일 것이고 소림의 소는 달마라도 될 것인가?
그렇다면 천하는 무당과 소림이 지배했을 것이다.
자운이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며 계속해서 무당을 올랐다.
조금 있으면 해검지가 나올 것이다.
자운이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황룡신검을 가볍게 두드렸다.
“널 잠시 풀어야 한다니 안타깝군.”
본래 황룡신검은 황룡문의 문주를 상징하는 검이자 신물이다. 하나 아직 자운이 황룡신검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운산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운산은 스스로가 아직 황룡신검을 지킬 힘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인정했다.
자신이 황룡신검을 가질 만한 실력이 될 때까지만 황룡신검을 맡아달라고 말이다.
자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아직까지 자운의 허리춤에 황룡신검이 있는 이유였다.
무당산을 가벼운 걸음으로 오르기를 얼마쯤, 자운의 걸음이 우뚝 멈추어 선다.
해검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바위를 깎아 해검지(解劍池)라는 글자를 세우고, 그 옆에 눕혀진 평평한 바위가 있다.
그 위에는 무림인의 것으로 보이는 도검 몇 자루가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었으며, 도검 위로는 옆에 서 있는 나무에서 드리우는 구름이 자리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너를 저런 것들과 같이 취급할 수는 없겠지.”
자운이 다시 황룡신검을 가볍게 때리자 황룡신검이 운다.
우우우우우―
그 소리가 마치 용구전철수를 펼칠 때 나는 용음과 같다.
자운이 해검지로 다가가자 무당의 제자로 보이는 이가 자운을 향해 뛰어왔다.
본래 어느 문파를 가든 정문을 지키는 이들은 대부분 내부에 있는 이들에 비해서 한 수 접어주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하나 이 기정사실에서 단 한 곳 예외가 있다면 바로 무당이었다.
무당에서 해검지가 가지는 의미는 적지 않다. 그러니 그 해검지를 관리하는 제자를 약한 무사를 둘 수 없는 것이다.
일대제자들은 대부분 본산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해검지를 지키는 것은 무당에 도적을 올린 이대제자, 혹은 삼대제자가 하는 일이다.
본적을 올리지 못한 속가제자들이나 평제자들은 감히 해검지에 설 수 없다.
아마도 지금 달려오는 이도 삼대제자, 혹은 이대제자일 것이다. 자운이 그 자리에 뚝 하고 멈춰 서고, 무당의 제자가 자운의 앞에서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여 보인다.
“무당의 이대제자 현종(賢從)이라 합니다. 어디에서 오신 분입니까?”
자운의 현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황룡문의 태상호법 천자운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검 풀어야 하는 거 맞지?”
사실 자운이 유명한 것은 황룡문의 태상호법이라는 직위보다는 철혈난신이라는 무림명으로 더욱 유명하다.
천자운이라는 이름에 현종은 한순간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무당의 제자답게 눈빛과 자세를 가다듬었다.
“여기는 무당의 해검지입니다. 아무리 그것이 무림에 이름을 날리는 천 대협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자운이 입맛을 쩝 다셨다. 그리고는 마치 보물 집어 올리는 듯 허리춤에서 황룡신검을 풀어 현종에게 넘겨주었다.
“이거 굉장히 중요한 검이거든? 이거 실수로 잃어버리면 네 목으로도 변상이 안 돼. 아마도 무당산 봉우리 하나쯤은 팔아야 할 거야.”
반은 농담을 섞어서 던지는 말이었으나, 무림에서 자운 정도 되는 이가 그렇게 농담을 던진다고 진짜 농담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몇 없다.
자운의 말에 현종이 눈을 동그랗게 말아 떴다. 그리고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황룡신검을 받아 품속에 껴안았다.
절대로 떨어뜨리면 안 되는 신줏단지 모시는 듯하다.
자운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 그렇게 품에 꼭 모시고 있어라. 그렇게 하고 있어야 한다.”
자운이 피식 웃으며 무당산을 향해 휘적휘적 올라갔다. 현종은 자운이 올라간 후에도 품속에 있는 황룡신검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해검지에서 올라가면 나오는 것은 무당의 산물이다. 무당의 산문은 화산의 산문과 같이 높고 화려하게 지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도가의 조종다운 향취를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조용한 멋이 있었고, 또한 그 속에서 느껴지는 현기는 도에 별 관심이 없는 자운마저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아, 이러니 도를 믿으십니까 하면 걸려드는 사람이 있는 거구나.”
과연 이 정도의 현기라면 도사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 자운은 곧 고개를 흔들어 망상을 털어버렸다.
자신이 무당에 찾아온 이유가 도사가 되기 위함은 아니지 않던가?
“왔으면 목적대로 할 일을 해야지.”
자운이 무당의 산문을 향해 다가갔다. 산문 입구에는 화산과 마찬가지로 오가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곳이 있었고, 자운이 다가가 붓을 들어 이름을 적었다.
황룡문 태상호법 천자운.
자운이 멋들어지게 무림명과 소속 이름을 적어 내렸다. 무심하게 바라보던 무당의 제자가 황급하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무당의 이대제자 현우(賢雨)가 철혈난신 천 대협을 뵙습니다.”
자운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아, 그래, 혹시 안에 기별 좀 넣어줄 수 있어?”
그의 말에 현우가 빠릿빠릿하게 답했다.
아무래도 무림 경험이 없는 이대제자이다 보니 자운과 같은 무림 명사가 하는 부탁에 긴장을 한 모양이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자운이 싱글벙글 웃었다.
“예. 어떻게 어느 분께 기별을 넣으면 되는지…….”
“무당의 장문인께 전해다오. 황룡문의 천자운이 어두운 하늘 속에서 빛나는 일곱 개의 별을 들고 왔다고.”
무당의 장문인인 청수 진인이 화들짝 놀라 달려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두운[玄] 하늘[天]속에서 빛나는 일곱[七星] 개의 별이라고 한다면, 현천칠성검 말고는 다른 것이 없다.
과거 무당의 무공 중 손에 꼽히는 무공, 그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것이 태극혜검이다.
그와 견줄 만하다는 현천칠성검은 무당의 무공답지 않게 움직임이 간결하고 패도적인 기운이 짙다.
또한 단 하나의 초식으로 수십 개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 태극혜검과는 달리 일곱 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방대한 이해보다는 십 년 그 이상의 숙련을 필요로 하는 무공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 속에 담긴 이해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 별것 아닌 무리처럼 보이다, 그 속에는 무당 무공의 정수가 들어 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의 무리가 들어 있었으니 가히 태극혜검과 비교한다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었다.
무당의 장문인 청수 진인을 필두로 족히 다섯은 되어보이는 무당의 장로들이 뛰어나왔다.
무당의 연청십팔비(聯靑十八飛)를 펼치며 달려오는 그들의 모습은 한눈에도 놀람이 어려 있었다.
현천칠성검이 사라진 지가 얼마던가. 실전된 줄 알았던 무공을 자운이 가지고 오다니 그들로서는 자운에게 큰 은혜를 입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청수 진인이 자운 앞에 훌쩍 내려섰다.
그리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도호를 외운다.
무량수불. 빈도는 무당의 청수라고 합니다.“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잘 알고 있어. 내가 좀 젊어 보이기는 하지만, 나이는 당신보다 많으니까 말을 좀 편하게 해도 되겠지?”
자운의 말에 청수 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무당의 무공을 다시 가져다준 사람이 아닌가. 그 정도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십시오. 한데 가지고 오셨다는 비급은…….”
자운이 그 말에 ‘아아’ 하고 소리 내어 말하며 품속에서 현천칠성검의 비급을 꺼내 청수 진인에게 넘겨주었다.
청수 진인은 비급을 받아 들자마자 그 자리에서 비급을 펼쳐 보며 무당의 장로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입술만 달싹이는 것으로 보아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기운을 간섭하여 엿듣고자 한다면 충분히 엿들을 수는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자운은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각 정도가 지났을까. 자운이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한 무렵, 그들의 이야기가 기다리기라도 한 듯 멈췄다.
청수 진인이 자운을 바라보고 품속으로 소중하게 갈무리했다
“이것은 분명한 무당의 현천칠성검이군요, 이렇게 귀한 것을 가져다 주셔서 천 대협께는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무량수불.”
얼마 전 태허 진인이 칠적의 손에 쓰러져 의식이 불명한 상태. 칠적이 죽지 않고 몸을 살려 돌아간 만큼 그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