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또한 황룡문의 비급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비급에 손상이 생긴다면?
아마도 아까워서 일주일은 밥도 못 먹을 것이다. 그래서 검을 대신하기로 한 것이 수도였다.
내공의 운용을 최소로 줄이고, 검에 비해서 다소 뭉툭하다고 할 수 있는 수도(手刀)를 검과 같이 움직인다.
허공중에 바람 소리가 울리고, 휙휙 하는 소리와 함께 자운의 수도가 어지럽게 분영을 뿌렸다.
내공을 적절하게 조절했기 때문에 뻗어 나오는 기운 자체가 날카롭지는 않았으나 검초는 현란하여 보는 이가 있다면 매혹당해 버릴 것이 분명했다.
무공을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하게 펼쳐 낸 자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도 미묘하게 다르네.”본래 구천비룡단은 아홉 개의 분영을 만들어내어 상대방의 눈을 현혹하는 수법이다. 따라서 그 힘이 패도일변도를 따르는 다른 초식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또한 쾌보다는 환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화후가 부족한 실력으로 펼쳤다가는 이도저도 아닌 무공이 되고 만다.
헌데 이것은 환에 비해서 쾌 하나만으로 분영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 더하여 쾌가 중(重)해지면서 중(重)이 더해졌다
패도일변도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전의 구천비룡단에 비해서 힘이 많이 올라간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나 장점만 늘어난 것은 아니다. 단점 역시 생겼다. 본래 환의 묘리를 이용한 구천비룡단의 공격 범위는 넓고 길다.
하지만 그 묘리가 쾌로 넘어가면서 지극히 단조롭고 좁은 공격 범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일장일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운이 구천비룡단의 비급을 현천칠성검의 비급과는 다른 쪽에 조심스럽게 갈무리했다. 그리고는 다시 다른 비급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황룡문의 비급을 찾는 것이다.
지금까지 두 개의 비급이 나왔다.
또 하나의 비급이 더 나와도, 아니, 몇 개나 되는 비급이 더 나온다고 하더라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운은 또다시 두 개의 비급을 더 찾아내었고, 그 무공들 역시 본래의 무공에 비해서 조금씩 달라져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도대체 이걸 누가 했다는 말이지?”
의문을 표하며 마지막으로 발견한 비급을 넘기자, 그 마지막에서야 자운은 해답을 풀 수 있었다.
나는 황룡문의 제자 우지경이다.
마지막 장의 첫 구결을 읽어 내려간 자운의 눈이 잘게 떨렸다. 그리고 곧 그 떨림은 온몸으로 번져 나가고, 손마저 덜덜 떨렸다.
자운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고수. 그 정도의 고수가 평범한 일에 온몸을 사시나무 바람에 떨 듯 떨 리가 없다.
무엇이 되었든 저 우지경이라는 사람이 자운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준 것이 틀림없었다.
곧 자운의 입에서 우지경의 정체가 흘러나온다.
“대사형.”
우지경, 그는 자운의 대사형이었다. 특출 난 무재를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황룡문을 향하는 마음 또한 사형제 중 으뜸이었다.
자운이 지금 황룡문을 생각하는 마음도 모두 우지경에게서 배웠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대사형의 비급이 왜 이 자리에 있다는 말인가?
자운의 대사형은 적성과의 전쟁 이후 실종되었다. 모두들 쉬쉬하고 있었지만, 그는 전쟁에서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지금 이곳에서 대사형의 비급이 발견된 것이다.
자운은 천천히 다음 구절을 읽어 내렸다. 그곳에는 우지경이 왜 황룡문으로 돌아오지 않고 실종되었는지, 그리고 왜 이곳에 황룡문의 비급이 있는지에 대한 이유가 적혀 있었다.
나는 적성이라는 단체와의 결전 이후 두 팔과 두 다리를 잃었다. 무공을 익힌 자에게 있어 두 팔과 두 다리를 잃었다면 그것은 주화입마에 빠진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요, 또한 폐인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황룡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없으니 돌아가고 싶다 하더라도 돌아갈 수 없을뿐더러 또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내 한 몸 편하고자 문파에 짐을 지우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것은 결코 내가 바라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글을 적고 있는 동안에도 사부님의 얼굴이 아른거리고 사형제들의 소식이 궁금하다.
한쪽의 다리라도 남아 있다면, 한쪽의 팔이라도 남아 있다면 몸을 질질 끌어서라도 문파로 돌아갔을 텐데, 그래서 폐를 끼쳤을 텐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두 팔과 다리가 없는 내 신체에 한순간이나마 감사하고 또한 저주한다.
보고 싶구나, 나의 사형제들아.
떨어져 있어도 생각나고, 감히 죽어서도 내 백골이 닿지 못할 마음의 고향 황룡문이여.
하나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어봐야, 스스로의 신세를 저주하고 있어봐야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백에 하나의 확률, 아니, 그 이하가 될지도 모르는 확률에 하나를 걸어보기로 했다.
황룡문을 위한 비급을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적성과의 결전에서 나는 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황룡문의 무공 중 단점을 몇 가지 발견했다. 물론 내가 미흡해서 그렇게 느꼈을 지도 모르나 나는 나 나름대로 그것을 보완할 무공을 창안해 보고자 했다.
그리고 나는 현실적인 벽에 다시 한 번 부딪쳤다.
감히 나는 일대종사라고 불리는 이들과 같이 무공을 창안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한참을 고민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공을 보완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하여 나는 오랜 시간 고민하고 참오하여 황룡문의 무공을 보완했다.
그리고 나는 이 무공을 어찌 글로 남길까, 어떻게 황룡문에 전할까 고민했다.
나에게는 천에 하나의 행운으로 내력이 남아 있었다. 두 팔은 없었지만 내력을 이용해 허공섭물로 붓을 움직일 수 있었고, 심력을 다하여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다섯 권의 책을 남기노니, 연자여, 그대가 혹시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고 무공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비급을 황룡문에 전해다오.
그대에게 내 마지막으로 남기는 부탁이나, 망자의 부탁이라 가벼이 여기지 말고 이루어주기를 바란다.
보고 싶구나, 황룡문이여.
보고 싶구나, 나의 사형제들이여.
보고 싶습니다, 사부님.
그 뒤로 더 이상의 글은 적혀 있지 않았다.
글을 다 읽어 내린 자운의 눈에서 그답지 않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자운이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아내었다. 보는 사람은 없었으나 흘린 눈물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이제야 이 비급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겠다. 아마도 무영비객은 이 비급을 어딘가에서 훔친 것이 아니라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비급을 두는 곳에 함께 모아두었겠지.
그중 하나가 아주 우연히 태원삼객에게 발견된 것이리라.
자운이 황룡문의 비급들을 주섬주섬 챙겨 품속으로 갈무리했다.
“후, 대사형, 참으로 대사형도 징글징글하오.”
그가 고개를 휙 돌리며 동굴을 향해 말했다. 우지명이 듣고 있을 리는 없으나, 자운은 암혈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가며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좀 황룡문을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로 사형한테는 못 당하겠소.”
두 팔과 두 다리가 모두 잘린 상황에서 황룡문을 위한 비급을 만들다니, 자운으로서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두 팔이 잘리고 문파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사형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글쎄, 자신이 없다.
그럼 두 다리마저 잘리고 울다가 화내다가 분노하다가 지쳐서 모든 기력이 남지 않았을 때쯤은 우지명처럼 할까?
다시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은 모르겠다.
“내 대답은 글쎄올시다.”
자운이 암혈 밖의 환한 빛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완전히 밖으로 나온 그가 암혈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근데 말이오,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하지.”
자운이 허리춤에서 황룡신검을 뽑았다. 그리고 자신의 팔을 슥 긋는다.
과연 예리한 검, 신검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단련된 자운의 팔이 단번에 핏 하는 소리와 함께 베어 나간다.
깊이 베인 상처는 아니지만 피가 흘러나오고, 자운이 흘러나온 피 위에 황룡신검을 박아 넣었다.
황룡신검이 절반이 넘게 박혀들고, 그 박혀든 곳을 따라 자운의 피가 바닥으로 흘러들었다.
“내 두 팔과 두 다리가 붙어 있는 한, 나는 황룡문을 수호할거요.”
자운이 다시 바닥에서 검을 뽑았다. 휙하고 검을 휘두르자 신검에 묻어 있던 핏방울이 바닥에 후두두 떨어졌다. 자운이 신검을 다시 허리춤에 갈무리한다.
“그리고 황룡문을 천하제일문파로 만들어주지.”
자운이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품속에는 황룡문의 무공 비급 네 권과 무당의 현천칠성검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뒤쪽에 있는 암혈 내부에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비급이 가득 쌓여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 모든 비급들의 주인을 찾아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운에게는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이 있었다.
“저렇게 많은 문파에 빛 하나 정도 지워놓으면 언젠가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겠지.”
자운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럼 무당으로 가볼까?”
* * *
무당산은 호북(湖北) 균현(均縣)에 위치해 있는 산이다.
산세가 수려해 봉우리가 향로 같으며 중수(重水)가 산기슭에서 발원(發源)한다.
둘레는 사오백 리. 많은 봉우리 중 삼령(蔘嶺)이 으뜸이며 높이가 이십여 리에 달해 매번 흰 구름에 싸여 있다. 해가 이 곳에서 떠올라 이곳으로 저무니 또한 일조산(日朝山)이라 한다.
수경주(水經注)와 무당산기에 적혀져 있는 구결이다.
무도 칠십이봉(七十二峰)과 삼십육암(三十六巖) 이십사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높은 봉우리는 자소봉, 달리 천주봉이라고 한다.
이러한 수십 개의 봉우리에는 예로부터 도를 숭상하는 많은 도인들이 몰려들어 도판이 번성했고, 그 도관이 하나로 합쳐져서 무림을 지탱하는 기둥을 이루니 그것이 바로 무당이다.
무당의 무공은 달리 정파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라 하여 천하무공의 조종[天下功夫出少林]이라 하는 소림에 비견되곤 하는데, 실제로 소림과 무당의 공부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소림은 본래 달마에 의해 규합된 곳으로, 그 무학의 깊이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또한 불교라는 하나의 교에 연원을 두기 때문에 그 부분에 한해서만큼은 끝을 알기 어렵다.
하나 무당은 그렇지 않다. 무공의 깊이보다는 넓이가 방대하여 그 무공의 수와 양을 헤아리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