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전에 펼친 용구절천수에 비해 지금 펼친 용구절천수의 묘리가 훨씬 깊다는 의미가 아닌가?
우우우―
우우우우―
우우우우우―
첫 번째는 장력에서 난 소리, 두 번째는 조법, 세 번째는 지법으로 이어지는 소리였다.
지법에서 쏘아진 기운이 날아가 방의 한쪽에 맞고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 마디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벽에 뚫렸다.
다행히 벽을 관통하지는 않았으나 그 위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저 평범한 바람이나 불러올 정도로 내공을 움직였는데 벽에 구멍이 났다.
“힘의 집약인가?”자운은 무공을 단 한 번 펼쳐보는 것으로 그 이유를 알아내었다. 본래 장법을 사용되는 무공이 조법을 지나 지법으로 변화하며 한순간 힘이 손가락 끝으로 집중된다.
장력으로 넓게 뿌렸을 때에 비해서 그 힘의 규모는 좁으나 세기는 몇 배나 강해진 것이다.
본래의 용음천절수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묘리. 이 무공, 누군가가 바꾼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이 무공을 바꾼 것이 누구냐는 것인데…….”
이 무공은 태원삼객이 가지고 온 것이다. 자운은 태원삼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들은 분명…….
“양천 땅에서 이 무공을 발견했다고 했지?”
아무래도 양천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자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섬서로 가봐야 하는 건가?”자운의 시선이 자신의 방 한쪽에 걸려있는 천하도에 고정 되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 그 끝에는 섬서 양천 땅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제5장
자운은 태원삼객에게서 용구절천수를 구한 안가에 대해서 자세히 들었다. 현재로서 가진 바 정보는 그것이 전부이기에 그곳을 기점으로 조사를 하려 한 것이다.
자운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양천에는 규모가 작은 산이 몇 개 모여 있다. 그중 하나가 사유산(思有山)이라는 곳인데, 본래 산세가 험준하지 않고 평탄하나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얽히고 설켜 마치 남만의 밀림과 같은 산세를 형성한 곳이다.
자운이 산세를 뒤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도둑놈 하나 숨어들기에는 좋은 곳이네.”
자운이 천천히 숲을 헤치고 걸었다. 그의 손에는 나무 사이를 헤치고 다니기에 좋은 자그마한 검이 하나 들려 있었는데, 그가 손을 뻗을 때마다 나무줄기가 잘려 나가며 길이 열린다.
얼마나 걸어 들어갔을까, 천천히 숲을 헤친 지 한 시진이 조금 넘을 무렵이었다.
자운이 바위 하나를 타고 넘으며 눈앞에 있는 넝쿨더미를 베었다.
촤악―
잘려 나간 넝쿨이 아래로 떨어지며 시야를 열었고, 그 사이로 언뜻 낡은 집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곳이 태원삼객이 말했던 무영비객의 안가일 것이다.
“길을 몰랐다면 못 찾을 수도 있었겠네. 퉤.”
자운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놈의 도둑놈이 어찌나 조심성이 많은지 안가를 만들어도 참 더럽게 찾기 어려운 곳에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원삼객이 이 안가를 찾았다는 사실이 그야말로 천운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자, 그럼 저기로 가볼까.”
자운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무영비객이 잡힌 이후 안가에는 사람의 왕래가 없었던 탓인지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여는 것만으로도 눈앞을 자욱하게 가릴 정도의 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캐액. 젠장.”
자운이 눈앞을 가리는 먼지를 향해 욕지기를 내뱉은 후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휙휙―
그의 손에서 바람이 일고, 일어난 바람이 단번에 눈앞을 가리는 먼지를 날려 버렸다. 먼지 따위가 자운의 눈을 가리고 호흡을 곤란하게 할 리는 없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분문제였다.
자운이라고 해서 먼지 사이를 헤집고 다니고 싶을 리가 없다.
바람이 불어 먼지가 날려가고 시야가 트인다. 자운이 시야가 트인 안가 내부로 들어갔다. 이 안가가 태원삼객의 손에 발견된 것은 오 년 전이라고 했다.
오 년 전, 태원삼객이 이 안가를 발견했을 때는 재화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 후 소문이 퍼져 나가며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의 재화를 가지고 갔다고 한다.
낭인과 비슷한 개념으로 고용된 태원삼객이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적절한 양의 금화와 용구절천수의 비급이 전부. 자운이 천천히 안가의 내부를 찾았다.
하나 안가는 용구절천수의 비급이 있었던 자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지라 딱히 별다른 단서를 찾을 수는 없다.
안가의 내부를 샅샅이 뒤진 자운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역시 없는 건가.”
자운이 안가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먼지가 좀 묻어 있기는 했으나 그쯤이야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자운이 의자에 앉은 채로 한쪽 발을 이용해 탁자를 슬쩍 민다.
끼익―
의자가 비스듬하게 세워지며 흔들거린다.
자운이 그 위에 앉아 생각에 잠기었다.
본래 무영비객과 같은 도둑들에게 있어 안가란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개념이 강했다. 그런데 그런 도둑이 문 열면 보이는 자리에 재화를 두었을까?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재화보다 더한 것을 숨기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자운의 고개가 갸웃 움직였다.
“재화는 미끼인가? 아니면 무영비객이라는 놈이 엄청 멍청한 놈인 건가?”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후자일 경우, 그가 무영비객이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살아 있을 리가 없다.
그 정도로 바보라면 약육강식의 강호에서 이름도 알리지 못하고 먹혀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어디에 진짜가 있다는 건데.”
태원산객에게서 안가 내부에 다른 창고 같은 것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자운의 고개가 갸웃 움직이고, 자운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안가를 구석구석 다시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다시 살펴보기를 세 번 정도. 자운이 소리를 지르며 욕지기를 뱉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젠장.”
머리를 부여잡고 벽에 쾅쾅 들이박는 자운. 자운의 입에서 푸념 섞인 괴성이 튀어나왔다.
“왜 나는 기관에는 맹탕인건데!”
자운이 주먹을 휘둘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벽 한쪽이 날아간다.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지붕이 날아갔다.
하나 자운의 주먹질은 그칠 줄을 모르고 이어진다.
꽝―
다시 한 번 자운의 주먹이 안가의 기둥을 때렸다.
낡은 나무 기둥은 절대로 자운의 주먹질을 견뎌내지 못한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삐그덕 하는 소리가 연달아 이어졌다.
자운의 귀가 쫑긋 움직이고, 자운이 설마 하는 눈으로 지신이 후려친 기둥을 노려보았다.
이미 부서진 기둥은 한쪽으로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다.
자운의 발이 산불 맞은 멧돼지마냥 빠르게 움직였다.
“젠장. 무너지잖아!”
자운이 빠르게 무너진 벽으로부터 몸을 뺐다. 자운이 나오자 안가가 기다렸다는 듯 무너져 내렸다. 그 너머로 검은 암혈 같은 것이 보였다.
자운이 부수지 않은 벽 중 거대한 절벽과 맞대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안가가 무너져 내리며 그것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자운이 설마 하는 눈으로 안력을 돋웠다.
안가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흙먼지가 시야를 방해했던 것.
안력을 돋우자 암혈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자운이 암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안가 자체가 속임수였던 건가?”
재화를 속임수로 보이게 해두고 안가 안에서 어떠한 장치를 찾으려 했으니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것도 없는 안가는 속임수. 대부분의 무림인들이 이 안가를 발견한 후에도 자운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안가 자체가 미끼였다니.
자운이 하늘을 향해 대소를 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역시 나는 천재야.”
말을 마친 자운이 안가 너머 암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암혈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전, 몇 개의 기관이 자운을 막았으나 감히 도둑놈이 만든 기관 따위가 절대고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자운이 그것을 몸소 증명해 주었다.
꽝 하고 들이받으면 퍽 하고 부서지는 기관장치. 쩡 하고 내려찍으면 쇳덩이가 그대로 갈라진다.
자운이 기관이라는 기관은 모두 부수어 버리고 암혈 내로 질주했다.
그리고 그 암혈 내부에서 자운이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무공 비급이었다.
“하하! 그럼 그렇지. 이거였구만.”
어디서 훔쳤는지 알 수 없는 무공 비급이 산처럼 쌓여 있다. 개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무공도 몇 있었다.
나름대로 산서에서 이름을 날리는 문파들의 무공이다. 자운이 입맛을 다셨다.
“근데 이걸 찾은 건 좋은데 어떻게 한다?”
자운이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비급들을 살펴보았다. 이미 사라진 문파의 비급부터 해서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문파의 비급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 현천칠성검(玄天七星劍)이라는 이름의 비급이 자운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어? 이거.”
자운도 익히 알고 있는 무공, 아니, 무림에 한 발을 담고 사는 사람이라면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알 수 있는 무공이다.
바로 무림의 양대 산맥이라는 무당의 무공이 아닌가.
현천칠성검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른 문파들의 비급이 한순간 빛을 잃었다. 현천칠성검, 어두운 하늘에 빛나는 북두의 일곱 별을 검으로써 담아낸 검법이다.
도가의 조종이라는 무당의 무공답게 그 깊이가 방대하다. 또한 그 가진 바 능력이 무당 무공의 최고봉이라는 태극혜검에 비견될 정도라 강력하기 그지없다.
“이건 무당에 돌려줘야겠는데.”
자운이 다른 비금들을 휙휙 넘기며 현천칠성검에 비견될 정도의 무공이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하나 암혈 안에 있는 비급의 양이 적지 않아 속도는 더디기 그지없었다.
기천에 이르는 비급들을 확인했을 무렵, 자운이 비급 하나를 움켜쥐었다.
제목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자운이 천천히 그 비급의 이름을 읽어 내려갔다.
구천비룡단(九天飛龍斷).
아홉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용의 움직임을 흉내 낸 무공이다. 이 또한 황룡문의 무공, 무영비객이 가지고 있는 황룡문의 무공은 용구절천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운이 빠르게 구천비룡단의 비급을 읽어 넘겼다.
그의 두 눈이 집중에 빠지고, 촤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비급이 넘어간다.
자운이 신중하게 비급을 읽어 들어가고, 그의 손이 허공에서 휙휙 움직였다.
구천비룡단은 본래 검술이다. 하나 이렇게 비급이 많이 보관되어 있는 좁은 장소에서 검을 휘두르다가는 만에 하나 비급에 손상이 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