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59화 (59/175)

# 59

홍우를 선두로 그들이 들어온다. 무당의 장문인, 화산의 장문인이 줄줄이 줄을 이어 들어왔고, 그들의 뒤로 다른 장문인들 역시 들어왔다.

자운이 그들에게 방금 덥힌 차를 담아 찻잔을 내어주었고, 어색한 침묵 속에서 몇몇이 차를 들이켜는 소리만이 방 한가득 울렸다.

어느 정도 차를 마셨을까?

자운이 손뼉을 짝 소리가 나도록 마주 쳤다. 그 소리에 구파의 장문인들이 모두 자운을 바라본다.

“이쯤 했으면 이제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털어놓아야지.”

자운의 말에 함께 들어온 걸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홍우 대사가 입을 열었다.

“무림의 위기가 실로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은 이곳에 자리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오.”

자운이 히죽 웃었다.

“적성이라는 개 잡것들 때문에 골치 좀 아프게 되었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 끝으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친다. 장난스러워 보이는 행동이었으나, 자운의 미소가 싸늘한 조소라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홍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이백 년 전 무림을 전복할 뻔했던 적성이라는 단체가 다시 활동을 하기 시작했소.”

그 말에 몇몇 장문인들이 기침을 했고, 도호를 외우는 이도 있었다.

“무량수불…….”

그런 홍우와 자운의 말에 의문을 표한 것은 아미파의 장문인 소실 사태였다.

“요 근래에 나타난 몇몇 악적들이 과거 적성이라는 단체가 사용했던 이름과 무공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적성이 다시금 재현했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말에 자운은 소리 나게 웃었다.

피식―

그리고는 손끝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린다. 그의 손 끝에서 내공이 묻어나고, 내공이 묻어나는 손가락으로 때린 탁자가 푹푹 파여 나갔다.

“이봐, 할멈.”

자운이 소실 사태가 가장 싫어하는 호칭으로 그녀를 부른다. 그녀의 나이 올해로 쉰아홉. 할멈이라고 불려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였으나, 그녀는 유독 할멈이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그것과 상관없이 자운이 할멈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그녀를 자극하기 위하였음이 틀림없었다.

자운이 할멈이라고 부르자 소실이 눈을 부릅뜨며 자운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자운은 전혀 그런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는 것 같이 웃음을 흘릴 뿐. 냉소를 흘리며 자운이 고개를 빙글빙글 돌렸다.

“할멈이 그러고도 현 무림을 이끌어가는 구파의 장문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자운의 말에 소실 사태가 자운을 노려보는 와중에도 의문을 표했다.

“천 대협, 말이 좀 심한 것 같군요. 그보다 방금 전에 당신이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이지요?”“그걸 듣고도 모르나. 늙어가더니 가는귀가 먹어버린 거야? 역시 할멈이군.”자운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웃자 소실 사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기세를 숨기지 않고 자운을 향해 몰아쳤다.

“방금 그 말은 연 아미의 장문인인 나를 모욕한 것과 다름없는 말이군요.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다가는 크게 다칠 수도 있습니다.”자운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에서 강력한 기파가 몰아치고, 소실 사태의 기운을 밀어내었다.

그리고 자운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기도가 용과 닮아 똬리를 틀고 조용히 자리하던 용이 몸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자운이 천천히 일어나며 소실 사태를 향해 걸어갔다.

“네까짓 게 감히 나를?”

자운의 기세가 오로지 소실 사태만을 찍어 눌렀다. 현 무림의 절대자에 비견되는 기세가 소실 사태를 찍어 누르고,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운에 소실 사태의 두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소실 사태를 향해 다가가던 자운이 그 자리에 뚝 멈춰 섰다.

그리고는 기세를 거두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네까짓 게 감히 나를 찍어 누르는 건 이백 년은 이른 일이고, 본래 작전이라는 건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짜는 거야. 최악을 생각해 두어야 그에 준하거나 그것보다 조금 더 못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쉽게 막을 수 있기 때문이지.”

자운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이 뭔지 아나?”

자운의 잘에 다른 이들이 침묵을 지켰다.

“이백 년 전의 적성은 당시 육적의 힘만을 믿고 움직였다. 확실히 그 힘이 약하지 않아 육적의 힘만으로 무림의 절반 정도를 전복시키기에 충분했지.”

자운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육적은 과거의 육적에 비해서 부족하지 않아. 여기서 중요한 게 뭔지 알아?”

그의 말을 받은 것은 걸왕이었다. 걸왕은 개방의 방주를 대신해서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다.

“과거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왜 움직였냐는 거겠지. 흘흘흘.”

그렇다. 과거에 육적은 무림을 전복하고 발아래에 두는 일에 실패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수준의 힘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당연히 실패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움직였다.

자운이 걸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런 경우는 하나뿐이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안다, 그 경우가 무엇인지는. 이 자리에는 그 정도는 다들 알아야 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ㅇ리 아니던가.

자운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한숨을 토하며 마지막 말을 뱉었다.

“육적(六赤) 그놈들보다 더한 놈이 있다는 말이야.”

자운이 소림의 홍우를 바라보았다.

“이봐, 땡중.”

“아미타불…….”

홍우가 고개를 숙이며 자운의 말을 받는다.

“아까 말하려던 거 계속해 봐.”

홍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금 이 자리에 모인 구파의 장문인들을 바라보았다.

“천 대협께서 말씀하신 대로 적성이라는 존재가 다시금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것이오.”

이번에는 소실 사태 역시 조용했다.

“그래서 소승은 무림맹의 결성을 제안하고자 하오. 무림맹이 결성될 경우, 걸왕 어르신께서는 무림맹의 호법을 맡아주기로 하셨소이다. 또한 그 무위가 절대의 경지에 오른 지고의 고수들에 비해 전혀 떨어짐이 없는 철혈난신 천 대협께도 무림맹의 호법을 맡아 달라 부탁드립니다.”

그가 목탁을 두드리며 고개를 숙여 보았다. 무림맹 연합은 대충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였는데 호법이라니? 이건 자운으로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바였다.

자운이 걸왕을 찌릿 노려보고, 걸왕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흠흠.”

자운이 걸왕에게 전음을 보냈다.

[왜 이건 말하지 않았지?!]

자운의 물음에 걸왕이 변명을 한다.

[설마 선배님께도 저놈들이 호법을 부탁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흘흘흘흘.]

말을 그렇게 하고 있으나 눈치를 보아하니 분명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자운이 으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갈았다.

그리고 구파의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호법이라……. 그보다 지금 이 자리에 무림맹 창설에 반대하는 이는 없는 건가?”자운이 소실 사태를 바라보며 말했고, 소실은 눈을 돌려 자운의 시선을 회피했다. 자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여 어느정도 무림맹 창설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했다.

“반대는 없는 것 같군, 근데 내가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어.”

“그게 무엇이오, 대협?”자운의 말에 홍우가 물었다.

“구파의 인물들끼리만 무림맹을 만드는 건가? 왜 오대세의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거지?”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오대세가의 인물은 단 하나도 없었다. 본래 오대세가와 구파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무림의 미래를 위해 무림맹을 결성한다 하면서도 서로 눈치를 보는 것인가?자운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그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의 생각이 맞는 듯하다.

자운이 피식 웃었다.

“여유가 있어서 좋겠군. 무림을 말아먹으려는 놈들이 튀어나오는데, 거기서도 같은 편끼리 편 가르기를 또 하고 있으니 이래서 정파가 정파답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겠지.”

자운이 차를 마시고는 찻잔을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구파의 장문인들을 일일이 둘러본다.

“이따위 무림맹. 나는 찬성하지 못하겠다. 나는 반대야.”

자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대세가가 포함되지 않은 무림맹에 황룡문은 공식적으로 참여를 거부한다. 또한 황룡문의 힘이 필요하다면 오대세가를 초청해 함께 무림맹을 만들도록 해.”

실상 구파에게 필요한 것은 황룡문의 힘이 아니다. 황룡문은 그 힘이 중소 방파 정도도 되지 않는다. 성장하고 있으나 아직은 소규모 방파이다. 그 정도의 힘은 어디서든 충당할 수 있다.

그들이 빌리고자 한 힘은 바로 자운. 허나 자운은 황룡문 소속이다. 달리 말하면 황룡문의 힘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 자운이 참여를 거부했다.

자운이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구파의 장문인들에게 밖이 보이도록 자리를 비켜선다.

“나가. 나가서 오대세가가 포함된 무림맹을 구성해 와. 그럼 무림맹의 호법이든 뭐든 다 해주지.”

자운이 냉소를 띠며 말을 마쳤다.

* * *

구파의 인물들은 침음성을 내뱉으며 침묵을 유지했으나 자운의 채근으로 인해 그 자리를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가고 나서 어둠이 내렸다.

자운의 방에서는 작은 호롱불 빛이 새어 나오고, 자운이 그 불빛에 의지해서 다음 장으로 넘겼다.

자운이 지금 보고 있는 책은 황룡문의 무공이라 할 수 있는 용구절천수였다.

본래 용구절천수는 패도적인 기운으로 하늘마저 끊어놓는다는 장법이었다. 그 수법을 펼치면 용음이 울리며, 손에서 거대한 용의 아가리가 튀어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 용구절천수.

헌데 이 용구절천수는 자운이 알고 있는 용구절천수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의(意)를 그대로 두고 형(形)을 바꾼 건가? 그렇지 않으면 형을 추가한 건가?”

자운이 갸웃하고 의문을 표했다.

그의 손이 활짝 펼쳐진 상태로 허공을 팡 하고 때리고, 그 손짓에 따라 희미한 용음(龍音)이 울린다.

우우우우우―

내력을 조절했기에 용의 아가리가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이것이 자운이 알고 있는 용구절천수의 형이다.

허나 이 용구절천수는 조금 달랐다.

자운이 다시 손바닥을 뻗었다.

평범한 일장을 뻗는 듯한 모습. 그 순간, 수영(手影)을 남기며 손가락이 휘어졌다.

한순간 단순한 장법이 조법으로 변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는 바로 그때 조법이 다시 한번 변했다. 이번에는 지법이다.

용음이 연달아 세 번 울렸다.

이전에 비해 훨씬 진하고 선명한 용음이 자운을 놀라게 했다. 분명 한 치도 다르지 않게 같은 양의 내공을 집어넣었는데 더 진한 용음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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