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그 말에 걸왕이 괴장을 들어 방주의 머리를 내려치려 했다.
본래 한 방의 방주라 하면 그 지위가 방에서 가장 높아 아무리 태상방주라 할지라도 쉬이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개방에서는 예외로 친다.
개방은 본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재물과 허례허식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소위 거지들의 집단. 그 안에서도 어느 정도의 위계질서가 잡혀 있기는 하지만, 다른 문파들에 비해서는 월등히 그 질서 구조가 약하다.
또한 걸왕이 누구던가. 정파 사상 유례가 없을 괴(怪) 자를 별호에 달고 있는 인물이지 않은가.
그런 그가 방주라고 해서 때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내 제잔데!“
걸왕의 괴장을 주걸개가 옆으로 스르르 물러나며 피했다.
쓰쓰쓰―
발끝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나고, 걸왕이 눈을 치켜떴다.
“이놈이 피해?”
그의 괴장이 단번에 꺾어지며 방주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캐액!”
방주가 대번에 앞으로 구른다. 그의 실력이 개방도 중에서 출중하다고는 하나, 감히 그의 사부가 펼치는 몽둥이질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사부인 괴걸왕은 기괴한 행적을 제하더라도 본신의 무공 실력만으로 무림에서 손꼽히는 강자가 아니던가.
그가 바닥을 한차례 굴렀다 단번에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사제를 잡았냐고 물었는데 왜 때리시는 겁니까!”
그가 그의 사부에게 버럭 대들었다. 그러자 괴걸왕의 괴장이 다시 움직인다.
“이놈아, 내가 잡았으면 널 때리겠냐. 못 잡아서 화가 나니 때리지.”
따악―
괴장이 다시 주걸개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주걸개가 필사의 노력으로 힘을 비껴내었다. 다행이 충격이 크지 않아 바닥을 구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행동이 오히려 괴걸왕의 화를 불렀던 모양이다.
“이놈이 또 피하네, 또 피해?”
빠악―
주먹이 정통으로 주걸개의 얼굴을 후려쳤다. 주걸개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굴렀다.
주걸개의 얼굴을 후려치는 것으로 화가 풀린 탓일까. 괴걸왕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주걸개가 얼얼한 얼굴을 매만지며 괴걸왕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번에도 사제가 도망갔나 보군요.”
걸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침을 뱉었다. 날이 갈수로 경공 실력만 높아지고, 거기다 거지답지 않은 행동까지, 정말 걸왕의 속을 태우는 제가가 아닐 수 없다.
“늘그막에 얻은 제자 하나가 그리도 속을 썩이니. 클클클.”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지 걸왕의 얼굴에 미소가 퍼져 나갔다. 그나마 사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녀석이다. 걸왕이 웃을 동안 주걸개는 품속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그의 앞으로 내려놓았다.
걸왕이 이게 뭐냐는 듯 집어 들고, 걸왕이 그것을 펼치기도 전에 주걸개가 답했다.
“황룡문에서 철혈난신 천 대협이 보낸 서신입니다.”
그 말에 걸왕이 서신을 툭 떨어뜨리며 딸꾹질을 했다.
“히끅, 히끅.”
떨리는 손으로 다시 서신을 집어 드는 걸왕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주걸개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걸왕이 도리질을 쳤다.
“클클. 아,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어색한 웃음.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거지 특유의 직감으로 눈치 채었지만, 여기서 더 물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제자 특유의 직감이 뒤를 따랐다.
‘이크, 여기서 더 물으면 안 되겠다.’
주걸개가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걸왕은 서신을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주걸개의 얼굴이 점점 딱딱하게 변하고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기 시작한다.
서신을 읽는 것ㅇ니 숨에 찼던 것인가, 그가 서신을 탁자 위에 탁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가야 하나.”
그 말에 주걸개가 걸왕을 향해 묻는다.
“무슨 내용이 있었습니까?”
걸왕이 고개를 으쓱해 보인다.
“황룡문주 취임식을 한다고 오라고 하는데, 가야 할까?”
황룡문은 현재 다시 세를 불려 나가고 있는 신흥 정파다.
그 규모나 문도의 수로 본다면 개방 정도 되는 거대 문파가 참석을 해야 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곳에는 정파의 절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고수 철혈난신이 있다.
가야 할지 가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기 난감한 상황. 주걸개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내었다.
“개방에서는 따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러니 사부님께서 직접 나서실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예의상 보낸 게 아닐까 합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러하다.
하지만 자운은 일반적인 경우에서는 분명히 예외로 쳐야 할 것이다.
괴걸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네가 뭘 알겠냐. 거기는 괴물이 있단 말이지. 쩝쩝.”
물론 사천당가에도 전서구는 도착했다. 전서구가 도착했을 당시, 독왕은 손녀의 재롱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할아버지, 이렇게 하면 나 이뻐?”
이제 여섯 살 난 당소미가 그의 앞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재롱을 부렸다. 그녀의 손에는 암기가 들려 있었는데, 독왕이 직접 들려준 것들이다.
모두 당가의 특별한 방법으로 만들어져 밖에서는 쉬이 구할 수 없는 것. 당소미가 그것들을 던졌다.
촤르르륵―
허공을 암기들이 가르고, 그대로 날아가 나무에 일자로 박혔다.
따다다닥―
독성이 그 모습을 보고 손뼉을 쳤다.
“옳지, 옳지! 잘하는구나, 우리 소미. 잘했다, 잘 했어.”
소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 그러니까 이거 하나 보여주면 우리 가가가 도망 못 간다는 거지?”
독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지. 도망간다고 하면 놈의 바로 옆에 있는 벽에다 이렇게 바늘을 던져 버리거라. 허허. 그러면 절대로 도망가지 못하지. 그리고 할아버지가 어떻게 말하라고 했지?”
“음, 아, 이렇게 말하라고 했어!”
소미가 한동안 생각에 잠기었다가 독성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가가, 바람피우지 마세요. 다음에는 독이 묻어 있을 거예요.”
독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지, 옳지. 좋다. 그렇게 하는 거란다, 소미야. 허허허허.”
독성이 웃자 재롱을 부리던 당소미 역시 웃었다. 그런 그들의 앞으로 가문의 일원 중 하나가 빠르게 뛰어와 독성에게 전서를 들려주었다.
독성이 황룡문에서 보내온 서신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그 괴물이 보낸 건가?’
찜찜한 마음이 들지만 열어보지 않을 수도 없다.
서신의 겉면에는 선명하게 황룡문의 문주를 상징하는 인이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독왕이 황룡문 소속은 아니었지만, 황룡문의 문주와 관련이 있었다.
현 황룡문의 문주 운산이 바로 그의 손녀사위이다.
지금 눈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는, 이제 여섯 살 난 손녀의 남편이 될 사람이며, 동시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굉장한 실력의 후기지수이기도 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서신을 펼쳤다. 그리고는 눈을 움직이며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일각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손뼉을 짝 치며 서신을 내려놓았다.
“소미야, 네 서방 보러 가자!”
그 말에 당소미가 쪼르르 달려오며 물었다.
“우리 가가?”
제3장
자운이 가부좌를 튼 채 의식을 내면 깊은 곳으로 끌어당겼다. 고수의 반열에 오른 자들에게 중한 것은 육체적인 수련도 있지만, 그에 비견될 정도로 중한 것이 내면의 수련이었다.
의식이 내면 깊은 곳으로 침전되고, 그의 의식이 신경을 관할하는 척추를 타고 내려가 단전으로 뻗어 나갔다.
가장 먼저 주인을 반긴 것은 환영하듯 물결치는 대해와 같은 내공이었다.
자운의 이식이 내공 사이를 헤엄치고, 그의 의지를 아는 듯 내공이 길을 내어주었다. 그 길 사이로 자운이 단전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우우우―
그곳에 있는 것은 똬리를 틀고 있는 거대한 뱀, 아니, 뱀이라고 하기 에는 너무 화려하고 빛이 나는 용이었다.
황룡(黃龍).
‘역시 황룡무상십이강.’
자운이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생각했던 바와 다르지 않다. 황룡문의 심법은 본디 그 힘이 황룡을 이루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이 중점화된 것이 황룡문의 직계제자들이 배우는 심법이었다.
그리하여 이를 수 있는 것이 황룡무상십이강, 다른 말로는 황룡무상십이법이었다.
자운이 이번에 깨운 것은 그중 일룡(一龍)이자 일법(一法)이라 불리는 패도(覇道)의 법이었다.
황룡은 적의 팔을 물고 다리를 찢으며 몸통을 씹어 내장을 삼킨다.
그것이 구현 화된 패도일변도의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자운이 황룡을 바라보자 거대한 대해 속에 똬리를 틀고 잇는 황룡이 낮게 울며 자운을 반겼다.
그런 황룡의 똬리 사이로 또 하나의 여의옥이 보인다.
저것이 깨어지면 황룡무상십이강의 십이법(十二法) 중 제 이법이 깨어날 것이다.
자운이 의식을 움직여 여의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가볍게 두드렸다.
들리지 않을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거대한 생의 알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 그 소리로 말미암아 두께를 재어보건대, 아직 이법이 깨어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영감이 팔법까지 올랐었지.’
황룡문의 황룡무상십이강을 십이법까지 깨운 이는 개파조사를 제외하면 단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의 문주들은 일법도 깨우지 못했고, 자운의 스승만이 개파조사의 뒤를 이어 팔법에 이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백 년의 세월을 격해 그의 제자인 자운이 일법을 깨우는 데 성공했다. 자운이 자신의 황룡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사부의 모습을 떠올렸다.
여덞 마리의 황룡을 몸에 줄기줄기 휘감고 적과 맞서던 절대의 신위. 자신도 사부에 닿을 수 있는 첫걸음을 밟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황룡무상십이강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공의 경지라기보다는 발현. 당시의 자운의 사부가 강한지 지금의 자운이 강한지는 비교해 볼 수 없지만, 자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더 노력을 해야겠군.’
그 생각을 끝으로 자운의 의식이 표면 위로 떠올랐다.
천천히 눈을 뜬 자운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네.”
* * *
자운이 직접 서신을 작성한 당가와 화산, 그리고 개방을 제외하고도 황룡문에서는 몇 곳의 문파에 서신을 더 보냈다. 그 크기나 규모로만 본다면 아직까지 약소 규모를 벗어나지 못한 지방 문파. 본래대로라면 초청장을 받은 이들이 대부분 조심스럽게 거절 의사를 표했을 것이다. 조금 더 큰 문파였다면 대놓고 거절 의사를 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황룡문은?
놀랍게도 모든 문파가 참석할 의사를 표했다. 그중 첫 번째 이유는 자운이었다.
철혈난신, 스물 중후반으로 보이는 외모로 기껏해야 후기지수로 꼽힐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은 엄청난 무위를 가지고 있는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