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48화 (48/175)

# 48

"왜, 문제라도 있어?"

운산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자운이 운산을 툭 때렸다.

"왜, 제갈가의 계집이라도 생각나는 거냐?"

그 순간 운산이 자리에서 펄쩍 뛰며 일어난다.

"그런게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게 아닙니다."

자운이 씨익 웃었다.

"아니면 아닌 거지 뭘 그렇게 놀라냐? 그래, 문제가 뭐야?"

"사형은 독성의 손녀가 몇 살인지 알고 계십니까?"

자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몰라. 말했잖아. 나 하나도 모른다고."

그렇다. 자운은 무려 십오 년을 폐관에 들어 있었다고 운산과 우천은 알고 있다. 실제로는 그것보다 훨씬 길지만 아무래도 좋다.

대충 지금 무림 상황을 모른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운산이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안 놀랄게."

"놀랍게도 그녀는 무려 여섯 살입니다."

자운은 놀라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뭐? 시발!"

운산의 나이 올해로 스물셋. 무려 열일곱이나 적은 소녀를 약혼녀로 맞아들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자운이 시발이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 운산 역시 고개를 푸욱 숙였다.

"아아, 시발."

"내 이놈의 영감, 코털을 다 뽑아버리든가 해야지."

자운이 성치도 않은 몸을 이끌고 독성을 찾았다. 물론 찾아가는 도중에 이를 뿌득뿌득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 자운의 두를 운산과 우천이 쫓았다.

우천이 생각해도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여섯 살짜리 꼬맹이와 약혼이라니? 이건 무림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찾아보면 몇 있을지도 모르나, 그래도 없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아마도 이 소문이 무림으로 퍼져 나가게 된다면 운산은 변태검객, 혹은 변태문주라는 무림명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자운이 씩씩거렸다.

어디서 들이댈 것이 없어서 여섯 살짜리 꼬맹이를 운산에게 등리댄다는 말인가.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자운이 독성의 방을 벌컥 열었다. 자운이 당가에 베푼 은혜가 있었기에 그를 제지하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모두 그를 향해서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를 했다.

기분이 나빠 죽겠는데 옆에서는 존경과 감사가 어린 눈으로 인사를 한다. 뒤집어 버리고 싶은데 화를 낼 수도 없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아, 젠장."

모든 것은 전부 독성 때문이다.

자운이 화를 가득 담고 독성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이봐, 영감, 내가 지금 엄청난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자운이 문을 열며 소리쳤다. 한데 안에서는 자운이 기대하던 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까르르 웃는 소리.

분명 어린 꼬마가 재롱을 피우는 소리였다. 자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꼬마를 바라보았다.

양쪽으로 머리를 틀어서 귀엽게 말아 올린 꼬마. 꼬마가 자운을 보며 손가락으로 꾹 짚었다.

"할아버지, 저게 내 가가(可呵)야?"

자운의 얼굴이 대번에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는 곧 큰 웃음을 터뜨린다.

"푸하하하하하하!"

화가 나서 달려왔는데, 막상 생각해 보니 웃긴 것이다. 여섯 살이라니? 운산의 약혼녀가 여섯 살이라니…….

자운이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며 배를 잡고 굴렀다.

"으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 으하! 으하! 아이고, 배야!"

자운이 웃음을 터뜨리자 운산의 얼굴이 그야말로 죽을상이 되었다.

독성의 품에서 소녀가 자운을 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저거 이상해."

"허허, 원래 이상한 놈이란다."

자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빌어먹을."

자운이 손을 뻗어 운산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네 가가는 내가 아니라 이놈이야, 이놈."

자운이 그를 뻥 밀었다. 운산이 자운에게 떠밀려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자 아이 역시 독성의 품에서 빠져나와 운산에게로 걸어갔다.

"영감, 손녀 이름이 뭐요?"

자운이 아직도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히죽거리며 물었다.

독성이 자부심이 한껏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직접 지어줬지. 우리 손녀의 이름은 당소미라네."

독성이 손녀의 이름을 자랑하는 동안 당소미는 어느새 운산의 앞에 서 있었다.

"네, 네가 당소미구나."

운산이 어쩔 줄 모르며 손을 들어 당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여섯 살. 키는 운산의 허리에도 미치지 못한다.

운산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당소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기분 좋아."

그런 소미를 향해 운산은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리고 당소미가 마지막 결정타를 운산에게 먹였다.

"우리 가가라서 그런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찌 그리도 앙증맞은지, 독성은 자신의 손녀가 예뻐서 어쩔 줄 몰랐고, 자운은 그 자리에서 포복절도했다.

"푸하하하하하! 으하, 으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웃음을 참던 우천마저 웃음을 터뜨렸다.

"푸훗."

그중에 유일하게 울상이 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운산이었다.

'아아, 젠장.'

"키워."

자운이 운산을 보고 한 말이었다. 운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운이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황룡신검을 보이며 말한다.

"키우라고. 말 못알아들어?"

키우라니? 키우라니!

이제 여섯 살 난 아이를 키우라고? 그러니까, 이제 여섯 살이 된 자신의 약혼녀를 운산 스스로 키우라는 말이었다.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제가 잘못 들은 거죠?"

자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확실하게 부정했다.

"아니. 제대로 들은 거야."

그리고 한마디를 더 강조했다.

"삼처 사첩을 두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그 꼬맹이 확실하게 키워서 잡아먹어."

운산에게 있어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키워서 잡아먹으라니, 운산은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늘을 저주했다.

'아아아아아!'

당가와의 일은 어떻게든 해결되었다. 아직까지 약혼녀라는 운산의 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당소미가 운산에게 당돌하게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십 년만 기다려요."

그리고 거기에 덧붙였다고 한다.

"정부인 자리는 무조건 내 거예요. 그리고 머리 쓰다듬어 주세요, 가가."

운산으로서는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약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약조를 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서 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다가는 언제 어디서 독성에게 암살당하거나 독살 당할지 모른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운산으로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 * *

그들이 황룡문으로 돌아온 지 칠 주야쯤 지났을 때, 황룡문에 손님이 찾아왔다.

누군가가 황룡문의 정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으라얏차!"

호쾌하게 정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준수한 공자, 화려하게 차려입은 옷이나 꾸민 모습을 보면 분명 돈이 좀 있는 집안의 자제임이 분명했다.

그가 황룡문의 정문을 발로 차는 것을 확인한 순간, 자운의 주먹이 그에게로 날아들었다.

"이게 돌았나? 왜 남의 문파 정문을 부수냐!"

퍼억.

단번에 황룡문으로 들어온 이가 자운의 주먹에 맞고 나가떨어졌다.

"으아아아악!"

그가 비명을 지른다.

자운이 그대로 달려가 놈을 발로 뻥 차버렸다.

"캐액!"

자운의 발길질이 어디 평범한 발길질이던가. 새로 맞춘 황룡문의 정문을 박살 낸 놈에게 사심을 듬뿍 담아 차준 발길질이다.

절대로 평범할 리가 없다.

발길질 한 방에 사내가 다시 정문 밖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런 사내를 누군가가 단번에 낚아채었다.

"헐헐헐! 요놈 잡았다!"

황룡문의 지분에 내려서는 괴인. 그의 품에는 방금 전 황룡문의 정문을 박살 낸 사내가 들려 있었다.

자운과 괴인의 눈이 마주쳤다.

괴인이 자운을 바라보며 헛바람을 들이쉰다.

"허업!"

자운이 대번에 그를 향해 전음을 보내었다.

[너냐? 그놈은 또 누구냐?]

괴인은 바로 괴걸왕이었다. 자운이 괴걸왕의 품에 있는 청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허업! 서, 선배님!]

[됐고, 지금 그놈이 황룡문의 정문을 박살 냈거든? 어떻게 할 건지 좀 물어봐라.]

괴걸왕이 부리부리한 눈을 뜨며 자신의 제자를 노려보았다. 자질이 보여서 데려다가 거지로 키웠더니, 뭐?

황룡문의 정문을 부쉈단다.

그가 제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따악―

"으악!"

청년이 비명을 질렀다. 청년의 정체는 바로 소걸왕(小乞王) 공야후. 현 개방 방주의 사제 되는 이로서 말 그대로 괴걸왕의 제자였다.

"왜 그러십니까, 사부님?"

그가 괴걸왕의 품에서 내려서며 말했다.

"이놈아, 도망을 가려면 좀 곱게 갈 것이지 이제는 남의 문파 정문을 박살 내고 가냐!"

그가 공야후를 향해 소리쳤다. 공야후가 괴걸왕에게 얻어맞은 자리가 아픈지 슥슥 문지르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에잇, 그거야 물어주면 되잖아요."

그가 품속에서 돈을 꺼내 자운에게로 건넨다.

"그거 참 미안하게 되었수."

그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공야후의 머리가 바닥에 닿았다. 뒤에서 괴걸왕이 찍어 누른 것이다.

"이 미친놈아, 넌 거지야, 거지! 아이고, 돌겠다. 거지가 돈이 어디 있냐? 그냥 잘못했다고 빌어! 싹수가 보여서 제자로 받았더니 이게 아주 거지를 안 하려고 하네."

자운이 물끄러미 두 사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운의 손가락이 공야후 쪽으로 향한다.

"그러니까 그 말은, 지금 이게 거지?"

괴걸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헐헐. 정확하게 말하면 거지가 되어야 할 놈."

지금은 사석이 아니기에 자운이 낮추어져야 한다. 괴걸왕이 자운을 향해서 하대를 했다.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걸왕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왜 그러시오? 본 공자가 너무 잘생겨서… 캐액!"

자운이 놈을 그대로 냅다 발로 차버렸다. 변변찮은 반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날아가 처박히는 공야후. 그의 품에서 돈주머니가 떨어져 내린다.

자운이 손을 뻗어 그것을 낚아채었다.

"일단 이건 내가 챙기고. 그것보다 저게 도대체 어디가 거지라는 거지?"

얼굴은 준수하다. 미공자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최소한 어느 집안 공자라고 말할 수준은 된다. 또한 입고 있는 옷은 깨끗하며 고급이었다.

머리는 정돈하여 영운건으로 단정하게 묶었으며, 신발은 가죽으로 만든 고급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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