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47화 (47/175)

# 47

모두를 담아내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한순간 권강들 사이에 틈을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자운이 모인 권강들을 흩어버렸다.

그리고 생겨난 틈으로 몸을 질주시킨다.

여기까지가 반 호흡.

이제 반 호흡이 남았다. 자운이 검을 들었다.

단전에서 시작된 내력이 검을 타고 흘렀다. 바람이 휘감기고 검강의 불꽃이 검 위에서 줄기줄기 타오른다.

황룡 문양이 빛을 발하는가?

한순간, 자운의 손에 들린 황룡신검이 빛을 발하며 거대한 황룡의 형상으로 화했다.

그것은 의형강기(義形?氣)였다.

그것도 완벽한 용의 형상을 이룬 의형강기, 용이 하늘을 향해서 포효했다.

크롸롸롸―

그리고 자운이 검을 내리긋는 순간, 대지를 질주하며 주변의 공기를 산산히 찢어발긴다. 자운이 남은 반 호흡의 힘을 모두 실었다.

크롸롸롸롸―

육적의 앞에까지 도달하는 순간은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육적이 강기를 끌어 모았다. 자운의 공격을 정면에서 막아내려는 것이다.

육적의 몸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붉은 빛에 휘감기었다.

여태까지의 족히 배는 넘을 듯한 호신강기. 호신강기를 휘감은 그가 황룡을 향해서 달려오고 황룡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쾅―

환한 빛이 모두의 눈을 한순간 멀게 했다.

이윽고 시력이 돌아오고, 모두의 눈에 숨을 헐떡이는 자운과 적성의 모습이 들어온다.

"허억! 허억! 젠장! 저거 완전무결하게 미친놈이네. 너, 미친놈 인정이다, 인정. 허억허억!"

"크르르, 크르, 크르르르."

자운이 덜덜 떨리는 팔을 들었다.

이제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자운의 몸이었다.

"하아! 하아!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못 죽어주겠다."

내력을 확인해 보니 절반 조금 모자라게 남아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고수 소리를 들을 정도의 내공. 자운 스스로도 궁금하다. 도대체 이 내공의 끝이 어디인지 말이다.

지금 이렇게 되면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저 미친놈을 내공으로 짓눌러 버리는 것. 지금 자운과 내력싸움을 해서 이길 만한 고수는 당금 무림에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내력만큼은 천하에서 첫 손가락에 꼽을 만한 양.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저 미친놈이 내력 대결을 해주냐는 건데......."

어쩔 수 없다.

내력 대결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된다.

자운이 침을 꿀꺽 삼키며 단전을 자극했다. 심장 뛰는 소리와 같은 소리가 단전에서 들리며 뛰기 시작한다.

두근―

자운의 단전에서 세찬 기파가 뿜어져 나온다.

몸은 지쳤지만 도대체 내력은 아직도 얼마나 남은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자운이 검을 뻗었다.

놈도 주먹을 뻗었다.

자운이 내공을 검끝에 집중시키고, 자운의 검과 육적의 주먹이 충돌했다.

소음은 없었다.

폭발도 없었다.

충돌하는 순간, 자운이 슬쩍 검을 뺐다.

그러니 폭음이 울릴 리가 없다. 검을 슬쩍 뺀 후에 다시 육적의 주먹에 검을 가져 갔다.

둘이 닿는 순간 자운의 몸에서 노도와 같이 내공이 솟구치고, 솟구친 내공은 육적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네 내공이 많은지 내 내공이 많은지 해보자."

자운의 내공은 끝이 없었다.

대해가 저토록 넓을 것인가?

저토록 깊을 것인가?

비할 바 없는 자운의 내력이 폭포수처럼 육적의 몸속으로 쏟아진다.

육적은 변변찮은 반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자운의 내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긴다.'

자운의 눈에 희망이 감돌았다. 어느새 일어난 독성이 자운과 육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육적을 단번에 쳐 죽일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내력 대결을 하고 있는 자운이 위험해진다.

그렇기에 독성은 둘이 하는 양을 계속해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크르르르르르르."

육적의 입가로 피거품이 흘러나온다. 그의 몸속이 내부에서부터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우직―

우직우직―

자운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였고, 자운이 승리를 확신하는 소리였다. 얼마나 내공을 쏟아 부었을까, 육적의 내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놈은 속에서부터 무너졌다. 그 순간, 자운의 몸속에 있는 알이 움직였다.

내단인지 알인지 알 수 없는 것이 깨지기 시작했다. 자운의 엄청나던 내력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자운의 내력이 거대하다고는 하지만, 큰 기술을 셀 수 없이 연속으로 펼친 후에 내력 대결까지 했다.

사람의 내공이 유한한 이상 끝을 보이게 마련. 그의 내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알이 쩌적 하는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우우우우―

용음(龍音)인가?

용 우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자운의 몸속에서 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알이 모두 깨지고 나온 것은 한 마리의 황룡이었다.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자운은 자신의 단전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자운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생각했던 바가 맞았다.

이것은 내단이 아니다.

알이다.

그것도 용의 알이라 불리우는 여의옥(如意玉)이다.

자운이 승리에 찬 미소를 지으며 황룡을 움직였다.

알에서 깨어난 황룡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의 단전에서 황룡이 움직이고, 황룡의 힘이 자운의 사지백해를 타고 뻗어 나간다.

사지백해를 주천한 용은 자운의 팔을 타고 육적의 몸속을 파고든다. 그리고 모든 것을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이것이다.

이것이 황룡문의 최고 절예라고 할 수 있는 황룡무상십이강(黃龍無上十二?) 중 일룡(一龍)이었다.

용이 육적의 몸에서 긴 울음을 터뜨렸다.

우우우우우―

그리고 황룡이 놈의 등을 박차고 튀어나온다.

우우우우우우―

허공 높게 솟구치는 황룡의 형상. 그것이 자운의 첫 황룡무상십이강의 발현이었다.

제12장

우우우우우우우우―

황룡이 길게 울음을 터뜨렸다. 오랜 시간 황룡이 고고하게 자리하고, 자운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진다. 그와 함께 황룡이 자운의 몸을 향해 천천히 기울어져 내린다.

자운이 몸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독성을 찾았다. 내기에서 자신이 이겼음을 알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독성은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자운이 무릎을 꿇은 상태로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독성을 찾기 위함이다. 독성은 어느새 무너진 육적에게로 가 있었다. 그가 육적의 맥을 살폈다.

그리고는 자운을 향해서 씨익 웃어 보인다.

"아직 살아 있군."

자운이 욕을 흘렸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독성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눈치챈 것이다. 독성이 자운을 향해 웃고, 그가 손을 뻗었다.

독성의 내력이 담긴 장법이 그대로 육적을 후려쳤다.

그 순간, 육적의 몸이 한 번 펄쩍 뛰어오르며 숨이 끊어진다.

본래 내기는 육적의 숨통을 누가 끊어놓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숨통을 끊은 것은 독성이 되었다.

자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통도 잊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것인지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자운이 독성을 향해서 걸어간다.

"영감, 정말 이러기요?"

독성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태도.

"무엇을 말인가?"

"내가 잡았잖소."

"내기는 숨통을 끊어놓는 것이었지."

자운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다.

"장사에도 상도가 있는 법인데, 사냥감이랑 먹잇감에 설마 도의가 없는 건 아니겠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듯한 태도. 독성이 혼잣말로 맞받아쳤다.

"그렇게 도의를 따질 거면 먼저 약혼을 해야지. 선대의 약속인데 설마 하지 않을까."

"끙."

자운이 말을 말았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빠르게 지혈을 끝내어 상처에서는 더 이상 피가 흘러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보름 정도는 정양을 해야 움직일 만할 것 같았다.

"아이고, 죽겠다. 남의 문파 지킨다고 죽어라 싸웠더니, 나는 배 째시오."

그 말에 독성이 피식 웃었다.

"치료에 필요한 약재라면 내 모두 섭섭지 않게 제공하지. 그리고 난 자네를 내 손녀사위로 삼을 생각이 없네."

'이놈은 너무 괴물이야. 자칫하다가는 위계질서 찾다가 큰일 나겠어.'

그가 자운을 실력을 보며 말했다.

한 대 맞을지도 모른다.

자운의 실력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건 예상보다 더한 괴물이 아닌가?

지금 당장 몸이 완치되기만 하면 독성 자신과 붙어도 밀린다고 할 수 없는 무위였다.

자운이 털썩 주저앉은 상태로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독성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무슨 헛소리요, 영감?"

"말하는 꼬라지하고는. 내가 손녀사위로 삼을 것은 자네가 아니라……."

독성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우천과 운산이 서 있었다.

독성이 손을 들어 운산을 지목했다.

"내 손녀사위가 될 사람은 바로 저 아이네."

'이놈은 손녀사위로 너무 위험하지. 암, 그렇고말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자네 입으로 분명히 말했지? 저 아이가 황룡문의 문주라고."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젠장. 마음대로 하쇼, 영감."

자운의 몸이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 * *

자운이 일어난 것은 삼 일이 지난 후였다. 자운이 천천히 눈을 떴다. 감각을 되찾은 그에게 가장 먼저 엄습한 것은 욱신거리며 밀려오는 고통이었다.

온몸의 뼈와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오랜만에 몸을 무리시킨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고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자운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주물렀다.

"아아, 나도 아직 수련이 부족하네,"

새삼 실감했다. 고작 이 정도에 근육통이 밀려오다니.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운의 생각이었다.

다른 이들이 봤다면 경악했을 터다. 그 정도로 자운의 회복력은 대단했다. 마치 선천지기가 남들의 배는 되는 사람인 듯하다.

자운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자 몸에서 뚜둑 하는 소리가 울리며 근육과 뼈가 제자리를 찾았다.

자운이 그렇게 한참을 침상 위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며 우천과 운산이 들어왔다. 그들이 깨어나 있는 자운을 바라보며 반색한다.

"대사형, 살아나셨군요!"

자운이 단박에 우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럼 죽을 줄 알았냐?"

우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자운이 운산을 바라보았다.

"그래, 넌 좀 어떠냐?"

자운의 말에 운산이 고개를 푸욱 숙였다.

"죽을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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