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자운이 허리를 움켜쥐었다.
"아야야야야!"
그의 옷은 이미 터져 나가 있고, 몸은 피칠갑이다. 놈과 치고받는 동안 입은 크고 작은 상처가 전신 곳곳에 퍼져 있다.
피가 왈칵 올라왔다.
자운이 그것을 참지 않고 뱉어내었다.
"웨엑!"
주르륵.
입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아, 아까워라. 넌 오늘 내가 흘린 피보다 더 많이 흘릴 생각하고 덤벼라."
자운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미친놈을 도발했다. 의식적으로 도발한 것이 아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도발했을 뿐.
자운이 놈을 향해 손가락을 겨누어 까닥였다.
까닥이며 놈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자운이 다가오자 육적이 울음소리를 늦게 흘리며 자운을 경계했다.
일정 거리까지 다가간 자운.
더 이상은 다가가지 않고 천천히 주변을 돈다.
자운과 육적이 얼마나 서로를 노려보았을까?
둘의 몸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쾅―
연달아 폭음이 울리며 주먹과 칼이 충돌했다.
쩌엉―
쩌엉― 쩌엉―
이것은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주먹과 검이 충돌하는 소리가 아니다.
철과 철이 충돌하는 소리였다.
엄청난 소리가 퍼져 나가고, 내공이 약한 이들은 귀를 잡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소리를 타고 나가는 내공이 절대로 적은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자운과 육적은 계속해서 충돌을 거듭했다.
자운이 진각을 밟았다.
쾅―
땅이 한순간 출렁 움직이고, 육적의 몸이 휘청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운의 몸이 날아올랐다.
휙휙휙― 허공에서 강기의 비를 뿌리는가?
자운의 검에서 시작된 황금빛 강기가 천지사방을 휩쓸며 떨어져 내렸다.
콰과과과광―
땅이 뒤집어지고, 바위가 튀어 오른다.
강기의 비가 어느 하나 뗄 것 없이 육적의 몸을 난자했다.
피가 튄다.
하지만 놈은 놀랍게도 강기의 비 사이에서도 멀쩡했다.
온몸에 휘감은 기운, 호신강기가 자운의 강기로부터 몸을 보호해 준 것이다.
하지만 호신강기라 하더라도 수많은 강기를 모두 막아낼수는 없다.
놈의 팔이 이리저리 찢어지고, 몸에도 수 개의 검상이 자리하고 있다.
지혈도 되지 않은 상처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자운이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바닥에 내려섰다.
놈도 지금 정상은 아니다. 그냥 개념이 없어서 자기 몸이 정상인 것을 모를 뿐 조금만 더 때리면 죽거나 고장 나거나 둘 중 하나는 될 것이다.
"크르르르르르르!"
"개냐? 왜 짖는 소리를 내냐?"
놈의 가슴팍도 방금 전 자운이 내지른 검초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 있다. 내장과 갈비뼈가 보이는 것이, 지금 당장 내장을 쏟아내며 나 죽는다 하고 외쳐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모양새였다.
"근데 왜 안 죽느냐고."
자운의 몸이 그대로 질주했다. 운해황룡이 아니다.
질주만을 위한 보법.
광룡폭로(狂龍爆路).
자운의 검에서 황금색 기운이 줄기줄기 흐르고, 자운의 눈에서 붉은 기운이 줄기줄기 흘렀다.
후두둑―
그가 지나간 자리에 피가 떨어져 내려 길이 생기고, 자운이 저돌적으로 돌진했다.
"크와아아아아!"
자운이 돌진해 오는 것을 보고 육적 역시 미친 듯이 돌진해왔다.
이성을 잃고, 신체의 안위를 도외시하고 돌진하는 육탄은 무섭기 그지없다.
둘이 섬전과 같은 속도로 달려 나가고, 충돌하려는 찰나 자운이 몸을 틀었다.
슬쩍 육적의 허리를 빗겨 지나가는 것, 자운의 검이 육적의 허리를 베고, 육적이 주먹을 뻗어 자운의 어깨를 후려쳤다.
콰앙―
서 있던 자리에 움푹 구덩이가 파이며 자운이 그 자리에 처박혔다.
허리가 후들거린다. 왼쪽 어깨가 그 자리에서 작살이라도 난 것인지 팔이 올라가지 않는다.
"으아아아아악!"
'이거 치료하려면 아파 죽겠네."
육적은 베여 나간 허리로 핏물과 내장을 왈칵왈칵 쏟아내면서도 자운을 향해 거친 숨을 내쉬었다.
독성은 아직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아무래도 자운 혼자서 처리를 해야 할 듯하다.
자운이 움직이는 오른손으로 검을 꾸욱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키며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있는 육적을 향해 이죽거렸다.
"그래, 우리 한번 끝까지 가보자."
끝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둘 중 하나가 죽거나 둘 다 죽기다.
"크르르르."
"근데 난 못 죽어."
아직 대사형이랑 노인네에게 한 맹세를 이루지 못했으니까, 황룡문을 천하제일문파로 만들지 못했으니까. 지금 죽으면 사부를 뵐 낯이 없다. 자운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호흡을 몰아쉬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네가 먼저 죽어."
자운이 놈에게로 돌진했다. 그의 검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검영을 그린다.
콰과과과!
세찬 검영이 허공을 가르고, 강기가 뿜어졌다.
육적의 몸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호신강기.
강기를 온몸에 두르고 돌진해 올 작정인 모양이다.
자운 역시 봐줄 생각은 없다. 그 역시 호신강기를 끌어올렸다.
자운의 몸 위로 황룡이 내려서는가?
황금색 호신강기가 자운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붉은 선과 금빛 선이 땅 위로 그려지고, 둘이 충돌했다.
콰앙―
사방으로 모래먼지가 일어나고, 한 치 앞이 분간되지 않는 그 속에서 계속해서 충돌하는 소리가 들린다.
쾅―
쾅―
쾅쾅쾅―
자운의 몸이 주르륵 밀려나기도 하고, 육적의 몸이 주르륵 밀려나기도 한다.
사천당가의 대지가 뒤집어진다. 초월한 자들의 싸움, 감히 다른 이들은 끼어들 수 없다.
운산과 우천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바로 대사형의 무공."
우천이 중얼거렸다. 이토록 대단했다니.
자운이 고수라고 생각은 했지만, 곁에 있으면서도 이 정도의 고수인지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지 못한 것뿐만이 아니다.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들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황룡문의 무공이다.
지금 저렇게 절대의 무공들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이가 그들의 대사형이고, 또한 황룡문의 무공이다.
자신감이 그들의 가슴에 솟구쳤다.
그리고 우천은 왜 자운이 이백 년은 이르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운이 보이고 있는 경지는 우천에게는 그야말로 까마득한 경지가 아닌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이 떨려서 서있을 수가 없다.
운산과 우천이 넋을 놓고 자운을 바라보았다.
자운의 손에서 황룡문의 절기가 또다시 펼쳐졌다.
두 손으로 펼치는 온전한 염룡교(炎龍巧)
후끈한 열기가 자운의 주먹에 휘감기고, 자운의 주먹이 그대로 화인(火印)을 내리찍었다.
육적이 광인이 된 와중에도 두 팔을 교차했다.
쌍장을 교차하여 뿌림과 동시에 화인을 막은 것이다. 염룡교가 놈의 팔을 지지고, 놈의 쌍장이 자운의 왼쪽 어깨와 다시 충돌했다.
"크라라라라라!"
"아악! 아파! 이 개자식!"
둘은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뒤로 물러서며 비명을 질렀다.
엄청난 고통이다.
비명을 지르면서도 자운은 공방의 전환을 그치지 않았다. 한순간만 이것을 멈춰도, 한순간이라도 이것이 어긋난다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 것은 자운일 것이다.
팽팽하게 근육을 당겨오는 긴장감이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놈의 주먹이 자운의 머리를 빗겨 지나갔다. 서늘한 감각과 함께 짜릿한 공표감이 뇌리로 들어와 척추를 타고 온몸으로 뻗어 나간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위험하다.
그래서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넘쳐나던 자운의 내공도, 어느새인가 반절이나 소비해 버린 지 오래였다.
이놈은 몸의 상처를 도외시하며 달려들지만, 자운은 공방을 동시에 해야 했기 때문에 육적에 비해서 내공 소모가 극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괴물 같은 것이, 고작 절반밖에 소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의 싸움으로 사천당가의 사분지 일이 초토화되었다. 그런 전투를 계속 벌이고 있으면서도 내공이 절반이나 남아 있다.
다른 무림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자운이 검을 뻗었다.
직도황룡으로 내리긋는 수법. 일곱 번의 변화가 육적을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잔영. 육적은 이형환위의 수법으로 몸을 틀어 자운의 공격을 피해내었다. 놈은 광인이 된 와중에도 온갖 무리를 사용한다.
자운이 궁신탄영의 수법으로 놈을 쫓았다.
자운의 몸이 빠르게 사라지며, 그의 손이 허공에 기기묘묘한 그림을 그렸다.
마치 화공이 붓으로 아무렇게나 선을 긋는 듯한 모습. 하지만 어느 순간 무질서가 질서를 이루었다.
휘리릭―
손에 바람이 휘감기고, 용이 부리는 바람이 자운의 손에서 쏘아졌다.
"키아아아악!"
놈이 비명을 지르며 자운의 바람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육적의 손 가죽이 바람에 찢겨 나가고 피가 흐른다.
자운이 이번에는 검으로 뇌전과 같은 베기를 뿌렸다.
꾸르릉―
그의 내력이 불똥을 튀게 하고, 바닥을 움푹 파이게 만들었다.
바닥이 파인 곳은 방금 전까지 육적이 서 있던 자리. 육적이 다시 몸을 틀어 자운의 공격을 피해낸 것이다.
자운이 욕을 뱉었다.
"제발 좀 처맞아라!"
하지만 그런다고 맞아줄 리 없다.
자운도 답답한 마음에 소리친 것이지 정말로 맞아줄 것이라 생각하고 외친 것은 아니었다.
놈이 주먹을 들었다.
손아귀가 찢겨 나갔는데 고통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인지 주먹을 아주 꽈악 쥐고 있다.
주먹 가득 붉은 기운이 모이고, 그것이 허공을 후려쳤다.
허공의 공기가 밀린다.
밀려난 공기 사이로 권강이 쏘아졌다.
마치 쏘아진 포탄과 같다. 저걸 그대로 한 대 맞으면 지금 혼절해 있는 독성처럼 뼈도 추리지 못할 것이다.
"흐읍."
자운이 호흡을 크게 들이쉬었다.
들이쉰 호흡이 폐부로 들어가 사지로 내공과 함께 뻗어 나간다.
자운의 걸음이 움직이고, 허리가 뒤틀어지며 포탄과 같은 권강을 흘렸다.
권강은 그대로 날아가 또 하나의 당가 건물을 무너뜨렸다.
여기까지가 반의 반 호흡. 자운이 남은 호흡을 계속 끌어당긴다.
몸을 이루고 있는 근육 곳곳으로 호흡이 뻗어 나가고, 그 호흡을 타고 내공이 돌았다.
그런 자운을 향해서 육적이 미친 듯이 권강을 쏘아 보낸다.
자운이 이를 악물고 지룡천보행을 펼쳤다.
극의에 다른 지룡천보행은 어느 수준까지 타인의 힘을 통제해 자신의 지배하에 둔다.
자운의 발이 바쁘게 변화를 그리고, 그 사이로 권강이 모여들었다.